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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야기

제주 올레길 살인사건 '괴담 유포자' 알고 보니



제주 올레길로 여행하러 왔다가 살해당한 40대 여성 관광객의 사건으로 제주도가 많이 아파하고 있습니다. 제주 올레길을 걷던 여성의 살인범은 잡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인터넷상에서는 제주도 관련 흉흉한 소문이 무작위로 유포되고 있기도 했습니다. 


특히 최근 일주일 동안 서귀포에서 "조선족들이 여자 2명을 납치하였다"는 악성 괴담이 인터넷,SNS등을 통하여 확산하고 있기도 했는데, 먼저 이 괴담이 어떻게 유포됐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2. 7. 14. 16:58경 싸이월드 게시판
『지금 서귀포 동문로터리에 납치범들 돌아다님 문단속 철저히 하고 어디 돌아다니지 마요』
○ ’12. 7. 14. 18:00경 싸이월드 
『ㅋ ㅋ 제발 살인범들 지금 여자 1명 납치하고 동문로터리에서 일호광장 쪽으로 올라옴 그랫 일호광장에 경찰 쫙깔려 어떻해』게시
○ ’12. 7. 16. 08:54경 위 게시판에
『서귀포 동문로터리 게임장 쪽에서 남자가 그만 욱해서 여자를 칼로 찔러 50대 여자 사망』


이 사건은 7월 14일 12시에 서귀포 시내에서 50대 남자가 칼로 여자 1명을 찔러 죽인 살인 사건을 알게 된 중학교 1학년 C양이 친구인 B양에게 '서귀포 시내 동문로터리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조심해라'는 내용으로 전달됐는데, 이것을 친구인 A양과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자신들 멋대로 상상력을 발휘해서 싸이월드에서 400명,507명,540명이 공감을 하며 싸이월드 공감노트를 통하면서 '조선족들','여자납치 2명' 등으로 변질하면서 카카오톡과 트위터를 통해 전파됐습니다.


경찰은 중학교 1학년 13살 A양이 미성년자인 점을 고려해서 불입건 조처를 하고, 싸이월드 글에 대해서는 삭제조치를 요청한 상태입니다.


며칠 전에 네이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대망생이' 단어가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단어가 네이버 검색어에 뜨자,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대망생이'라는 검색어는 네이버와 SNS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사건이 됐습니다.

'대망생이'는 일베저장소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린 사람의 아이디입니다. '대망생이'라는 아이디로 올린 글은 이번 제주 올레길 살인사건을 분석한 게시글이었습니다.

▲ '대망생이'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이 일베저장소에 올린 글


제주 올레길 살인사건에 관한 이와 같은 글이 올라오자, 댓글에 이 글이 제주 올레길 살인범 강모씨가 올린 글이며, 이 글은 경찰의 수사를 바라보면서 상황을 즐기는 싸이코패스의 행동으로 올렸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 '대망생이'가 제주 올레길 살인사건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댓글과 그 글이 신빙성있다고 믿는 게시글의 이미지


'대망생이'가 머리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으로 이 글을 쓴 사람은 분명 제주 올레길 살인범이라는 주장이 나오자, 일베저장소에 있던 글들이 각종 인터넷 사이트와 SNS로 유포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베저장소는 유머 중심의 인터넷 커뮤니티입니다. 일베저장소는 5.18당시 사망한 시민군 사진을 '좌좀햄버거' 노무현 대통령을 '운지'라고 비난했던 사이트로 진보의 주장을 무조건 종북 좌파 등으로 반대하는 단순한 우익성향 젊은이들의 잡설이 모인 사이트입니다. 그런데도 이 글이 마치 신빙성 있는 글처럼 인정돼 살인범 강모씨가 범행 직후에 올린 글이라는 뉴스 기사까지도 등장합니다.


▲ 대다수 언론들이 '대망생이' 네티즌을 살인범 강씨로 규정하고 기사를 올렸다, 7월27일 저녁 언론사들의 기사를 조회하면 삭제된 글로 나온다.


'올레길 관광객 살해범이 검거 전 인터넷에 범행 분석글 올려'라는 기사 제목을 통해 마치 '대망생이'가 올린 글이 범인 강씨가 검거되기 전 싸이코패스적인 행동으로 인터넷에 자신의 범행 관련 글을 올렸다고 언론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대망생이'가 제주 올레길 살해사건 강모씨로 굳어지고 있자, 경찰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발표를 합니다. 범인 강모씨는 집에 PC도 없고, 자주 갔던 PC방을 조사했지만, 일베저장소 사이트에 접속한 기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망생이'라는 네티즌은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는 해명 글을 직접 올리기도 했습니다.



'대망생이'라는 네티즌은 자신은 범인이 아니고, 자신을 범인으로 몬 기자들이나 공공기관에 신고한 사람들에게 법적 조치를 하려고 알아보고 있다는 글을 어제 (7월27일) 올립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제주에 사는 저는 답답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사건의 본질은 무시한 채, 지금 제주도 올레길을 많은 사람들이 무참히 짓밟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 올레 잣동네에서 가장 긴 올레 ⓒ 김강임


제주말로 올레는 '집 대문에서부터 거릿길(마을 큰 길)까지'를 의미합니다. 돌이 많은 제주에서는 밭이고 집을 짓기 위해서 땅을 고르면 돌이 무수히 많이 나오고, 그 돌을 담장으로 활용해서 거친 비바람을 피하려고 쌓았습니다. 그래서 올레라는 말은 단순히 돌담길이 아닌 안전하고 아늑함을 뜻하기도 합니다. 


지금의 올레길은 걷기 좋은 길을 선정하여 지정한 여행 코스로 많은 여성 여행자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올레길에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CCTV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CCTV 설치를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물론 거점지역이나 일부 올레길 입구와 출구 쪽에 CCTV 설치는 가능하다고 봅니다.(이럴 경우 입구에 들어섰던 사람은 누구이고, 나오지 않은 사람을 확인할 수 있기에) 그러나 올레길 중간에 CCTV를 설치하는 부분은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올레길을 찾는 사람은 도시를 떠나 자연을 즐기러 온 것이지 여행 내내 자신을 감시하는 CCTV를 보면서 자연을 보고 싶어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안전이 우선이냐 자연을 즐기는 여행이 먼저냐는 논란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CCTV를 설치하고 경찰이 정복을 입고 올레길에 상주하고 있다면 그것이 서울 도심과 무슨 차이가 있으며, 그것이 무슨 자연을 즐기는 올레길이겠습니까?

제주올레 안전수칙
혼자 여행오신 분은 각 코스 시작점 출발 시간을 오전 9시로 맞춰서 함께 걷기를 권장합니다. 비인기 코스인 경우 혼자만 걷게 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제주올레 콜센터(064-762-2190)로 연락해 주세요.

- 걷기 종료시간은 하절기 6시, 동절기 5시로 이 시간 이후 걷기를 자제해주세요.
- 혼자 걸을 때는 수시로 자기 위치와 안전여부를 가족이나 지인에게 알려주세요.
-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비상 연락처(제주올레 콜센터 064-762-2190, 경찰112)를 꼭 가지고 다니세요.
-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변을 지날 때에는 길가에 붙어서 걸어가세요.
- 코스를 벗어난 가파른 계곡이나 절벽 등으로의 모험은 피해주세요.
- 간세 등판에 있는 현재위치정보(간세번호와 남은 거리)를 숙지하며 걸어주세요.
- 여성 혼자 여행할 때는 가능하면 여성전용숙소나 검증된 숙소를 이용해주세요.
- 제주올레 길을 걸을 때는 사전에 제주올레 코스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확인하고 숙지해주세요.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내놓은 '올레길 도보여행 안전수칙')


안전을 위한 대책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 CCTV를 제주 올레길 전역에 설치하는 것은 '빈대를 잡으려 초가에 불을 놓고 이제 빈대는 없다'고 안심하는 꼴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주 올레를 찾는 사람들이 왜 올레길을 찾는지 생각해보고, 그들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로움을 구속하지 않는 선에서 안전대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 제주 올레길 살인사건 관련 괴담을 보면서 그 괴담 유포자였던 네티즌보다 저를 더 화나게 한 사람들은 취재는커녕 책상에 앉아서 인터넷만 뒤적이다가 이거 기사가 되겠다고 '우라까이 (다른 사람의 기사를 베껴서 기사내용을 돌리거나 바꿔서 쓰는 언론계의 용어)'를 자행했던 언론사들입니다.


1인미디어로 불리는 제가 기자를 부러워하는 이유는 그들의 취재 시스템입니다. 취재는 직접 발로 뛰고 사건을 파헤치고, 그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지금 우리 대한민국 언론사들은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터넷의 속성인 실시간 소식을 전달하는 신속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그저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에게 인기 있는 자극적인 기사 제목과 내용만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언론도 제주 올레길을 찾는 사람들이 가진 생각과 불안, 그리고 어떤 안전대책이 필요할지에 대한 깊이 있는 기사를 내지 않고 있습니다. 전혀 근거 없는 자극적인 이야기들만 올라오는 인터넷 게시판 사이트의 글을 갖다가 '제주 올레길 살인범 강씨의 범행전 글'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기에 급급합니다.

가끔 장에 갔다 오는 길에 비가 오거나 목적지까지 한참을 걸어야 하는 언덕길에서 만난 여행자들을 태워주고는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태워줄 수도 없고, 여행자들도 우리 차를 타기를 거부할 것입니다. 언론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괴담유포자들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