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대사

독도 폭파를 제시한 친일파 박정희의 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대권 가시화에 대한 포스팅을 어제 발행하면서,마음 한구석을 심하게
뒤흔드는 불안감이 있었다.바로 정치권력과 지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대선 주자,부동의 1위
박근혜 전 대표가 과연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자격이 있을 수 있는냐라는 부분이다.

그 이유는 박근혜 전 대표는 바로 친일과 독재의 상징인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죄를 자식에게 묻는 것이 가혹하다고 할 수있지만,대한민국에서 친일의 역사는 반드시
청산되어야 하지만,친일청산은 커녕 친일의 대가로 수많은 친일파의 자식들이 대한민국에서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친일파 독재자였던 박정희의 친일 행적이 과연 박근혜 전 대표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살펴보자.

박정희는 대구사범 교사로 재직하면서 성공이 보장된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고 싶었으나
나이 제한에 걸려서,만주중앙군관학교에 "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는 혈서를 보내고 만주 일보에
대서특필이 된 후에 입학한다.

박장희가 육사에 가고 싶었고,만주에 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긴 칼차고 싶어"서였다.
우리는 아직도 어른들이 아이들이 잘못하면 칼 찬 순사가 너 잡으러 온다는 이야길 하는 것을 안다.
긴칼은 우리 민족을 핍박하고 억압하고 수탈하는 일본의 무력 통치를 의미하는데,박정희도 그 권력을
누리고 싶어서 혈서까지 쓰면서 만주 군관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박정희는 일본 육사 편입의 특혜를 받으며 일본 육사를 졸업하는데,그 전에 만주군관학교의
예비 졸업식에서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라는 졸업생 대표 연설을 한다.

대동아 공영권과 성전은 오로지 일본의 광기 어린 전쟁이었고,그 전쟁으로 조선은 수탈과 강제징용
그리고 위안부로 수많은 조선 처자들이 일본군에 끌려가는 전쟁이었다.박정희는 이런 전쟁을 위해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다고 강력하게 이야기했던 인물이다.


만주군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박정희의 주요 근무지는 간도 지방 독립군의 이동 지역과 항일 투쟁의
격전지로 불리는 만주 열하지역이었다.박정희의 항일 토벌 경력을 짐작케 하는 근무지이다.
특히 박정희는 만주 간도 특설대라는 특수 부대에서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군에게서 최상의
칭찬을 받는데,바로 "상승의 조선인 부대"라는 칭호였다.

박정희의 공식적인 독립군 토벌 기록은 없다.그러나 항일 투쟁 지역에서,그가 조선인이기에 독립군을
토벌하지 않았다고는 믿을 수 없다.그 당시 만주 지역의 무장 항일 단체는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과
한국 독립군(韓國獨立軍), 중국 구국군(中國救國軍),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 등이었는데.
일본군과 싸우는 적을 섬멸하는 임무를 띤 만주군 소대장이 독립군 토벌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도 없고,역사적으로 해명될 수 없는 말이다.


박정희는 일본 패망으로 승승장구하던 만주군 장교 생활에서 도망자 신세로 변할 즈음에 피난민으로
위장하여 북경 광복군에 합류한다.다시 조선으로 돌아와서 국방경비대에 입대하여 소위로 임관,
남로당에 가입한 뒤에 체포당하고,군 내부 남로당 계열 정보를 제공하여 목숨을 부지한다.

좌우익 대립으로 혼란스러웠던 정국에서 박정희의 남로당 가입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로 그가
군내 좌익 세포 정보를 모두 군정보조직에 넘겼고,그로 인해 여순 반란 사건 토벌자에서 간첩으로
다시 우익으로 돌아갔던 그 변화무쌍한 박정희의 변신이다
.특히 이 당시 숙군으로 구명을 받고
살아난 사람은 박정희 단 한사람이었고,그를 도와준 세력이 바로 만주군 인맥이었다.

항일 무장 단체를 토벌하던 사람이 다시 광복군으로 국군으로 변신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박정희는 군사 쿠데타 이후에 미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오히려 일본 정부의 도움으로
일본 배상을 완결시키는 조건으로 미국으로 쿠데타를 인정받았다.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3억불
배상은 원래 장면 정부가 내세웠던 30억불의 십 분의 일 금액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본 어업 협정을 통해서 일본의 독도 문제 정당성을 계속 유발하는 문제를
대한민국에 남겨주고 갔다. 이뿐만 아니라 독도를 폭파하자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의 한일회담 독도폭파 발언을 보도한 1962년 11월12일자 조선과 동아일보 기사.


1962년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은 한일회담 관련 공동통신과의 회담에서 <지전수상과 회담할 때, "독도를 폭파해벌리까?"라고 하니 지전 수상은 "그러면 더욱더 큰 문제로 된다"라고 하면서 웃은 바 있다.>라고 발언을 했다.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의 '독도 폭파' 발언뿐만 아니라 박정희는 한일수교 문서에 서명하기 한 달 전에도 '독도 폭파'를 말하기도 했다. 

 "수교 협상에서 비록 작은 것이지만 화나게 하는 문제(irritating problems) 가운데 하나가 독도문제다...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도를 폭파시켜 없애버리고 싶다고 말했다(President Park said he would like to bomb the island out of existence to resolve the problem)"  

1965년 5월 27일 딘 러스크 미 국무장관 집무실에서
(출처: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소장 '국무 기밀 대화 비망록 


박정희에게 독도와 일본 배상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그에게는 오로지 권력과 왕좌를 지키기 위해
어떤 수단도 용납되고,국민과 대한민국보다는 자신만의 삶이 우선되는 인물이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발언을 일절 하지 않는 인물이다.그가 친일 독재자의 딸로
책임과 그 정체성을 밝히라는 주장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면서 이번에 이야기한 발언을 보면서
그녀에게 대선을 위한 공부보다는 역사 공부를 더 하라고 말하고 싶다.

복지국가를 꿈꾸는 사람이 엄청난 뇌물을 받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민족을 팔아먹고,일본에 엄청난
특혜를 주었는가? 박정희를 평가하는 경제 성장은 박정희가 아니더라도 장면 정부 시절 모두 계획된
경제 계획 안에 있던 일이었고,일본의 만주식 경제 성장으로 우리 국민은 돈이면 되는 세상,인권보다
재벌들만이 배를 부르는 시대가 되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대통령을 위한 정치 브레인과 대선 조직을 가동 시키기 전에,이 나라의 아픈 역사와그 더럽고 추한 자신의 아버지의 과오를 국민에게 용서를 빌고,친일과 독재로 이룩한 부와 권력의 연장선에서 얻은 혜택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



박정희의 친일을 옹호하는 세력이 내거는 가장 큰 이유는 박정희가 일본의 지배하에 교육을
받은 상황에서 어쩔수 없이 만주군 소위로 임관을 했다는 이야기다.과연 그러한가?
비슷한 시기에 출생한 장준하는 학도병 징집으로 일본군에 끌려가서 탈출하여 3개월동안
무려 2400Km를 걸어서 충칭의 광복군에 합류하여 광복군의 국내 진공 작전을 위해 몸을 바쳤다.

[韓國/시사] - 광복군OSS특수부대의 국내진공 침투작전은 성공했을까?

“내가 형제와 골육을 위하는 일이라면 비록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하여도 이는 원하는 바이라” 자신의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장준하와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
박정희를 비교하면 누가 친일을 친일이 아니라 이야기할 수 있는가?

"만일 일제가 계속되었다면 만주군 장교로 독립투사를 학살했을 것이다"라는 장준하가 박정희에게
했던 말을 박근혜 전 대표는 기억해야 한다.

친일과 변절,그리고 민족을 팔아 먹은 딸로 박근혜 전 대표는 대통령 권력보다 국민을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