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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죽음의 환풍구?' 한국과 일본 환풍구 비교했더니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유스페이스 야외공연장에서 걸그룹의 공연장면을 보던 관람객들이 환풍구에서 추락, 16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중경상을 당했습니다. 이날 사고는 관람객들이 연을 보기 위해 사고 환풍구에 올라섰고, 환풍구 덮개가 붕괴하면서 지하 4층으로 추락해서 발생했습니다.

이번 사고를 놓고 여러 가지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으며, '환풍구가 문제였다'는 주장과 '시민의식이 문제였다'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지, 이번 사고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봐야 할지 고민해봤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환풍구 비교'

사고가 나자,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와 TV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환풍구를 비교하는 글과 사진 등이 올라왔습니다.

 

방송과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들만 보면 한국의 환풍구는 일본의 환풍구에 비해 위험하게 보입니다. 한국은 인도와 비슷한 높이로 환풍구가 되어 있어 보행자들이 환풍구 위로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에 반해 일본 환풍구들은 탑과 같은 형태로 높이만 3~4미터가 넘기 때문에 아예 환풍구에 올라가지 못하거나 걸어갈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이런 사진들만 보면 한국의 환풍구들은 모두 위험하게 보이는 듯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환풍구들이 모두 위험한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환풍구들도 경사가 져서 사람이 올라가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각주:1]평평한 부분도 있지만, 양쪽으로 경사를 만든 환풍구도 있습니다. 일본처럼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2미터 정도의 높이로 올라가기 힘든 환풍구도 있습니다.

단순하게 사진 몇 장을 놓고 일본 환풍구가 한국보다 무조건 안전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일본도 인도와 같은 높이의 환풍구도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 비교보다는 더 근본적인 문제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환풍구의 구조적인 문제점'

자 그렇다면 환풍구가 문제가 아니라면 사람이 문제일까요?

 

정말 친절하게 환풍구를 이용하도록 경사로까지 만들어준 삼송역의 환풍구 모습입니다.  이 사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판교 사고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트위터에 올라온 이 사진을 보면 환풍구에 올라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다가옵니다. 그런데 이런 구조의 환풍구는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분당구 구미동 미금역 주변의 환풍구도 경사로가 있습니다. 보행자들은 이 경사로를 통해 환풍구 위로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환풍구 보행이 가능한 곳은 전국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환풍구 위를 지나가도록 경사로를 친절하게 만들었을까요?

 

환풍구가 보행로의 높이와 비슷한 이유는 좁은 인도와 꼭 필요한 환풍구가 생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각주:2]사람이 다니는 보행로도 필요하고 지하철 환풍구도 필요하다 보니, 인도와 환풍구가 공존하는 형태가 됐습니다.

'돈이 문제냐, 사람이 문제냐? 시스템부터'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도를 넓히고 환풍구를 무조건 높게 올리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참 좋겠지만, 또다시 돈이 문제입니다. 어떤 이들은 '돈이 문제냐 사람이 먼저지, 무조건 돈을 들여서라도 하자'고 외치기도 합니다.

전국에 있는 환풍구를 모두 고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지금이야 여야 의원 모두가 환풍구 위험성을 제기하지만, 실제 건설할 때는 돈의 논리 앞에서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시스템을 개선하는 일입니다. 현재 토목법과 건축법 등으로 분리된[각주:3] 환풍기의 법적 기준부터 세워야 합니다. 2013년 서울시는 보행자 통행 우선을 위해 환기탑 등을 축소하겠다고 했습니다.[각주:4] 이렇게 보행자를 위하는 정책은 좋지만, 관련 법규를 통해 환풍구의 강도와 높이 등을 정확히 규정하는 법규부터 마련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효과적인 안전펜스를 확충하는 일입니다. 돈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하철 스크린 도어를 차례대로 예산을 투입해 개선하는 일처럼, 안전펜스도 조금씩이나마 확대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안전 점검을 통해 노후시설을 보수해야 합니다. 사진을 보면 환풍구 철망이 휘어진 곳이나 환풍구 주변이 훼손된 곳이 있습니다. 먼저 이런 곳부터 철저히 점검해서 또 다른 피해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세월호 이후 정부와 여당의 안전관련 회의가 총 50여 차례 열렸다고 합니다. [각주:5]회의만으로는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즉시 개선이 가능한 일부터 빨리 처리하고, 시스템을 구축하여 구조적으로 안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무리하게 올라갔으니 문제다라는 인식도 구조물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각기 타당성이 있습니다. [각주:6]그러나 이 모든 것을 중심적으로 개선해야 할 의무와 업무는 결국 정부의 몫입니다.

안전 불감증이 시민들 사이에 있다면 그것을 바꾸려는 홍보도 해야 하고, 법적 규제와 안전시설 확충도 정부가 예산과 법령 개선을 통해 바꾸어야 합니다.

국민이 세금을 내고 투표를 하는 이유는 책임과 권리를 정부에 맡기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싸움이 아니라 진짜 안전을 위한 정부의 정책과 노력일 것입니다.


  1. 판교 사고, 철학없는 건축물들이 어떻게 흉기가 되는지 보여준 사건. 거다란 블로그http://www.geodaran.com/3161 [본문으로]
  2. 인도 한복판 '환풍구' 공포, 시민안전 위협, 뉴시스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1019_0013240504&cID=10803&pID=10800 [본문으로]
  3. 지하철 환풍구와 건물 환풍구 등의 법적 기준은 다르다. [본문으로]
  4. http://infra.seoul.go.kr/archives/13451 [본문으로]
  5. 경향신문 10월 20일 1면 '세월호 후 안전회의 50회, 바뀐 게 없다' [본문으로]
  6. 군중하중이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지하철 환기구에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게 이 군중하중을 적용했기 때문이죠. 보통 평방미터당 500kg 적으면 300kg인데 이걸 판교 환풍구에 적용하면 최소 8톤 정도됩니다. 그런데 판교는 1.7톤에 무너졌죠. 전문가들 얘기 들어보니 판교처럼 광장에 있고 사람들 접근이 쉬운 낮은 위치라면 군중하중을 적용 고려한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경우 법규가 없고 발주처가 그런 돈 들어가는 일을 원할리 없답니다. 자 이런 경우 우리는 안전의식을 탓해야 할까요? 시공의 문제를 지적해야 할까요? 출처:블로거 거다란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