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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야기

제주로 귀촌했더니, 아내가 '바람'이 났다.



아내는 5년 전 인천에서 오하마나호를 타고 제주로 왔다. 당시 아내는 임신 9개월로 만삭이었다. 제주로의 귀촌을 결심하고 교통편을 알아봤는데, 임신 37주 이상의 임산부는 비행기 탑승을 위해서는 사전 승인 등의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했다.

나는 차를 끌고 가야 해서 비행기를 타라고 했지만, 아내는 한사코 같이 배를 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낯선 곳으로의 이사, 거기에 몸은 만삭이었으니 아내는 두려웠을 것이다.

제주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 이주하는 사람이 적은 이유는 대부분 아내의 반대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아내는 쿨하게 제주 이주에 찬성을 해줬다.

태풍주의보가 내린 밤바다를 배를 타고 12시간이나 가야 하는 제주 이사, 배가 요동치는 가운데서도 아내는 힘들다는 내색 한 번 안 하고 밤새 태어날 아기를 위해 뜨개질을 했다. 

그렇게 아내는 제주로 왔다. 


아내는 농촌에서 태어났지만 한 번도 농사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다. 장인,장모님이 오로지 공부만 시켰기 때문이다. 치위생사로 10년 넘게 병원에서만 근무했던 아내는 제주에 와서 손에 흙 묻히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전업블로거인 남편 대신에 밭에 나가 팟지[각주:1]를 주워와서 밥상을 차리거나, 간식거리라도 만들어야 한다며 조그만 텃밭에 고구마 등을 심었다.

조금만 일해도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농사일 빵점짜리 남편 대신에 풀을 깎는 사람도 아내였다.

원래 농사일을 하려고 내려온 제주가 아니지만, 아내는 마치 귀농을 하기 위한 사람처럼 어떻게든 농사지을 밭을 찾았다.


제주에 와서 둘째 에스더를 낳고 찾아낸 밭이 감귤밭이었다. 감귤밭을 하면서 무심한 남편은 '절대로 글쓰기에 방해하지 말 것'이라는 단서를 뒀다. 아내는 감귤밭을 혼자서 책임졌다. 수확한 감귤을 팔기 위한 감귤체험농장도 모두 아내가 맡아서 했다.

아내는 정치블로거로 사는 남편이 행여나 욕을 먹을까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힘들게 키운 감귤을 공짜로 팍팍 담아 줬다. 그 덕분에 공짜로 감귤 체험한 사람들은 거의 귤 한 상자씩은 들고 가기도 했다.

사실 감귤체험농장 한다고 글 쓴 것은 딱 2개뿐이었다. 나름 방문자수도 많은 블로그를 운영하는 남편이었지만, 광고하기 싫다는 이유로 포스팅을 하지 않았다. [각주:2]  그래도 아내는  남편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임대한 감귤밭에 나가지 않는 아내의 일상은 똑같았다. 밥→빨래→청소→아이들 돌보기는 아내의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정치블로거라고 찾아오는 손님이 제법 있어, 아내는 일주일에 한 두번은 손님상을 차리기도 했다.

글을 쓰기 위해 인가가 없는 곳만 찾아다니는 남편 덕분에 아내는 주변의 친구조차 없었다. 남편이 강의와 취재 때문에 육지라도 가면 소심한 아내는 불안감에 잠도 못 잤다. 남편의 취재가 길어지기라도 하면 버스를 타고 할머니들 사이에서 읍내까지 장을 보러 혼자 다니기도 했다.  

철없는 남편은 친구도 없이 오로지 남편과 아이들만 위해 사는 아내의 모습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자신의 삶이 별로 없던 아내가 요새 '바람'이 났다.


학교살리기 공동주택에 입주한 아내는 갑자기 또래 친구는 물론이고 언니,동생들이 생겼다. 공동주택에 입주한 엄마들의 연령대가 비슷해서인지 자주 모였다.

젊은 엄마들은 함께 모여 차를 마시기도 하며, 동네 행사마다 음식 준비한다고 팔을 걷고 나서기도 했다. 특히 나이를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남편의 반찬 투정으로 요리 솜씨가 좋아진 아내는 섭외 1순위가 되기도 했다.

주변에 젊은 엄마들이 있으니 소극적이던 아내는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마을 일은 물론이고 학교 일에도 책임감을 가지고 나섰다. 뭐 그 덕분에 요새 남편은 혼자서만 노는 일이 많아졌다. 아이들도 공동주택의 아이들과 노느라 집에도 안 들어오기 때문이다.


공동주택에 입주한 아내는 더 바빠졌다. 동네 아이들 간식도 만들어줘야 하고, 요리를 하면 나눠 먹을 사람이 많으니 양도 늘었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도 나눠 먹는 기쁨이 크다는 남편의 개똥철학의 영향인지 아내도 음식을 할 때는 항상 '이거는 누구네집 주고, 이거는 누가 좋아하니 해야지'라는 말을 달고 산다.

예전에는 남편이 시켜서 했던 일들이 지금은 아내 스스로 결정하며 주도권을 잡게 된 것이다.


아내가 젊은 엄마들하고 함께 다니면서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일들을 느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철마다 옷을 사 입던 아내는 제주로 와서는 옷을 산 적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물려 받거나 선물로 받은 옷 이외에는 없었다.

자기 돈으로 옷 한 번 샀던 일이 없는 아내가 동네 엄마들하고 다니면서 처음으로 오일장에서 자기 옷을 샀다. 일명 '냉장고 바지'라고 불리는 일바지이다.

5천 원짜리 냉장고 바지를 하나 사고는 자기 바지에는 액세사리가 달린 지퍼가 있다고 자랑하는 아내, 이 여자가 정녕 카드로 철마다 백화점에서 옷을 사던 치과 실장님이었는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숱하게 공항을 다니면서도 면세점에서 그 흔한 립스틱 하나 사다 주지 않은 남편을 원망조차 하지 않았던 아내의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요새 절실히 깨닫고 있다.


며칠 전 제주에서 작은 결혼식을 한 후배에게 다녀왔다. 후배가 결혼한 2평 남짓 교회에 적힌 글귀는 '길 위에서 묻다'였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매번 걸어가는 길에서 묻고 답하는 형태가 아닌가 생각해봤다.

제주로 오면서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만 했던 아내,
과연 아내는 제주에서의 5년 동안 남편과 아이들 이외 스스로 무엇을 묻고 답하며 살고 있을까?


남편은 요새 아내가 '바람'이 났다고 생각한다. 그 바람은 흔히 말하는 '바람'이 아닌 '신바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맛난 음식을 대접하고 그것을 함께 나누는 모습에 '신바람'이 난 것이다.

아내가 남편과 아이만 바라보지 말고 자신의 재능을 살려 그 스스로 삶을 즐겼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러려면 무심하고 철없는 남편이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이다.

꽃잎이 흐트러지게 날리는 모습만 봐도 신이 나는 아내
방 안에 누워 푸른 하늘만 봐도 기분 좋은 아내
마트에서 탄산음료 하나만 사다줘도 '고맙다'는 아내
한 달에 한 번 설겆이를 해줘도 함박웃음을 짓는 아내

작은 일에 행복을 느끼며 신바람 난 아내가 곁에 있어 남편은 오늘도 행복하다.
 
  1. 밭에서 수확하고 남겨 놓은 비상품성 작물 [본문으로]
  2. 그나마 쓴 두 개의 글도 하나는 매월 초에 쓰는 블로그 후원 이야기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