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한 지 4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지난 주에는 사이트를 새롭게 오픈하기 위해서 참 많은 일들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그 와중에 일본인 스탭들에게 쌓였던 분노가 폭발하기도 하고, 한국 같았으면 일어날 수 없는 황당한 사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태를 겪으면서 얻은 깨우침은「일본인은 일본인으로 바라보자」라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일본인과 일을 하다보면 한국인과는 너무나도 다른 정서에 많은 충격을 받곤 합니다. 단순히 친구로서 일본인을 만나던 시절, 단순히 좋아하는 취미로서 일본 문화와 일본 사회를 접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일본인의 모습에 많은 혼란을 겪었습니다.
게임 회사이기 때문에 이쪽 회사에는 크게 3가지 부류의 일본 스탭이 있습니다.
1. 30대 초중반의 버블의 최고조와 붕괴를 어린 시절에 겪은 세대.(대게 단카이 세대의 자녀들)
2. 버블 이후에 태어난 단카이 주니어 세대
3. 재일교포 혹은 일본인과 결혼한 한국인
3번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중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정서의 큰 차이는 없는 편입니다. 그러나 1번과 2번의 진짜 일본 사람들은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죠. 그나마 1번의 30대들은 어느 정도 사회 생활에 대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일본인의 감성을 갖고 있을 뿐이지 언젠가는 한국인 스탭과 융화되어 갑니다. 문제는 이 2번에 있는 세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2번에 해당하는 단카이 주니어 세대, 그 중에서도 특히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재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은 한국인의 정상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생각들을 합니다.
그래서 생기는 문제가 바로 '한국인에게는 당연한 것이 일본인에게는 당연하지 않는 것이 되고, 일본인에게 당연한 것이 한국인에게는 바보스럽게만 느껴지는' 현상이 생긴다는 점이죠. 미루기 님의
『요구르팅』 서비스 종료에서 생각해본 한일시장 비교의 문제.
라는 포스팅이 이것을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겪어본 단카이 주니어 세대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직장에 취직해서 일단 일을 합니다. 그런데 우선 그 회사에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을 합니다. 그리고 회사가 돈을 벌어서 이익을 내야만 자신에게 월급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정말로 모르고 있습니다.
"그럼 일본 젊은이는 다 바보 멍청이냐?"라고 반문하는데, 사실이 그렇다는 거죠. 그들이 바보 멍청이라서 그런 건 아닙니다. 다들 자기 생각이 있고, 정규 교육을 받았고, 나름대로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다만 일본이라는 사회가 그들에게 위기감이라던가, 소속감 같은 것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정말로 모를 뿐이라는 겁니다.
예전에 일본 사회학자들이 쓴 '하류 사회'에 대한 책들을 읽을 때,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올 때 도무지 이해가 안 갔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직접 똑같은 상황 속에서 일을 해보니 책에 써 있는 이야기들이 진짜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야 회사에서 돈을 벌어서 이익을 내야 너한테 돈을 줄 거 아냐! 것도 모르냐 병신 같이."
...와 같은 마인드로 일본인과 일을 하게 되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죠. 그들에게는 그걸 모르는 게 당연한 것이고, 자신이 그것까지 신경을 써줄 필요 자체가 없기 때문이니까요. 그것이 일본인이고, 내가 한국인이기에 당연한 것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며칠 전 깨우쳤습니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어차피 직장에 대한 아쉬움이 없습니다. 그 회사가 자신한테 조금 싫은 소리를 한다거나, 조금 힘든 일을 시킨다거나,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시키면 그냥 그 회사 그만두고 아무데나 가서 알바나 하며 살아도 평생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게다가 회사가 사람을 일단 고용하면 단 하루만 일하고 연락을 끊고 안 나오더라도 월급을 안 주면 부당 해고가 되어 엄청난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처럼 '내가 열심히 해야 회사가 살고, 그래야 나도 커리어가 쌓인다.'가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일본인과 일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게 아주 기초적인 개념을 설명해주는 일입니다. 이 일을 왜 하며, 그렇게 하면 어떤 일이 생기며, 그 결과를 이끌면 회사에 어떤 변화가 오고, 그것을 위해 당신에게 주어진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하기 위해 당신은 어떤 사람과 어떤 부분을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는가...이런 너무 당연한 개념을 설명해주지 않으면 일본인과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미국인들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한국인들은 '군대'라는 경직된 사회 조직을 2년이나 거치고 나오기 때문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가 성립이 되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일본인에게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는 곧 "넌 이 일을 할 필요가 없다."와 같은 의미가 되어 버립니다. 이런 실수를 저도 여기 와서 몇 번이나 거듭했었죠.^_^
한국에서 '일본의 우경화'를 걱정하고 계신 분들은 일본에 오셔서 일본의 젊은 인력들을 데리고 딱 1개월만 프로젝트 하나 진행해보시길 추천합니다. 아마도 생각이 싹 바뀌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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