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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야기

' 아빠, 우리 어디가?' 캠핑하러 학교에 간다



장마가 끝나면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됩니다. 요새는 캠핑여행 붐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오토캠핑장이나 야영장을 찾기도 합니다.

특히, MBC '아빠, 어디가'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캠핑을 가자고 조르는 아이들도 많이 생겼고, 아빠들도 아이들과 캠핑을 하면 즐겁고 추억이 담긴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캠핑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남들은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오는 제주에 살지만, 정작 아이엠피터 가족은 별도로 휴가를 가본 적이 없습니다. 물놀이는 차 타고 10분이면 가는 바닷가에서 지겹도록 하고, 제주 관광은 육지에서 온 지인,가족과 함께 가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별다른 휴가를 가지 않는 아이엠피터 가족이지만 매년 꼭 가는 여행이 있으니 바로 요셉이 학교에서 주최하는 캠핑입니다.

▲송당초등학교에서는 고가의 캠핑 장비가 없는 시골 마을 특성을 고려해, 텐트를 모두 무료로 대여해줬다.


'송당초등학교 가족 야영'이라는 행사는 말 그대로 아이들과 가족이 모두 참여하는 행사입니다. 전교생이라야 겨우 42명이니, 가족들이 모두 참석해도 100여 명에 불과합니다.

올해 3년째 열리는 '송당가족 야영'은 이상하게 비가 오는 시기에만 열립니다. 그래서 텐트를 학교 잔디밭이 아닌 교실에 설치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에어컨도 나오고, 벌레도 없고, 비도 안 새는 교실에서 텐트를 치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또한, 아이들도 어디에 텐트를 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텐트를 치고 아빠,엄마와 함께 하룻밤을 자는, 그 자체를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송당초등학교가 유독 비가 오는 7월 초순에 가족야영을 하는 이유는, 농촌학교 특성상, 5월,6월 등 날씨가 좋은 시기에는 부모들이 농사일로 바쁘기 때문이다.>



에스더는 오빠가 다니는 초등학교를 항상 자기 학교처럼 돌아다닙니다. 선생님은 물론이고 전교생이 모두 '에스더'의 이름을 아니 거칠 것이 없습니다.


에스더는 학년이나, 성별과 관계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만 몰두합니다. 그러다 보니 고학년 오빠들이 축구를 해도 막무가내로 함께 공을 따라 다닙니다. 위험하지 않냐고요? 오빠들이 오히려 에스더를 보호하느라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골대에 공을 넣어야 하는데, 골대 앞에 서 있기도 하고, 공을 달라고 하다가 안 되면 공을 자기 가슴에 쥐고 내놓지를 않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참을성 있게 에스더를 기다려주기도 하고, 가끔 에스더에게 공을 패스하기도 합니다.


텐트를 치고 놀다가도 식사 시간이 되면 운동장은 고기 굽는 냄새로 진동합니다. 가족들이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옹기종기 모여 나누기도 하고, 아이들은 이때다 싶어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달라고 엄마에게 조르기도 합니다.

학교 아이들은 누구네 집 음식 가릴 것 없이, 가다가 맛있으면 '삼촌 이거 먹어도 되나요?'하고 서슴없이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기도 하고, 어른들도 자기네 가족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나눠줄 요량으로 음식을 넉넉하게 준비하기도 합니다.

부모가 바빠 참석하기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저 내 조카, 내 아이처럼 부모가 오지 못한 아이들을 서로서로 챙기면서 함께 맛난 음식을 먹기 때문입니다.



밥도 먹고, 한바탕 놀았으니, 이제 본격적인 캠프파이어와 장기자랑 시간이 이어집니다. 비가 와서 아쉽게도 캠프파이어는 하지 못하지만, 실내에서 함께 하는 장기자랑도 재밌기만 합니다.

엄마를 대신해 오빠와 온 아이, 가족이 사물놀이를 통해 신명 나는 음악을 선사하기도 하고, 게임으로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창피하기보다 그저 웃음을 만드는 개그프로그램처럼 웃음을 유발하기만 합니다.

개인적으로 할아버지와 함께 3대가 참석한 가족이 제일 부러웠습니다. 어릴 적에 아버지,엄마와 학교 행사를 해본 경험이 없어서, 이제라도 육지에 계신 아버지,어머니와 함께 이런 행사에 참석하고 싶은데, 아직도 육지가 좋으신지 아니면 아들내외에게 부담감을 주기 싫으신지, 몇 번을 간청해도 내려오지 않으시더군요.

동네 할아버지,할머니,초등학교 출신 졸업생도 저녁 먹고 마실가듯이 오는 마을 잔치가 되어버린 '송당가족 야영'입니다.

▲요셉이는 아빠의 무지(?)로 25단계중 21단계에서 탈락했다. 그런데 GDP는 물론이고 BIS같은 어려운 경제용어도 나왔던 '송당가족 경제골든벨'


이번 행사는 작년과 또 특색있게 '송당가족 경제골든벨'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송당초등학교가 '경제교육 지정 초등학교'가 되어 경제 교육을 계속했고, 이에 대한 문제를 가족과 함께 풀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원래 작년에도 '경제교육'을 했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경제교육 중의 하나인 '용돈 기입장'과 같은 방법이 송당초등학교에는 전혀 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송당초등학교 근처에는 문방구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용돈을 받아도 스스로 쓸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학교 자체에서 월급처럼 '조이'라는 가상의 화폐를 지급하고, 이것을 통해 아이들이 학교에서 파는 마우스.키보드.장난감,학용품을 사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무슨 아프리카 오지도 아닌데, 아이들 물건을 학교에서 활동을 통해 지급하는 부분이 조금 서글프기도 하지만 이런 모습을 통해 아이들이 적은 학교도 나름의 특색있는 활동이나 체험,학습을 하면 오히려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효과도 높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송당초등학교에 가면 가장 좋은 모습이 전교생이 모두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입니다. 학교마다 문제가 없는 학교가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학교의 학생 수가 적다 보니, 학교생활에서 나오는 문제는 어느 정도 선생님이나 학부모가 알고 있으며, 이것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문제를 덮거나 외면할 때 발생하는 것이지, 그것을 어떻게 하든 바꾸려고 한다면 충분히 해결될 문제이죠.

하지만 엄마,아빠에게 가장 큰 문제점은 요셉이가 집에 안 오려고 하는 점입니다. 보통 방과 후 수업까지 해도 4시 이전이면 끝나지만, 요셉이는 무조건 5시에 자기를 데리러 오라고 합니다. 혹시라도 일 때문에 미리 데리러 가면 화를 내기도 울기도 합니다.

학교 가기 싫은 아이들이 많은 사회에서 집보다 학교가 좋은 요셉이에게 학교는 즐거운 놀이터이자, 재밌는 공간이죠.

▲아이엠피터 가족이 만든 깃발의 구호는 '에스더 울지마'였다. 이유는 자다가 한 번씩 울기 때문인데, 어제도 변함없이 새벽 3시에 울어, 전교생을 깨웠다.


어릴 적 다녔던 초등학교는 너무 학생이 많아 선생님이 누구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친구는 그저 동네 친구 몇 명이나 알지, 대부분 모릅니다.

요셉이와 에스더는 오빠, 언니가 누구인지, 그들이 누구와 형제,자매인지 모두 알고 지냅니다. 이처럼 학교는 아이들의 인맥(?)을 넓혀주는 모임의 장소인 동시에 사회성을 키워주는 공간입니다. 

<현재, 아이엠피터가 사는 곳은 주변에 마을이 없는 산골짜기로 아이들은 학교와 어린이집에 가야 겨우 또래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요셉이와 에스더뿐만 아닙니다. 엄마,아빠도 낯선 제주에서 송당초등학교라는 매개체를 통해 마을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고, 그곳을 통해 제주살이에 대한 정보와 조언을 얻기도 했습니다. 

아이엠피터가 모처럼 포스팅을 빼먹고 '송당가족 야영'에 참가한 이유는 이 캠핑이 그저 학교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삶을 여유롭게 넓혀주는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아이엠피터는 요새 고민이 많습니다. 집 문제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사해야 하는데, 요셉이의 반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와 에스더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시간을 함께 보내려는 마음에 제주에 왔습니다. 어쩌면 이 시기에 아이엠피터는 돈을 벌어야 노후나 아이들의 장래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지금 요셉이,에스더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아마 평생 아이들이 커서 만나는 시간보다 더 많기 때문입니다. 아마 아이들이 중학교만 가도 엄마,아빠와 얘기는 물론이고, 함께 어디를 가는 것조차 싫어하겠죠.

요셉이와 에스더에게 돈이나, 풍요로운 환경보다 추억이 차고도 넘치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저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각자의 삶을 살아갈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좋은 추억과 사랑이 담긴 시간이 많이 있다면, 어떤 길을 가도 올바르게 갈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