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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야기

우리는 '제주 동물원'에 산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소 중의 하나가 동물원입니다. 동물을 키우고 함께 하는 것이 아이들의 정서에도 좋다고 해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물론이고 초등학교도 현장학습으로 동물원을 자주 갑니다.

에스더와 요셉이도 제주에 살면서 동물원 (육지에 비해 규모도 작고 육식동물은 별로 없음)에 가기는 가지만, 사실 집에서 보는 동물이 더 많습니다.

제주는 육지에서는 귀한 노루가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될 만큼 흔합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무섭습니다. 밤에 노루가 불쑥 튀어나오면 차는 물론이고 사람까지 다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제주는 동물이 흔한 곳입니다. 그중에서도 허허벌판 산골짜기에 사는 아이엠피터의 집은 동식물을 너무 쉽게 봅니다.


아이엠피터는 제주에 내려와서 처음으로 개를 기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오직 아파트 생활만 해서 개를 기를 엄두도 못냈고, 부모님이 집에서 개를 기르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개를 기르는 아빠에 비해 에스더는 태어날 때부터 개를 보고 자랍니다. 아이엠피터가 기르는 초롱이는 동물보호단체에서 입양 보낸 개로, 에스더가 태어날 때쯤에 제주에 내려왔습니다.

아이엠피터가 사는 단지에도 (아이엠피터는 펜션단지에서 월세로 살고 있습니다.) 상근이와 똑같이 생긴 강아지(?)가 있는데,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보고 자란 에스더는 개가 아니라 그냥 자기 쫄다구로 생각하는지 별 거리낌이 없습니다. (요셉이는 아직도 개를 무서워합니다.)


개를 무서워하는 요셉이와 달리, 에스더는 강아지를 거침없이 만지고, 자기가 엄마인양 아이들을 돌보기도 합니다. 에스더 입장에서야 강아지를 돌본다고 생각하겠지만, 옆에서 보면 강아지들이 정말 싫어하더군요.

여자아이지만 절대로 인형을 갖고 놀지 않는 에스더양은 유난히 강아지를 좋아합니다. 아마 체질적으로 인형의 인조털은 싫고 체온이 느껴지는 살아있는 동물이 좋은가 봅니다.


제주에 와서 신기한 것이 말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말은 속된 말로 지나가는 똥개에 불과할 정도로 별 관심 없는 동물입니다. 거리에 지나다니는 말은 별 흥미도 없고, 사는 집 앞에 말이 와야 '말이 또 왔네' 할 정도입니다.

처음에는 말이 무서웠지만, 지금은 집 앞에 똥을 싸대는 귀찮은 동물 중의 하나입니다. 아침에 아이들 학교 데려다 주는 바쁜 시간에 말이 길을 막고 있으면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가끔 돈 주고 말과 함께 사진을 찍는 사람을 보면 참 신기해하기도 하고, 나중에 집을 사면 말을 키울까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주는 풀밭이 흔해 그냥 말을 풀어 키우는 경우가 많아 그리 어렵지는 않다. 그리고 말을 타고 다니면 어떨까는 상상 때문)


말은 물론이고, 돼지도 가끔 봅니다. 근처에 양돈장이 있는데, 그곳을 탈출한 돼지가 집 앞으로 오기도 합니다. 돼지고기를 먹을 때는 모르지만, 실제 돼지를 보면 무섭습니다. 백 킬로가 넘는 육중한 돼지가 꿀꿀거리며 앞으로 오면 멧돼지가 아니지만 그래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무섭습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으니 집 안으로 새가 들어오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들어올 때 잽싸게 들어오는 새는 잡기도 어렵거니와 작대기를 휘둘러도 나갈 기미도 없습니다.


제주는 특히 꿩이 흔합니다. 자동차가 지나가도 꿩이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아, 간혹 꿩을 치기도 합니다. 임대하고 있는 감귤밭에서 꿩 알을 보기도 하는데, 꿩이 놀라 지나간 자리에 있는 꿩 알은 갖고 와서 지인의 부화기에 넣어 놓기도 합니다.

(꿩 알은 원칙적으로 주워오면 안 된다. 그러나 꿩이 놀라 도망가면 그 자리에 있는 꿩 알은 가져와야 하는데, 그 이유는 꿩이 그 자리에 가지 않거니와 다른 동물들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그중에 제비는 아예 집 처마 밑에 둥지를 틀었고, 제비새끼까지 낳아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주기도 합니다. 원래 제비집은 보기는 좋지만, 집에 있으면 집이 더러워집니다. 둥지에서 똥을 싸니 제비집 밑은 언제나 제비똥이 흥건합니다.

제비집을 치우려고 하다가 새끼를 낳은 것을 보니 치울 수도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셉이는 '제비집 철거 결사 반대'를 외치고 있어, 극단적인 철거(?)는 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혹자는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준다고 하는데, 아이엠피터는 청와대에 있는 박씨가 우리 집 근처에만 안 왔으면 좋겠습니다.


제비집이 생기니 갑자기 뱀이 집 앞까지 출몰하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뱀이 많은 제주라 신경 안 쓰고 넘어갔지만, 물건 꺼내려고 박스를 열다가 그 안에 뱀이 있는 것을 보니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독사는 별로 없지만, 그래도 뱀은 사실 징그러운 존재입니다. 특히 비가 오고 난 뒤에 몸을 말리려는 뱀이 많이 등장하면, 차를 운전하다 밟기도 하는데, 썩 좋은 기분은 아닙니다.


징그러운 뱀을 얘기하니, 지네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제주 지네는 특히 커서 종종 무서울 때가 많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걷으며 발견하는 지네는 아이들 몸을 잽싸게 살피게 하는 주범입니다.

거미도 얼마나 큰지, 거의 공포 영화에 등장하는 괴물과 같기도 할 정도로 아이엠피터 집 근처에는 각종 벌레 등이 떼거리로 출몰합니다.


그중에서도 사슴벌레와 같은 곤충은 요셉이가 제일 좋아하는 곤충입니다. 지네와 거미는 싫어하지만, 사슴벌레와 같은 곤충을 좋아하는 요셉이는 남들은 돈 주고 사는 사슴벌레를 마당에서 잡아다 기르기도 합니다.

다른 집은 오래 집을 출타하면 강아지 먹이 때문에 고민하지만, 요셉이는 사슴벌레를 데려가느냐 마느냐를 항상 고민하기도 합니다.


육지에 살 때는 전혀 볼 수 없는 다양한 동식물과 곤충을 볼 수 있는 이유는 아이엠피터가 제주에서도 정말 외진 곳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모기와 나방 등 거대 해충도 많지만, 그래도 자연에 사니 신기한 구경을 많이 합니다.

요셉이와 에스더를 키우면서 아이들이 이런저런 동식물을 보는 모습에 제주 이주를 잘했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어릴 적 시골 큰집에 가야 볼 수 있었던 풍경을 아이들은 자라면서 매일 보고 살기 때문입니다.

평생 아파트에 살았던 아이엠피터에게 지금 제주의 삶은 만족을 넘어 행복하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만듭니다.


바닷가 정도는 그냥 십오 분이면 가기 때문에 큰 행사도 아닙니다. 넓은 잔디밭에 물을 받아 물장난을 쳐야 '아 오늘 조금 재밌게 놀았다'고 할 정도입니다.

사실 저런 풀장은 육지에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나 아파트에 산다면 좁은 베란다에 갇혀 물장난을 쳐야 하고, 호스를 틀어 신나게 물을 뿌릴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보고 느낄 수 있는 제주에서의 삶은 마치 동물원이나 식물원에서 사는 느낌내지는 정글의 법칙에 출연하고 있다는 착각도 종종 합니다.


매주 한 번은 제주에 관한 얘기를 쓰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무리 중요한 정치도 삶의 본질이 흔들리면 그 얘기를 하는 아이엠피터의 시각에 문제가 간혹 생기는 경우를 봤기 때문입니다.

일주일을 정리하면 너무 많은 사진과 얘깃거리가 나옵니다. 그것은 제주의 자연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사실 피곤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아이엠피터 곁에 있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10년에 불과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아마 부모와 함께 있지 않겠죠 ㅠㅠ) 그래서 이 시간을 즐기고 남기려고 합니다.



"만약 숲 속의 나무 한 그루가 쓰러지면 누가 있어 그 소리를 들을까"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쩌면 자연은 우리 아이들에게 값어치가 있는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고민하는 가장 중요한 존재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요셉이와 에스더는 지네,뱀,사슴벌레,제비,꿩,노루를 보면서 살아가기에 자연이 그리 소중한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아이들의 인생에서 어릴 적 특이한(?) 추억이 그들의 삶의 값어치를 만들어주는 귀중한 잣대가 되지 않을까라고 아빠는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