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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오빠 전두환'에게 300억을 받았던 박근혜



박정희와 전두환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입니다. 박정희 독재시절, 전두환은 '박정희의 양아들'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가 박정희의 유신말기 권력을 유지하는 3개의 핵심 세력 중(대통령 경호실:차지철,중앙정보부:김재규,보안사령부:전두환)의 하나가 되기까지 그의 행적은 오로지 박정희를 향한 충성심으로 도배됐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전두환이 박정희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했던 가장 큰일 중의 하나가 바로 5.16 쿠데타 지지시위였습니다.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를 살렸던 전두환'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지 이틀 만에,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쿠데타 지지시위를 벌입니다. 이 지지시위는 당시 주한 미8군 사령관이었던 매그루더 대장이 불법쿠데타를 진압하기 위한 한국군의 행동을 지지했던 마음을 돌린 사건이었습니다. 결국, 육사생도들의 시위로 박정희는 유혈충돌 없이 5.16쿠데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박정희에게 엄청난 선물을 안겨준 육사생도 쿠데타 지지시위를 주도했던 인물이 육사 11기 선두주자이며 대위였던 전두환이었기에, 박정희에게 전두환은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존재가 되었습니다.

박정희는 이후 전두환을 총애했고, 이에 따라 전두환은 특전사령관을 비롯해 청와대 외곽경비를 담당하는 30단장,청와대 경호실,보안사령관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1970년대 전두환의 '하나회'가 불법 군내 사조직으로 반란 등 혐의로 대거 숙청을 당할 때도 전두환과 하나회를 살려줬던 사람이 박정희였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정치적 양아들의 수준을 뛰어넘어 완벽한 군사쿠데타의 스승과 제자처럼 판박이였던 자들입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군사쿠데타의 스승과 제자'

전두환이 12.12사태를 통해 만들었던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는 박정희의 국가재건 최고회의를 본떠 왔고, 부정축재자 구속은 권력형 축재일소 정화작업으로,사이비 언론기관 정비와 언론기관 통폐합은 명칭만 다를 뿐 똑같은 정권장악의 방법이었습니다.

군사 쿠데타를 통해 만든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 중앙정보부에 의한 공화당 창당과 보안사에 의한 민주정의당 창당까지 보면, 전두환은 철저하게 스승 박정희의 교범대로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이런 관계로 전두환은 박정희의 최측근이었고, 그 과정에서 박정희의 가족에게 전두환은 청와대에 드나들던 일반적인 사람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 1989년 발표된 5공비리 검찰 수사결과 발표 요지 출처:동아일보


'박근혜에게 청와대 금고의 돈을 줬던 전두환'

제5 공화국이 끝나고 난 후 5공 비리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됐고, 이에 따라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10.26 당시 청와대 금고에서 발견된 현금등 9억 6천만 원 중 6억1천만 원이 전두환에 의해 박근혜에게 전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버지가 억울하게 죽었으니 이 정도 돈은 챙겨줘야 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대한민국이 무슨 아프리카 추장이 세운 부족국가입니까? 어떻게 국민이 낸 세금을 전두환이 마음대로 독재자의 딸에게 줄 수 있습니까?

[정치] - 박근혜의 묵언수행과 300억 유산

당시 박근혜가 받았던 6억1천만 원을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300억원에 가깝습니다. 여기에 전두환은 박정희가 '부일장학회'를 강제로 뺏어 만든 '5.16 장학회'를 '정수장학회'로 박근혜에게 물려줍니다.

[현대사] - 장물 정수장학회를 알면 박근혜가 보인다.

이렇게 엄청난 돈과 평생 먹고살 수 있는 사유재산을 박근혜에게 선뜻 주었던 전두환, 이 둘의 관계를 알려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 1992년 동아일보에 게재된 신군부 관련 기사와 김종필 가족 사진


'전두환과 오빠 동생 사이였던 박근혜'

전두환의 신군부는 김종필을 부정축재 혐의로 연행합니다. 김종필이 연행된 다음 날 부인 박영옥은 박근혜를 찾아가 김종필의 구명을 부탁합니다. 이유는 박근혜가 전두환을 오빠라고 부를 정도로 친했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박영옥과 박근혜는 그리 사이가 안 좋은 관계였습니다. 박영옥은 박정희의 조카였지만 5.16 쿠데타 직후에 일어난 '4대 의혹' 사건 이후에도 김종필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암투 때문에 박정희는 김종필을 외유하게 하였고, 이런 이유로 사촌이었던 박영옥과 박근혜의 관계도 안 좋았습니다
 
■ 4대 의혹
공화당을 창당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증권파동,워커힐,새나라 자동차,빠징코에 혁명주체 세력이 연루된 사건, 원래 김종필도 연행되어야 했지만, 박정희의 조카였던 박영옥이 양주를 먹고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가 "삼촌,나부터 잡아 가두시지요"라고 발악해서 김종필이 풀려난 사건.

얼굴도 보기 싫었던 사이였지만, 박영옥은 당시 신군부의 권력자 전두환에게 구명운동을 펼치기 위해 전두환을 '오빠'라고 불렀던 박근혜를 찾아갔던 것입니다.

'박근혜 정치적 지지세력의 기반'

어떤 사람들은 박근혜 위원장의 정치적 역량과 성품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녀의 정치적 지지 기반 세력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안다면, 쉽게 박근혜라는 인물론 하나로 끝낼 수가 없습니다.

▲ 1976년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대한구국선교단 최태민 총재와 만나고 있는 박근혜


박근혜의 정치적 지지세력의 원조는 '구국여성봉사단'입니다. 70년대말 구국봉사단은 회원 숫자만 3백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거대했던 전국적인 조직이었습니다. 이때 구국봉사단을 이끌었던 사람이 최태민과 박근혜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계속해서 최태민과 박근혜 비리 의혹이 불거져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구국봉사단이 얼마나 대단했느냐면, 김우중 대우회장,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 등 전경련 이사 대부분이 구국봉사단 운영위원이었다는 점입니다. 전국적인 조직망에 전경련 이사가 운영위원이었다면 그 조직이 얼마나 자금과 인력 동원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는 초등학생도 다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막강한 조직력을 신군부에서 가만 놔둘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1980년대 초 보안사에서는 구국봉사단을 해체해 버립니다.

(박정희에게 정적을 제거하는 방법을 배웠던 전두환에게 아무리 주군의 딸이라도 자신에게 위협되는 존재는 거세의 대상이었고, 이 때문에 박근혜는 5공 시절 많은 압박을 받았다는 속내를 비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는 나중에 전두환 세력을 자기 품으로 안는 넓은(?) 아량을 베풀기도 했습니다.)


▲ 새마음 봉사단과 박정희 육영수 기념사업회 회장,1989년 근화봉사단까지 운영했던 박근혜


박근혜는 이런 신군부의 압력에도 1982년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하고 1989년은 육영수 여사를 추모하는 단체를 표방하는 '근화봉사단'을 조직합니다.

근화봉사단은 회원만 20만 명이었으며, 전국 시도는 물론 군단위까지 지부가 있으며, 당시 연말 회원수 목표가 50만 명에 육박했던 거대 조직이었습니다.

알다시피 이런 조직력은 어떤 선거에서도 유리한 득표를 가져오는 힘이 있습니다. 특히 '새마음 봉사단','근화 봉사단'과 같은 조직은 일반 서민층이 지도층으로 활동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재력이 있는 가정의 부인들이 조직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기에, 보수세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계층이 정치적 영향력을 하부조직까지 발휘했던 것입니다.

▲ 박정희 대통령 10주기에 참석한 박근혜를 보도한 당시 한겨레 기사


박근혜는 이런 단순한 조직력을 갖춘 봉사단 활동뿐만 아니라 박정희의 이름을 내걸고 유신 세력들을 모았습니다. 신군부에 의해 뿔뿔이 흩어졌던 '박정희 시대' 추종자들은 '박정희의 적자'를 내세우며 박근혜 밑으로 모였습니다.

우리는 선거 때마다 보수 세력 후보자들이 박근혜와 함께 찍었던 사진을, 너도나도 내걸었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박근혜에 대한 경력을 후보자 경력에 넣었던 새누리당 공천 신청자들의 꼼수도 알고 있습니다. 

[정치] - 'MB 굴욕'과 강간미수범도 신청하는 '새누리당 공천'


단순히 공천과 선거에 유리한 박근혜 연관을 내세우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아직도 경남과 TK 지역은 박근혜에 대한 지지세력이 엄청나게 있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지금의 박근혜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박근혜의 지지세력은 박정희의 유신체제부터 만들어져 지금까지 계속 이어진 철저한 유신의 잔재이자, 고도의 정치적 유산임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단순히 박정희 대통령의 딸로, 지금은 새누리당의 대선주자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박근혜 위원장은 대한민국 현대사와 정치사에 빠질 수 없는 주요 인물 중의 하나입니다. 그녀의 삶을 돌이켜보고 제대로 알 때 역사가 바로 서고, 우리의 정치가 어떻게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는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사실만으로 그녀를 공격하면 안 된다는 논리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녀를 단순히 '독재자의 딸'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그녀가 가진 정치적 배경과 지지세력의 거대함을 인지해야 합니다.

 

▲ 4.11 총선 부천 새누리당 유세장에 박근혜가 등장하자 몰려든 인파 출처:경기뉴타운뉴스


'독재자의 딸'이었다는 공격은 초딩들의 싸움에서 너 잘났다고 싸우는 수준입니다. 그녀가 왜 전두환으로부터 지금 돈 300억 원에 달하는 돈을 받았고,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던 김종필의 아내마저 박근혜를 찾아가 '오빠'라고 불렀던 전두환에게 구명운동을 부탁했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현대건설 사장이었던 이명박이 운영위원으로 있던 거대 조직 '구국봉사단'과 전국적인 조직력을 갖춘 '근화봉사단',그리고  막대한 재산을 보유한 '육영재단'을 거느렸던 박근혜의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박근혜라는 인물을 알면 우리의 삐뚤어진 현대사를 깨닫고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닙니다. 숨겨졌던 진실과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단서가 됩니다.

박근혜는 단순히 '독재자의 딸' 이 아니라 역사의 변화 때마다 정치세력을 조직하여 이끌었던 인물이었고, 국민을 기망하는 공작정치를 습득했던 인물입니다. 전교 1등하는 강남 부자 아이를 무조건 욕하는 단순함에서 벗어나 어떻게 시험에 철저하게 대비하여 공부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야권이 자꾸 멍청한 전략으로 나오면, 2012년 대선도 망가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지 상대방의 과거와 힘을 늘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철저하지 않으면 당하는 것이 정치판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