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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야기

낭만적인 귀촌? '지네' 보고 도망갈 뻔했다.


 


아침에 일어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다가 낮에는 소일거리 삼아 텃밭을 가꾸고, 저녁이면 마당에서 고기 구워먹으며 사는 것을 꿈꾸는 귀촌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베이비붐'세대의 은퇴가 가속화되면서 2001년에 880가구에 불과하던 귀농,귀촌 인구가 2005년에는 1,240가구,2010년에는 4,067가구로 계속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필자가 사는 제주에만 올 7월 말까지 3,052명이 다른 지방에서 제주로 순유입됐고, 매달 400~500명 가량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렇게 귀농,귀촌 인구가 늘어나면서 그들이 행복하고 성공적으로 정착해 사느냐고 묻는다면 선뜩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도시에서 생각했던 귀농,귀촌이 막상 현지에서 살아보니 어렵고 힘들어 다시 도시로 온 사람들도 꽤 되기 때문입니다. 귀농은 말할 것도 없이 힘들고, 그나마 쉽다고 여겼던 귀촌도 귀농과 매한가지로 힘듭니다.

귀농,귀촌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40-50대의 귀촌 생활 중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일들을 모아봤습니다.

' 농약때문에 창문조차 열지 못하는 집'

귀촌을 하는 40~50대 남자들의 로망은 평생 자신이 꿈꾸었던 그림 같은 집을 짓는 일입니다. 통나무집, 황토집, 조립식 주택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만의 공간을 머릿속에서 설계하다 보면, 하루빨리 시골에서 살고 싶어 미칠 지경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상은 집 구하기에서부터 깨져버립니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각종 부동산 사이트와 귀농,귀촌 카페입니다. 이런 곳에서 정보를 얻어 직접 답사도 하고 부동산 업자와 함께 땅주인이나 집주인을 만나 가격도 조정하다 보면 금방이라도 멋진 집이 생길 것 같지만, 그 집이나 땅이 얼마나 제대로 된 곳인지 모르고 덜컥 샀다가는 평생 모은 재산을 일순간에 날리기 십상입니다.

▲ 농촌에서 집을 구할 때는 주변에 어떤 농사를 어떻게 짓는지를 잘 알아봐야 한다. 요새는 농약을 기계로 뿌리기 때문에 근처에 집이 있다면 그 집은 농약을 공기로 들여마시게 된다.


제주 이주자 모임에서 나온 사례를 한번 보실까요?

" 부동산 업자가 소개해준 집을 봤더니 넓은 들판에 4가구가 옹기종기 각자 개성이 담긴 멋진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있었다. 확 트인 모습에 도시 생활에 넌덜머리가 난 아내와 나는 덜컥 계약금을 치르고, 서울에 올라왔다. 이삿짐센터와 연락해서 이사 갈 날짜를 앞둔 어느 날, 아이들에게 자랑도 할 겸 우리가 살 집에 잠시 가봤다.

이사 갈 집에 도착했더니 갑자기 매스꺼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고, 쓰레기 태우는 연기가 자욱했다. 알고 보니 그 집은 대규모 농사를 짓는 밭 한가운데 있어 날마다 농약을 살포하고 있으며, 쓰레기 차가 들어오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번갈아 가면서 쓰레기를 밭에다 태우고 있었다.

내가 멋있다고 생각했던 전원주택 4채 중 2채에 살던 이웃들은 이미 그 집을 버려두고 도시로 도망치듯 나갔고, 다른 한 채도 월세로 돌려서 근처 일용직 사람들의 숙소로 이용되고 있었다. 퇴직금을 몽땅 털어 그 집을 샀던 우리 가족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집에서 살 수밖에 없었고, 결국 매일 불어오는 농약 냄새에 창문조차 열지 못하고 집을 산 지 한 달만에 다시 집을 내놓았다."


기획부동산들은 귀촌 인구가 늘자 저렴한 농지를 대규모로 사서 대지로 전환해 필지를 나누어 순진한 도시인에게 수십 배의 차익을 받고 팔기 시작했습니다. 멋모르고 이런 기획 부동산에 당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불했던 가격을 건지기 위해 다시 집을 내놓지만, 그 집을 사는 사람은 어수룩한 귀촌 희망자이기에 이런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 아직도 시골에는 소를 키우는 곳이 많이 때문에 마을 안쪽이라도 축사가 있는 집이 있는지, 그 축사에서 냄새가 나는지 꼭 따져봐야 한다.


농촌에는 아직도 '축사를 새로 만들기 어렵지만, 있는 축사를 없애기는 더 어렵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축사 주변에 집을 구하면 아침, 저녁으로 오리지널 농촌 냄새를 아주 진하게 맡을 수 있으며, 계절에 상관없이 파리,모기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귀촌을 생각하는 사람이 스스로 열심히 공부해서 집을 짓는 방법도 있지만, 대부분 건축 사무소나 업자를 부르는데, 잔금 달라고 해서 줬더니 남은 공정 안 해주며 미루기 일쑤이고, 설계도면과 전혀 다른 자재를 사용하거나 부실 공사로 수도가 터지거나 벽이 갈라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처럼 귀촌을 생각하며 멋진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던 생각은 집을 구하는 과정이나 집 짓기, 어느 것을 해도 힘들고 어렵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 지네만 보면 죽여야 사는 남자'

필자가 사는 제주 산간지방은 습기가 많기로 유명합니다. 여기에 근처에 축사까지 있는 탓에 각종 벌레와 나방, 지네가 집 주변은 물론이고 집 안까지도 등장합니다.

▲ 싱크대에 나온 지네, 욕실 바닥의 도마뱀, 벽과 옷장 속의 거대한 바퀴벌레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자고 있는 이불에서 나온 사인펜 크기만 지네이다.


파리,모기는 애교 수준이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각종 벌레가 여름이나 겨울에 상관없이 나옵니다. 손바닥만 한 나방을 시작으로 사람을 봐도 도망가지 않는 바퀴벌레에 뭔지도 모를 이상한 벌레는 우리집이 마치 곤충박물관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파충류도감에서나 볼 수 있는 도마뱀이 볼일 보고 있는 화장실을 지나갈 때면 군대까지 다녀온 남자에도 깜짝 놀랍니다. 우리 집은 지네가 가장 무섭습니다. 제주에서 뱀에 물려 병원에 갔다는 사람을 보기는 어렵지만, 지네에 물려 응급실에 간 사람은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지네는 물리면 간혹 물린 부위가 퉁퉁 붓기도 하면서 열이 나기도 할 수도 있는데, 이런 지네가 두 살짜리 아이와 함께 자는 이불에서 나오면 그날은 잠을 포기하고, 지네 색출 및 박멸 작업을 해야 합니다.

도시에서 평생 자란 사람들이 이런 벌레와 지네,나방,도마뱀을 집 안에서 보면 과연 어떤 생각이 들까요? 필자의 아내도 농촌에서 자랐지만 처음 지금 사는 농가주택에 이사했을 때는 각종 벌레 등이 약을 쳐도 기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살 수 있을지 걱정하다 도시로 그냥 가려고도 했었습니다.

이처럼 자연 속에서 살면서 그 공간에 인간만 사는 것이 아님을 깨닫지 못하면, 하루에도 열두 번은 그 집을 나가고 싶어집니다.

' 넓은 창문보다 작은 창문으로 단열되는 집이 최고'

잡지나 TV에서 보면 바깥 풍경이 보이는 넓은 통유리가 있는 거실이 너무 멋있게 보입니다. 그러나 농촌에서 살면 현실은 그런 낭만과는 거리가 멀게 됩니다. 물론 비싼 고급 자재를 사용하여 새로 지은 집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된 농촌주택은 단열이 되지 않아 겨울이면 밖의 풍경보다 오로지 집 안 온도를 유지하는데 급급합니다.

아직도 대한민국 농촌 지역은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지역에서는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데, 요새처럼 기름값이 비싼 경우 한 드럼에 27만 원에서 많게는 29만 원까지 듭니다. 서울에 살 때처럼 따뜻한 난방을 하려면 최소한 한 달에 기름을 두 드럼 이상을 사용해야 겨우 가능합니다.

이렇게 한 달에 두 드럼씩 든다고 계산하면, 최소한 5개월은(11월에서 3월까지) 난방을 해야 되는 농촌지역에서 난방비로만 연 270만 원이 듭니다.

▲ 겨울이면 방한용 비닐 차단막과 두꺼운 커튼을 출입구에도 설치한다. 세 드럼짜리 기름보일러에는 기름값이 무서워 겨우 한 드럼만 채운다..


이러다 보니 비닐로 창문을 막거나 두꺼운 방한용 커튼 설치는 필수이고. 그러고도 기름보일러를 밸브를 거실 또는 방 하나에만 열어 놓고 온 가족이 전기장판을 깔고 같이 자기도 합니다. 이렇게 노력해야 겨우 겨울철 난방비를 줄일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일해서 번 돈의 대부분을 기름값으로 쓰게 됩니다. 

우리 집처럼 평수가 작고 가족이 많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두 가족이 사는 집이 평수만 넓다면 그 집을 유지하기 위해 겨울철에는 추위에 덜덜 떨던지, 아니면 돈으로 집안을 데우던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 살 수밖에 없습니다.

▲ 텃밭에 심은 대파와 배추가 크는 모습을 봐도, 여전히 농약을 치지 않은 배추는 벌레 때문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도시에서 텃밭을 조금이라도 가꾸어 본 사람은 그나마 괜찮지만, 농사 한 번 지어보지 못한 사람은 텃밭이라도 하려고 해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비료와 거름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모종을 심어도 작물은 자라지도 않고, 농약을 뿌리지 않으면, 병충해 때문에 죽는 일도 허다합니다.

잡초는 어찌나 잘 자라는지 예초기를 사용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풀을 베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텃밭이 아니라 정글이 됩니다. 


 

귀촌해서 좋은 집을 구하거나 짓고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집을 어느 정도 해놓고 막상 살아봐도 그리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시골에서 사는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벌레나,추위 등이 힘들게 해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자연에 산다는 것은 하나의 축복입니다.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평화로움과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입니다.

준비된 귀촌은 충분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단지, 귀촌을 아파트에 살 때처럼 아늑한 공간을 농촌으로 옮겨 놓고, 현관문을 나가면 자연을 즐길 수 있으리라는 환상으로 생각하면 견디지 못합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며 사는 삶으로 바꾸고 싶다면, 최소한 귀촌이 무조건 낭만적이지 않다는 마음가짐은 해야 할 것입니다. [각주:1]

  1. 이 글은 오마이뉴스의 기획기사로 발행됐던 글입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