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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노무현 NSC 반대하던 박근혜, 왜 이제와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에 대해 4월 15일 남재준 국정원장이 대국민사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사과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3분이었고, 남 원장은 기자 질문도 받지 않고 사과문만 읽고 나가버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유감스럽게도 국정원의 잘못된 관행과 철저하지 못한 관리체계에 허점이 드러나서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실상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국정원장의 실책과 무능이 계속해서 드러났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정원은 뼈를 깎는 환골탈태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또다시 국민들의 신뢰를 잃게 되는 일이 있다면 반드시 강력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만 말해, 남재준 원장을 해임하지는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남재준 국정원장을 해임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해임되면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국내 정치,선거 개입에 대한 책임론이 한꺼번에 불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가 안보'를 이유로 계속 남재준 원장을 안고 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 불안한 남재준 대신, 확실한 김기춘을'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간접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슬그머니 'NSC 운영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즉석 안건으로 상정해 심의, 의결했습니다.

개정안은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NSC 상임위원으로 포함하는 규정이었습니다.

현재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는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을 상임위원장으로 윤병세 외교부·류길재 통일부·김관진 국방부 장관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김규현 NSC 사무처장 겸 국가안보실 1차장,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 겸 국가안보실 2차장 등 7명이었는데, 김기춘 비서실장을 포함 8명으로 확대됩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을 NSC 상임위원으로 추가한 이유는 남재준 국정원장의 위상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이 확정되기 전에 열린 NSC 상임위원회 회의에서는 남재준 국정원장의 얼굴이 계속 보도됐습니다.
항상 NSC 상임위원회에 얼굴이 나오던 남재준 국정원장이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이 거의 확실시 되면서 얼굴이 나오지 않거나 뒤통수만 나오기 시작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남재준 국정원장만으로 공안정국을 이끌어 가지 못한다고 보고, 자신의 심복이자 유신헌법을 만든 공안검사 출신의 김기춘 비서실장을 NSC 상임위원으로 임명한 것입니다.

' 김기춘과 김장수의 어색한 동거와 권력투쟁'

김기춘 비서실장이 NSC 상임위원으로 오면서 난처해진 사람이 있으니, 바로 NSC 상임위원장인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입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청와대 3실장 체제에서 선임실장입니다. 그런데 선임실장이 속칭 자기 밑으로 와서 회의해야 하니 참 껄끄럽게 됐습니다. 


 
국가안전보장회의 (NSC)는 박근혜 대통령이 주관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한 것은 지난 8월 단 한 번에 불과합니다. 그동안은 김장수 위원장이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동안 김장수 실장은 국가안보실장이자 NSC 상임위원장으로 외교,안보 분야를 주도했습니다. 이제 김기춘 비서실장이 상임위원으로 오면서 그의 힘은 대폭 줄어들고, 김기춘 실장의 힘은 더욱 강화될 예정입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NSC 상임위원회를 주도한다면 남재준 국정원장보다 더 치밀한 '공안 정국'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두 실장들의 권력투쟁 또한 가속화될 전망입니다.

'김기춘에 '병권'을 주기 위한 청와대의 이상한 변명'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과거에도 대통령 비서실장이 NSC 상임위원에 임명된 적이 있었고, 최근 안보상황을 감안할 때 대통령 실장도 외교안보분야의 상황들을 인지할 필요성이 있고 모든 사안이 외교안보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논리를 펼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전혀 다른 거짓말입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에 문재인 비서실장이 참석한 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상임위원은 아니었습니다.

문재인 비서실장의 참여는 '북한 핵물질 실험'이 벌어졌을 때 오명 과학기술부총리가 NSC 상임위에 참석한 것처럼 어떤 사안에 대한 정보와 조율 때문이었습니다.

참여정부 때에는 대통령 비서실에 외교,안보 기능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NSC 사무차장과 국가안보보좌관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국가안보실, 대통령비서실 산하 외교안보수석실도 있습니다.

굳이 김기춘 비서실장이 NSC 상임위원에 임명될 필요성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김기춘 비서실장을 NSC 상임위원에 임명한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주장처럼 '기춘대원군'에게 '병권'까지 주기 위한 변명에 불과할 뿐입니다.

' 참여정부 NSC 확대에 반대했던 박근혜'

NSC는 유명무실한 제도로 운영되다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와서야 제대로 그 역할을 했었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을 기반으로 하는 대북 정책을 관장하는 인물들로 주축이 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NSC 사무처의 기능을 확대하고 사무처 요원을 중심으로 실무대책회의를 열어 전문가들이 분석한 자료와 내용을 통해 대응전략 등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NSC 사무처의 역할이 강화되자, 당시 한나라당은 NSC 사무처의 역할과 기능, 인원을 축소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법 개정안에 서명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그토록 NSC 사무처를 비난하고 법 개정안에 서명까지 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12월 NSC 사무처를 설치하고 NSC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NSC를 처음 만든 박정희의 딸이 참여정부 시절에는 반대하다가, 이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국가안보'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너무 자주 바뀐 것입니다.



참여정부 시절, 조선일보는 연일 NSC를 비난하는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2004년 6월30일에는 한 면 전체를 할애하며, '1人이 열고 닫는'국가안보의 門'', '屋上屋·屋外屋 돼버린 청와대 외교·안보팀' 등의 기사를 보도하며 노무현 대통령의 NSC 확대와 사무차장을 비난했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대통령 비서실장을 넘어 병권까지 쥐고 흔드는 NSC 상임위원이 됐습니다. 참여정부의 NSC를 그토록 반대하던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이 NSC를 강화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오히려 '안보까지 챙기는 청와대 비서실장'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북한 무인기 때문에 온 나라가 법석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참여정부 시절은 그만큼 위험이 적고 안전했기 때문에 그렇게 반대했나요? 

국가 안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기 때문에 '국정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겉으로만 사과하고, 슬그머니 김기춘을 NSC 상임위원에 임명한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