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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도종환 시 삭제는 21세기판 '분서갱유'



국회 1차 본회의장에 올라온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도종환 의원은 단상에 오르자마자 '저는 오늘 착잡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라는 말로 자유발언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이 교과서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이유로 중학교 국어교과서에서 도종환 시인의 작품들을 삭제할 것을 교과서 발행 출판사에 권고했기 때문입니다.

도종환 의원은 국회의원 이전에 '바이올린 켜는 여자'로 제22회 정지용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집으로 유명한 시인입니다. 사실 도종환 의원이 이번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보다,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이번 평가원이 도종환 의원의 시를 삭제 권고하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는 시를 지은 시인의 작품을 삭제하려고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평가원의 이중적인 잣대'

도종환 의원의 시를 삭제하라는 권고안이 알려지자 많은 언론과 여론은 평가원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비판했고, 이에 대해 평가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자신들이 왜 도종환 시인의 시를 삭제했는지를 알려주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도종환 의원 시 삭제 관련 낸 보도자료


평가원은 보도자료에서 '교육의 중립성 유지를 위해 현존인물 (현역 정치인 포함)에 대한 내용을 제외하는 것이었음'이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습니다. 그것은 기준은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어야 함에도 편파적으로 적용됐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이라 함은 정당에 관련된 인물이나 투표 등으로 선출된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현직 박원순 서울 시장의 글도 삭제 대상이 됩니다.

▲ 박원순 시장의 수필이 실려있는 중1 국어 교과서 복사본 출처:오마이뉴스 ⓒ 윤근혁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본질을 쉽고 간결하게 알려주는 '가진 자들의 베푸는 삶'이라는 박원순 시장의 수필은 많은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에 가진 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잔잔하면서 많은 깨달음을 주는 수필입니다. 그런데 평가원의 기준으로 박원순 시장의 수필은 현역정치인이므로 삭제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평가원은 전혀 박원순 시장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민주통합당에 입당했기 때문에 정치인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습니다. 
 

▲ 박효종 박근혜 의원 대선캠프 위원이 대표집필한 고동학교 '윤리와 사상' 교과서 출처:오마이뉴스 ⓒ 윤근혁


박효종 교수는 대표적인 뉴라이트 운동가이면서 2005년부터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의 회장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박효종 교수는 이번 박근혜 의원 대선캠프의 정치발전위원회의 위원으로 영입됐습니다. 박 교수는 5.16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표현한 뉴라이트 교과서를 편찬했던 인물입니다.

현대사에서 5.16 군사쿠데타는 명백한 쿠데타임에도 보수우익은 '혁명'이라는 논리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이처럼 논란의 중심에 있는 사안을 만들고 있는 인물이 쿠데타의 딸이 대선에 나간다고 대선캠프에 있다면, 이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정치적 행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박효종 교수가 펴낸 책이 평가원에서 삭제권고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습니다.

▲ 친북좌파 세력 척결등을 요구하는 시위에 참가한 김동길 ⓒ 유성호


김동길 교수는 보수우익 단체가 참여하는 시위에 빠짐없이 다니는 인물 중의 한 명입니다. 그는 방송과 언론에서 '종북좌파 척결'을 외치고 다니는데 아주 열성적이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하는데 앞장서고 있기도 합니다.

고교 작문 교과서를 보면 김동길 교수의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이유'라는 수필이 실려있습니다. 그러나 평가원은 김 교수의 수필에 관한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 조갑제닷컴에서 펴낸 교과서 관련 출판물


대한민국 강경보수의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는 조갑제닷컴의 조갑제는 현대 교과서가 좌편향적이라는 극우적인 발언을 늘 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조갑제닷컴에서는 연일 현대사를 고쳐야 한다고 특집 기사를 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갑제의 글이 고교 화법 교사용 지도서에 버젓이 실려 있습니다.

조갑제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이명박 대통령이 밀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밀고 나가라는 정치적 주문을 외치는 사람의 글이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의 지도서에 있습니다. 그런데 교사 지도서를 검정하는 평가원에서는 어떤 논의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치인이라고 다 같은 정치인이 아닙니다. 폭력을 수반한 시위에 참석하거나 왜곡된 역사를 말하는 사람들의 글이 우리 아이들에게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는데도, 평가원은 시인의 작품을 국회의원이 됐기 때문에 삭제하겠다고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중적인 잣대가 아닌 지독히도 편향적이면서 무엇이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일인지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일입니다.

'왜 도종환 의원일까?'

평가원은 이번에 이자스민 의원의 얼굴이 실린 '완득이' 사진도 삭제 권고안에 넣었기에 도종환 시인도 당연히 빠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자스민 의원에게 쏟아지는 학력위조나 방송과 다른 실체 기사를 보는 아이들이 교과서에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볼 때의 느낌을 생각하면, 이것은 도종환 의원과 동일하게 볼 수 없습니다.

이자스민,'모든게 언론 탓?'

이자스민 의원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지금 얼마나 논란의 중심에 있는지를 평가원이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 평가원이 낸 도종환 의원 관련 보도자료

평가원은 도종환 의원이 문재인 의원 대선캠프의 대변인이기에 수정권고를 했다는 언론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며, 그 근거로 검정심의회가 수정권고를 내린 시점이 6월20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짜맞추기식 변명입니다.

문재인 의원의 싱크탱크의 이름이 '담쟁이포럼'이라고 나온 것이 5월30일이었고, 문재인 의원의 대선출마식은 6월17일이었습니다. 문재인 의원의 싱크탱크 이름이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에서 유래됐고, 문재인 의원이 대선출마식에서 읽었던 시가 바로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였습니다.

수정권고를 내린 시점이 6월20일이라고 그날 모여서 회의를 했다고 해도, 도종환 의원이 벌써 문재인 캠프의 주요인사라는 점을 평가원에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정권고를 내린 시점이 6월20일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변명은 별로 신빙성이 없습니다. 제대로 심사를 했다면 이미 4.11총선으로 도종환 시인이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됐을 때부터 그런 결정을 했어야 상식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진짜 정치적인 인물들의 수필과 글은 그냥 놔두고, 문학작품을 썼던 시인의 시를 특정 인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삭제권고를 내렸다는 것은 평가원이 무슨 의도로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21세기판 분서갱유'

'분서갱유'에서 분서는 책을 태우는 것을 말하며, 갱유는 선비를 구덩이에 묻는 것을 뜻합니다. 이 얘기는 사기의 진사황본기에 나오는 말인데, 언론 탄압의 대명사로 불리는 단어입니다. 사실 진시황이 우리가 알고 있는 '분서갱유'를 통해 엄청난 숫자의 선비를 구덩이에 묻고, 모든 서적을 불태운 것은 아닙니다. 죽은 사람도 460명이고 실제로 일부 책이 정부 서고에 보관되어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 분서갱유를 묘사한 그림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진시황이 유가에 대한 탄압만은 철저했다는 보편적인 학설입니다. 유자는 주나라의 봉건제를 찬미하고, 황제의 정치를 비방했는데, 진시황은 이런 유가의 모습을 극도로 탄압했다는 점입니다. 자신을 찬양하는 이에게는 은덕을 베풀고, 자신을 비판하는 자들에게는 탄압했던 이런 모습을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각주:1]


보수우익은 타인의 생각과 주장을 짓밟습니다. 그러나 진보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찬성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비열한 방법으로 그들을 향해 정신적,언어적,육체적  폭력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제가 도종환 의원의 시(詩) 삭제를 21세기판 분서갱유라고 보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시인에게 시는 산고의 아픔을 겪고 태어난 자식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 소중한 자식을 없애라는 명령은 몸과 마음이 찢기는 고통과 영혼의 파괴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정치인의 글이 아닙니다. 그 글이 정치적 행동이 수반되는 악의를 갔고 했느냐와 제대로 문학작품에 녹아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만한 문학작품으로 승화됐냐는 점과. 같은 문학작품이라도 일방적이고 노골적인 정치 행동을 위한 문학(?)인가를 따져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처음으로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잘 사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 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88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우리 좋은 문화능력은 옛것이건 새것이건
이 나라와 세계에 떨치게 하시어
이 겨레와 인류의 박수를 받고 있나니
이렇게 두루두루 나타나는 힘이여
이 힘으로 남북대결에서 우리는 주도권을 가지고
자유 민주 통일의 앞날을 믿게 되었고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 육천만 동포의 지지를 받고 있나니
이 나라가 통일하여 홍기할 발판을 이루시고 쉬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이 시를 누가 지었는지 아십니까? 바로 대한민국 대표 시인으로 손꼽는 미당 서정주가 전두환의 56살 생일을 맞아 쓴 시입니다. 이것을 문학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까? 이것은 업적을 나열하여 아부를 떨기 바쁜 간신의 입에서 나온 소리일 뿐입니다.


우리가 왜 친일파 문학인들과 독재 권력을 찬양했던 문학인들을 비판합니까? 그들은 문학작품을 통해 정권을 찬양하고, 친일을 미화했고, 그것을 통해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를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진짜 문학작품에 손을 대는 것은 오로지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했던 독재자들밖에는 없었습니다. 교육의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평가원이 도종환 시인의 시를 삭제하려고 했다는 변명은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특정 정당과 인물을 선전하면서 상대방은 비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비추어집니다.



진짜 문학작품,
그리고 우리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고,
가르쳐 주고 싶은 시(詩)가 바로 이런 시(詩)입니다
.


  1. 필자가 '분서갱유'라는 말을 사용한 의미는 진시황을 비롯한 여러 왕들이 분서,갱유 등을 했던 이유가 오로지 정권 유지에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후대 학자들 사이에 있는 진시황 관련 논의는 글의 논점에 아무 의미가 없음을 밝힌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