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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 기울어진 경기장은 틀린 말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캠프에서 활약했던 금태섭 변호사가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는 책을 냈다. 금태섭 변호사는 이 책을 대선 실패담에 초점을 두고 현대판 징비록처럼 만들려고 했다고 밝혔다. 징비록까지는 아니지만,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캠프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 수 있는 책은 분명했다. 특히 야당이 선거에서 지는 사례가 금 변호사의 경험담을 통해 구구절절 나온다.

 

금 변호사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인 '이기는 야당이 갖춰야 할 4가지'를 핵심 포인트로 삼고 있지만, 글을 읽는 나에게는 예상했던 일들이 진짜 있었구나라는 증거 사례로 훨씬 흥미로웠다.

 

▲ 안철수 후보 기자회견을 보도한 스포츠동아의 기사 제목 ⓒ스포츠동아

 

안철수 후보가 대선주자로 떠오르면서 나왔던 키워드가 '안철수 목동녀','안철수 논문 표절' 등 그를 향한 네거티브 공세였다. 야권 후보로 부상하는 인물에게는 늘 의혹 관련 얘기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문제는 이것이 진짜 기자들이 후보를 검증하기 위한 시작일까? 아니면 조직적으로 누군가 자꾸 여론을 조성하려고 만드는 작품인가?라는 부분이다.  

 

정확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선거가 끝난 후 새누리당 선거캠프의 네거티브 담당자가 기자들에게 자신이 그런 일을 했다고 자랑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국회도서관에서 안 후보의 족보를 찾은 다음 사돈의 팔촌까지 행적을 조사했다는 것이었다. 가족이나 친척들의 주거지, 부동산 거래 내역 등을 모두 찾아서 공격거리를 추려낸 후 그때그때 기자들에게 제공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 금태섭

 

금태섭 변호사는 책에서 새누리당 선거캠프 네거티브 담당자가 기자들에게 이런 소스를 제공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야당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도덕성을 흠집내는 것이다. 그가 하자가 없어도 괜찮다. 그저 기자들에게 '그런 얘기가 있더라'하는 말만 슬쩍 흘러도 알아서 기자들은 소설을 만들어낸다. 종편 출연자들은 아침 드라마 감독처럼 쪽대본으로 그때그때 '막장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흔히 이런 경우, 언론 때문에 졌다는 말을 한다. 맞다. 종편 중독자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멀쩡한 사람들이 살아남기는 힘들다. 하지만 왜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할까? 캠프 내에서 자체적으로 후보자를 샅샅이 검증해 준비하거나, 대비책을 통해 역공세에 들어갈 수는 없었을까?

 

가장 쉬운 선거 방법은 상대방을 공격해 내 지지율을 끌어 올리는 것이다. 그런 방식을 선택한 상대 진영을 욕한다고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똑같이 상대방을 욕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당하지는 말아야 한다. 네거티브 공세를 하지 않는다고, 자기를 향한 공격에도 무방비 상태로 있는 것은 무능이다. 온라인에서 강세를 보인다는 헛소리에 심취해 자신의 지지자에게조차 대응책을 알려주지 않는 오류는 패착이 아니라 아예 돌을 던지는 일이다.

 

 

금태섭 변호사가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에서 제일 많이 할애하고 있는 부분이 '비공식 기구'이다. 캠프 내 공식적인 창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자꾸 오더가 내려오거나 공식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이 발생해 캠프가 엉망이 됐다는 얘기다.

 

또 다른 원인은 비공식 기구의 발흥이었다. 캠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던 박경철 원장은 별도의 모임을 만들어서 후보와 비공개 회합을 가지면서 선거운동의 모든 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비공식 모임이니만큼 비밀리에 운영되었는데 그곳에서 메시지의 방향을 상당 부분 결정하다 보니 공식적인 메시지 형성 절차가 필요 없었던 것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발표가 불쑥불쑥 튀어나왔고, 공식선거운동 기구인 진심캠프는 당연히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 금태섭

 

안철수 진심캠프의 실패가 박경철 원장의 비밀모임이라고 지적하는 금태섭 변호사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때로는 비공식 모임이나 채널도 때로는 필요하다. 결정은 소수가 하되 여론은 정확히 수집하는 형태를 갖추어야 한다. 자기들 멋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아래에서 올라온 얘기를 검증하고 결정하는 메인 콘트롤 타워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야당 역사를 보면 결정권자들은 늘 자기 생각이 옳다는 아집에 사로잡혀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여당은 그냥 위에서 아래로 그냥 내려와도 잘 따르지만, 야당은 다양한 의견이 있기에 결정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소수의 전략가들이 늘 여론을 모니터링하고 중간 관리자 내지는 하부 조직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공식적인 캠프가 힘을 잃을 정도로 비공식 채널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순간 조직의 근간이 무너진다'는 금태섭 변호사의 주장에 덧붙이자면 주력부대인 공식캠프의 시스템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 상명하복의 시스템이 아닌 의견과 제안은 쉽게, 결정은 신중하게, 업무 분담은 확실히 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

 

 

금태섭 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서 정치권에 진입하는 경로가 낯 뜨거울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검사하다가 정치하는 사람을 예로 들었는데, 사실 그런 면에서 금태섭 변호사도 떳떳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금 변호사가 주장하는 20대 초반부터 지역사회 혹은 정당의 기초조직에서 활동하면서 경력을 쌓는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동의한다.

 

문제는 과연 지금의 야당이 20대 청년을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다라고 답할수 밖에 없다. 지역 정당 조직에서 청년들이 오면 싫어하는 일도 있다. 괜히 와서 분란을 일으킬 수가 있다며 갖은 핑계를 대고 가입을 거절한다. 진보가 오히려 보수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시민사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만이 아닌 진짜 정치를 배우는 청년들이 많아져야 한다. 시민활동과 정치는 분명 다르다. 정치에 물들 수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도 있지만, 구태의연한 정치를 무너뜨릴 수 있으려면 정치가 뭔지 알아야 한다. 정치 경험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정치를 바꿀 수 있을가?

 

사회적으로 유명하거나 성공한 사람만이 정당에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정치시스템이 야당에 있어야 한다. 부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진짜 정치인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다선 의원이라면 자신의 경험 플러스, 세대를 움직이는 역량을 가진 신인 정치인을 키워놓고 은퇴해야 한다. 끝까지 공천에만 매달려 있다가 여의도 언저리에서 떠나지 못하는 추태는 이제 그만 보여야 한다.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를 통해 우리가 배울 점은 실패가 아니다. 그 실패에 대한 대비와 전략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수립하는 일이다. 비록 금태섭 변호사가 총선을 겨냥하고 쓴 책이지만, 충분히 읽어볼 만한 책이다. 왜?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도 똑같은 일이 또 벌어질 것이기 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