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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제주 강정마을에서 짓밟힌 '성체'에 담긴 의미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미사를 드리는 도중 '성체'가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8월 8일 오전 11시 30분경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는 여느 때처럼 '강정 생명평화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경찰은 미사 중에 사제와 평화 활동가들을 길옆으로 밀어내기 시작했고, 문정현 신부가 '성체분배'를 시작하자 20여 명의 경찰이 달려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문정현 신부가 넘어지면서 성체가 땅에 떨어졌고, 경찰은 떨어진 성체를 그대로 밟고 지나가면서 성체가 부서지는 사태까지 이르렀습니다.

▲ 경찰에서는 성체 훼손이 고의가 아니라고 하지만 필자가 동영상을 확인한 결과 성체를 든 문정현 신부의 손을 경찰이 잡았던 사실을 찾아 냈다.


문정현 신부는 성체가 훼손된 자리에서 2시간 가까이 엎드려 오열하며 움직이지 않았고, 이런 끔찍한 상황을 전해 들은 천주교 제주교구에서 온 사제에 의해 훼손된 성체를 정리하는 예식이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면 도대체 '성체'가 무엇인데 경찰의 진압에 몸을 사리지 않던 문정현 신부가 2시간 가까이 움직이지도 않고 훼손된 성체를 붙들고 오열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천주교에서는 '성체성사' 개신교에서는 '성찬식'이라고 불리는 의식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수난을 당하기 전날 밤에 열두 제자들과 함께했던 저녁식사의 의미를 기리는 종교의식입니다.

예수님은 이 최후의 만찬에서 빵과 포도주를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릴 내 피이다”(루가 22, 19-20)라는 말과 함께 "너희는 이 예를 행함으로써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당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줬듯이 신부와 사제,목사,장로 등이 빵과 포도주를 예배 또는 미사에 참석한 교인들에게 나눠주는 의식이 '성체분배' 와 '성찬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이 성체의식과 성찬식을 달리 해석하지만, 그 의식의 중요성은 공통적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체성사와 성찬식에서 빵과 포도주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세례성사를 받았거나 세례를 받은 사람이고, 이는 단순히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과 피로 생각하며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천주교나 개신교 신자가 아닌 사람은 잘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 종묘 신위와 선조 의주 피난을 묘사한 장면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에도 그전의 난이 발생했을 당시 양반 가문에서 장손들은 제일 먼저 사당에 모신 신위를 챙겼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의주로 피난을 갔던 선조도 종묘에 모셨던 신위를 챙겨 피난길을 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조상에게 제사를 모시는 풍습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신위는 조상 그 자체로 여겨질 정도로 신위를 중요하게 여겼고, 종묘에 모신 신위는 함부로 공개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영조는 어머니 숙빈 최씨가 무수리 출신이었던 탓에 신위를 모실 사당을 짓기도 했으며, 직접 신위를 모시겠다고 나서 신하들과 싸움을 벌였고, 영조의 이런 모습은 지극한 효심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신위 그 자체가 어떤 조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신위에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있으며, 이를 극진히 모시는 것이 효도의 근본이자 예의로 인식하는 나라가 한국이기도 합니다.

성체도 이처럼 신위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종교적인 논쟁은 피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기독교인이지만 신위와 성체를 비교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 의미만 얘기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성체도 신위처럼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기에 천주교와 개신교에서는 엄숙하고 가장 의미 있는 종교의식 중의 하나입니다.


▲ 성체 훼손을 정리하는 미사 도중에도 계속 오열하고 있는 문정현 신부 출처:강정마을 평화 활동가


그래서 문정현 신부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 속에 예수님을 기억하는 경건한 성체가 훼손되자 그 노구의 몸으로 어린아이처럼 슬퍼하며 오열했던 것입니다. 그에게 성체는 단순히 빵 쪼가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몸이고 그의 말씀이 내재한 중요한 상징물이기 때문입니다.

경찰과 보수우익에서는 신부가 왜 성당에 안 있고, 해군기지 앞에서 종교의식을 진행하고, 괜히 별것도 아닌 일에 호들갑을 떤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천주교는 독재와 민주주의 탄압 과정에서 단순히 성당이 아닌 거리에서 고통받는 시민을 위로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일에 앞장서기도 했었습니다.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거리 시위 모습

1971년 10월 지학순 천주교 원주교구 교구장은 김지하 등 의식있는 청년들을 지원하면서 원주문화방송을 설립하는데 참여하면서 지역사회 언론 발전에 노력합니다. 그러다 1971년 원주문화방송을 둘러싼 부정에 분개하여 '사회정의 구현과 부정부패 규탄대회'를 3일동안 진행합니다, 계속해서 박정희 유신정권을 비판하던 지학순 주교는 1974년 해외여행에서 돌아오다 김포공항에서 중앙정보부에 체포됩니다.

7월 6일 지학순 주교가 중앙정보부에 체포되자,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정의의 실천은 주교들의 의무'라는 성명을 냈고, 7월 11일 수녀원으로 연금됐던 지학순 주교는 7월 23일 '유신헌법은 무효'라는 양심선언을 내외신 기자 앞에서 발표하고 다시 체포됩니다.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던 지학순 주교는 다시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이런 그의 모습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출범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요 활동 연혁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지난 독재 군사정권 시절 대한민국에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통로 중의 하나였습니다. 언론 그 누구도 '광주사태'의 진실을 말하지 못했던 시절 광주의 진실을 밝혔고,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기도 했습니다.

'삼성비자금'과 '김현희 KAL858기 사건','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 우리 사회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고 거리에서 시민과 함께했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암울했던 우리 시대를 밝혔던 등불이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만 유독 천주교가 군사독재의 탄압에 맞서 시민을 지키고 진실을 찾았던 것은 아닙니다.

▲ 영화 로메로의 포스터와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영화 '로메로'의 주인공이었던 오스카 로메로는 중남미 작은 나라 엘살바도르의 수도 신살바도르의 대주교였습니다. 그는 원래 보수주의자이면서 개혁신앙과는 아주 동떨어진 전통적인 신부였습니다. 그런 그가 영화의 실존 주인공이 되는 배경에는 엘살바도르의 마르니테스 군사독재정권과 같은 군부 독재 세력이 있었습니다.

빈번한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독재정권들은 내전과 국민 억압의 수단으로 수많은 국민들을 학살했고, 이 와중에 로메오의 친구였던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가 암살당하자, 로메로 주교는 '엘살바도르 시민 인권위원회'를 설립해 군사정권의 폭력사건을 고발하고,기록하며, 미국에 더는 엘살바도르에 무기를 제공하지 말라는 요청까지도 합니다.

이런 로메로 주교를 향해 엘살바도르 군사 정권은 갖은 협박과 회유를 했고, 이에 굴복하지 않자 결국 1980년 3월 24일 로메로를 암살합니다.

종교의 폐단은 많습니다. 저도 기독교인이지만 기독교가 오히려 사회보다 더 많은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진정한 종교의 참뜻인 사랑과 봉사,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룰 수 있도록 고통받는 사람을 위로하며 그들과 함께 아픔을 함께하는 종교인들도 많습니다.

▲ 영화 로메로 속의 장면과 문정현 신부의 성체를 줍는 모습


영화 로메로에는 군인들이 총을 들고 성당에 들이닥쳐 로메로 주교와 시민들을 내쫓는 장면이 있습니다. 군인들이 총을 들고 있는 성당에 로메로 주교는 홀로 들어가 군인들이 총을 쏘는데도 묵묵히 바닥에 엎드려 흩어진 성체를 줍습니다. 이 장면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에서 경찰의 전투화에 훼손된 성체를 줍는 문정현 신부가 왜 이리 똑같아 보이는지....


로메로 대주교는 암살 당하기 전날 군인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냅니다. “형제들이여, 그대들도 우리와 같은 민중입니다. 그대들은 그대들 형제인 농민을 죽이고 있습니다. 어떤 군인도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명령에 복종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그대들은 양심을 되찾아, 죄악으로 가득한 명령보다는 양심에 따라야 할 때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아울러 날마다 더한 고통을 받아 그 부르짖음이 하늘에 닿은 민중들의 아픔으로, 나는 그대들에게 부탁하고 요구하고 명령합니다. '탄압을 중지하시오!'"

로메로 대주교와 문정현 신부가 주웠던 성체는 어쩌면 예수님의 몸이 아니라 이 땅의 고통받고 억압받고 있는 처참한 국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버림받은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듯한 슬픈 얼굴의 그들을 보니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