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인천지방법원에서 근무 중인 최은배 판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로 정치권과 법조계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최은배 판사는 지난 22일 한미 FTA 비준안이 날치기 통과된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이 서민과 나라 살림을 팔아먹은 2011년 11월 22일, 난 이 날을 잊지 않겠다” 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최 판사의 글이 논란이 되자 대법원은 최은배 판사를 공직자 윤리위원회에 회부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최은배 판사에 대한 글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위반했느냐를 놓고 공방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언하지만, 최 판사의 페이스북 글은 정당한 개인적인 활동이며, 헌법에 명시된 개인의 자유와 법관윤리강령 7조 '법관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번 최은배 판사의 페이스북 글을 놓고 한나라당은 논평을 내놓았는데, 과연 이것이 얼마나 무지한 컴맹당의 수준인지 파헤쳐 드리겠습니다.
출처:한나라당 홈페이지
■ 사적공간과 인터넷 공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컴맹당
한나라당은 SNS 소통 강화를 해야 한다고 10.26재보궐 선거 후에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무엇이 SNS인지, 인터넷 공간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만약 최은배 판사가 페이스북이 아닌 '다음 아고라' 나 정치 포털 사이트 '서프라이즈'에 글에 올렸다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토론 사이트에 자신의 글을 올리고 토론을 유도했다면 그 또한 잘못된 일입니다. 하지만 최 판사는 사적공간인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페이스북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친구가 아닌 사람은 실제로 그 사람이 어떤 글을 올렸는지 볼 수가 없습니다. 이 정도로 해놓은 사생활 공간에 적은 글을 판사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할까요? 판사에게도 개인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가 TV토론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면 충분히 처벌대상지만, 페이스북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특히, 한나라당은 문제가 되는 글을 삭제함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고 운운하는데, 이 당시는 사적공간이었던 페이스북이 많은 관심이 주목된 공간으로 변질하였기에 삭제를 한 것입니다. 잘못의 인정이라고 자신들 멋대로 해석하는 이 나쁜 습관은 나중에도 또 나옵니다.
'330명이나 되는 페이스북 친구' 라는 대목에서는 실소를 자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페이스북의 친구맺기 리미트는 5천 명 입니다. 그 이유는 친구 관리가 5천 명이 넘을 경우 힘들 수 있다는 판단으로 내린 페이스북만의 결정입니다.
최은배 판사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최은배 판사의 페이스북을 보면 고등학교,대학교를 명시했기에 그와 관련된 친구가 많습니다. 또한, 각종 단체도 관심이 있기에 여기에서도 친구들이 있습니다. 이 정도 인맥이라면 오히려 300명의 친구라면 많은 숫자도 아니고, 진짜 친한 사람만 친구로 맺었다고 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마치 330명의 페이스북 친구가 (페이스북 글 파문 이후 500명으로 증가) 공적인 인터넷 공간으로 해석하여 그를 매도하는 것은, 늘 한나라당의 SNS 정책이 기껏 100명 수준이라 300명이 많아 보인다는 질투심과 멍청함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 법관행동준칙? 똑바로 알고 논평을 하시라.
한나라당은 2002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세계 대법원장회의에서 법관 행동준칙에서 '법관은 대중적인 논쟁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라는 말을 인용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 의미는 모두 잘라먹고 문장 하나만 가지고 최은배 판사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법관행동준칙>은 2001년 인도 뱅갈로어에 세계 각국 법조인들이 모여 시작한 회의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유엔 후원으로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높일 수 있는가 고민했고, 이를 토대로 <벵갈로어 법관 행동 준칙>이 마련했습니다.
여기서 법관들에게 중요한 기준을 마련했는데, 그 기준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보통 사람'을 말합니다. '합리적 관찰차'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볼 때 공정성을 우려하고 의심할 만한 일인지 아닌지를 늘 염두에 둬야 한다는 뜻이라고 조선일보 사설에서 예전에 밝혔던 대목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을 이제는 한미FTA 반대 판사를 향해 칼을 겨누는 잣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벵갈로어 법관 행동 준칙>은 정치적인 면보다, 법원에서 제 식구 감싸기, 뇌물 수수,범죄조직과의 연루설 등을 염두에 두고 나온 윤리강령입니다.
이 <법관 행동준칙>에 위배된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벤츠제공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자 벤츠를 제공했던 전직 부장판사의 변명 ⓒ MBC뉴스 화면 갈무리
부산지검은 부산에서 근무했던 이모 검사가 벤츠 승용차를 제공 받았다는 진정서가 접수돼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습니다.
부장판사 출신 최모변호사가 제공한 벤츠는 현직 여검사에게 전달되었고, 최 변호사는 '벤츠를 일정기간 보관해달라고 부탁했지, 준 것은 아니다'라는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습니다.
사실 이 사건은 최모 변호사와 이모 여검사가 내연관계였고, 고급승용차에 법인카드까지 제공하며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특히 최모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검찰에 로비해야 한다며 1000만원 짜리 수표, 골츠채, 명품 지갑을 가져가서 본인이 직접 사용했습니다.
결국 최모 변호사와 이모 여검사는 부적절한 내연관계에 있으면서 사생활을 재판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더러운 짓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바로 <벵갈로어 법관 행동 준칙>입니다. '벤츠여검사'는 정치적 논쟁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을 위해 다른 사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신용철 대법관은 촛불집회 당시 서울중앙지법 법원장으로 재직했습니다. 그는 당시 형사 단독판사에게 배정된 촛불집회 사건을 빨리 현행법대로 처리하라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전화에 회식자리에서 공공연히 말을 하고 다녔습니다.
이때는 박재영 전 판사가 야간집회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정한 상태였습니다.
'현행법대로 빨리 처리해라','그걸 갖고 판사들이 압박을 받아서야 되겠느냐'라고 말했던 신용철 대법관과 이용훈 대법원장이 진정으로 <벵갈로어 법관 행동 준칙>을 위반한 것입니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는 왜 법관들이 인도의 벵갈로어에 모였고, 그들이 무엇을 위해 <법관행동준칙>을 마련했는지 상식적으로 생각해야합니다. 또한 '존 로버츠 미 연방대법원장이 밝힌 법원 구성원의 SNS 이용에 부정적 견해'도 앞뒤 다 잘라먹고 글을 쓰면 안 됩니다.
제발 합리적인 증거와 논리,정확한 이론을 제시하고 글과 논평을 올려야 합니다. 이런 식이면 조선일보와 한나라당 대변인들은 논술시험에서 완전 낙제감입니다.
■ 빨갱이 논리로 또 매도하십니까?
한나라당은 논평에서 '진보성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최은배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출신임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법연구회>는 말 그대로 법을 연구하는 개혁성향 판사 모임입니다. 개혁과 진보라는 말의 어감은 전혀 다릅니다.
부조리한 현행 법체계를 연구하는 모임이 언제부터인가 빨갱이로 인식하는 진보,좌파의 모임으로 규정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색안경을 벗어나고자 <우리법연구회>는 자체세미나를 외부에 공개해버렸습니다. 또한 자신들을 비밀조직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항변합니다.
“자꾸 명단을 공개하라고 하는데, 이제껏 펴낸 논문집에 나온 저자 이름만 봐도 누가 회원인지 다 알 수 있다”
<우리법연구회>는 무슨 정치집단도 아니고,비밀 결사조직도 아닌 순수한 연구단체입니다. 보수단체와 조중동은 이들을 매도했고, 한나라당은 당연히 이들의 논리에 따라 최은배 판사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진보성향'이라는 말로 정치적 중립을 위반했다고 주장합니다.
곪아 터지고 부조리한 내부 체계를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순수 연구모임을 이렇게 빨갱이로 매도하는 모습은, 이들이 민간인대학살을 주도했던 반공 우익단체들의 명맥을 이은 자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닙니다. 컴맹당 대표님.
최은배 판사의 글에 대한 사건이 일어나자, 컴맹당 대표님(컴맹당이 아니라 무뇌아당으로 쓰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아예 Daum에서 리스트로 올려주지도 않습니다. ㅠㅠ)께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막말을 또 트위터에 올려놓으셨습니다.
홍준표 대표가 최은배 판사 페이스북 논란에 대한 글을 비꼰 트위터 글 ⓒ 트위터 화면갈무리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트위터에 '나도 화나면 여러분들과 같이 욕도하고 막말도 했음 참 좋겠다'라는 글을 올리면서 자신의 말과 최은배 판사의 글에 대한 논란을 비교했습니다. 그러나 홍준표 컴맹당(이라고 쓰고 무뇌아당이라고 읽으세요) 대표님은 전혀 사건의 본질과 SNS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홍준표 대표의 직업은 대한민국 최고 여당의 당 대표입니다. 최은배 판사는 솔직히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검색조차 어려운 무명의 인물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인지도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됩니다.
최은배 판사의 이번 글은 친구들만 볼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었지만, 홍준표 대표의 주옥같은 어록은 매번 공식석상이나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아니 기자들하고 그렇게 의형제 사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그 정신상태부터 이상한 사람입니다.
홍준표 대표는 부적절한 발언이었다고 해명하고 사과하면 끝이었지만 최은배 판사는 지금 직장을 잃게 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여기에 최은배 판사는 SNS를 진짜 사적인 공간으로 활용했지만, 홍준표 대표는 자신의 정치 홍보를 위해서만 사용했습니다.
홍준표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 개설을 홍보한 트위터 멘션 ⓒ 트위터 화면 갈무리
최은배 판사의 이번 파문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 현직판사도 정권을 비판하면 바로 옷 벗을 수 있다.
- 9급 공무원도 SNS 사적공간에서도 정치 이야기하면 큰일난다.
- 자신의 페이스북 친구 300명이 넘는 사람은 인기인이니 무조건 조심해라.
- 진보성향은 빨갱이로 매도될 수 있다.
판사이기에 정치적 발언을 사적공간에서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공무원들은 모두 투표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투표또 한 자신의 정치적 생각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닙니까?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며 다수에게 소외된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도록 국민에게서 명령 받았다. 유럽 여러 국가에서는 판사들이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의견을 적극 개진하고 심지어 사법 현안에 대해 파업을 하거나 시위까지 한다." - 최은배 부장판사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은 앞뒤 말을 다 잘라먹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가지고 SNS와 온라인 공간, 그리고 판사의 자질을 논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소외된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길 원하는 국민의 명령을 진정으로 수행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벤츠여검사','유죄 판결을 강요한 대법관','정권의 충견 대법원장'보다 자신의 소신을 자신 있게 말하는 한 명의 판사가 있음을 하나님에게 감사합니다. 최은배 판사, 임수빈 검사 처럼 알려져 있지 않고 대한민국을 위해 애쓰는 이들이 있기에,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상식을 꿈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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