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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역사를 잊고, 오히려 친일파 추앙하는 '연세대'



연세대학교가 용재 석좌교수에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를 선정해서 초청장에 인쇄까지 해놓고, 시상 하루 전에 취소했습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연세대는 올해 제20회 용재 석좌교수로 서중석 교수를 선정하고 초청장에도 용재상 수상자로 인쇄해서 돌렸습니다. 그러나 돌연 서 교수의 석좌교수를 취소하고 진덕규 이화여대 명예교수만 3월 6일 따로 발표했습니다.

연세대학교가 1년간 연세대에서 강의하며 연구비를 지급하는 석좌교수직을 서중석 교수로 선정했다가 취소한 이유는, 그가 연세대학교 초대 총장을 지낸 '용재 백낙준'을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 용재 백낙준의 친일 행위'

도대체 용재 백낙준이라는 사람이 누구이고, 그가 어떻게 일제에 부역했는지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백낙준은 1895년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중국 허베이 성 텐진의 신학서원을 거쳐 1918년 미국 파크대학교, 프린스턴 대학교와 예일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미국 유학 후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활동했던 백낙준은 1946년 연희전문학교 교장으로 취임 후 '세브란스 의과대학'과 '연희전문학교'를 통합하여 4년제 '연희대학교'로 인가를 받습니다.

 


연세대학교 초대총장으로 유명한 백낙준이지만 그는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활동한 친일파입니다. 그는 조선장로교 신도 애국기헌납 기성회 부회장으로 일본 제국주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자입니다.

백낙준은 <한국기독교회사>를 집필하며 개신교에서는 추앙받는 인물이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친일 기독교 편집위원으로 천황의 사진을 1면에 게재하고 '성수무강'이라고 칭송하며 십계명을 위반했던 죄인입니다. 

미국과 영국을 타도하는 것이 '동아 신질서 건설을 위한 성전'이라고 주장했던 그는 해방이 되자 미군이 서울에 도착하는 9월 9일에 맞춰 미군을 환영하는 의미로 <코리아 타임즈>를 창간했습니다.

교육자에서 변신, 정치 권력을 쫓았던 백낙준은 1950년 이승만의 권력도구로 총리에 임명됐지만, 승인조차 (국회의원 재석 123명 중 찬성 21표, 반대 100표, 기권 2표) 받지 못했던 사람에 불과합니다.


연세대학교에서 백낙준은 '자랑스러운 연세인'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그는 일제 강점기에 친일을 위해 신앙과 지식인의 양심을 저버린 전형적인 친일파에 불과합니다.

' 친일은 어쩔 수 없다고?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된 숭실대학교'

연세대학교가 속칭 'SKY'로 불리는 명문대학교이지만, 친일 연구나 기독교 차원에서 보면 연세대학교는 숭실대학교보다 오히려 못한 대학교입니다.

1897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인 베어드에 의해 평양에서 시작된 '숭실학당'은 민족 학교와 기독교의 신앙을 지킨 학교라 불리기 충분합니다.


숭실대학교는 '을사늑약 반대',' 105인 사건','조선국민회','평양지역 3.1운동','광주학생운동'마다 적극적으로 참여한 학교입니다.

얼마나 숭실학교 학생들이 독립운동에 관여했는지, 일제 경찰은 숭실대학교를 가리켜 '불령선인의 소굴'이라고 칭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에서 신사참배는 신앙심을 저버리는 행위이자, 하나님에 대해 죄를 범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 신앙심을 지킨 목사들은 신사참배 거부로 투옥, 모진 고문 속에 순교를 택하기도 했습니다.

숭실대학교는 기독교 학교로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제의 압력을 계속 거부하다가 1938년 스스로 학교를 폐교하고 신앙을 지킵니다.

백낙준이 아무리 한국기독교교회사를 집필하며, 학교를 키워냈다고 해도 신사참배를 거부한 숭실대학교와 비교한다면 신앙을 지키지 못한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해방 후 그가 회개했다면 용서가 될 수 있었겠지만, 백낙준은 결코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지도 않았습니다.


일제 강점기 전국의 모든 기독교 학교가 폐교를 두려워하지 않고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일제에 대항했다면 어땠을까요?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모든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가운데에서도 지식인의 양심과 신앙을 지킨 이들과 비교하면 자기변명에 불과할 뿐입니다.


' 연세대학교는 왜 서중석 교수의 시상을 취소했나'

서중석 교수는 '한국근현대민족운동연구'라는 논문으로 '한국 현대사 박사 제1호'로 기록될 만큼 능력있는 역사학자입니다.

그는 '역사비평' ,' 역사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 지도위원',  '일제강점하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활동한 친일 연구가로도 유명합니다.



흔히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조선일보 사장이었던 방우영이 1997년부터  2013년 (4월)까지 무려 16년 동안 연세대학교 이사장으로 있었다는 점입니다.

방우영은 계속 연세대학교 이사장을 연임하다가 2011년 기독교계 이사 파견을 받지 않기로 정관을 바꾸면서 조선일보의 연세대학교 사유화를 노렸습니다. 그러자 기독교계가 소송을 냈고, 방우영은 전 대법관이자 총리 출신인 김석수를 연세대학교 이사장으로 임명합니다.


친일 언론인 방우영의 영향력이 살아 있는 연세대학교에서 친일연구가인 서중석 교수의 상을 취소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에게는 좌파라는 자체가 그들의 친일행위를 비판하는 행위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친일파들이 해방 이후 독립투사들을 '빨갱이'로 몰았던 그 역사가 아직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홈페이지에는 '자랑스러운 연세인' 페이지에 백낙준과 윤동주 시인이 나란히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숭실중학에 다니다 신사참배로 학교를 옮겼고, 항일운동 혐의로 체포 옥중에서 사망한 인물입니다. 

백낙준은 일제를 위해 협력하고 제자를 전쟁터로 보낸 친일 행위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두 사람이 똑같이 자랑스러운 연세인으로 나란히 있을 수가 있습니까? 

대한민국 학교에서 '애국'을 강조할 필요 없습니다. 누가 우리나라을 침략해도 그들에게 충성을 다하면서 부와 권력을 누리다 나중에는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대학교에서 추앙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지성인을 배출한다고 자랑하는 연세대학교는 역사를 잊은 대학교입니다. 그들에게는 'SKY'라는 출세의 증서만이 남아 있을 뿐 미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