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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한국 해경의 실체'



세월호 구조 작업과 지원을 총괄하는 해경 간부가 세월호 선사와 관련한 세모해운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고 초기부터 현장에서 수사와 구조작업 지원을 총괄했던 해양경찰청 이용욱 정보수사국장은 1997년 경정 특채로 해경에 입문했는데, 이전에 7년간 세모에서 근무한 경력이 이번에 드러났습니다.

이용욱 해경 정보수사 국장이 경정으로 특채된 배경은 그가 조선공학 박사학위를 소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특채 배경에는 세모의 지원이 있었습니다.


이용욱 국장이 해경에 특채되던 1997년, 그는 (주)세모 조선사업본부 소속으로 조선대 백모씨와 공동으로 '알루미늄샌드위치 초고속 카훼리의 구조설계'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이 논문은 (주)세모와 재단법인 산학협동재단의 연구비 지원으로 작성됐습니다.

세모의 연구비 지원으로 여러 차례 선박 관련 논문을 발표한 이 국장은 1997년 11월 해양경찰청 '조함기획계장'으로 특채 임명됐습니다. 이후 총경으로 승진, 혁신기획단장, 군산해양경찰서장 등을 거쳐 해경 내 요직인 정보수사 국장까지 맡고 있습니다.


구원파 신도였다가 현재는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는 이용욱 국장의 개인적인 부분은 둘째치고라도, 현재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유병언 회장과 연관성이 있다면 다른 사람으로 대체했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해경은 아직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 언딘위해 SSU, UDT 구조 잠수를 막은 해경'

세월호가 완전히 물에 잠기자 많은 시민들은 빨리 잠수부를 동원해 선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승객과 학생들을 구조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4월 16일 12:04분 침몰 현장에는 SSU 대원 14명과 UDT 대원 9명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빠른 시간 내에 구조 작업이 이루어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 진성준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받은 문서를 보면, 4월 16일 18:35분 이후부터는 SSU와 UDT는 잠수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해경에서 잠수작업을 통제했기 때문입니다.


4월 17일 오전 7시, 정조시간에 맞춰 잠수를 위해 현장에서 대기하던 SSU 대원 9명과 UDT 대원 10명은 잠수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해경이 '민간업체 언딘'의 잠수를 위해 현장 접근을 통제했기 때문입니다.

4월 16일과 4월 17일은 실종자 구조작업을 위해 가장 필요한 골든타임에 해당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해상 수색구조 매뉴얼>

○ 부상자들의 해상 생존 가능성은 최초 24시간 동안 80%까지 감소 하고, 부상당하지 않는 사람들의 생존 가능성도 최초 3일 이후에 급속히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짐

출처:해양경찰청 발행 해상 수색구조 매뉴얼 18p


해경은 자신들이 만든 '해상 수색구조 매뉴얼'에서 분명 생존자 구조를 위해서는 최초 24시간 이내의 신속한 구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실종자 수색은 생존자 구조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습니다.


해경은 해경 7명 해군 13명이 야간 수색을 위해 잠수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실제 국방부 자료를 보면 사고 당일 4월 16일 야간에는 해군의 야간 수색 작업은 해경의 통제로 없었습니다.


해경은 한 명의 인원이라도 더 구조하기 위해 밤샘 구조작업을 시행하고 해경 특수구조단을 투입했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했지만, 실제는 민간업체 언딘의 우선 잠수를 위해 해군 특수구조단의 잠수를 막았습니다.

' 해피아들이 장악한 구조작업'

많은 민간잠수사들이 자신들의 시간과 돈을 희생하며 세월호 침몰 현장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러나 해경은 계속해서 이들을 폄하했고, 비난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해경은 자원봉사 민간잠수사들이 물속에서 10분도 안 있다가 나오고, 사진만 찍고 돌아갔다고 비난했습니다. 여기에 지금까지 자원봉사자들의 구조실적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해경의 주장과는 다르게 시신 최초 발견은 자원봉사 민간잠수사들이었고, 해경은 이를 민간업체 언딘이라고 발표했다가 나중에는 내용을 잘 몰라 실수를 했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해명이라고 내놓기도 했습니다.

해경이 자원봉사 민간잠수사를 비난하고 '언딘'을 옹호하는 내면에는 '해피아' 형태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세월호 구조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언딘의 대주주는 한국해양구조협회 부총재입니다. 한국해양구조협회에는 일부 해경 출신 퇴직자가 연봉 6천만 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해경 퇴직자가 한국해양구조협회로 재취업하고 이 협회를 이끌고 있는 부총재의 회사가 세월호 실종자 수색 작업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해경 간부들이 언딘을 옹호하는 이유가 의심스러운 대목입니다.

' 선장과 선원을 구조한 해경, 학생과 승객을 구조한 어업지도선과 어선'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고 해경에 대한 비판과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실종자 수색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해경이 제대로 실종자를 구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특수구난대'는 하네다 공항에 배치되어 24시간 언제라도 비행기와 헬기를 이용하여 구조작업을 벌이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 해경 잠수요원 7명은 11시24분이 되어서야 세월호 사고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은 헬기 대신에 목포에서 차로 1시간 이동해 진도 팽목항으로 왔고, 이후 다시 배를 타고 사고 현장에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심해 잠수 가능 '해경 특수구조단' 역시 부산 다대표→김해공항→목포공항 등으로 오다 보니 오후1시 40분에야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생명이 사라지는 긴급한 순간에 차 타고, 배 타고 현장에 출동하는 시스템이 한국 해경의 모습입니다.


▲어업지도선 구조작업 사진은 학생과 승객 보호를 위해 모자이크 처리를 했기 때문에 이미지가 흐릿합니다.


해경은 9시 27분에 헬기 3대와 경비정 1척,고무보트 1척이 사고 현장에 도착, 구조작업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생각외로 사고 현장에 도착한 장비가 너무 적었고, 구조작업 또한 이상했습니다.   


세월호 침몰 현장에 도착한 해경 123정은 배 앞부분에서 구조작업을 벌입니다. 이에 반해 해경보다 늦은 10시 4분경 도착한 어업지도선과 어선은 배 앞이 아닌 뒷부분에서 구조작업을 합니다.

해경 123정이 구조작업을 벌인 앞부분에는 속옷 차림의 선장과 선원이 있었고, 어업지도선과 선원이 구조작업을 벌인 뒷부분에는 승객과 학생 수십 명이 몰려 있었습니다.

해경이 제대로 구조작업을 하려고 했다면 선장과 선원이 아니라, 수십 명의 아이들이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던 배 뒤쪽으로 갔어야 합니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수십 명의 아이를 어업지도사 한 명과 어선에 있는 어부들이 구합니다. 어업지도사가 '데리고 가야지' 하면서 다시 뱃머리를 세월호로 돌린 까닭은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구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글을 쓰면서 물속에서 '아저씨, 아저씨'를 애타게 외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참았던 눈물이 또다시 났습니다.  

▲ 저 수많은 아이들이 아직도 구조되지 못했는데 왜 해경 고무보트는 한 척만 보일까요?


10시 17분 세월호가 거의 물에 잠기자 해경123정은 세월호에서 멀찍이 떨어집니다. 수많은 우리 아이들이 애타게 '아저씨'를 찾고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기 위해 헤엄쳐 간 곳은 더는 태울 수 없는 단 한 척의 해경 고무보트가 아닌 '어선'이었습니다.

돈이 없어 연안구조장비도 갖추지 못하고 특수 잠수사의 헬기 출동도 하지 않은 대한민국 해경은 골프장 건설에 145억원을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대한민국 해경의 실체입니다.[각주:1]

  1. 해경 중에서 목숨 걸고 구조와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고 있음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지금 그 분들의 공을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목숨이 우리 곁을 떠났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