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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부산지하철, 선로 위의 세월호가 될 것인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승객들이 한꺼번에 쓰러졌다.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77㎏나 나가는 내 몸이 붕 떠서 뒤로 떨어졌다. 폭발사고라도 난 줄 알았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열차 뒤에서 연기가 치솟았다.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데 밖에 나가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만 나와 세월호 참사가 떠올라, 다른 승객들과 함께 문을 열고 어두운 지하터널을 빠져나왔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6개월도 지나지 않았지만,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들이 부산지하철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부산지하철의 문제점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진짜 '안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신보다 더 나이가 많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

취재[각주:1]를 위해 부산 노포 차량기지에 들어가 전동차 내부를 살펴보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전동차의 제작 연도가 지하철을 이용하는 중고생 또는 대학생들의 출생연도보다 더 빨랐기 때문입니다.


현재 부산지하철 1호선에는 처음 개통하면서 들여왔던 1984년 제작 차량이 그대로 운행되고 있습니다. 무려 29년이 넘은 것입니다.  

초중고생은 물론이고 대학생이나 30대 이하 직장인들은 부산지하철 1호선이 들어오기도 전에 태어났으며, 자기 나이보다 더 노후화된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것입니다.


부산지하철 1호선 전동차 중에서 20년 이상 노후화된 전동차는 전체 360량 중 300량으로 8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서울메트로의 경우 21년 이상의 노후차량이 40%로 부산보다 현저히 적지만, 박원순 시장은 장기적으로 노후 전동차를 교체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차량이나, 지하철, 선박 등에는 내구연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내구연한을 넘긴 장비는 폐기되어야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런 내구연한이 아예 사라졌습니다.


2009년 3월 19일 MB정부는 25년으로 되어 있는 내구연한을 15년까지 늘려 최대 40년까지 사용하도록 철도안전법을 개정했습니다.

2014년 3월 19일 박근혜정부는 도시철도법 제22조에 있던 40년 내구연한 조항마저 아예 삭제해버렸습니다.


내구연한을 초과한 전동차를 운행하지 못하는 법안이 사라졌으니, 지하철은 백 년이 넘게 사용해도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게 됐습니다.

' 지하철도 리모델링 하나요?'

내구연한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과 필요 없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제대로 수리만 한다면 수십 년이 지난 자동차도 멀쩡히 타고 다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몇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잘 정비된 중고차와 부산지하철을 간단히 비교하겠습니다. 중고자동차는 아무리 많이 타고 다녀도 운행 횟수가 1일 2~3회에 1년에 대략 3만 km를 운행합니다. 그러나 부산지하철은 1일 운행횟수가 수십 회에 이르며, 차량 편성당 1일 평균 주행거리도 279km나 됩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오래된 자동차는 아날로그 형태가 많다는 점입니다. 복잡한 전자식이 아니므로 엔진 그 자체에 문제가 없으면 오래 타고 다닐 수 있습니다.

지하철은 복잡한 선로와 신호, 통신 등의 디지털 방식이 혼합하여 운행되고 있기 때문에 노후차량은 항상 다른 기계 등과 상호 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대형 사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전동차와 다른 기계 장비가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사고가 났던 사례도 이미 발생한 바 있습니다.

2014년 6월 19일 오후 7시, 부산지하철 1호선 동래역에서 교대역 사이에 정전 사고가 발생, 전동차가 멈추었습니다. 전동차가 멈추자 관제실에서는 뒤따르는 열차에 멈추라고 지시를 합니다. 그러나 기관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전동차 내부의 통신장비가 먹통이 됐기 때문입니다.

전동차는 이미 생산이 되지 않는 차량이기 때문에 새로 신설되는 선로 또는 통신, 신호 체계와 부품과 시스템이 맞지 않습니다. 억지로 부품을 수작업해서 만들어도 고장 발생률이 높아 사고 위험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지하철은 단순히 차량만의 문제가 아닌 여러 복합적인 시스템을 담고 있는데도 부산교통공사는 부산지하철 1호선의 차량을 바꾸기보다 '리모델링'하겠다고 합니다.

보통 리모델링은 집에서나 사용하지 지하철에도 사용하는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집도 리모델링 하기보다 새롭게 건축하는 편이 유리하면 철거를 하는데, 부산시와 교통공사는 무조건 리모델링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각주:2]

차량,선로,신호,통신 등의 복합적인 부산지하철 문제를 대충 고쳐서 쓰겠다는 안일함을 보면 대들보가 무너져 지붕까지 내려앉을 수 있는데도 비 새는 것만 막겠다는 모습 같습니다.

' 벌써 세월호를 잊었나?'

부산지하철을 취재하면서 놀란 이유 중의 하나는 생각하기도 끔찍하지만, 대형 사고가 난다면 세월호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세월호의 탑승객은 476명이었습니다. 부산지하철은 보통 1천 명이 타고 다니며 출퇴근 시간에는 그보다 더 많은 승객이 탑승합니다.

세월호의 고장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부산지하철은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차량, 신호, 통신 등의 한 가지 문제만 있어도 사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월호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로 뛰어내리기만 살 수 있었다는 안타까움입니다.

부산지하철은 터널 내부에서 화재가나면 진화하기도 어렵거니와 유독가스 등으로 지하 터널에서 빠져나오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각주:3]


세월호 유가족들이 지금 외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시는 우리 아이들과 같은 아픔을 겪지 않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러나 부산지하철을 보면 벌써 세월호의 참사와 교훈을 다 잊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이 해피아와 돈의 논리였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생명따위는 팽개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분노했습니다.

부산지하철 취재 도중 만난 공무원과 교통공사 사람들이 매번 하는 말이 '예산 때문에'라는 말입니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돈 때문에 우리의 목을 겨누고 있는 칼날을 그저 숨죽이고 봐야 합니까?

부산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승객이라면 선로 위에서 또 한번 세월호 참사를 겪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1. 부산지하철 취재에는 부산지하철 노조의 자료 및 인터뷰 지원과 교통편 등이 제공됐습니다. [본문으로]
  2. 일본의 경우 감가상각 종료 및 기술발달에 따라 운영비용이 적게 소요되는 신규차량이 개발되면 사용가능한 차량도 폐차한다. [본문으로]
  3. 부산 만덕역에 화재가 발생할 경우 소방차가 출동 역사까지 진입하는데 총 12분 이상이 소요된다. 경기 고양종합터미널, 장성요양병원 화재 사망자 대부분은 대부분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사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