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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외신은 보도한 '원세훈 판결-박근혜' 조선일보에는 없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대선개입에 대한 1심 판결에서 정치관여를 금지한 '국정원법'은 유죄를 공무원의 직위를 이용한 '공직선거법 위반'은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 (재판장 이범균)은 국정원 심리전단의 댓글 활동은 국정원의 직무행위에 해당되지 않으며 정치 관여 활동을 지시했기 때문에 유죄를 선고했지만, 구체적으로 선거운동을 지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거법 위반은 아니라고 판결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습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1심 판결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외 언론에서 이를 분석하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와 조선일보의 보도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 조선일보- 대선개입 무죄, 15개월간 국가혼란만 키워'

조선일보는 원세훈 전 원장의 판결 다음날인 9월 12일 1면 톱뉴스로 원세훈 전 원장의 소식을 다뤘습니다.


조선일보는 1면에 <'국정원 댓글' 원세훈 대선개입 무죄>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조선일보의 1면을 접한 사람이라면 원세훈이 지시한 국정원의 댓글 활동과 대선이 완전히 무관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굵은 글씨로 '대선개입 무죄'만 강조한 조선일보의 1면 제목은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없었다는 왜곡적인 모습까지 느끼게 하였습니다.

조선일보는 1면에 이어 4면에서는 왜 이런 제목의 기사를 썼는지 그 속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4면에서 <검찰의 무리한 선거법 적용,, 15개월 국가혼란만 키워>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습니다.

이 제목이 말하는 의미는 지난 대선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된 '선거 부정'은 없었으며, 이때문에 15개월 동안 한국이 혼란 속에서만 빠져 있었다는 질책성 보도였습니다.[각주:1]


특히 조선일보는 당시 황교안 법무장관의 '선거법 혐의 적용은 무리'라는 의견을 무시한 채동욱 검찰총장 수사팀의 반발이 갈등을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과장의 진술과 수사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3면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멱살 잡힌 모습의 사진을 배치하고, 그 밑에 <이범균 판사 찾아내서 죽이겠다. 진보성향 방청객들 고성, 몸싸움>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배치했습니다.

이 사진과 기사의 제목을 읽은 사람이라면 진보와 야당지지자들은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법원 판결을 논리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격한 행동으로 반발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무죄는 당연하며, 그동안 부정선거를 주장한 진보와 야당의 논리는 이로써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독자에게 강조했습니다.

'뉴욕타임스- 박근혜에게 정치적 부담을 덜어줬다' 

미국시각으로 9월 11일 <전직 한국 국정원장, 진보파 비방 온라인 캠페인에 유죄>라는 제목의 기사가 뉴욕타임스 온라인판에 올라왔습니다. [각주:2]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조선일보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대선개입 무죄'라는 말이 아니라 '국내정치를 금하는 법을 어긴 것에 대한 유죄를 선고받았다'며 국정원의 정치개입 유죄 소식을 제일 먼저 다뤘습니다.

이어서 뉴욕타임스는 국정원의 댓글 활동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검찰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보도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재판부가 판결에서 밝혔던 "(국정원의 정치 개입)이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범죄이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국정원의 정치개입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범죄 행위라는 사실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국정원의 이번 댓글 활동뿐만 아니라 과거 정치 공작과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개입 행위까지 언급했으며, 최근 몇 달 동안 이루어진 간첩사건의 증거가 조작된 적도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원세훈 전 원장의 판결을 다룬 뉴욕타임스와 조선일보의 가장 큰 차이는 '박근혜'라는 단어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판결이 '박 대통령에 대해 심각할 수도 있는 정치적 책임의 부담을 덜어줬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1면, 3면, 4면과 그리고 사설에서까지 언급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판결 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각주:3]

조선일보는 뉴욕타임스가 분석했던 '선거법 무죄= 수혜자 박근혜'라는 내용을 보도하지 않음으로 누구나 알 수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판결을 의도적으로 회피했습니다. 

' 부정선거에 대한 면죄부는 계속되고 있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무죄 판결을 보면서, 지금 청와대에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과거와 너무 유사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1992년 대선을 앞두고 초원 복집 사건으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혐의 처리됐고, 원세훈 전 원장도 공직선거법은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이 두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정권을 쟁취하는 방법으로 국가기관을 통한 불법을 자행했다'는 점입니다.

원세훈 전 원장도 2012년 국정원 부서장 회의에서 "종북좌파들이 북한과 연계해 다시 정권을 잡으러 하는 데, 확실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국정원이 없어진다"며 단순한 댓글 활동이 아닌 정권을 쟁취하기 위한 활동으로 국정원이 움직였음을 드러냈습니다.


우리가 이번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판결에서 까맣게 잊고 있는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국정원 댓글 활동이 선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입니다.


18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사흘 앞둔 12월 16일은 국정원 댓글 사건이 최대 선거 쟁점이었습니다. 이날 저녁 11시에 있었던 경찰의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결과 발표가 있기도 전에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은 '오늘 중으로 수사결과를 공식 발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경찰의 발표가 있기도 전에 증거가 없다고 토론에서 발언했습니다. 국정원은 댓글이 없었으니,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보도자료를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무죄는 선거법 적용의 문제와 함께[각주:4] 법원 판결의 정치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국정원 정치개입과 댓글 활동이 유죄로 밝혀진 이상, 2012년 12월 16일에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보여줬던 이들의 행위가 어떻게 선거에 영향을 미쳤는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 작가 이하씨의 작품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정치개입-유죄, 선거법-무죄' 판결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를 만든 사람은 박정희입니다. 중앙정보부를 동원한 정치공작으
로 정권을 유지한 박정희와 그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 모두 국가 정보기관의 혜택을 받은 모습이 과연 우연일까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박근혜 대통령이 함께 있는 사진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법원의 판결로 서로서로 혜택을 받았습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판결 소식을 보도하면서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을 유지하게 해줬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조선일보를 보면 '다이아몬드를 훔쳤지만, 다이아몬드를 갖고 있지 않으니 도둑질은 아니다'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1. 조선일보는 사설에서도 이와 같은 논리를 펼쳤다.'1년간 나라 흔든 국정원 선거 개입, 결국 무죄' [본문으로]
  2. 뉴욕타임스 번역 관련 기사 출처: http://thenewspro.org/?p=7180 [본문으로]
  3. 조선일보 4면 '야, 정치쟁점으로 부각시키지 않을 듯' 기사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한 편이라는 기사가 유일, [본문으로]
  4. '찜찜한 유죄'... 선거법 85조 아닌 86조였다면? -오마이뉴스 http://goo.gl/zNU4D2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