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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야기

아이를 공짜로 제주도 명문학교에 보낸 사연


오늘 큰 아이 요셉이가 다니는 제주 송당초등학교에서 캠프가 열렸습니다. 서울의 학교에서 캠핑하면 어디 멋진 야영장에 근사한 장비를 갖추고 안전요원을 대동하는 프로그램이지만, 제가 사는 제주도 산골 초등학교는 그런 것 없습니다. 그냥 학교 운동장에 텐트 치고 하룻밤 자고 오는 것이 캠프입니다.

단순히 하룻밤 자는 캠프지만, 서울과 다른 것은 부모들도 함께 참석하는 캠프라는 것입니다. 송당초등학교는 전교생을 합쳐봐야 43명이라 부모님도, 그리고 유치원 아이들도 몽땅 참석하는 캠프 프로그램인 것이 서울이나 대도시 학교의 캠프와 다른 점입니다.

사람들은 왜 제주도에 사느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제가 제주에 내려온 이유가 아이들을 '명문학교'에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 우리 요셉이는 '명문학교'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학교이기에 그렇게 명문학교라고 자랑하는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 학교 선생님이 과외해도 되나요?'

서울에 자주 가는 저는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지면 온 가족을 모두 데리고 육지로 갑니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 다니는 큰 아이는 결석을 자주하는 편입니다. 예전에는 학교 빠지는 것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었는데, 요새는 학교 빠지고 육지에서 오래 있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생활기록부에 출결석이 표기되는 문제 때문이냐고요? 그런것은 별로 신경 안 씁니다. 단지, 학교를 빠지고 육지에 오래 있으면 요셉이 담임선생님이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초등학교 1학년이라도 진도를 나가야 하는데, 결석을 자주 하는 요셉이가 진도를 따라가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육지에 한번 갔다 오면 요셉이 담임선생님은 정규 수업이 끝나고 요셉이를 따로 불러 수업을 합니다.

한마디로 과외(?)를 하는 것이죠. 사실 서울에서는 이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요셉이 반 아이는 모두 6명이라, 선생님은 6명 아이 모두 비슷하게 수업진도를 따라가게 만드려고 부족한 수업일수만큼 요셉이를 방과 후에 가르치는 것입니다.

▲ 요셉이가 다니는 학교 교실 벽에는 반 아이 모두의 그림과 글들이 함께 걸려있다.


제가 어렸을 때는 교실 뒤에 있는 벽에 그림이 걸리는 것이 마치 상을 받는 것처럼 선택된 일입니다. 그러나 요셉이는 그럴 일이 없습니다. 그림이든, 글이든 똑같이 반 아이 6명의 작품이 걸립니다. 그것은 반 아이가 6명뿐이기 때문입니다.

선택받은 아이만 걸리는 그림이 아니라, 아이 하나하나의 그림이든 글이든 전부 걸립니다. 그래서 요셉이는 자기 나름대로 그림이나 글에 재질이 있는지 늘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전교생이 적다보니, 방과 후 수업도 전교생이 모두 함께 받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영어 과목이 없어도, 영어, 음악,체육 등의 방과 후 수업이 정규 수업처럼 이루어집니다.

영어 방과 후 수업을 담당하는 선생님은 요셉이의 영어 실력뿐만 아니라, 발표에 대한 소심함이나, 형들이나 누나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대하는지를 알려주곤 합니다. 컴퓨터 선생님은 요셉이의 컴퓨터 실력뿐만 아니라 집에서 컴퓨터를 가지고 무엇을 하는지를 알고 저에게 게임을 적게 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 지도해야 한다는 따끔한 충고도 가끔 합니다.

요셉이의 담임선생님은 한 명이지만, 실제로 요셉이는 방과 후 선생님을 포함하여 여러 명의 담임선생님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수업뿐만 아니라 생활 지도까지 함께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음악,컴퓨터,미술,체육 등의 방과 후 수업을 받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합쳐 3개월에 10만 원 이하입니다. 한달에 3만 원 정도이기에 서울 사교육비와 비교하면 10분1 수준입니다.거의 공짜나 다름 없습니다.


담임선생님 한번 만나려고해도 불편하고 거북한 서울에 비하면 저희는 일주일에도 서너 번씩 담임 선생님과 항상 자유롭게 이야길 나누면서 지냅니다. 도대체 요셉이가 학교 수업을 어떻게 하는지 모를 수가 없는 학교입니다.

요셉이가 다니는 학교에 가면 1학년 담임선생님이든 6학년 담임선생님이든, 교장선생님이든 교직원 모두가 요셉이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전교생이 43명뿐이라 아이들은 서로들 이름을 알고, 함께 뛰어놉니다. 특히 형이 없어 형들을 좋아하는 요셉이는 언제나 형이나 누나들을 따라다니며 노느라 바쁩니다.

지금 요셉이가 다니는 학교가 수업진도가 늦으면 과외학원으로 변하기도 하고, 언제나 아이들이 함께 뛰어노는 놀이터도 되고, 악기를 배우는 학원도 되기도 합니다. '전인교육'이라는 말이 있기도 하는데, 요셉이 학교를 보면 그냥 자연스럽게 교육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 학교 행사? 늘 마을 잔치가 되어버리는 학교'

오늘 요셉이의 1박 2일 캠프에는 학생들의 엄마, 아빠, 할머니, 삼촌 등 온 가족이 참석했습니다. 그것은 시골 마을이라 학교 행사를 하면 언제나 가족이 함께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주도에 살지만, 매일 글을 쓰는 전업블로거다 보니 마을 분들과 만날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마을의 이웃들과 교류하는 통로는 바로 학교입니다.

학교 행사에 가보면 대부분 마을 주민들이 참석해서, 우리 집 건너편에 누가 사는지를 아는 정도가 아니라, 그 집에 누가 살고, 아이가 몇인지 압니다.


학교 행사를 하면, 동네 어르신들이 다 모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집에서 각자 음식을 싸와서 먹기 시작하다가도 나중에는 학부모 모두가 함께 모여 친목회 모임처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합니다.

보통 귀농을 하면 지역민들과 잘 융화가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저희는 별로 그런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학교 행사를 참석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역에 사는 분들과 만나 서로의 고충을 말하기도 하면서 각자의 삶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 송당초등학교에서는 제주어를 따로 가르치고 있어 육지에서 온 아이들도 제주말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다.


제주도 사투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불과 1학기를 다닌 요셉이는 곧잘 제주말을 합니다. 그것은 학교에서 제주어를 별도로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표준어로 수업하면서 제주어를 별도로 배우는 요셉이는 제주의 문화와 삶을 아빠, 엄마보다 훨씬 빨리 배우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이들이 제주에 적응하면 할수록 타지에서 온 가정들도 지역 마을과 문화에 융화되면서 마을 주민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고리가 초등학교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이런 좋은 학교를 왜 없애려고?'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에서는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의 감소 등으로 농어촌 소규모학교가 증가함에 따라 비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이 불가피한 농어촌 소규모학교를 적정규모로 육성하기 위하여 2012년~2016년 적정규모학교 육성 계획을 수립,연차별 추진대상학교를 조정한다고 발표했습니다.

▲ 제주도 교육청이 발표한 농어촌 학교 통폐합 대상 초등학교.


제주도 교육청의 농어촌 학교 통폐합에 따르면 우리 큰아이 요셉이가 다니는 송당초등학교는 2015년에 통폐합 대상입니다. 통폐되면 아예 학교를 다른 학교와 통합하여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제주도 교육청은 적정규모 학교 육성 추진 계획을 기본으로 한다고 하는데, 여기서 적정규모에 대한 생각이 교육청과 학부모 사이에서 엇갈립니다. 제주도 교육감은 한 학년 20명이 적정선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서울과 같은 대도시 학교에서나 가능하면서 원하는 규모일 뿐입니다.

시골학교에서 한 학년이 20명이 될 수 있으려면 보통 3-4개의 학교가 통폐합되어야 가능합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제주도교육청이 추진하는 통폐합 대상 초등학교에 유독 구좌읍 지역이 많다. 붉은 원이 통폐합 대상이거나 관리대상인 초등학교.출처:미디어제주


6.200여 세대 14.570명이 사는 구좌읍에 본교로 남는 곳은 김녕초등학교와 세화초등학교 단 2개 학교에 불과하게 됩니다. 통폐합에 따라 본교로 전학을 가게 되면 요셉이는 매일 왕복 30킬로미터를 차를 타고 학교에 가야 됩니다.


구좌읍은 제주에서도 낙후된 지역 중의 하나입니다. 만약 초등학교가 통폐합되어 지금보다 멀리 학교에 가야 한다면 어쩌면 많은 가정이 구좌읍을 떠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구좌읍의 인구는 더 감소할 것이고, 그것은 마을이 황폐해지는원인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제주도로 내려와서 제주도민들도 잘 알지 못하는 중산간 마을 송당에 정착하게 된 배경은 송당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늘리려는 프로그램 때문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자녀를 둔 가정은 무료 내지는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송당 마을의 주택을 임대할 수 있도록 하는데, 저희 집도 그런 프로그램으로 현재 무료로 집을 빌려 살고 있습니다.

▲ CF에 소개된 더럭분교는 광고 이후 아름다운 학교로 많은 가정이 이사를 와 학생이 늘어나기도 했다.


저희처럼 '학교살리기 사업'을 통해 송당리에 정착한 가정은 매년 늘어나 이제 집이 없어 송당리로 오지 못하는 가정이 생길 정도입니다.


학교 살리기가 잘 되면 마을에 새로운 가정이 이사를 오고, 그 가정 때문에 인구가 늘면서 마을이 활성화됩니다. 단순히 학교가 교육이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지역의 경제,인구,문화,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변수가 되는 것입니다.

제주도교육청에서는 한 반의 적정 인원이 20명이어야 학생들의 사회 활동에 적합하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그 기준은 학교마다,지역마다 다르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비록 6명이 학급 인원의 전부이지만, 요셉이는 1학년부터 6학년 전교생들과 함께 방과 후 수업을 받기도 하고, 함께 놀기도 하면서 사회성을 키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 요셉이가 초등학교 첫 미술시간에 그린 그림이 '아름다운 우리학교'


저는 초등학교를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학생 수가 미어터지고 교실이 없어 주5일제 수업을 했던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동창조차도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형제 3명이 모두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지만, 형의 친한 친구나 알았지, 선배나 후배라고 말해도 남아있는 추억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 요셉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해도 최소한 자기 나이보다 6살 많은 형과 누나,6살 어린 동생들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학생 수가 적기 때문입니다.

요셉이가 다니는 송당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은 학교 행사에서 늘 학교가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를 학부모에게 알려줍니다. 학교가 작다 보니 학부모와 선생님들이 함께 행사를 진행합니다. 그래서 학교 비리나 문제가 생길 수도 없거니와 교육이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와 유기적으로 함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학교 행사때마다 전교생의 작품이 전시되 학부모들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예전에 요셉이가 6학년 형들이 괴롭힌다는 이상한 이야길 해서 담임 선생님에게 얘기했더니 6학년 선생님과 대상 아이들이 모두 모여 도대체 무슨 일인가 상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겪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이런 학교에서는 왕따나 학교 폭력이 생길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떤 이상한 징후만 생겨도 선생님이 대번에 알 수 있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쉽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모블로거의 딸은 스승의 날에 선물하는 기준이 자기의 이름을 알고 있느냐였다고 합니다. 이런 기준이라면 요셉이는 학교 선생님은 물론이고, 도우미 아저씨, 행정 선생님, 학교 식당 이모까지 모두 선물을 해줘야 합니다.

명문학교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아이들의 학업성적이 뛰어나고, 시험을 잘 보면 좋은학교, 명문학교일까요?

곽노현 교육감은 학교, 지역사회,행정기관이 함께 어울린 '교육혁신지구'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서울에서는 어렵지만, 우리 요셉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벌써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둘째 딸아이 에스더는 오빠가 다니는 학교에 가면 스타가 된다. 모든 선생님과 아이들이 좋아하고, 에스더도 초등학교에 가면 자기집처럼 뛰어 논다.


제주에는 1년 학비가 5천만 원이 넘는 국제학교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별로 부럽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요셉이가 다니는 학교가 명문이고 좋은 학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이가 육지에 가면 아이들이 마치 평생 못 볼 것처럼 서로 헤어짐을 아쉬워합니다. 송당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은 제가 요셉이 아빠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에스더가 학교에 가서 교실을 헤집고 놀아도 모든 아이들과 선생님은 에스더가 누군이지 알고 귀여워 해줍니다.

누가 뭐라 해도, 저는 우리 요셉이가 다니는 송당초등학교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명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에스더가 커서도 송당초등학교에 다니게 하고 싶습니다.

교육은 공부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올바른 인성을 가진 사람들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공부만 시키는 학교보다 올바른 사람으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의 학교가 명문학교라고 믿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