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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메르스 대면보고' 세월호 참사 때처럼 없었다.

 

 

2015년 1월 12일, 청와대 새해 기자회견장.

기자:대면보고가 부족하지 않습니까?

박근혜 대통령:“대면보고보다 그냥 전화 한 통으로 빨리하는 것이 더 편리할 때가 있어요. 대면보고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면 그걸 늘려나가는 방향으로 하겠지만… (장관들을 뒤돌아보며)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ㅋㅋㅋㅋ"[각주:1]

 

박근혜 대통령은 대면 기피증에 걸린 사람처럼 대면보고를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오죽하면 장,차관으로 임명됐지만, 회의 때를 제외하고는 대통령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퇴임한 사람도 있을 정도입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즉각적인 대면보고가 없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2015년 새해 기자회견장에서 기자가 '대면보고가 부족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원하면 대면보고를 늘려나가겠지만. 필요하지 않느냐며 장관들에게 되묻고 ㅋㅋㅋㅋ 하며 웃기만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별난 방콕정치'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부터 집에서만 주로 있는 '방콕 정치'를 즐겼습니다.  보고서도 주로 팩스를 이용해 받았고, 궁금한 사안은 전화를 걸어 묻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 역대 대통령 당선인과 박근혜 당선인 인수위 활동 비교. ⓒ한겨레

 

대통령에 당선되고도 박근혜 대통령의 '방콕 정치'는 전혀 변함이 없었습니다. 2013년 1월 17일까지도 박근혜 당선인은 인수위에 고작 한 번만 참석했습니다. 이명박, 노무현 대통령의 외부행사나 인수위 회의 참석 횟수와 비교해봐도 현저히 적었습니다.

 

간단한 내용이나 일상적인 보고를 굳이 만나서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까지 넘어오는 보고서는 굉장히 중요한 내용이 많습니다. 중요한 보고서를 전화로 묻고 의견을 듣는 일은 오히려 비효율적입니다.

 

우리가 비즈니스를 해도 중요한 사안은 꼭 미팅하고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이유가 혹시나 보고서나 제안서 등의 내용이 왜곡되거나 부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면 보고는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는 수단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삼성동 자택에서 보고서만 받는 습관을 청와대에 가서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때도 없었던 대면보고, 메르스 사태 때도 없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 대통령의 행적이 궁금했던 사람이 많았습니다. 아직도 7시간 동안의 행적이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세월호 때와 마찬가지로 메르스 사태 때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대통령을 찾아가 보고(대면보고)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유선상으로 통화하면서 여러 차례 말씀드렸다'고 답했습니다.[각주:2]

 

메르스 사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통령과 만난 것은, 확진 환자 판정이 나온 5월 20일에서 6일이 지난 5월 26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메르스 관련 대면보고가 아닌, 매주 화요일마다 열리는 일상적인 국무회의였습니다.[각주:3]

 

2주 가까이 지난 6월 3일에서야 대통령이 주재하는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가 열렸습니다. 당시 문형표 복지부장관은 영상으로 대통령을 만났고, 6월 9일도 통상적인 국무회의였을 뿐입니다. 결국,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문형표 복지부 장관과 대통령이 직접 만나 대책을 논의한 적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과 대면 보고는 없었지만, 청와대 참모진과 대면보고는 있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보고와 지시는 늘 전화로만 이루어졌습니다. 마치 장거리 연애를 하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청와대가 너무 바빠 라면을 먹을 정도로 메르스 사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라면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휴일이던 6월 7일, 이병기 비서실장 등 참모진과 전화를 20~30차례 하면서 메르스 대책을 논의했다는 부분입니다.[각주:4]

 

전화를 20~30차례 하면서 보고받는 시간에 비서실장 등 참모진이 대통령과 만나 메르스 대응 대책을 논의했으면 어땠을까요? 전화를 수십 차례 하는 일이 더 효율적이었을까요? 상식적으로 국가 재난 사태라면 일요일이라도 만나는 일이 당연합니다. 오히려 전화로만 얘기하는 일이 더 이상합니다. 그것도 청와대에서...

 

'독대와 대면보고는 다르다'

 

과거 대통령과의 독대는 대통령과 각별하다는 의미이기에 이승만이나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자들은 '독대'를 즐겼습니다. 누가 대통령과 독대했다는 말이 나오면 대통령이 그를 '총애'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독대'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006년 이희범 무역협회장의 특강 내용을 (노무현 대통령 독대 금지) 1면에 보도한 언론들 ⓒ동아일보.국민일보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원장이나 최측근의 독대까지 금지하자, 동아일보와 국민일보는 마치 대통령이 독단에 빠졌다는 식으로 보도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독대를 금지한 것이지, 대면보고를 금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양정철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장관이 대통령 독대는 못 하지만 수시로 대통령을 만난다"며 "중요 정책 결정은 독대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함께 협의하는 과정, 회의하는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게 맞다"며 "그게 민주주의"라고 밝혔습니다.[각주:5]

 

박근혜 대통령이 독대를 잘하지 않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독대는 물론이고 대면보고까지 하지 않는 일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이상한 결과를 만들고 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오후 5시에 중앙재난대책본부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YTN

 

박근혜 대통령이 제대로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세월호 참사 당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는 말에서 드러났습니다.[각주:6]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대면보고를 받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다면 이런 질문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메르스 사태 때도 이런 현상은 또다시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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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유튜브 계정이 올린 박근혜 대통령 주재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 영상을 보면 대통령의 발언대신 옆에 자막이 나옵니다.[각주:7] 대통령의 발언 대부분을 자막으로 처리하는 영상은 잘 사용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회의 내용을 이런 식으로 편집하지는 않습니다.

 

대통령이라고 늘 말을 잘하거나 일처리가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참모진이 필요하고, 담당 장관들이 있는 것입니다. 담당 장관들과 제대로 대화 한 번 나누지 않고 일을 처리하려니 항상 말이 꼬이고, 대응이 늦어집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혼자서 은둔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다고 해도, 이제 대통령이 됐으니 '방콕 정치'는 버려야 할 악습입니다. 최소한 국가적으로 긴급한 재난 사태가 벌어지면,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는 대통령이 되길 바랍니다.

 

  1. 박근혜 대통령 발언 유튜브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GheJvylxESA [본문으로]
  2. 문형표 “메르스, 대통령에게 대면보고한 것은 5월26일” 중앙일보 2015년 6월 8일. 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5/06/08/17539800.html?cloc=nnc&total_id=17980043 [본문으로]
  3. 박 대통령, 첫 확진 6일 지나서야 문형표 대면보고 받았다. 중앙일보 2015년 6월 9일 http://joongang.joins.com/article/184/17982184.html?ctg=1000 [본문으로]
  4. “메르스 하도 바빠 라면 먹었다” 청와대 또 라면 논란… 페북지기 초이스. 국민일보. 2015년 6월 9일.http://m.kmib.co.kr/view.asp?arcid=0009528247&code=61111211&sid1=pol [본문으로]
  5. 청와대 “노대통령-장관 독대금지 원칙은 시대적 요구” 한겨레 2006년 5월 18일 http://www.hani.co.kr/arti/politics/bluehouse/124541.html [본문으로]
  6. 세월호 침몰사고, 박 대통령 발언 적절했나. 오마이뉴스 2014년 4월 17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1656 [본문으로]
  7. 메르스(MERS)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 청와대, 2015년 6월 4일. https://www.youtube.com/watch?v=HiyQvmBUdTk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