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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사임한다던 최필립, 사표도 안 내고 월급 받는 이유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이 끝나고 오후 6시 50분경 각 언론사에는 부산일보를 통해 팩스가 전송됐습니다. 내용은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의 사임 소식을 알리는 내용이었습니다.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은 "그동안 이사장직을 지키고 있던 것은 자칫 저의 행보가 정치권에 말려들어 본의 아니게 정치권에 누를 끼치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면서 대선 기간 제기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정수장학회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이제 이사장으로서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만큼 모두 용서해주시고 이해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사임을 밝힌 최필립 이사장의 팩스로 향후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중립적인 인물이 될 것인지, 사회 환원 내지는 진정한 공익재단으로 바뀔지가 주목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뻥이었다'

최필립 이사장은 언론사에 공식적으로 사임을 알리는 팩스까지 발송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식적으로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최필립 이사장은 사임을 밝혔지만, 아직도 사표도 제출하지 않고 매일 출근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이사장 교체를 위해 서울시교육청에 보고하고 이사회를 소집해야 하지만 서울시교육청 보고는 물론이고, 사임하겠다는 팩스를 발송한 뒤에 한 번도 이사회를 열지 않았다고 정수장학회는 밝히고 있습니다.

사퇴하겠다고 해놓고 서울 정동 정수장학회 사무실로 출근했던 최 이사장은 3월 급여로 592만5900원을 지급 받은 것으로 박홍근 민주통합당 의원이 정수장학회에서 받은 '최필립 이사장 3월 보수 내역'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울시교육청과 정수장학회 모두 언제 사표를 낼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사퇴하겠다고 밝히고 한 달이 넘도록 사표조차 제출하지 않은 그를 보면, 그가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사임하겠다며 언론사에 팩스로 보냈던 말이 거짓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 최필립의 비밀회동은 무혐의, 한겨레 기자는 재판'

지난 대선 기간 정수장학회와 박근혜 후보와의 관계가 문제가 되자, 박 후보는 자신과 정수장학회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다 2012년 10월 최필립 이사장과 MBC의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을 논의하는 대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박근혜 후보는 최 이사장의 자진사퇴 필요성을 제기했고, 최 이사장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최필립 이사장은 정수장학회가 정치권에 휘둘리는 일 때문에 임기를 끝까지 유지하겠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한겨레 기자가 확보한 대화 내용을 보면 그의 말이 얼마나 비겁한 변명인지 알 수 있습니다.

최필립과 이진숙의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 대화록

최필립(정수장학회 이사장):엠비씨 주식 30% 지분 가지고 있어봐야 아무 소용없는 거거든. 동네북이 돼서 여기저기 얻어맞기나 딱 알맞고 말이야. 무슨 경영권에도 근처에도 못 가는데 가지고 있어봐야 소용없거든. 그래 가지고 이익배당한다고 해서 자산 재평가가 안 된 상황이기 때문에 1년에 1억도 안 된다 말이야. 겨우 장학금 기부금인가 해서 20억인가 받는 것도 노조에서 또 뭐라고 지랄 나오는 것 같아.(*정수장학회는 문화방송으로부터 매년 3천만원의 배당금과 별도로 1992~2004년까지 모두 111억6700만원, 2005년부터 매년 20억원을 기부금 명목으로 받아왔다. 기부금은 지난해부터 오르기 시작해 2011년에는 21억5천만원, 올해에는 27억5천만원을 받았다.)

이진숙(MBC 본부장):이사장님께 설명했지만 매각을 하게 되면 매각 대금만 6천억원, (여기서) 연간 200억원에 가까운 이자가 발생하니까….

최필립: 아, 우리야 좋지. 하여간 신문·언론하고는 멀리 갈수록 좋아. 이 빌딩에서도 나가고 싶어. 나가게 되면 땅값, 임대료 안 줄 거 같아서 나가지도 못하고 말이야. 언론인 앞에서 죄송합니다. 똥하고 언론하고는 피해야 해.(*정수장학회는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부지의 소유권도 갖고 있음.) 부산에서 제일 센 사람들. 지역 기업 총수들이 자기네가 혼자 사는 게 아니에요.

이진숙: 그럼 컨소시엄(consortium, 규모가 큰 사업이나 투자 따위를 할 때, 여러 업체 및 금융 기관이 연합하여 참여하는 것)으로?

최필립: 아니 대표로 누구 한 사람이 나오는데 나머지는 컨소시엄이 나서도 되는 건데, 돈 투자해라 이거야. 그래서 일단 부산에서 몇명, 울산에서 몇명, 또 마산에서 몇명, 이렇게 해서 소액이야. 그래서 부산의 왕초 하나가 제일 많은 지분 내고, 대표도 경영도 그쪽에서 맡는 것. 부산 사람들은 뭐냐면 부산일보가 이때껏 부산 여론을 이끌어가는 리더였는데, 노조가 차고 앉아서 자기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질적으로 굉장히 많다는 거야. 부산일보가 여론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부산일보만 (기사를) 실어주면 자기네 의향이 반영된다 이거야. 나한테 연락이 들어와서 팔아라 이건데, 자기네들은 그걸 가지고 기업의 일종의 그 뭐라 그럴까, 쉽게 말하면 빽이지. 기업의 빽으로 부산일보를 쓴다는 거라. 지금 노조 때문에 민주당 기관지인지 진보당 기관지로 돼 있으니 이 사람들이 안 되겠다 말이야. 이 사람들이 사가지고 우리도 보호하고 부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부산일보가 필요하다 이거라. 자기들이 우리에게 찾아와서 인수하고 싶다기에, 나는 그냥이라도 주고 싶었다고 그냥 가져가라고 했지.

최필립 이사장과 MBC 이진숙 MBC 기획홍보본부장의 회동은 기본적으로 정수장학회의 재산을 팔아 대선 기간 박근혜 후보를 위한 선심성 복지사업을 벌이고, 부산 지역의 기업에 부산일보를 매각해 특정 기업의 빽으로 언론사를 운영하겠다는 방안을 논의했던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익재단이라고 주장했던 정수장학회의 이사장은 밀실에서 자기 멋대로 자신이 모시던 주군을 위해 공익재산을 매각하려고 했고, 이는 분명히 법의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오히려 그런 사실을 보도한 한겨레 최성진 기자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 MBC 지분매각 대화록이 도청에 의해 나왔다고 주장하며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던 2012년 10월 13일 MBC 뉴스데스크.


100% 도청이라고 주장하며 한겨레 최성진 기자를 '파렴치한 기자'로 몰고 갔던 MBC의 주장은 전혀 터무니없는 물타기에 불과했습니다. 단순히 최필립 이사장이 본인 실수로 최 기자와 통화 중에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아 세상에 알리게 된 MBC 지분 매각은 당연히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공개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MBC를 비롯한 각 언론사들은 오히려 한겨레 최성진 기자를 비난했고, 검찰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그를 기소해서 재판까지 진행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MBC 관계자에게는 전원 무혐의 처리했습니다.

' 최필립은 왜 사퇴하지 않고 있는가?'

최필립과 MBC 이진숙 본부장의 무혐의 처리는 사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대선 기간 공영 방송의 주식 매각과 선심성 복지 사업을 통한 특정 후보에 대한 선거 운동 계획 자체가 불법 선거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 최필립 이사장과 이진숙 MBC 본부장의 대화내용. 이진숙 본부장은 채널A에 출연해 전혀 문제가 없는 통상적인 업무협의였다고 주장했다. 출처:채널A


'박근혜에게 뭐 도움을...' 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불법 선거운동에 대한 혐의는 무혐의 처리된 반면에 한겨레 최성진 기자는 현재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2번째 공판까지 진행된 상황입니다.

최성진 기자의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증인은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MBC 이진숙 기획본부장, 이상옥 전략기획부장입니다. 대화내용을 도청 또는 전화 통화로 얻었느냐를 파악할 수 있는 핵심은 이 3명의 증인신문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19일 열린 최성진 기자의 두 번째 공판에서 아예 최필립 이사장,MBC 이진숙 기획본부장,이상옥 전략기회부장을 증인으로 소환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들의 대화가 어떻게 외부에 알려지게 됐는지를 밝혀내려면 검찰은 증인을 반드시 소환해야 하지만 단순히 검찰에서 진술한 조서내용만 재판의 증거로 사용하겠다고 나왔는데, 이는 3명이 재판에서 하는 말이 외부로 공개될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점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움직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2012년 10월 26일 정수장학회 MBC 지분 매각 대화록을 보도한 한겨레 기자를 MBC가 고발하자 서울중앙지검 수사관들이 정수장학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하자 기자들이 취재를 하고 있다. 출처:경향신문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이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사임할 경우, 이사진도 사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공익법인으로 관선 이사 파견 내지는 정수장학회 보유 언론사 지분 등의 처리 등을 통해 그간 정수장학회의 문제점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최필립 이사장의 사퇴로 끝나지 않고 이후에 발생할 문제가 불거질 경우 정치권에 새로운 핵심 사안으로 등장한다면 박근혜 정부에도 큰 타격이 가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선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사임하겠다고 언론사에 팩스까지 발송했지만, 최 이사장은 계속 출근하면서 앞으로 발생할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이창원 정수장학회 사무처장이 MBC 지분매각 보도이후 박근혜 측근과 통화했던 목록. 출처:형향신문


이창원 정수장학회 사무처장은 정수장학회 MBC 지분매각 대화 보도가 나간 뒤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최측근인 최외출 영남대 교수와 박근혜 캠프 정무 담당 정호성 보좌관과 통화를 했습니다. 단순한 업무협의라고 하기에는 이들의 통화가 심상치 않았지만, 오히려 이 통화목록을 공개한 부산일보 출신의 민주통합당 배재정 의원의 '도촬' 물타기로 진실은 또다시 미궁에 빠졌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정수장학회의 MBC 지분 매각 보도 이후 최필립 이사장의 자진사퇴를 권고함으로 대외적으로 자신은 정수장학회와 아무 상관이 없다면서 대선의 가장 큰 이슈였던 언론사 지분매각과 정수장학회의 문제를 교묘히 피했습니다.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최필립은 박근혜 새정부에 힘을 실어주며 박근혜 대통령 주위에는 권력을 탐하지 않는 사람만 있는 이미지를 연출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대한 진실은 물타기로 사라지고 오히려 최필립 이사장은 사후 뒤처리를 위해 아직도 정수장학회 사무실에 출근하고 있습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1971년 대선을 앞두고 MBC 지방국 매각대금이 대선에 사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었습니다. 2012년 한겨레 최성진 기자가 정수장학회의 MBC 지분 매각 대화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면 아마 똑같은 일이 재연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움을 파헤친 기자는 재판을 받느라 육체와 정신이 고통받고 있지만, 오히려 당사자인 최필립 이사장은 약 6백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기사가 운전해주는 승용차를 타고 계속해서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불의와 부조리로 뒤덮인 나라에서 여전히 살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에 몰래 진실을 은폐하는 범죄를 국민에게 알려주는 진실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