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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나를 괴롭혔던 고참,군 제대 후 고소했더니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모두 고참이라고 불리는 선임병들에게 욕 한번 안 먹어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고참이 후임병을 어떻게 괴롭히느냐는 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욕설을 비롯한 구타와 가혹행위에 대한 추억(?)은 누구나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군대에서 구타는 물론이고 전혀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과 욕설을 당한 기억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면회를 자주 온다고 ' 이 XX 빠져 가지고 여자 친구에게 매주 면회오라고 전화나 하고 지X이야',' 너 만약 군종병으로 가면 네 동기들은 매일 보일러실 집합이야' 등  사회에서 보면 어떻게 저런 걸로 사람을 괴롭히느냐고 할 사소한 일로 후임병을 괴롭히는 일이 비일비재한 곳이 군대입니다.

그래서 군시절 동안 고참을 어떻게 하면 혼내줄까 하는 상상을 해본 사람도 꽤 됩니다. ' 제대만 해봐라, 너 사회에서 만나면 확 패버린다',' 내가 군대니 참지, 제대만 하면 두고봐라' 등의 굳은 다짐도 해봅니다. 그러나 군대를 제대한다고 실제로 사회에서 만나 고참을 패는 일은 드뭅니다. (가끔 그런 사람도 있지만)

어제 SBS 뉴스에는 전혀 상상도 못할 기사가 하나 올라왔습니다. 군대에서 선임병으로부터 심한 욕설을 받은 후임병이 제대 후 선임병을 고소했고, 그 선임병이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입니다.

▲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 나온 신병의 모습


2010년 강원도 철원 5공병여단에 신병이 자대 배치를 받습니다. 이 신병에게 선임병은 욕설과 함께 군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언어 폭력은 물론이고, 후임병을 괴롭히는 일들을 가하기 시작합니다.

▷ 코를 골면 죽여 버리겠다: 취침 중에
▷ 장애인 다 됐네, 꺼져버려: 휴가를 갔다가 다쳐서 돌아왔을 때
▷ 흡연금지
▷ 낮잠금지
▷ PX 사용 금지

제가 군시절에 당연히 감수했던 일들이지만, 신병은 이 모든 것이 힘들고 괴로웠고, 결국 '군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고 자신을 괴롭혔던 선임병과 비슷한 시기에 전역했습니다. 그 후 신병은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넣었습니다.

법원까지 간 이번 사건에서 법원은 선임병의 발언이 '협박죄'와 '모욕죄'에 해당한다며, 민간인인 된 고참에게 벌금 6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그저 군대에서 흔히(?) 자행되던 일들에 대한 처벌이 군 제대 후에도 가능하다는 판결이 나온 것입니다.

당시 고참은 법원의 이번 판정에 즉각 항소했고, 신병의 부모는 선임병들의 욕설로 신병이 엄청난 정신적,육체적 피해봤기 때문에 법원의 이런 판결은 당연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 국방부는 2010년 욕쟁이 리스트 제도를 만들었다. 출처:국방일보


군대에서 욕설과 언어폭력을 막기 위한 노력을 신병이 괴롭힘을 당했던 2010년에도 계속됐습니다. 국방부는 2010년 '언어폭력 근절 원년'으로 삼고 언어폭력 퇴출 작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욕쟁이'리스트입니다. 욕쟁이 리스트를 작성해서 언어폭력 신고자에게는 건당 1점의 상점을 상습언어 폭력자(욕쟁이)는 -1점을 부과하여 각종 휴가나 외출,외박, 또는 각종 군 생활에 불이익을 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여전히 군대에서 언어폭력은 존재했고, 국방부가 '언어폭력 근절 원년'으로 삼았던 2010년, 이번 사건의 신병은 여전히 언어폭력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이번 사건과 판결은 굉장히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저처럼 군대를 제대한 지 오래인 사람은 해당이 되지 않겠지만, 요즈음 제대한 사람 중에 언어폭력을 당했던 사람이나 했던 사람들이 이번 판결을 통해 고소하거나 처벌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뜻입니다.

사실 군형법에는 상관( 장교,부사관)에 대한 협박이나 모욕만 죄로 규정하고 있지, 같은 사병끼리는 죄로 처벌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간법원에서는 이제 언어폭력에 대한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사건을 군 제대한 사람이 꼭 눈여겨봐야 할 판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 중에 이번 사건을 보는 생각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군대 참 좋아졌다. 저런 일로 벌금 맞으면 군 제대한 남자 대부분은 유죄다."

"당해본 사람은 진짜 이해가 된다. 저런 사람은 반드시 제대 후에라도 처벌해야 한다."


제가 당했던 언어폭력에 비하면 이번 사건에 나온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뿐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런 언어폭력을 그냥 무시하자는 생각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판결만 보자면 정말 군대 다녀온 대다수 남자는 모두 처벌받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군대에서의 인권은 언제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군대 폭력은 인간성 파괴로 이어져, 자살 내지는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받을 수 있는 무서운 일입니다.

군인의 인권과 단순히 군대에서 행해지는 선임병들의 언어폭력을 어떻게 연관시키고 어떤 방법으로 개선할지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군대에서 속칭 말하는 '상호 존중'이라는 시스템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보면 중학교 동창인 승영이 신병으로 태정이 말년 병장으로 등장해, 군대에 들어오면 친구라는 개념도 모두 사라질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승영은 고참이 되어 제대한 태정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결국 군대라는 상황에서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별로 없음을 서로 느낄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사건에 나온 신병의 마음도, 유죄판결을 받은 고참도 이해가 됩니다. 법원은 유죄판결을 내렸지만, 저는 선임병을 향해 돌을 던질 수가 없습니다. 저또한 신병때는 언어폭력을 당했고, 고참이 돼서는 언어폭력을 구사했던 범죄자(?) 중의 한 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유죄,무죄를 법원의 판결로만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원이 무죄라고 했지만, 상식적으로 유죄인 경우도 있고,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통념상 유죄로 보기 어려운 상황도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받았던 신병에게 군대는 지옥이었겠지만, 후임병을 관리했던 고참은 그저 자신이 받고 배웠던 대로 행동했을 수 있습니다. 오늘 글을 쓰면서 결론도, 누가 잘못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신병의 고통만 짐작하면서도 선임병의 모습도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단순히 내린 결론은 이제 군대에 가는 사람이나 군 복무 중인 병사들은 제대 후까지도 생각해서, 언어폭력이나 욕설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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