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수원 토막살해'사건 같은 강력범죄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청은 "지난 6월20일 입법예고한 경직법(경찰관직무집행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오는 9월 열리는 정기국회에 정부 입법안으로 상정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경찰이 강력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법을 바꾼다고 하니 언뜻 괜찮은 법 개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본질이 바뀌지 않고, 무조건 법만 개정하는 것은 경찰권 남용이 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하기에 다시 한번 생각을 해야 할 문제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법을 개정하고, 무엇 때문에 법 개정이 문제인지, 해결 방법은 없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제 영장 없이 경찰관이 마음대로 수색할 수 있다?'
경찰관은 경직법이라는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경찰관의 업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경직법은 경찰관이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법 절차인데, 이번에 개정안이 나온 조항은 7조입니다.
현행 경직법 7조 (위험방지를 위한 출입)는 '① 경찰관은 제5조제1항·제2항 및 제6조제1항에 규정한 위험한 사태가 발생하여 인명·신체 또는 재산에 대한 위해가 절박한 때에 그 위해를 방지하거나 피해자를 구조하기 위하여 부득이 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필요한 한도 내에서 타인의 토지·건물 또는 선차 내에 출입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경찰청은 이 7조에서 경찰관의 판단으로 출입할 수 있는 조항을 '출입하여 그곳에 있는 사람,물건 등을 조사할 수 있다'로 개정하려고 합니다. 단순 출입과 사람,물건 등을 조사할 수 있는 부분은 '수색'으로 범위가 넓혀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현행 법률상 '수색'은 반드시 영장이 필요합니다. 결국, 경찰은 '영장'없이 토지,건물 등을 '수색'할 수 있는 권한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 영장없는 수색의 문제점과 인권침해 논란'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경찰관은 두 가지 권한을 가집니다. 위해 요소를 '제거'할 권한과 '긴급 출입권'입니다. 여기에 부수적으로 경찰이 법 집행 과정에서 손실을 입을 경우 경찰관 개인이 아닌 국가가 보상해야 한다는 근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개정안이 통과되면 두 가지 문제점을 지니게 됩니다. 우선 현행법상 수색을 위해서는 영장을 발부받아야 하는 '형사 소송법'을 무시할 수 있는 위험 요소입니다. 또 하나는 형사소송의 기본인 '적정절차(due process)의 원칙'이 무시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쉽게 풀이하면 아무리 긴급출입권을 가졌더라도 '헌법과 형사소송법 이 정한 절차를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기본적 인권보장을 위해 마련한 적법절차를 따르지 않은 것으로 원칙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판결한 대법원 판결에 따라 나중에라도 처벌할 수 없는 케이스를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위법한 절차에 의하여 수집된 증거의 증거능력은 부정되어야 한다는 위법수집 증거배제법칙(The Exclusionary Rule)을 따르고 있습니다>
또한, 긴급출입권이 이미 긴급한 상황을 법으로 정한 허용 범위가 있는데, 그것을 뛰어넘는 권력 남용을 가져와 인권침해 위험 요소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6조(범죄의 예방과 제지) ① 경찰관은 범죄행위가 목전에 행하여지려고 하고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관계인에게 필요한 경고를 발하고, 그 행위로 인하여 인명·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는 그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
현재 경찰은 위험 요소가 있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토지와 건물에 출입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출입을 했을 경우 경찰관이 강제로 '경찰관 개인의 판단'에 따라 집안을 수색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대한민국 경찰이 영화 속에 나오는 명수사관답게 법집행 절차를 따르면서 현장을 파악하고, 진짜 위험요소를 명석한 추리력을 통해 발견할 경우만 수색하면 모르겠지만, 대부분 일단 뒤져보고 나오면 좋고, 안 나오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수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 수원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살인 사건 출처:
경찰은 이번 개정안의 배경으로 지난 4월에 수원에서 발생한 '수원 20대 여성 살인 사건'을 사례로 들고 있습니다. 이 당시 탐문 수사에 시민들이 비협조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사실 경찰이 사이렌을 울리면서 주택가 문을 모두 두드리는 적극적인 탐문을 했다면 충분히 시민들도 협조했을 것입니다. (사이렌 울리고 있는데 안 나와 볼 사람은 그리 많지 않죠) 그러나 경찰은 늦은 밤이라 민원이 들어 올 것을 걱정해서 그저 창문이나 현관문에 사람이 있나 없나만 확인하고 돌아다녔을 뿐입니다. (물론 경찰이 현장에 진입할 경우 범죄 유형에 따라 대규모 탐문을 하거나 조용한 탐문 수사를 선택할 수 있지만, 이번 사건을 접한 외국 전문가들은 사이렌을 울리는 편이 더 효과적이었다고 합니다.)
경찰이 착각하는 것은 법을 개정하면 범죄 수색을 잘할 수 있다는 점인데, 그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기본적인 수사기법과 범죄에 대처하는 초기 대응입니다. 가뜩이나 법집행 절차를 무시하기 일쑤인 대한민국에서 경찰들이 법의 권한을 받는다고 과연 얼마나 효과적으로 강력범죄에 잘 대처할지 의문입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질책을 면하기 위해 이런 법을 남용해 수사 대상 일대를 초토화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만 증폭될 뿐입니다.
' 법 개정 이전에 112 신고센터부터 바꾸자'
경찰이 경직법을 개정하려고 내놓은 근거가 '수원 20대 여성 살인 사건'이지만, 알다시피 이 사건은 경찰이 피해 여성의 112전화를 제대로 받지 못해 시작된 불행이었습니다. 여기에 이 사건이 발생한 뒤에도 여전히 30대 여성이 동거남의 폭행으로 112 신고를 했지만, 잘못된 대처로 신고 여성은 오히려 갈비뼈가 부러지는 폭행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 경찰은 범죄 신고 전화 112 센터부터 잘못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911 센터, 일본 110번과 비교하여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알아보겠습니다.
▲ 뉴욕 경찰의 911 센터 출처:crownheights.info
○ 112 센터 근무자를 민간인 직원으로 바꾸자
LA 911 센터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은 몇 명이나 될까요? 정답은 단 한 명입니다. 범죄가 많기로 유명한 LA이지만 상주하는 경찰은 단 한 명뿐이고 나머지 수백 명의 직원은 모두 LA 경찰과 계약한 아웃소싱 전문 업체의 직원입니다. 어떻게 범죄 신고를 민간인이 관리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들은 최소 6개월에서 1년간 교육을 받으면서 500개 이상의 다양한 범죄 신고 시나리오를 숙달 암기하고 대처하는 훈련을 받습니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 112 센터에 근무하는 직원은 경찰교육원에서 단 2주간 전화 응대 요령을 배우는 것이 전부입니다. 112센터가 경찰관의 한직,퇴직 직전 경찰들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경찰들보다 오히려 이런 전문직 민간인들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틀림이 없습니다.
○ GPS와 등록전화를 활용한 추적장치
일본 경찰은 110번 (범죄신고 전화)으로 신고가 들어오면 통신회사를 통해 자동으로 신고자의 위치정보를 제공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현장 도착 시간을 더욱 빠르게 하기 위해 GPS 시스템을 개선해, 피해자의 위치과 출동한 순찰차의 위치가 센터에 자동으로 나와 실시간으로 효율적인 대처를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IT 강국이지만 현재 GPS 추적이 아닌 기지국 방식의 위치추적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지국을 통한 위치추적은 거의 효과가 없습니다. 대략 1km, 심하면 오차범위가 최대 2km까지 차이가 나서 범죄 추적에는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 신고자의 전화가 끊겨도 최대한 근처까지 갈 수 있는 LA 911 센터 출처:jtbc
대한민국은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위치정보법)이 18대 국회에서 통과돼 앞으로 112센터에서 이제야 활용하게 됐습니다. (저는 경찰의 위치정보 오남용이 걱정되지만, 유괴,납치,강간 사건 등에 한정해서 사용하는 것은 적극 환영합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런 방법을 통해서 오차범위를 15-50m 이내로 최대한 줄이고, 발신자가 전화를 끊어도 최대한 피해자 근처까지 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합니다.
○ 시간을 다투는 사건은 보고가 필요 없다.
외국의 911센터나 110 센터는 접수자가 모든 상황을 판단하며, 감독관이나 센터 경찰관이 신고 지역에 순찰차를 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112센터는 작전을 수행하는 것처럼 신고전화를 총괄하거나 명령을 내리기도 합니다. 이럴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매뉴얼과 통합관리시스템입니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 경찰은 단순히 지구대에 '출동하세요'라는 지령만 내릴 수 있고, 순찰차는 지령받은 신고에 대해 자신들이 처리하고 112센터는 다른 전화를 받기에 바쁩니다.
미국이나 일본은 강력계에 종사했던 베테랑 형사들이 112 센터를 지휘하면서 출동한 경찰에게 '집 안에 의심되는 모습을 확인해라'등의 지시를 통해 전체적인 수사 상황을 점검하고 부족한 인력을 보강 내지는 출동시키는 일들을 합니다.
한국 경찰은 주요 사건에 대해서는 간부나 일선 경찰서장에게 보고하기 바쁩니다. 그 보고에 매달리다보니 정작 중요한 사건 해결은 뒷전이고, 출동 경찰이 '별일 아니다'라는 보고만 해오면 그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고 간부에게 보고하고 끝입니다. 이처럼 사건 해결에 주안점을 둬야지, 단순히 지휘라인, 관할 구역 나눠주기 역할만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한 통의 전화도 놓치지 말라'는 말을 늘 염두에 두고 있는 일본 범죄신고 전화 110번 근무자들의 원칙을 한국 경찰도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 김기용 경찰청장이 지역경찰 체험현장을 하는 모습 출처:경찰청
경기지방경찰청은 '수원 20대 여성 살해 사건'이후에 112 센터를 개선한다고 3주간의 112 신고 접수 및 지령 요령 교육을 시행하고 문제인력을 빼내고 137명의 새로운 전문 인력을 배치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112 센터의 잘못된 대응은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경직법 개정안을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반드시 경찰의 112 센터를 개선하고, 가장 기본적인 경찰 매뉴얼을 새롭게 만든 후에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이 없어서 인기척 없는 집을 수색하지 못했다고 우기는 경찰은 미시간주 경찰이 '가정폭력' 사건이 발생해서 현장에 최초 도착 후 집 안에 인기척이 없을 경우 어떻게 하는지에 관한 매뉴얼을 보시기 바랍니다.
현장에 출동하였을 때 집안에 인기척이 없을 수도 있다. 이 때 출동한 경찰관은 우선 문밖에서 사람을 불러보도록 하여 집안 내부에서 응답이 있을 경우 그 상대방 과 이야기를 나누어 신고사실을 확인해보도록 해야 하고, 아무런 응답이 없을 경우 에는 지령실과 접촉하여 신고한 장소가 현재 도착한 장소와 맞는지를 확인해보거나, 그리고 그 지역의 이웃이나 주변의 목격자를 상대로 인터뷰를 해보도록 하는 방법을 취해보도록 하고 있다. 집안에 누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로서는 집 밖 에 차량이 세워져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 조용히 현장을 떠났다가 다른 길로 다시 되 돌아 와 관찰을 해보는 방법, 불빛이나 집안내부에서 나는 소리의 변화를 체크해보 는 방법 등이 제시되고 있다. 집안을 확인해보지 않고 떠날 경우 무언가 꺼림칙하다 고 판단되면 가내 진입에 대하여 상급자의 판단을 요구하도록 하고 있다. (미시간주 경찰 매뉴얼)
경찰이 업무에 관련한 매뉴얼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
'화성 실족사 사건'내막과 '불편한 진실'
'가정폭력 피해 신고 묵살한 경찰'
'단순성폭행?부부싸움? 경찰에겐 너무 '사소한' 여성폭력
법은 어떤 법이라도 인권을 침해할 요소가 있으면 절대 안 됩니다. 헌법 제12조 제1항 후문은 ‘모든 국민은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ㆍ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적용되는 법률이 합리적이고 정당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대한민국 경찰이 법 개정을 통해 합리적인 수사와 국민을 보호하기 원한다면, 지금 그들이 경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과 개혁을 하고 난 뒤에, 떳떳하게 법개정안을 요구하기 바랍니다.
사족으로 제발 경찰들은 피해자 유족 앞에서 담배 꼬나물고 큰소리치거나 권위적인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합시다. 60넘은 장인 앞에서 새파랗게 젊은 경찰이 담배 꼬나물고 사건 설명해주는데 패주고 싶더군요. 경찰 관계자들이 혹시 이 글을 읽는다면 기본적인 경찰관 인격 교육부터 다시 점검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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