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2014.08.29 07:12


영화 '명량'이 국내 최다 관객 수 기록을 넘었습니다. 영화 '명량'은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통해 '리더십'이 무엇인지 보여줬다는 평과 함께 1,650만 명의 관객이 봤습니다.

영화 '명량'의 주인공인 이순신은 한국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영웅입니다. 그러나 이순신이라는 인물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역사적 사실보다는 다른 면으로 포장돼, 오히려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웅이라는 점만 강조하다 보니 실제 그가 얼마나 뛰어난 장군인지 전쟁에서 얼마나 탁월한 전략을 보여줬는지는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더 정확히 연구하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이상한 영웅으로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군사쿠데타 이후 떠오른 이순신'

근현대에서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가장 주목 받았던 시기는 언제일까요? 바로 1962년이었습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서 '이순신'을 검색하면 유독 1931년과 1962년이 다른 연도보다 더 많은 뉴스 기사가 검색됩니다.

1931년은 이광수가 소설 이순신을 연재하던 시기였기 때문이고, 1962년은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이후 벌어진 영웅 만들기의 일환 때문입니다.


박정희는 1961년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후부터 이순신에 대한 민족 영웅화 작업을 시작합니다. 


1962년에만 <무용극 이순신>, <연속사극 '성웅 이순신'>,<영화 '성웅 이순신'>등이 나옵니다. 또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 '이순신 기념행사'가 열리기도 합니다.

특히 영화 '성웅 이순신'은 해군함대사령부와 진해통제부사령부,해병대,UDT를 동원한 대규모 전쟁씬[각주:1]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충무공 탄신일에 맞춰 충무시에서 열린 행사에는 어선 1천5백 척과 주민 5만 명이 참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순신 영화를 단체 관람하거나 수학여행 의무화, 통영을 충무라는 이름으로 변경하는 일[각주:2] 등은 군사 독재정권에서 말 한마디로 순식간에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 나도 이순신처럼 '민족의 영웅'이다'

박정희가 쿠데타 이후 이순신을 자꾸 내세운 이유는 그의 쿠데타를 정당화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박정희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민족의 영웅으로 만들어, 자신도 그처럼 민족의 영웅이라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박정희는 이순신이 어떻게 나라를 구했는지를 설명하면서 쿠데타가 나라를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내세웠습니다.

○ 당파싸움 → 무능한 장면 정부

박정희는 조선의 당파싸움과 장면 정부를 연상시켜 무능한 장면 정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쿠데타를 일으킨 불행한 군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 일본으로부터 지킨 영웅 → 북한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영웅

임진왜란으로 조선이 위기에 처하자 이순신이 나서서 나라를 지킨 것처럼 박정희도 북한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쿠데타를 했다는 당위성을 조성했습니다.

○ 이순신을 괴롭힌 정적 → 쿠데타에 참여하지 않는 자 민족의 반역자

박정희가 조선시대 당파싸움이나 원균을 등장시켜 이순신을 모함했다는 주장을 강조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쿠데타에 동참하지 않는 자는 민족의 반역자라는 논리를 내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박정희는 이순신을 민족의 영웅으로 만들고, 자신도 민족의 영웅처럼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생각을 국민에게 심어주기 위해 이순신을 전면에 내세우는 작업을 한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과 다른 이순신 장군 동상'  

박정희는 집권 기간 내내 현충사 참배는 기본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민족 영웅화 작업을 전개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광화문 광장에 세운 이순신 장군 동상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종로 네거리에 일본이 가장 무서워할 인물의 동영상을 세우라'는 지시에 따라 1968년 조각가 김세중이 제작합니다. 

일본군 출신이었던 박정희의 이력이나 일본 군가와 군복을 즐겨 입었던 그의 모습을 보면 그다지 신뢰는 가지 않습니다.오히려 청와대를 지키는 수문장과 같은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박정희의 지시에 따라 제작된 이순신 장군 동상은 불과 10년도 되기 전에 재건립을 결정합니다. 1977년 세종로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고증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지적이 전문가와 시민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역사적 고증과는 멀어도 너무 먼 동상입니다.[각주:3] 가장 먼저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은 이순신 장군이 왼손잡이였느냐는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들고 있는 칼은 실전용 칼이었던 '쌍룡검'이나  의전용 '쌍수도'도 아닌 일본도와 유사한 형태입니다. 표준 영정은커녕 오히려 동상을 만든 조각가와 흡사한 얼굴은 아무리 표준 영정 이전에 제작된 동상이라고 해도, 실제 이순신 장군의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지휘하는 모습을 표현해야 하는 북이 오히려 누워있거나, 중국식 갑옷을 입고 있는 모습은 이순신 장군 동상을 무조건 크게 제작하면 그뿐이지 전문가들의 고증은 그다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각주:4]

이런 문제점 때문에 서울시는 1977년 이순신 장군 동상을 재건립하기로 하고 문공부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박정희의 사망으로 지금까지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 멸사봉공, 나라가 아닌 나에게 충성을 바쳐라'

이순신 장군이 역사적으로 영웅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빗대어 박정희가 충성을 강요했기 때문에 잘못된 영웅 만들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입니다.


성역순례라는 이름으로 배낭과 각반을 차고 모형 소총을 메고 5.16광장 (현 여의도 공원)에서 아산 현충사까지 행군 하는 학도호국단의 모습을 보면, 누가 이들을 고등학생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까?

박정희가 고등학생을 동원해 현충사까지 행군을 시킨 이유는 자신의 권력에 대한 절대복종을 심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1972년 박정희는 현충일 추념사에서 '멸사봉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멸사봉공은 조선 총독 미나미가 조선인에게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봉사하라며 사용했던 말입니다.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라는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의 말을 일본이 가장 무서워하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운 박정희가 쓰다니 참으로 신기할 따름입니다.

박정희에게 중요한 것은 나라에 대한 진정한 애국심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에게 충성하되 겉으로는 애국심처럼 포장되는 일이었습니다.


이순신은 분명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명장입니다. 그의 전략과 전술은 지금도 우리가 배워야 중요한 역사적 교훈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순신이라는 인물을 박정희와 동급의 영웅으로 만들어놨습니다.

이순신은 이순신이고, 박정희는 박정희입니다. 왜 이순신과 박정희를 똑같은 영웅으로 취급해야 합니까?

박정희는 자신이 죽어서도 이순신과 같은 영웅이 될 것이라 믿었겠지만,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자로 권력을 휘두른 20세기 인물들은 대부분 비참한 최후와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각주:5]


  1. 언론 보도는 대규모 전쟁씬이라고 하지만 실제 영화를 본 관객들은 전쟁씬과 미니어처 특수촬영 등에 실망을 하기도 했다. [본문으로]
  2. 1995년 충무시와 통영군이 통합되어 통영시로 바뀌었다. [본문으로]
  3. 자료 출처및 인용: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혜문 스님 [본문으로]
  4. 김세중 작가는 고증보다 오히려 구리가 없어 재료 조달에 더 고생했다. [본문으로]
  5. 무아마르 카다피(리비아)사살/사담 후세인(이라크)교수형/아돌프 히틀러(독일)자살/베니토 무솔리니(이탈리아)처형/니콜라에 차우셰스쿠(루마니아)총살/슬로보단 밀로셰비치(세르비아)감옥에서 사망/박정희(한국)사살/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아이엠피터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