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살면 제일 좋은 것 중의 하나가 대부분의 제주 초등학교에 푸른 잔디가 깔려 있다는 점입니다. 학교인 탓에 관리도 잘 되어 있고, 이용자가 적은 탓에 늘 잔디는 그림 속 풍경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멋지다'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처음에 제주에 내려올 때만 해도 아이 학교 문제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원래 큰 아이가 시골에서 자랐던 탓도 있지만( 직장문제로 아이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공부보다는 인성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막상 제주에 와서 우연하게 선택했던 '송당초등학교'는 아이,부모 모두가 만족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학생 숫자가 적다는 것입니다. 우리 큰 아이가 다니는 송당초등학교 1학년은 총 7명입니다. 거의 소수 정예(?) 과외와 같은 방식입니다. 여기에 방과 후 수업 활동도 미술,음악,컴퓨터,체육,영어가 있어 굳이 학원에 보내지 않고 학교에서 모든 것을 해결합니다.
▲ 송당초등학교 영어공개수업 모습. 에스더는 언니,오빠 수업 중에 교실을 자기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있다.
학교에 학생이 적다 보니 전교생이 형,동생,누나,언니처럼 지냅니다. 누가 누구 동생인지는 당연히 알고, 에스더처럼 병설유치원에 다니지 않아도 전교생은 에스더가 누구 동생인지 모두 압니다. 그러다 보니 에스더도 학교에 가면 놀이터처럼 교실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고, 교장선생은 물론 학교 선생 모두가 에스더를 학생처럼(?) 받아 줍니다.
' 학교살리기를 위해 집을 무료로 임대 해주는 제주'
송당초등교처럼 제주 대부분 초등학교의 학생 수가 적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부 중산간지방이나 해안 지역 마을에서는 초등학생 수가 나날이 감소하기 때문에 특별히 '학교 살리기' 프로젝트로 다세대 주택을 건축해 임대하거나 빈집을 활용해 임대해주고 있습니다.
▲금산초등학교 다세대 빌라 준공식,덕수초등학교와 송당초등학교의 빈집 무료 임대
보통 빈집은 무료 임대가 많지만, 다세대 빌라는 보증금 2백만 원에 연간 임대료 2백만 원 정도입니다. 제주의 허름한 농가주택도 연세가 4백만 원이 넘는 것을 생각하면 연세 2백이면 거의 반값에 가깝습니다.
제주에서 학생 수가 적은 초등학교로 '학교 살리기'를 추진하고 있는 학교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제주 지역에서 10여개의 초등학교가 '학교 살리기' 프로젝트 차원에서 다세대를 건축해 임대하거나 빈집을 임대하고 있습니다. 명단에는 없지만 곽금초등학교,수산초등학교도 가끔 학생이 전학오면 집을 임대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초등학교에서 무료 또는 적은 임대료만 받고 집을 임대하는 곳에 들어가려면 자격 요건이 있습니다.
- 제주 도외 (원적지가 타지역이면서 실거주지도 타지역인자) 거주하는 초등학생 2명 이상 자녀를 둔 자.
- 초등학생 2명이라 함은 초등학교를 연계할 수 있는 미취학 아동도 포함
보통 제주 이외의 지역에서 제주로 이사를 오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에 임대를 하는 데, 유치원 7세반 아이 1명도 초등학생 자녀로 인정해줍니다. 우리 큰 아이도 초등학교로 바로 간 것이 아니라, 유치원에 갔을 때부터 학교에서 집을 무료로 제공 받았습니다.
제주도외라고 했지만, 사실 제주 시내에 있다가 중산간지방으로 와도 조건만 맞으면 임대를 하기 때문에 시내에 살다가 시골 초등학교로 전학오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연세도 저렴하고, 빈집은 무료인 경우가 많아서 초등학교 자녀를 둔 가정이라면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집을 구하기보다 이런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도 제주 정착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무료 임대, 그러나 무턱대고 오는 것은 위험'
제주 지역에서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에 무료 또는 낮은 금액으로 집을 임대하는 것이 좋다고 무작정 오는 것은 위험합니다. 몇 가지 반드시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 제주 농가주택은 아파트가 아니다
다세대 빌라처럼 새로 신축한 건물이 아닌 경우 대부분 학교에서 임대하는 주택은 전형적인 제주 농가주택입니다. 그러다 보니 화장실이 밖에 있거나 천장이 낮아 장롱조차 못 들어가는 주택이 태반입니다. 물론 학교에서 수리를 어느 정도 해주기는 (장판,도배,화장실 등) 하지만 그래도 아파트와 도시에 살던 사람이 무작정 온다는 것은 위험합니다.
[제주 이민] - 낭만적인 귀촌? '지네' 보고 도망갈 뻔했다.
귀촌,귀농에서 느낄 수 있는 어려움이 집을 해결한다고 해소되는 것이 아니듯, 집부터 주변 환경까지 시골살이에 대해 각오하지 않고 덜컥 오는 것은 몇 달도 안 돼서 다시 이사 가는 일을 만들 수 있습니다.
● 제주 중학생의 입시지옥
초등학교 저학년인 경우는 이렇게 무료 임대를 활용하는 방안이 좋지만, 고학년인 경우는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이유는 아직도 제주는 고등학교가 평준화와 비평준화가 섞여 있는 지역이라 입시 열기가 다른 육지보다 더 높기 때문입니다.
고학년 자녀를 둔 가정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시내로 보내기 위해 시내로 다시 이사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처럼 자신의 자녀에 대한 미래를 많이 고민하면서 자녀가 좋은 고등학교에 가서 명문대학을 가기 원한다면 다양한 생각과 방법, 그리고 여러 가지를 따져봐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덕수초등학교에서 무료로 임대해주는 농가주택, 화장실이 밖에 있고, 이정도 집도 구하기 어렵다.출처:제살모카페,http://cafe.daum.net/jesalmo
● 점점 줄어드는 무료 임대
초등학교 무료 임대를 문의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초등학생 수는 그리 많이 늘어나고 있지 않습니다. 이유는 다세대 빌라를 신축할 여건이 안 되는 초등학교는 마을 빈집을 임대해야 하는 데, 빈집의 수요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빈집이 있다고 쳐도 수리할 곳이 많아 학교에서는 예산 부족으로 막상 초등학생이 전학 온다고 해도 농가주택을 수리해주지 못해 떠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처럼 초등학생 수 감소로 통폐합을 막기 위해 교장 선생님과 교사들이 학교운영위원회와 열심히 뛰어다녀도 교육청의 예산을 받지 못해 한숨과 고민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촌이나 귀농을 꿈꾸며 제주로 오기 원하는 가정에서 초등학교 주택 임대를 활용하면 좋겠지만, 위험성 내지는 고려해야 할 조건도 만만치 않게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학교 살리기는 결국,마을 살리기'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녀서인 탓도 있지만, 초등학교 살리기에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골 초등학교는 단순히 학생들만의 공간이나 의미가 아니라 마을이 살거나 죽거나 하는 무한한 힘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제주지역 유소년,생산가능.고령인구 비중. 출처:제주발전연구원
현재 제주지역 연령별 인구를 보면 유소년인구(0~14세)의 연평균 증가율은 -1.4%입니다. 여기에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중은 2010년 68.3%에서 2040년 52.7%로 15.6p 감소할 전망입니다. 이에 반해 고령인구(65세 이상)은 2010년 12.6%에서 2040년 35%로 무려 22.4%p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제주 지역 자체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농촌 지역을 가보면 할아버지,할머니들이 태반입니다. 고령화로 변한 마을을 살리는 길은 학교에 아이들이 많아지는 방법이 제일 빠릅니다. 보통 자녀를 둔 가정이 이사 오면 유소년과 생산가능인구가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학교 살리기는 마을 살리기가 되는 것입니다.
▲제주도 연도별 통폐합 초등학교 명단.
그러나 제주 교육청은 계속해서 초등학교 통,폐합을 강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현재 유보된 상황도 보이지만, 언제라도 예산 타령과 효율적인 교육방침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20여 개의 학교를 없애려고 합니다.
단순히 20여 개의 학교가 없어진다는 것은 20개의 마을이 사라진다는 뜻과 같습니다. 말을 그럴듯하게 통폐합으로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고 교육청은 주장하지만, 분교로 전락해서 교사가 부족하고 지원 예산이 없어진다면 굳이 시골 초등학교에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 부모들의 상황입니다.
▲송당초등학교는 유치원생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가족과 함께 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하고 있다.
제주에 살지만, 굳이 가족끼리 어디 다니지 않습니다. 그것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학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에게 체험 학습과 탐방, 가족 행사를 계속해서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학교 행사를 하면 마을 사람을 만나서 제주살이에 대한 어려움을 나누기도 하고, 함께 음식을 먹으면서 정을 쌓기도 합니다.
학부모들이 젊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을 발전에 대한 고민도 나오고, 이를 어떻게 개선하고 발전시킬지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자발적인 참여도 나타납니다. 어쩌면 학교라는 곳이 단순히 교육의 공간이 아니라 마을의 중심축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요셉이는 송당초등학교를 절대 떠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그것은 1학년 남자아이는 둘뿐인데 자기가 전학 가면 남자친구가 혼자 남아 슬프기 때문이랍니다. 반대로 그 아이도 요셉이 때문에 전학을 가지 않고 있습니다.
시험점수를 잘 받지 않아도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마음껏 뛰어놀고 친구들과 놀면서 싸우기도 장난치기도 하면서 겪는 어릴 적 추억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는 늦게라도 열심히 하면 성적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 싱그러운 추억은 돈 주고 살 수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마음껏 뛰놀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은 어른들의 몫입니다. 그 공간은 아이만의 공간이 아니라 마을과 사람을 이어주는 지역사회의 공간입니다. 그 공간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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