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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충암고 같은 '사학비리' 학교가 또 있을까요?

 

 

급식비 미납 학생에게 막말했다는 논란을 빚고 있는 충암고 교장과 교감이 각각 학교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습니다. '충암고 급식에 관한 교감 지도 내용'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충암고 교감은 급식비 지도를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충암고 교감은 급식비 미납 지도가 언론 보도처럼 막말은 없었고, 급식비 미납이나 급식실 운영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충암고 교감의 변명은 문제의 원인이 학생이 아닌 충암학원이라는 사학재단과 학교의 부실운영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감추고 있습니다.

 

'사학비리 백화점 충암학원'

 

충암고등학교를 운영하는 충암학원은 1965년에 건물 하나로 학교 설립인가를 받았는데, 현재는 1천억 원대의 재산을 가진 거대 사학재단으로 변신했습니다.[각주:1]

 

▲ 건물 곳곳에 금이 가고 오래된 충암고등학교. 안전점검에서 D등급을 받았다. ⓒ 경향신문

 

충암학원이 건물 하나에서 1천억원의 자산을 보유할 수 있던 배경에는 학교 돈을 빼돌려 부동산과 주식 투자 등으로 재산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학교와 학생을 위해야 하는 사학재단이 학교와 학생을 통해 돈만 벌고, 학교에는 투자하지 않으니 학교 건물은 낡고,학생들의 교육 여건은 계속 엉망이 됐습니다.  

 

2011년 서울시교육청은 충암학원을 조사했습니다. 당시 무려 34건의 비리 혐의가 적발돼 '사학비리 백화점'이라 불릴 정도였습니다.[각주:2]

 

 

충암학원의 이사장은 2005년 뇌물과 병역비리로 쫓겨났습니다.[각주:3] 이사장을 대신해 부인과 아들,딸이 번갈아 맡았습니다. 며느리와 조카는 법에도 없는 유치원 실장이나 교사로 근무하며 월급을 받았습니다. 이사장의 처남은 명목상 행정실장으로 근무했지만, 실제 업무는 계약직 직원이 모두 도맡아서 했습니다.

 

이사장의 차량 운전사 월급과 사학재단의 난방유 등의 지원은 법인 재산이 아닌 학교의 돈을 빼돌려 지급됐습니다. 매년 학교 돈으로 설립자의 묘소를 참배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하지도 않은 학교건물 창호교체 공사를 했다고 속여 8천만 원을 횡령하고, 공사비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학교 돈을 빼돌렸습니다. 급식실 운영이나 급식기구 구매에서도 각종 비리와 문제점이 발견됐습니다.

 

신규교원 채용 과정의 평가자료가 무단으로 폐기됐고, 학교 운영에 관한 회의록은 거짓으로 작성됐습니다.

 

▲ 충암고등학교와 충암학원의 각종 비리들 ⓒ 오마이뉴스

 

서울시교육청은 2011년 충암학원 이사장과 이사,감사 등 이사회 전원에 대한 취임승인 취소 의견을 냈고, 중,고등학교 전직 교장 등 10명과 교직원 29명은 중징계 조치를 받았습니다.

 

야구명문으로 유명한 '충암고등학교'였지만 사학비리와 인권침해의 공간이었습니다.[각주:4] 학교를 졸업한 동문은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실과 비리의 온상이었습니다. 이번 사건이 터지자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가 많았습니다.

 

학교 급식비 미납으로 학교 운영이 어렵다고 변명하지만, 실제 충암고등학교의 운영은 급식비가 아닌 사학재단의 비리와 부실 운영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육성회비를 못 내면 혼났던 악몽이 떠올라'

 

30대가 넘는 사람들은 황토색 육성회비 봉투를 기억할 것입니다. 70~80년대 육성회비 봉투는 당시 국민학교를 다니는 사람 중에는 이 봉투가 상처가 됐던 사람도 있습니다.

 

 

육성회비를 내야 하는 시기가 오면 아이들은 고민에 빠집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에 육성회비 봉투를 부모에게 내밀어 봤자 '내일은 꼭 줄게'라는 말밖에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육성회비를 가져가지 못한 날이면 두렵고 떨렸습니다. '육성회비 안 낸 사람 다 나와'라는 말이 떨어지면, 몇 명 아이들은 쭈뼛거리며 교탁으로 나갔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 선생은 '왜 육성회비를 안 내는데, 너희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든줄 알아?'라며 면박을 줬습니다.

 

'오늘 청소는 육성회비 안 낸 애들이 한다'면서 육성회비를 내지 못했으니 머슴처럼 일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육성회비를 낼 때까지 계속 주번[각주:5]을 시킬 때도 있었습니다.

 

충암고 교감이 급식비를 내지 않은 학생을 대상을 급식비 지도를 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수업 시간에 교감이 들어와 '육성회비 내지 않은 놈들은 모두 가방 싸서 집에 가'라는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대한민국 범죄자의 대명사로 불리는 '신창원'[각주:6]은 자신이 범죄자가 됐던 이유가 선생님 때문이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지금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을 쓰는데 나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하고 머리 한번만 쓸어 주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5학년때 선생님이 '이 쌍놈의 새끼야, 돈  안가져 왔는데 뭐 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하고 소리 쳤는데 그 때부터 마음 속에 악마가 생겼다." — 《신창원 907일의 고백》 중[각주:7]

 

학교는 영리를 목적으로 세운 기업이 아닙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학교 중에는 말로는 교육을 내세우지만, 안으로는 가족들의 부와 권력을 채우는 사학재단이 지배하고 있습니다.[각주:8]

 

충암고등학교 급식비 사건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싸울 대상은 무상급식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교육을 망가뜨리는 사학재단과 스승이 될 수 없는 이 땅의 거짓 선생들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1. [통제 받지 않는 교육권력 ‘사학’]안전점검 ‘D등급’ 받은 학교 지원 받아 횡령, 시설 보수 안 해.경향신문 2014년 8월 25일.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8252154345&code=940401 [본문으로]
  2. 서울시교육청. 학교법인 충암학원 및 충암중·고등학교 특정감사 결과http://www.sen.go.kr/web/services/bbs/bbsView.action?bbsBean.bbsCd=77&bbsBean.bbsSeq=33 [본문으로]
  3. 쫓겨났던 이사장은 2008년 학교에 복귀했다가 2011년 사학비리가 다시 발각됐다. [본문으로]
  4. 야구 명문 충암고? 창피한 줄 알아라 사학비리와 인권침해 '충암학원', 비리 역사 훑어보니. 오마이뉴스 2011년 6월 23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86204 [본문으로]
  5. 70~80년대 주번은 석탄을 가져 오거나 폐품을 정리라는 등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일을 했었다. [본문으로]
  6. 어릴 적부터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신창원은 절도죄로 소년원에 들어갔다. 계속된 절도와 강도행각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수감 중이던 신창원은 청송교도소에서 탈옥했고, 탈옥 2년 6개월 만에 검거됐다. 이후 교도소에서 중졸,고졸 검정고시를 우수한 성적을 합격했다. [본문으로]
  7. 어릴 적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모두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혹시 한 명의 아이라도 그럴 수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본문으로]
  8. 2011년 서울시교육청관할 사학재단에서 비리 문제로 이사승인이 취소된 곳은 충암학원(충암초·중·고), 상록학원(양천고), 진명학원(진명여고), 숭실학원(숭실중·고), 청숙학원(서울외고)으로 5개 재단 8개교에 이른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