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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농민의 땅을 강탈한 박정희, 1100억 물어줘야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강제로 땅을 뺏긴 농민과 그 후손들이 47년 만에 배상을 받게 됐습니다. 서울고법 민사 9부(부장 강민구)는 2월 11일 농민과 유족 291명 낸 청구 소송에서 "국가는 650억 5천여 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서울고법의 판결로 농민과 유족들은 지연 이자까지 포함 1,100억 원대의 배상금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 배상금은 단일 소송으로는 최대 배상금이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농민들은 땅을 빼앗겼고, 이렇게 엄청난 배상금을 받게 됐는지 그 사건을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경제인들을 부정축재자로 몰아 대거 구속했습니다. 이후 박정희는 경제인들도 혁명사업에 동참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경제인들은 구속된 경제인들의 석방과 삼성 이병철 회장의 무사 귀국을 조건으로 동참하게 됩니다.

당시 전경련 이사회는 박정희와 면담하면서 일본 가시마공단, 싱가포르 쥬룡공단과 같은 공업단지 조성을 제시했고, 구로동을 수출단지입지로 선정하게 됩니다.

박정희 정권은 1961년부터 구로동 일대에 거주하며 농사짓던 농민들을 대거 쫓아내고, 이곳에 간이주택과 공영주택을 건축하며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를 조성했습니다.


당시 구로동 172의 2등 수백필지 전, 답,대지의 소유자들은 1942년 일본 육군성에 수용당하기 전부터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해방 이후 이 토지들은 귀속농지를 관리하던 신한공사,중앙토지행정처에 의해 관리됐습니다.

1949년 농지개혁법에 따라 구로동 토지들은 농지소표와 분배농지일람표 등이 작성됐고, 1950년 6월 20일 농민들에게 농지가 분배됐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서류가 소실되는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당시 농지를 분배받은 농민들은 농지분배에 따른 상환곡(돈 대신 농사지어 나온 쌀로 땅값을 지불하는 방식)을 2회 또는 3회 납부하였습니다.

영등포구청과 서울시가 이미 농민들이 농지를 분배받았다고 통보했지만, 국방부는 국유지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이 권리를 국방부에서 재무부로 이관시켰고, 해당 토지의 농민들을 경작지에서 쫓아냈습니다.



땅을 뺏긴 농민들은 1966년에 이 땅이 농지로 분배받은 땅이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1968년 12월 12일 서울민사지법에 증인으로 출석한 농림부 농지국지정과 농지계 주사 한상운씨 등 공무원들은 이 땅이 정당하게 농지 분배된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민사소송에서 농민들의 땅이 정당하게 분배받은 땅이 된다면 수출단지 조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자, 박정희 정권은 진실을 밝힌 공무원을 오히려 범죄자로 둔갑시켰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1968년 한상운 주사 등을 허위증언 등의 이유로 구속했으며, 농민과 공무원이 금품을 주고받고 허위로 증언하고 서류를 꾸몄다며 수사를 했습니다. 


1967년 1심에서는 농민이 패소했지만, 1970년 대법원에서는 '농지개혁법에 따라 적절히 분배됐다'면서 사건을 파기 환송했습니다.

농민들의 땅으로 소유권이 인정되는 분위기가 되자, 갑자기 박정희가 특명을 내렸고, 대통령비서실 산하 제2지방행정실이 '서울시 구로동 대지 분규 보고' 문건을 보고했습니다.

박정희는 이 문건에 친필로 <법무부 장관으로 하여금 정부측이 패소되지 않도록 가능한 조치를 취하도록 할 것> 이라는 문장을 쓰고 직접 지시를 내렸습니다.  

박정희의 특명을 받은 중앙정보부는 공작을 펼쳐, 농민들을 사기 소송법으로 몰아 무더기로 검거하도록 했습니다.

중정의 협박을 받은 농민들은 사기 혐의로 체포됐고, 소송을 취하한다는 서명과 포기 약속을 하고 나서야 풀려났습니다. 



농지를 분배받고 정당하게 곡식으로 땅값을 갚았던 농민들은 하루아침에 자신들의 땅을 뺏겼고, 억울하게 사기꾼으로 체포됐습니다.
 
농민들은 그저 자신들의 땅에서 농사짓고 살기 원했지만, 박정희 정권은 이들의 땅을 강제로 뺏으려고 했으며, 이 과정에서 농민들을 파렴치한 범죄자로 세상의 손가락질과 멸시를 받게 하였습니다.

이들의 이런 고통은 무려 47년 동안이나 계속됐고, 당시 농민 중에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박정희의 경제 정책을 찬양하는 이들은 구로동수출산업단지가 이런 아픔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당시 박근혜는 구로공단 여공들에게 군복을 입혀 입대식을 하거나 새마음 깃발 등을 수여하면서 '산업역군'이라며 치켜세웠습니다.

[현대사] - '여왕벌'과 벌집에 살았던 구로공단 '여공'

농민의 땅을 빼앗고, 젊은 여공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철저히 유린하여 박정희 정권의 경제는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나온 피해자와 억울한 사연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 박정희가 농민의 땅을 강제로 빼앗은 일로 대한민국은 1100억 원이라는 엄청난 배상금을 물어줘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그토록 치켜세웠던 박정희식 경제성장의 추악함에 뭐라 말을 해야 합니다.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반세기 동안 고통받았던 농민들에게 마음 깊숙이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