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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기시 노부스케가 만든 만주국 짝퉁 '박정희 정권'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변인의 '귀태' 발언 파문으로 결국 홍익표 의원이 대변인을 사퇴하였습니다. '귀태' 발언이 나오자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난리법석을 펼쳤고, 언론도 '막말 파문'이라는 말로 이 모든 것을 그저 '망언'으로 규정하고 정치적인 공방으로 넘겨버렸습니다.

그러나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변인의 '귀태'발언의 본질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역사 중의 하나였습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홍익표 원내대변인이 인용했던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라는 책이 의미하는 대한민국에 드리워진 일본 제국주의 그림자는 전혀 말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귀태'발언의 본질이 무엇이고,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만주국의 짝퉁, 박정희 정권'

대한민국의 시스템을 알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역사는 어느 시대, 어느 국가일까요? 조선 왕조? 고려 왕조? 대한민국 임시 정부?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거쳐왔던 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만주국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만주국은 황제가 있었지만, 그 시스템과 모든 운영은 일본군과 일본 관료들이 지배했던 나라였습니다. 만주국은 군부 엘리트와 관료, 일본 재벌이 지배하는 '중앙통제형 개발독재 시스템'의 국가였으며, 이는 대한민국 박정희 정권의 성격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대한민국은 일제 패망 후 많은 친일파를 거뒀는데, 그중에 만주군관학교 출신 백선엽,정일권은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특히 박정희는 5.16군사쿠데타를 만주군관학교 1기 선배였던 이주일,김동하,윤태일,박임항,방원철들과 함께 주도했습니다.


일본이 만주국을 통해 중국인을 통치,억압하기 위해 사용했던 수법이 '비민분리' 전략이었습니다. 이것은 항일 유격대의 근거지가 되는 촌락을 파괴하여 유격대의 존재를 없애는 방법으로 대한민국 공비 토벌 작전이나 베트남전에서의 토벌전술과 너무 유사한 전법입니다.

만주국이 중국인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던 병영,규제국가 시스템은 그대로 박정희 정권에 이어져, 국민교육헌장이나 재건체조,교련,주민과 공무원 동원한 조기 청소, 주민등록증 지문 날인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박정희 정권 정책 대부분은 만주국 정책과 유사했으며, 특히 박정희를 아직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사실 알고 보면 만주국에서 이미 실험했던 '산업개발 5개년 계획,북변진흥 3개년 계획'과 흡사한 전략을 담고 있습니다.

▲일본과 만주국관련 계몽 포스터


만주국을 보면 통제와 억압이 있었지만, 경제 성장이라는 달콤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조선의 자본가들은 1929년 세계 대공황에서 가장 먼저 일본이 벗어날 수 있었던 '만주열'이라는 투기 바람에 몸이 달았습니다. (어쩌면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혈서 입학도 이와 비슷했을지도..)

일본은 만주국이 동아시아를 함께 건설하는 시스템이라고 주장했지만, 성공을 위한 침략 시스템에 불과했습니다. 독재와 억압을 통제하기 위한 만주국화협회의 조선 대표 이선근이 유신이념을 전파하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초대 원장이었던 점을 보면 만주국과 박정희 정권이 통치 시스템이 얼마나 유사한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그렇게 드높이 외쳤던 박정희 정권의 성공은 일본이 만주국을 통해 실험했던 정책을 이어받은 만주국 짝퉁 정권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친일의 역사에서 만주국 출신이 얼마나 대한민국을 지배했는지 안다면 단순히 경제개발5개년 계획이 장면 정부의 입안이었다는 말로 '귀태'를 변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장면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박정희가 실천했다는 변명은 그동안 박정희의 경제 업적을 칭송하다가 깎아 내리는 우스꽝스러운 작태일 수도 있다.>


'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박정희 정권과 만주국과의 연결을 말할 때 빼놓으면 안 되는 인물이 기시 노부스케입니다. 기시 노부스케는 "만주국은 내가 그린 작품이다"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그 말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만주국은 황제와 국무원 회의, 실무를 담당하는 총무청이 있었습니다. 만주국을 운영하는 총무장관은 실권 없는 만주인이 맡았기 때문에 실질적인 권력자는 바로 일본인 총무청 차장이었고, 기시 노부스케가 총무청 차장이었습니다.


만주국을 움직였던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이었지만, 기소되지 않고 석방되었습니다. 도조 내각의 전쟁 연장을 반대하며 계속 전쟁을 주장했던 그는 어떻게 기소도 되지 않고 집에 가서 가족들과 참치회를 먹었을까요?

미국 CIA의 전신이었던 OSS 요원은 감옥에 있던 기시와 접촉했고, 이는 미국이 만주국을 움직였던 기시의 능력을 우대하여 일본을 미국의 손바닥 위에 놓고 요리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유유히 풀려난 기시 노부스케는 일본 자민당을 결성했고,1957년에는 총리까지 됐습니다. 그는 일본 정치를 움직인 인물 중의 하나였으며, 일본과 한국과의 관계에서 절대 빠지지 않고 관여했습니다.


기시 노부스케와 빅정희의 연결고리는 야쓰기 가조오라는 만주국 관리와 유태하,김동조라는 일제 내무성 친일파 출신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의 박정희를 수상 관저에서 만난 기시는 그를 가리켜 '젊은 군인들이 정치,경제를 몰랐으며, 일본 정치인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 왔었다'고 회고록에서 밝혔습니다.

기시는 자신의 총리 재임 시절에 한일회담이 성사되지 않은 것에 안타까워하며 친동생 사토 에이스쿠에게 한국과의 협력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은 그들의 침략 행위에 대한 문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한다는(한일 부속협정 1조) 조건으로 무상자금 3억 달러,2억 달러 유상 재정 차관, 3억 달러 이상의 상업차관을 한국에 제공했습니다.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일본과의 협력이 무산되려고 했을 때 나선 것도 기시 노부스케였다는 사실은 한일 양국 문제는 물론이고, 외교,정치,사상에 이르기까지 기시 노부스케가 박정희는 물론이고, 대한민국까지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친일의 역사는 대를 이어 이어진다'

박정희가 친일파라는 사실을 외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박정희가 동네 면서기로 그저 자신의 입에 풀칠하기 위한 친일을 했다면 문제가 없지만, 앞서 말했듯이 대한민국을 움직인 모든 일에 친일적인 행각을 벌인 점이 문제입니다.

 

▲일본TV에서 방영된 박정희 다큐 한 장면.


1961년 박정희는 대한민국 최고회의 의장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했고, 이케다 수상이 주최하는 만찬에 만주군관학교 교장이었던 나구모 신이치로 (南雲親一郎)장군을 초청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박정희는 나구모를 만나자 큰절을 하며 술을 따랐습니다.

"선생님의 지도와 추천 덕분에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라고 박정희가 말을 한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그가 만주군관학교를 거쳐 일본육사를 나와 만주군 인맥을 통해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으니 팩트는 맞습니다.

그러나, 한 국가의 지도자라고 추앙받는 인물이 군사쿠데타에 성공하고 대통령 직전에 있던 시기 (당시는 최고회의의장) 자신의 성공이 만주군관학교 일본인 교장 때문이라고 했다는 사실 자체가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치욕스러운 역사입니다.


아베 신조 총리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입니다. 그는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헌법개정을 '자민당의 60년에 걸친 염원'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의 일생의 업이었던 '일본 재무장'을 실현하는 일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군 강제 위안부 할머니들의 면담에 소극적인 이유는 아버지 박정희가 기시 노부스케와 체결했던 한일 부속 협정 1조 ‘양국의 모든 청구권에 관한 문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버지의 업적을 딸이 망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 자민당 의원은 2006년 "아베 총리는 서두르지 않고 한국의 다음 정권을 기다릴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각주:1] 박정희의 롤모델이었던 기시 노부스케의 인연은 그대로 아베와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TV광고의 한 장면


'귀태'라는 발언의 문제점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라는 과거가 아닙니다. 현재 일본 군국주의 침략 전쟁의 자손과 군사쿠데타 독재자의 딸이 한일 양국 정상에 있다는 부분입니다.

과거 왜 만주국의 역사가 한국사에서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대한민국 보수,우익이 추앙하는 전직 대통령이 알고 보면 일본 시스템을 그대로 베낀 짝퉁업자였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쩌면 박정희의 친일은 그의 잘못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친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정책을 펼친 일본의 교묘한 명품전략(?)에 짝퉁이라도 만들어 성공하겠다는 어리석은 인간의 삐뚤어진 욕심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면 짝퉁보다는 품질 좋은 대한민국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합니다. 과연 박근혜 대통령과 친일은 범죄가 아니다라는 새누리당과 보수우익이 그럴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1. 조선일보 2006년 9월20일자 기사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