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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이외수,공지영에게 닥치고 소설을 강요하는 사회



소설가 이외수와 공지영 씨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중의 한 명입니다. 그들이 낸 소설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인기를 끌었고, 그들은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요새 그들을 지칭하는 말이 '소설가'에서 '폴리테이너 (정치연예인 Politainer)'로 바뀌고 있습니다.

폴리테이너는 연예인과 같은 유명인사들이 정치적 발언이나 행보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공지영씨와 이외수 씨는 트위터라는 SNS를 활용하여 사회 이슈나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트위터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런 그들의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수십만에 이를정도로 그들의 영향력은 엄청납니다.

그런데 이들의 이런 활동을 '천박하다'거나 '소설가는 소설만 쓰고 정치는 하지말라'는 반대 의견도 많습니다.


소설가 이외수 씨를 향해서는 '작가는 글만 써야지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공지영 씨는 보수세력들의 트위터 스토킹까지 당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작가는 글만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한 명의 작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의 삶을 통해 과연 작가는 글만 써야 한다는 주장이 옳은 생각인지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본문 내 권터 그라스 관련 글은 중앙대 독문학과 김누리 교수의 논문을 인용 참조하였습니다.

■ 권터 그라스

우리가 잘 아는 영화 '양철북'의 저자 권터 그라스는 대표적인 독일 작가입니다. 그는 1999년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세계적인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라스는  엄청난 비판과 지지를 동시에 받았던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단지 그가 적극 정치에 참여했던 일 때문이었습니다.

권터 그라스는 유년기와 청년기에 나치를 체험했고 1960년대는 좌우의 극심한 이데올로기를 지냈던 작가입니다. 그는 독일의 분단 및 세계적 이데올로기의 변화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치적으로 표현했고, 이는 문학의 대가로는 인정하면서도 그를 향한 비난이 엄청났던 이유 중의 하나였습니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영원한 고수(북치는 사람)』

권터 그라스는 사회민주주의자입니다. 그는 1961년 기독교민주당의 콘라트 아데나우어가 사회민주당의 빌리 브란트가 '서자'라는 사실을 가지고 그를 비난하는 것을 보자 격분했고, 베를린에서 빌리 브란트를 만나면서 그를 도와 연설문 작성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사회민주주의자가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나는 거기 칼리 광산에서 이데올로기 없이 사는 법을 배웠다. 일요일 아침마다 히틀러 청년단의 조회 때 국기와 피와 땅에 대해 선서하던 일들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산주의자들이 그들의 이데올로기의 헛간에서 꺼내온 먼지 앉은 물건들을 가지고 유혹하려 들었다. 나는 불에 덴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과묵한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의지했다. 그들은 천년왕국이니, 세계혁명이니 떠벌이며 허풍떨지 않았다." 

권터 그라스의 사회민주주의는 나치부터 이어진 자들의 정치적 활동을 보면서 그들과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라스는 사민당을 위해 수십 차례의 연설회를 했고, 그들의 정치 활동을 위한 지지 운동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그라스는 사민당에 어떤 직책을 받거나 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정치 이념을 지지했던 사람으로 판소리꾼이 아닌 옆에서 북을 쳐준 고수의 역할만 했습니다.

『정치적 신념의 일관성과 비판을 멈추지 않는 지식인』

권터 그라스가 시민당을 위해 뛰었기 때문에 무조건 사민당만을 지지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1965년 기민당과 사민당의 연립정권이 들어서자 빌리 브란트에게 공개 편지를 통해 그를 공개 비판합니다.

"대연정을 보고 저는 사민당에 대해 근본적으로 심각한 회의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후 사민당에 대한 좌파와 극우파의 총공세를 보면서 사회민주주의자로서, 개혁의 길이 느리고, 늘 반격을 받을 위험에 노출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 길을 선택해야겠다는 마음이 더욱 굳어졌습니다."

그라스가 위대한 지식인으로 추앙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지지했던 세력이 잘못된 길을 가면 신념에 따라 그들을 비판했고, 빌리 브란트가 당원도 아닌 자가 당 밖에서 말한다고 비난했음에도 불구하고도,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는 부분입니다.

『잘못된 것을 말할 수 있는 용기』

권터 그라스는 정치 정당의 활동보다 철저하게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고민했던 작가였습니다. 그는 이런 신념을 통해 잘못된 것에서는 철저히 비판의식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1966년 기민당과 사민당의 대연정이 성립하면서 나치전력을 가진 크르트 키징어가 수장으로 내정되자, 그라스는 수상 취임 전날 키징어의 사임을 촉구하는 공개편지를 보냅니다.

"한때 이성에 반한 행동을 했고, 범죄에 가담한 사람이 평화조약도 없이 분단된 이 나라에서 수상직을 맡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심각한 전력을 가진 당신이 수상 자리에 앉게 된다면, 어떻게 젊은이들이 오늘 NPD(신나치주의정당)란 이름으로 등장한 저 과거의 당과 논쟁을 벌일 수 있겠습니까? 과거의 동조자인 당신이 오늘 여기서 정치의 기본노선을 감히 결정하려 한다면, 어떻게 우리는 저 고문당하고 살해당한 저항의 용사들을, 아우슈비츠와 트레블린카의 희생자들을 추모할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앞으로 학생들에게 역사수업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 당신은 책임만 감수하면 되지만, 우리는 그 결과와 치욕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 편지가 키징어 수상의 취임을 막지는 못했어도 키징어와 같은 자를 수상으로 내세운 기민당은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고, 그 결과 선거에서 사민당이 승리했습니다.

권터 그라스는 서독의 민주주의에 대한 강력한 위협으로 '나치청산의 실패'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에게 나치는 자신의 조국이기 전에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잘못된 사상이었고, 그는 지식인으로 이런 잘못을 비판하고 나치청산을 줄기차게 요구했었습니다.

친일파에서 대한민국의 정권을 잡는 보수층으로 변신한 지금의 보수우익을 왜 우리가 반대해야 하는지 권터 그라스의 나치 청산과 함께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시민으로 한 사람으로서 정치에 참여하는 전투적 지식인 작가』

권터 그라스는 정치 참여를 했던 작가이지만, 결코 문학 작품에서는 정치를 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작품에서는 철저하게 문학 그 자체만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런 이유로 그가 노벨문학상까지 받을 수 있었다고 저는 봅니다.

그러나 권터 그라스는 좌우 세력은 물론,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라스가 '정치 현실을 초연한 자'로 보는 전통적인 작가관에서 벗어나 지식인들에게 '모든 정신적 오만과 애매한 엘리트주의를 버려라'라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권터 그라스는 자신이 왜 정치활동에 참여했는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의 이중 활동에 대한 모든 비난들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작가는 거리를 두어야한다. 건조한 이차 언어로 하는 일상의 정치는 문학적 문체를 더럽힌다’라고 말입니다. 또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신과 권력은 화해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답하렵니다. ‘작가는 현실을 통해서, 또한 당연히 정치 현실을 통해서 스스로를 의문시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현실과의 거리를 포기해야만 가능합니다. 스파르마니아처럼 폐쇄된 공간에서 정성껏 보살펴지며 온실 속에서 자란 문학적 문체라는 것은 물론 예술언어로서는 순수할 테지요. 하지만 현실은 순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애용하는 대립쌍, 즉 정신과 권력의 대립쌍을 저는 허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 하면, 권력도 정신적일 수 있으며, 정신도 권력을 지닐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권터 그라스가 위대했던 지식인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작가를 노동자로 인식하면서 그 무엇보다 어떤 터부 앞에서도 후퇴하거나 우회하지 않고 정면돌파를 감행한 전투적 지식인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자신이 참여한 정치세력에 대한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라스는 사민당의 동부국경 문제,낙태법,망명법에 대해서는 엄중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권터 그라스의 이런 정치참여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식인들이 나아가야 할 모습으로 인정 받았고, 그의 행동은 지식인과 시민들에게 무한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보여줬던 행동과 올바른 의식 때문이었습니다.

'반권위적인고 민주적인 의식'
'좌우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균형 잡힌 개방적 시선'
'이성과 계몽의 힘에 대한 신념'

그가 지닌 이런 신념과 행동은 '독일 민주주의의 교사'라는 칭송을 받았고, '독일의 비공식적인 양심'이라는 칭호까지 얻었습니다.


공지영,이외수 작가가 지금 사회 현상에 대해 말하는 대부분은 어떤 정치 노선의 적극적인 참여보다 현실의 부당함을 말하는 일이 많습니다. 여기에 어떤 정당이든 잘못된 점이 있다면 이들은 비판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천박한 작가들이라고 공지영과 이외수를 비난하는 자들에게 외칩니다. 그들은 지금 자신의 인기를 얻기 위해 정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트위터를 할 시간에 글을 더 쓰고 책을 출간하면 돈을 더 벌 수 있겠지만, 그들은 자신의 직분인 글을 쓰는 동시에 아픈 현실을 일깨우려고 시민으로서 정치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뿐입니다.

제가 정치블로거로 정치 글을 쓴 이유 중의 하나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 때문이었습니다. 정치와 현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우리가 정치를 외면할 때 정치는 정치인들의 사냥터로 전락해버리고 그 먹잇감이 바로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지식인들이 권력에 아부하여 썩은 고기를 먹으며 살아남았던 부끄러운 친일행각이 아직도 올바른 길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식인들의 비판적 참여정신은 지금도 필요하며, 오히려 그런 참여정신은 물질과 권력, 성공만이 전부인 현대에서 우리의 삶을 지켜주는 하나의 정신적 잣대이자 등대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