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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야기

시골학교 운동회에는 '특별한 OO'이 있다



10월 17일 아이엠피터가 사는 송당리 송당초등학교에서는 시끌벅적하지만 특별한 가을 운동회가 열렸습니다. 전교생 62명, 병설유치원까지 합쳐도 80명뿐인, 작은 학교의 운동회였습니다. 올해는 학교 살리기 공동주택이 건립되어 그나마 80명이 넘었지, 그전에는 50명도 채 되지 않은 작은 학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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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섬인 제주도이지만, 시내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산골 마을의 작은 초등학교 운동회, 무엇이 특별했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 아이들 운동회? 아니죠. 온 동네 운동회입니다'

시골 학교 운동회의 가장 큰 특징은 아이들 운동회가 아니란 점입니다. 도시 학교는 학생 수가 많으니 아이들도 자신들의 경기 한 번만 뛰면 되지만, 시골학교는 학생이 적어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동네 어르신들도 모두 참여해야 합니다.


보통 학교에서 학부모와 아이들이 뛰는 경기도 있겠지만, 작은 시골학교에서는 학부모만을 위한 경기가 따로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엄마, 아빠들은 저질 체력이라 숨이 가쁘지만 뛰고 또 뛰어야만 합니다.

동네 어르신들도 지팡이를 들고 운동 경기를 하고, 시골 도의원도 양복을 입고 뛰어야 합니다. [각주:1]제주도의회 의원이라는 감투는 시골 아이들에게는 그냥 우리 동네 '삼촌'이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는 운동회를 하면 꼭 마을 어르신들을 모십니다. 경기를 빙자해 어르신들에게 하다못해 휴지 하나라도 드리고, 점심을 대접하는 등 마을잔치를 벌이는 셈입니다.


초등학교 운동회이지만 경기의 반 이상은 아이들과 학부모가 함께 참여를 하는 게임들입니다. 사실 전교생과 학부모를 합쳐봤자 100여 명이 겨우 넘으니 가능합니다. [각주:2]

엄마, 아빠들이 잡아주는 천 위에서 아이들이 뛰거나, 아이들과 학부모가 같이 선수가 되어 경기를 치르다 보면 아이들 운동회가 아니라 그냥 동네 운동회가 됩니다.

그냥 바라만 보는 운동회가 아닌 까닭에 학교 운동회를 한 번 하고 나면 엄마, 아빠는 아이들의 반 친구 이름은 물론이고, 전교생이 누구인지 대부분 알게 됩니다. 누가 누군지 모르는 도시와는 전혀 다른 시골학교만의 운동회입니다.

'운동회? 아니죠. 쇼핑과 체험을 하는 시간입니다.'

이번에 공동주택이 건립되면서 송당초등학교 학생들이 부쩍 많이 늘었습니다. 아이들이 많아지자(?)[각주:3] 그전에는 하지 못했던 특별한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송당초등학교는 오전에 운동회를 끝내고 오후에는 각종 체험부스를 운영했습니다. '페이스 페인팅','탱탱볼 만들기','고무줄 글라이더 만들기','종이비행기 접기,' 등의 부스에서는 과목 전담 선생님들이 과학과 미술 등을 응용한 부스를 열었습니다.

시골 학교는 이런 행사를 가기 위해서는 꼭 외부로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학교에서 이런 행사를 하니 너무 신이 났습니다. 여기에 체험비는 거의 공짜였습니다.[각주:4]

'사랑의 엽서 쓰기'나 '가족 사랑 구호 외치기'는 가족과 함께 체험하는 부스였습니다. 방과 후 수업으로 골프를 배우는 아이들을 위한 퍼팅 게임은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까지도 재밌어했습니다.

이런 부스 운영은 작은 시골 학교의 몇 분 되지 않는 선생님들이 하기에는 힘듭니다. 그래도 선생님들은 방과 후 선생님들까지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체험 부스 이외에 벼룩시장과 먹거리 장터는 아이들의 혼을 쏙 빼놓았습니다. 문방구 하나 없는 시골 동네에서 아이들은 엄마, 아빠들이 내놓은 별의별 제품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평소에는 먹지 못했던 '쿠키','팝콘 치킨','핫도그','아이스크림'은 학부모들이 준비한 점심을 먹지 않는 주범이 되기도 했습니다.

엄마, 아빠들과 함께 물건을 팔면서 경제 원리를 배우는 아이들은 스스로 '호객 행위'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장터를 운영하면서 '조이'라는 가상 화폐를 모았습니다.


아이들이 '조이'라는 가상 화폐를 모은 이유는 이날 '경제마을'[각주:5]에서 운영하는 백화점에서 평소에 갖고 싶었던 '장난감','인형','학용품','이어폰','자전거' 등을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골이라는 특성상 장난감 하나를 사더라도 시내에 나가야 합니다. [각주:6]비싼 장난감 사기가 어려운 농촌 현실에서 아이들은 이날만큼은 VIP 고객이었습니다. 엄마,아빠 눈치 보지 않고 자신들이 번 돈으로[각주:7] 평소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턱 하니 사는 아이들의 표정은 명품관에서 쇼핑하는 사람들 못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이론으로 배우기보다 몸으로 체험하기에 아이들은 저축과 지출, 수입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운동회에는 '행복'과 '희망'이 있었습니다.'

덩치는 크지만, 아빠를 닮아 운동을 못 하는 요셉이와 에스더도 이번 운동회 때는 정말 열심히 뛰었습니다.


요셉이는 이번 운동회의 각오가 남달랐습니다. 왜냐하면, 유치원 때부터 '한라'팀[각주:8]이었던 요셉이는 3년 내내 한 번도 이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못하는 달리기지만 정말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올해도 '한라'팀이 졌습니다.

또 졌다고 실망하는 요셉이에게 운동회 경기 때 찍은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표정과 동작만 보면 금메달감입니다. 그래도 졌습니다. 하지만 꼭 이겨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요셉이는 내년 운동회를 위해 벌써 달리기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됐습니다.


아직 유치원생인 에스더는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엄마를 끈에 매달고 뛰는 것 자체가 즐겁습니다. 엄마가 빨리 뛰지 못해도, 자신이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들어와도 그저 신이 납니다.

활짝 웃는 에스더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아빠는 그저 행복하기만 합니다.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아빠는 제주에 왔다는 사실이 좋습니다.


아이엠피터 가족은 먹거리 장터에서 아이스크림을 팔았습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판매 전부터 아이들이 줄을 섰고, 제일 먼저 판매가 종료됐습니다. 물론 그 뒤에는 에스더가 팔아야 할 아이스크림을 옆에서 가장 많이 먹었던 이유도 있습니다.

엄마와 오빠가 열심히 아이스크림을 팔아서 번 돈을 가지고 에스더는 장난감을 샀습니다. 재주는 요셉이가 부리고 장난감은 에스더가 가져간 셈입니다.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실컷 먹고, 갖고 싶었던 장난감도 살 수 있었던 운동회, 에스더에게 운동회는 최고 신나는 날이었습니다.


제주에 와서 매년 아이들의 운동회에 참여합니다. 하면 할수록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운동회는 말 그대로 우리 아이들이 얼마큼 잘 뛰고, 잘 노는지 보여주는 행사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고무줄 글라이더는 날아가다가 쉽게 떨어집니다. 그만큼 약하고 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떨어진 고무줄 글라이더를 요셉이는 또 날립니다. 그러다가 바람을 타면 글라이더는 아주 높이 날기도 합니다.

요셉이와 에스더도 지금은 어리고 잘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아이들이 엄마, 아빠보다 훨씬 더 높이 날 수 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눈이 부시게 푸른 가을 하늘만큼 우리 아이들이 더 높이 날기를 꿈꿔 봅니다.

  1. 제주도의회 김경학 의원은 송당리 출신이라 송당초 운동회 때는 도의원 자격이 아닌, 마을 사람으로 운동회에 참여한다. [본문으로]
  2. 송당초등학교는 한 가정에 보통 2~3명의 아이들이 다니기 때문에 학부모 숫자는 훨씬 적다. [본문으로]
  3. 그래도 아직 송당초등학교는 전교생이 62명뿐이다. [본문으로]
  4. 학교 내에서 사용하는 가상 화폐로 체험비를 지불한다. 보통 2조이 가량. [본문으로]
  5. 송당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의 경제 수업을 위한 경제마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본문으로]
  6. 인터넷으로 주문해도 되지만, 배송비만 보통 8~9천 원, 그것도 배송이 대부분 일주일이상 걸릴 때도 있다. [본문으로]
  7. 송당초등학교에서는 운동회 경기 상품으로 조이를 줬다. [본문으로]
  8. 송당초등학교는 청군,백군이 아니라 '한라,백두'로 나누어 운동회를 치른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