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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대장 '에순이' 왜 매일 늦을까?

 

 

에순이의 아침은 분주합니다. 핑크색을 좋아해서 매번 엄마와 유치원 등굣길에 입는 옷을 가지고 승강이를 벌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옷 고르기 전쟁이 벌어집니다. 아는 언니들이 물려 준 옷이 많아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유치원에 가야 할 시간이 됐지만, 에순이는 아빠 옷을 다림질하는 엄마 곁에서 장난감 다리미로 자기 옷도 다립니다. 엄마가 꿈인 에순이에게는 엄마를 따라 해야만 직성이 풀리기 때문입니다.

 

겨우겨우 옷을 고르고 다려도 유치원 등교 준비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리본이 달린 핑크색 양말을 신고 나서는, 샌들을 신을지, 운동화를 신을지 현관에서 또 한참을 고민하기 때문입니다.

 

체육복을 입고 가는 화요일,목욕일이 그나마 에스더의 등교 준비가 가장 빠른 날입니다.

 

 

집에서 유치원으로 가는 길, 에순이 눈에는 온통 신기한 것투성입니다. 걸어가다가 낙엽을 하나 봐도 예쁘다고 생각하는 에순이는 엄마에게 집에 가져다 놓으라고 합니다. 예뻐서 자기 보물 상자에 넣고 싶기 때문입니다.

 

별난 모양의 돌멩이라도 발견하면 아무리 유치원 앞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등교 시간이 늦어 마음이 급한 엄마와는 상관없이 한참이나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기도 합니다. 물론 엄마에게 주거나 가방에 넣어 집에까지 가져갑니다.

 

혹시라도 왕 지렁이라 나오면 에순이의 등굣길은 더 늦어집니다. '우와 지렁이'하면서 지렁이가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봐야 합니다. 가다가 지렁이처럼 생긴 나뭇가지만 봐도 '아빠, 지렁이처럼 생겼지'하며 온통 지렁이 얘기뿐입니다.

 

 

간혹 에순이와 함께 유치원에 가는 아빠는 늘 곤혹스럽습니다. 도시에서 자란 아빠에게 에순이는 '아빠 이 꽃은 무슨 꽃이야?',' 아빠 이 나무는 왜 이렇게 생겼어?'라는 질문에 답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멘트 담장으로 둘러싸인 골목길을 걸어가거나, 도시의 빌딩 사이로 버스를 타고 다니며 학교에 다녔던 아빠의 눈에는 그냥 파란 꽃, 큰 나무, 작은 나무로만 보입니다. 그나마 시골에서 자란 엄마가 옆에서 가르쳐주지만, 세상에서 아빠가 가장 똑똑하다고 믿는 에순이에게는 참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할 때부터 밭에서 흙장난하고 자란 에순이와 시골이라고는 방학 때 큰 집에 갔던 기억밖에 없는 아빠와는 많이 다릅니다.

 

 

가뜩이나 유치원에 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에순이가 요새는 더 늦어지고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유치원에 가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자전거가 고장이 나 타지 못했던 에순이는 아빠를 조르고 조른 끝에 몇 달 만에 겨우 핑크색 새 자전거가 생겼습니다.

 

이제 에순이는 아침마다 보조바퀴가 있는 자전거를 타고 유치원에 갑니다. 아직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해 조금이라도 턱이 있으면 내려서 끌고 가야 합니다. 아빠 입장에서는 타는 시간보다 끌고 가는 일이 더 많은 자전거를 왜 타고 유치원에 가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에순이가 입는 옷이나 장난감, 신발 등은 대부분 물려받은 것들입니다. 예전 자전거도 엄마가 동네 오빠가 타고 다니던 낡은 자전거를 얻어 구해준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된 자전거는 체인이 빠지기 일쑤였고, 아무리 힘을 줘도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학교나 동네 운동회 때마다 상품으로 나오는 자전거, 그러나 에순이는 한 번도 자전거에 당첨된 적이 없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새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마다 에순이는 자기도 새 자전거를 갖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글만 쓰는 아빠에게는 오빠와 에순이의 자전거를 한꺼번에 사주기는 무리였습니다.

 

새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니는 오빠를 보며 부러워했던 에순이에게 새 자전거는 너무나 소중한 보물이 됐습니다. 그래서 지각을 하더라도 꼭 자전거를 끌고 유치원에 가야 했습니다.

 

 

돈을 벌기 힘든 글만 쓰는 아빠에게 에순이의 자전거는 몇 달 동안 고민거리였습니다. 불과 두 달 전에 요셉이의 새 자전거를 사줬기 때문입니다. 10만 원이 훌쩍 넘는 자전거를 두 대나 한꺼번에 사주기는 힘들어, 우선 요돌이 자전거만 사줬는데, 에순이는 그 자전거가 그렇게 부러웠나 봅니다.

 

그나마 에순이의 자전거를 사줄 수 있었던 것은 아빠를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글을 쓰면서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던 아빠에게는 글을 쓸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후원자들 덕분에 아빠는 돈을 받고 광고해주는 글을 쓴 적이 없습니다.

 

에순이와 요돌이를 키우면서 아빠는 간혹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돈이 더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빠는 한 번도 돈 때문에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사주고 싶은 것이 있으면 조금 더 참고 아껴서 사면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비록, 에순이가 갖고 싶을 때 쉽게 사줄 수 없는 아빠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 만큼 에순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행복합니다. 행복이 별거인가요? 천천히 그러나 주위의 모든 것을 하나씩 살펴가면서 거북이처럼 걸어가면 그 또한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 5월 블로그 이야기가 많이 늦었습니다. 6월 초부터 확산됐던 메르스로 계속 서울로 취재하러 다녔고, 올해 안에 계획하고 있는 아이엠피터 블로그 개편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아마 조만간 블로그 이야기에서 다시 밝히겠습니다.)

 

메르스 때문에 세균맨이 돌아다닌다고 손을 잘 씻지 않던 에순이도 겁이 나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손을 씻고 다닙니다. 무서운 병은 아니지만, 메르스 때문에 강의나 취재 등이 여의치 않을 경우가 계속 생겼습니다. 혹시 하는 걱정 때문에 서울을 갔다가 제주에 올 때마다 아이들을 안거나 뽀뽀하기도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빨리 메르스가 끝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2015년 6월 블로그 이야기부터는 정상적으로 7월 4일에 올라갑니다. 블로그 이야기를 늦게 올린 점 후원자 분들에게 사과드리며, 혹시라도 주위에 아프신 분들이 없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에순이와 요돌이는 에스더와 요셉이를 부르는 애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