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대사

나는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 김무성의 뻔뻔함?

 

 

김영삼 전 대통령이 향년 88세의 나이로 서거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많은 정치인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습니다. 그의 정치 인생을 놓고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중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생각해볼 사건 몇 가지를 알아봤습니다.

 

가장 먼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출신은 자유당입니다. 장택상 국회부의장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김영삼은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기붕의 입당 교섭으로 공천을 받고 만 25세의 나이에 거제에서 출마, 최연소 나이로 당선됩니다.

 

당시 전국에 골고루 후보를 낸 정당이 자유당뿐이었다는 점과 사사오입 개헌 이후 자유당을 탈당했던 점만 본다면 그의 자유당 입당과 출마를 비난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자유당 개헌안 발의 의원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을 본다면, 그의 정치 입문이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투사의 마음이 아니었다는 점만은 확실합니다.

 

'나는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 김무성의 뻔뻔함?'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저는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김영삼의 상도동계와 김대중의 동교동계가 결성한 '민추협'(민주화추진협의회)과 통일민주당 발기인, 김영삼 정부의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지낸 김무성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가 과거에 올린 트윗을 놓고 김무성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김현철씨는 2014년 7월 15일 '김무성 의원은 친박 비박 사이에서 줄타기가 하지 말고 1년 이상 입원 중인 아버님 병문안부터 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요'라는 트윗을 올렸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병문안조차 가지 않았던 김무성 대표가 김영삼의 정치적 아들 운운하는 자체가 말도 안 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김현철씨의 트윗 때문인지 김무성 대표는 2014년 7월 19일 서울대 병원에 입원해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방문했습니다. 김현철씨가 트위터에 김무성 대표를 언급한 지 불과 4일 만에 병문안을 간 것입니다.

 

김현철씨의 과거 트윗 시점에서 김무성 대표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방문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가 한 번도 김영삼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오류인 셈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008년 김무성 의원의 선거사무실을 방문해 그를 격려해준 적이 있습니다. 한나라당에서 김무성 등 민주계 의원들이 공천에 탈락하자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습니다'정치적 아들'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정치적 유산을 받았던 김무성 대표이지만, 그가 박근혜 대통령보다 김 전 대통령을 앞에 내세워 살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3당 합당, 야합인가 정치적 승부수인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과를 말하면서 3당 합당으로 그가 대한민국 정치를 후퇴시켰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물론 그 주장도 타당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이 꿈인 원래부터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3당 합당을 하고도 남았을 인물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영삼이 이끄는 통일민주당은 59석을 차지해 김대중의 평민당에 밀려 제3당으로 전락했습니다. 노태우의 민정당이 문제가 아니라 김영삼 자체가 정치 라이벌 김대중에게 패배했습니다. 특히 노태우는 김영삼과의 합당 이전에 김대중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노태우가 김대중에게 손을 내민 이유는 평민당이 가진 의석수가 더 많았거니와 그가 가진 호남 기반과 민심을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정권 유지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영삼은 처음에는 반 노태우 전략으로 김종필과 연대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략은 실패했고, 물러설 수 없었던 김영삼은 결국 노태우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영삼의 3당 합당 승부수는 노태우에게는 과반 의석 여당 기반을 줬지만, 김영삼에게는 정치적으로 더 난감한 상황을 만들어줬습니다.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대중의 평민당은 자력으로 성장했지만,민자당은 오히려 국민의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김영삼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기 위한 정치적 승부수라고 봤지만, 결과는 야합이라는 비난과 함께 정치적 신뢰까지 잃었습니다.

 

'김영삼이 보여준 정치력'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국 정치사에서 꼭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모든 행동이 과연 우리 국민이 원하는 정치의 모습이었느냐를 묻는다면 글쎄라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보여준 정치는 국민이 원하는 이상적인 정치는 아니었지만,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승리의 정치'는 맞습니다. 그가 위기 때마다 선택한 승부수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그에게는 승리를 안겨줬기 때문입니다.

 

3당 합당을 통해 내각제를 약속했지만, 갑자기 터져 나온 밀약설과 각서 파문으로 김영삼은 내각제를 팽개칠 수 있었습니다. 과연 누가 각서를 유출했는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김영삼에게는 민자당 당권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한지붕 세 가족'이었던 민자당에서 김영삼은 정치력을 발휘해 그가 원하는 대통령까지 당선됐습니다. 그가 원하는 대통령의 꿈은 이루었지만, 대한민국 정치는 아직도 지역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과를 가지고 그를 좋다 나쁘다 단정하기는 모호합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정치력만큼은 우리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보여준 정치력을 제대로 평가한다면 대한민국 정치가 어떻게 발전하기도 후퇴하기도 했는지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의 죽음은 단순한 찬양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가 살아온 인생을 제대로 평가해, 과연 우리가 어떻게 정치를 발전시켜야 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죽음은 한국 정치 현대사를 정리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