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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안철수 비난했던 박근혜,알고 보니 허걱


박근혜 의원이 안철수 원장의 최태원 SK회장 구명 운동에 대한 생각을 묻자 ' 그런 것을 우리가 고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안철수 원장이 최태원 회장의 구명 운동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시인했다고, 과거가 씻기는 것은 아닙니다.  안철수 원장의 SK 구명운동 관련 내용이 사실 박근혜 캠프에서 안철수 원장을 견제하기 위해 나오는 이야기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과연 박근혜 의원 자신의 과거가 그런 이야기를 할 사람이냐에는 저는 의문을 갖습니다. 그것은 박근혜 의원이 지나왔던 과거를 안철수 원장과 같은 잣대로 본다면 그리 떳떳하여질게 없기 때문입니다.



1978년 11월 30일 서울 문화체육관에서는 동아그룹산하 각기업체 임직원 및 가족 2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새마음갖기 결의실천대회및 직장봉사대 발대식'이 열렸습니다.

새마음이란 말 그대로 새마을운동과 비슷하게 근검,절약,저축 등을 내세우며 하는 사회운동과 비슷합니다. 동아그룹처럼 거대 그룹 임직원과 산하기업체 직원,가족이 체육관을 빌릴 정도로 이런 운동에 적극 찬성했을까요? 이날 행사에는 '구국봉사단' 박근혜 총채가 참석해 격려사를 했는데, 1년 뒤에 무슨 일이 생길까요?


1979년 5월 29일 박근혜 새마음봉사단 총재는 동아그룹 직장새마음 전진대회에 참석해 장충체육관에 모인 동아그룹 임직원과 가족들을 향해 연설합니다.

새마음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그룹에서 봉사단이나, 전진대회,결의대회가 계속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룹에서 돈도 안 되는 일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한 까닭은 새마음봉사단 명예총재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그것도 탱크를 앞세운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서슬이 퍼런 유신정권의 수장이 새마음봉사단의 명예총재인데, 대한민국 그룹들이 감히 그분(?)과 그분의 따님이 하는 일에 어찌 적극적으로 돕지 않겠습니까? 그룹차원에서 인력,자금,조직을 총동원했던 이런 모습은 그 당시에는 그리 낯선 일도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을 누가 주도했느냐며, 과연 깨끗한 사회운동의 일환이었을까라는 점입니다. 새마음봉사단이 어떤 조직인가를 알아보려면 최태민이라는 사람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 박근혜양의 그림자로 불렸던 최태민 목사는 '구국선교단','대한구국봉사단','새마음봉사단'을 함께 조직하고 관리했던 인물입니다.

최태민은 70년대초 불교,기독교,천주교,천도교의 교리를 합쳤다는 '영세교' 교주를 하던 중 '꿈에 돌아가신 육영수 여사가 나타나 근혜가 국모감이나 잘 도와주라고 지시하셨다'라는 편지를 청와대에 보내면서 박근혜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인연으로 최태민은 일약 박근혜양의 그림자로 등극했고, 각종 단체를 조직하고 운영하면서 비리를 저질렀습니다.


최태민에 관한 수사자료에서 밝혀진 비리혐의만 무려 44건이었습니다. 횡령14건에 2억2135만600원이고(당시 2억원이면 지금의 몇 백억원에 해당) 사기,변호사법 위반,권력형 비리,이권개입,융자 개입 등 권력형 비리라는 비리는 모두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중앙정보부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을 것이고, 이에 관한 보고서를 올렸고, 박정희는 직접 박근혜와 최태민을 청와대에 불러 심문을 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는 최태민을 적극 옹호했고, 박정희는 오히려 중앙정보부의 보고서를 묵살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를 중요하게 봐야 하는 몇 가지 증거들이 있습니다.

○ 박근혜의 구국여성 봉사대가 과대한 자금을 모금으로 말썽이 나자 박근혜를 불러 '봉사단 활동을 그만하고 시집을 가라'고 했으나 박근혜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박정희는 최태민을 불러 '문초'를 하면서 봉사단 활동을 접고 청와대 출입을 금지 시켰으나 얼마 뒤 최태민은 다시 청와대에 들락날락했음( 1990년 10월26일 김계원 비서실장의 동아일보 인터뷰)

○ 박정희 대통령에게 재혼을 권유하자 '근혜가 시집을 안 가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새장가를 갈 수 있느냐'고 했으며, 재혼할 뜻은 있었으나 박근혜 때문에 재혼하지 못하고, 외롭고 울적한 심사를 술로 달래곤 했다.(1990년 10월26일 김계원 비서실장의 동아일보 인터뷰)

○ 김재규 부장은 '구국여성봉사단과 연관한 큰영애의 문제점'과 관련한 사안이 '10.26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이지만 중요한 것이었다'고 밝힘 (1980년 1월 박정희 사망관련 항소 이유 보충서 중)

박정희 대통령 측근들은 박정희가 재혼하면서 박근혜를 자연스럽게 청와대에서 내보내려고 했으나 박근혜가 새마음봉사단 등을 통한 활동을 하면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계속했고, 육영수 여사 사망 이후 외로운 삶을 술과 여자로 풀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박정희가 재혼했다면 궁정동 사건은 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박근혜를 어머니와 아버지가 비운의 죽음으로 사망한 감수성이 풍부한 여린 소녀처럼 포장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야심이 있던 여인이었고, 그런 그녀의 야심은 최태민이라는 사람과 합쳐 각종 봉사단 활동과 조직을 통해 표출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는 청와대 금고에서 나온 6억1천만원을 가져간 사람입니다. 그 돈이 재벌에게 나온 정치자금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정치자금, 그것도 국민 아무도 모르게 돈이 오고 갔다는 사실은 재벌과 정치가 서로 유착관계를 통해 돈과 이권을 서로 나누고 살았던 삶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안철수 원장은 최태원 SK회장 구명운동을 '좀 더 깊이 생각했어야 했다'는 해명과 함께 '이 일에 대한 비판과 지적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안철수 원장을 향해 박근혜 캠프 김종인 공동선거 대책위원장은 "지금은 세상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으니 '성인(군자)'처럼 말하지만 본질적으로 정직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안철수 원장의 재벌 회장 구명운동은 잘못됐습니다. 그러나 그런 잘못을 박근혜 캠프에서 지적하고 나서는 것은 아닙니다. 박근혜는 가만히 앉아서 유신정권을 바라본 것이 아닙니다. 재벌의 정치자금을 모금하고 재벌의 도움을 받아 각종 봉사단 활동을 적극 했으며, 이 과정에서 숱한 비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안철수는 재벌을 구제하려고 서명했다고 정직성에 대한 비난을 받고 이를 사과했습니다. 박근혜는 자신의 정치적 활동을 위해 재벌을 동원하고 그들이 바친 돈을 가지고 청와대를 나왔지만, 아직도 떳떳하고, 당당하며 추앙까지 받습니다. 박근혜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서 공주처럼 자면서 정의와 불의의 잣대를 맘대로 해석하며 사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