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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박근혜의 공포는 '국회법 개정안'이 아닌 '미래권력'

 

 

지난 5월 29일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국회법 개정안'을 언급하면서 '행정부의 기능은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질 우려가 크다'는 표현까지 사용했습니다. 상위법의 취지를 훼손하는 정부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시정조치를 요구하는 국회법 개정안이,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행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각주:1]

 

청와대는 국회법 개정안이 마치 국회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으며, 삼권분립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국회법 개정안 때문에 민생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았다는 식으로 국회를 매도하고 있습니다.

 

'국회법 개정안'이 정말 행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엄청난 법안인지, 왜 이런 대립이 나왔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강제성 없는 국회법 개정안이 그리 무섭나'

 

우리가 흔히 국회에서 법을 만들면 끝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법을 행정부가 시행하기 위해서는 세부 사안이 포함된 대통령의 명령이 필요합니다. 흔히 시행령이라고 보면 됩니다. 시행령은 헌법이나 국회에서 만든 법률보다 하위에 있어서 하위법입니다.

 

하위법인 시행령이 상위법이나 헌법을 위반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한국은 시행령이 상위법을 위반하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국회가 통과시킨 '국립대회계법'에서는 소속 '교직원'에게 수당 등을 지급할 수도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교육부가 만든 시행령에서는 '교원에게'로 바뀌었습니다. 교직원과 교원의 글자 하나 차이로 대학 직원들은 수당을 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각주:2]

 

대한민국 행정부가 만든 시행령은 국회가 만든 상위법을 위반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번에 국회에서 통과한 개정안에서는 문제가 있는 시행령을 수정,보완하도록 요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정부는 국회법 개정안이 행정부를 통제하고 마비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번에 통과시킨 국회법 제98조의 2를 보면 기존에는 시행령이 문제가 있을 경우 소속기관의 장에게 '통보'로 끝났습니다. 개정안은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고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는 말을 해석하면 '말 그대로 수정,변경을 해달라'는 뜻이지, 만약 수정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즉 강제성이 전혀 없습니다.

 

국회가 시행령이 문제가 있으니 바꿔달라고 해도, 행정부가 하기 싫으면 그만입니다. 안 하면 그뿐인데 무슨 행정부의 기능이 마비되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이 못마땅한 것은 정부의 시행령에 국회가 수정을 요구하는 자체가 그냥 싫은 것입니다. 감히 대통령에게 이래라저래라 요구하는 그 자체가 건방져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친박이 지고, 비박이 떠오르다'

 

국회법 개정안의 본질은 강제성과 처벌도 못 하는 법이 아닙니다. 핵심은 지금 권력을 위협하는 미래 권력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미 국회에서 새누리당을 이끄는 유승민 원내대표와 김무성 대표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경고는 시작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국회법 개정안 때문에 '정부의 기능이 마비될 우려가 크다'면서 사실상의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청와대는 새누리당이 국회법 개정안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당청 회의'를 하지 않겠다고 나오고 있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입장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노골적인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공격이 곤혹스러울 수 있습니다. 강제성이 없는 법안으로 굳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가 나설 이유가 없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김무성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 당의 총재가 아니다. 때문에 당청관계가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대통령이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따라가는 그런 상황은 아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각주:3]

 

유승민 원내대표도 '어른스럽지 못한 말이다'면서 청와대의 '당청 회의' 중단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강한 반발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을 되짚어 봐야 합니다. 지난 2월 벌어진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은 '신박 이주영'과 '비박 유승민'의 대결구도였습니다.

 

사실 유승민 의원은 비박이 아닌 '원조친박'이었습니다. 오히려 이주영 의원이 '친이계'였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운명은 박근혜 대통령의 스타일을 놓고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유승민 의원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이후 박근혜 대통령과 멀어졌고, 2012년 총선 이후에는 김무성 대표와 함께 '탈박'이 됐습니다. 이 배경에는 그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이런저런 쓴소리를 해댔기 때문입니다.

 

이주영 의원은 친이계였다가 2012년 대선 때 정책의장 및 특보단장을 시작으로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에 박근혜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신박'이 탄생한 것입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신박'은 '비박'에 패했고, 당내에는 부쩍 '비박' 세력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당내 비박들이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고 보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래의 권력이 감히 지금의 권력을 흔들다니'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을 보면 아버지 박정희의 영향을 받은 모습이 꽤 됩니다. 그중에서 후계자를 키우지 않거나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일에는 가차없이 대응하는 행동이 비슷합니다.

 

 

1973년 4월 28일 수도경비사령관 윤필용 소장이 사조직 결성과 부정부패 등의 혐의로 징역1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박정희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던 윤필용의 몰락이었습니다.[각주:4]

 

박정희는 후계자나 2인자를 절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김종필', '김성곤', '이후락' ,'윤필용' 등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는 자들은 가차 없이 제거됐습니다.

 

박정희는 자신이 가진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고 있기에 권력을 뺏기는 순간, 자신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권력을 붙잡으려고 갖은 애를 쓰면서 살았지만, 결국 김재규에게 사살됐습니다.

 

 

2005년은 친박이 시작되는 시기였습니다. 박근혜 대표와 유승민 대표비서실장, 김무성 사무총장 등의 3인이 한나라당을 이끌기 시작했습니다.[각주:5]

 

지금 청와대와 대립하고 있는 유승민 원내대표와 김무성 대표의 움직임은 차기 권력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이들은 박근혜식 정치가 아닌 유승민과 김무성식 정치를 펼치려고 합니다.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미래의 권력이 벌써부터 자신에게 대항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지금 새누리당에서는 친박 의원을 중심으로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모임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국회법 개정안이 진짜 위헌이라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새누리당 내에서의 친박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청와대의 지시를 받았을까요?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회법 개정안은 '국민이' 아닌 자신의 권력에 '피해'를 주려는 도전에 불과합니다. 당장은 김무성,유승민의 반발이 거세지 않겠지만, 권력을 놓고 벌이는 처절한 암투가 곧 수면 위로 등장할 것입니다.

 

  1. 청와대브리핑 2015년 5월 29일. http://www1.president.go.kr/news/briefingList.php?srh%5Bview_mode%5D=detail&srh%5Bseq%5D=10900 [본문으로]
  2. [正말?] 법 위 시행령 바로잡자는데 삼권분립 위협? 뉴스타파. 2015년 6월 1일. http://newstapa.org/25784 [본문으로]
  3. "대통령, 당 총재 아냐" 당의 반격…확전·타협 기로. 더300 2015년 6월 3일 http://the300.mt.co.kr/newsView.html?no=2015060317027654524 [본문으로]
  4. 박정희 죽음의 전조 ‘윤필용 사건’ 한겨레 한홍구 칼럼. 2012년 5월 18일.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33525.html [본문으로]
  5. 유승민 “10년 전 초심으로” … 천막당사 정신 강조 중앙일보 2015년 2월 3일.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7080019&ctg=10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