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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박정희의 성성납과 박근혜의 사라진 7시간


지난 8월 8일 서울고법 민사13부는 박정희가 성 상납을 받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고 발언한 주진우 기자에 대한 명예훼손 판결에서 1심과 다르게 명예훼손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각주:1]

서울고법은 "박 전 대통령의 성상납 여부나 재산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혹이 제기돼 왔고 비슷한 취지의 자료도 많이 있다. 주씨가 사실로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이는 역사적 사실 규명이나 비판적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1심에서 "연회 자리에서 성상납이 이뤄졌다거나 이 연회가 성상납을 위한 모임이라 인정할 자료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도 주씨는 성상납 의혹을 단정적으로 표현했다"는 판결이 2심에서 뒤집힌 것입니다.

박정희의 성상납 관련 자료는 차고도 넘쳤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료를 1심 재판부에서는 인정하지 않다가, 2심에서 인정받은 셈인데, 도대체 어떤 자료인지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시대 채홍사, 박정희정권에도 활약했다'

채홍사라는 말은 원래 채홍준사(採紅駿使 )라는 벼슬아치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홍(紅)’은 여자, ‘준(駿)’은 말을(馬) 가리키는 단어로 연산군 시절 미녀와 준마를 궁중으로 모아들이기 위해 지방에 파견됐던 관리였습니다.


조선시대 채홍사가 박정희정권에도 활약했는데,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이었던 박선호였습니다. 박선호는 중정 의전과장으로 궁정동 안가에서 벌였던 연회에 여성을 조달하는 임무를 맡았던 인물입니다.

박선호는 10.26 이후 재판과정에서 자신이 맡았던 채홍사 역할에 대해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변호사: 피고인은 차지철 경호실장이 여자문제를 더욱 힘들게 하고 피고인 자신이 어린애들을 갖고 있는 아버지로서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데 대해 인간적으로 괴로워서 김 정보부장에게 수차 『도저히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고 하소연하면서 그만두게 해 달라고 했으나 김 부장이 『궁정동 일은 자네가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서 사의를 만류시켰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박선호: 제가 근무하기를 몇 번 꺼렸습니다. 그래서 부장님에게 계속하기 어렵다는 여러 가지 사유를 몇 번 올린 바가 있습니다.

▷변호사: 결국 정보부장님이 『자네가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또 그렇게 해서 할 수 없이….

▶박선호: 네, 저를 신임하시어 자꾸 계속적인 근무를 원하셨습니다.

▷변호사: 청와대 차지철 경호실장은 『돈은 얼마든지 주더라도 좋은 여자를 구해 달라』고 하면서 실제로 돈은 한 푼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도 말만 많아서, 피고인이 경호처장인 정인형한테 『당신이 고르라』고 말했더니 『청와대에서 고르는 걸 국민들이 알면 큰일 난다』며 안된다고 하기에 피고인은 『그러면 골라 놓은 사람들에게 좋든 싫든 말이나 말아야 할 것 아니냐』고 항의까지 했더니 그 이후에는 차실장도 잔소리가 적어졌다는데, 그렇습니까.

▶박선호: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1979년 12월 11일 군법회의 제1심 4회 공판, 강신옥 변호사와의 신문과 답변)

박선호는 딸과 같은 여성을 박정희의 연회에 조달하는 업무에 대해 회의감과 고통을 토로했습니다. 특히 차지철 실장이 TV나 주간지를 보다가 여성을 지명해놓고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부르라고 해놓고 돈이라고는 10원도 주지 않았다며 차 실장을 탓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직접 연회에 조달됐던 여성에 대해 말을 아꼈던 박선호도 10.26 당일 가수 심수봉과 대학생 신재순을 내자호텔커피솝과 프라자호텔에서 궁정동으로 데리고 왔다가 나중에 돈을 줘서 보낸 일은 진술했습니다.

변호사와 채홍사의 역할에 대해 말을 아꼈던 박선호는 재판 말미에 가서는 폭탄 발언을 합니다.


박선호는 최후 진술에서 궁정동 안가가 어떤 곳인지, 그리고 박정희의 술자리 여인에 대해 진술하기 시작했습니다.

▶박선호:어제 여기에서 검찰관께서 그 집은 사람 죽이는 집이냐 하는 질문 같지 않은 질문도 받았습니다만, 그 집은 사람 죽이는 집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건물은 대여섯 개가 있는데, 이것은 각하만이 전용으로 사용하시는 건물로서….

▷법무사: 피고인, 범죄에 관계되는 사항만….

▶박선호: 예, 그래서 이것을 제가 발표하면 서울시민이 깜짝 놀랄 것이고, 여기에는 여러 수십 명의 일류 연예인들이 다 관련되어 있습니다. 명단을 밝히면 시끄럽고 그와 같은 진행과정을 알게 되면, 이것은 세상이 깜짝 놀랄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균 한 달에 각하가 열 번씩 나오는데, 이것을….

▷법무사: 범죄사실에 관해서만….

▶박선호: 예 ?

▷법무사: 피고인의 범죄사실에 관해서만 진술하시오.

▶박선호: 예. 그래서 제가 1년 연중 하루도 쉬지않고 열심히 근무했고 상관의 명령은 충실히 이행했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말씀드립니다.

박선호의 진술 내용을 보면 박선호는 아이를 둔 아버지로 딸과 같은 연령의 여성을 박정희의 행사에 조달하는 업무에 늘 고통 받아왔다고 합니다. 

박선호는 여성관련 진술을 막으려는 제지에도 불구하고, 궁정동 안가가 박정희가 전용으로 사용하는 건물로 여기에 수십 명의 일류연예인이 관련되어 있으며, 박정희가 한 달에 평균 열 번씩 나온다는 증언을 했습니다.


' 박정희의 배꼽 아래 인격'

10.26 당시 여자가수와 대학생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잘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을 때도 일부 국민들은 육영수 여사를 떠나보내고 남자라서 외로워서 그랬다는 동정론이 심했습니다.


육영수 여사가 죽고 나서 박정희가 여성을 궁정동 안가에 불렀다는 동정론은 무의미합니다. 박정희는 일본 군대 문화 속에 뿌리 박혀 있는 '배꼽 아래 세치에는 인격이 없다' (臍下三寸に人格なし)는 말에 따라 성적인 면에서만큼은 자신이나 부하에게 엄청나게 관대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인 탓에 육영수 여사가 살아 있을 때도 박정희는 여자 때문에 육영수 여사와 다툼이 끊이지 않았었습니다.

박정희의 술과 여자는 많은 비화를 남겼다. 70년대 초 어느날 대통령부인 육영수 여사를 면담한 어느 여성은 육여사의 얼굴에 멍이 든 것을 본다. 소문은 퍼지고 청와대출입기자들이 그 배경을 취재했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박정희가 재떨이를 던졌다느니 손찌검을 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한 기자가 직접 박정희에게 물었다.

『영부인 얼굴에 멍이 들었던데, 부부싸움을 하신 겁니까?』 이 말에 대통령은 몹시 어색한 얼굴로 헛기침만 했다.

『어허, 음, 흠…』

부부싸움은 대통령의 주색 때문이었다. 육여사는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온갖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게 해주는 경호실장 박종규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육여사는 박종규 거세계획에 착수한다. 이 계획에 동원된 사람이 당시 청와대 사정담당 수석비서관 홍종철이었다.

육여사는 홍종철을 은밀히 불러 박종규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눈물을 글썽이며 규탄했다.

『내가 이 사람을 더 이상은 각하 곁에 놓아둘 수 없습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이래서 홍종철은 극비리에 박종규 비리조사에 착수한다. 본인과 형제 친척들의 이권개입과 인사청탁 여부에서부터 사생활 비리 등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막강한 경호실 안테나에 안 걸릴 리가 없었다. 박종규의 귀에 사정수석실이 자신의 비리에 대해 내사하고 있으며 홍종철이 직접 지휘한다는 정보가 들어갔다. 박종규는 흥분했다. 그는 경호실에 있던 엽총을 집어들고 홍종철의 방에 뛰어 들어갔다.

『야, 이 새끼야, 네가 내 뒷조사를 하고 다니냐』
 
박종규는 분에 못이겨 엽총 방아쇠를 당기고 말았다. 그러나 총구는 천장을 향해 있었다. 그가 냅다 갈긴 엽총 탄알은 홍종철의 머리 위 천장에 맞고 튀었다. 홍종철은 박종규 앞에서 기를 펴지 못했다. 경호실장은 박정희의 분신으로 누가 무슨 보고를 해도 경호사고가 나지 않는 한 문책인사 대상이 아니었다.

이 사건 후 대통령의 채홍사 일이 경호실에서 중앙정보부로 옮겨졌다. 술자리 마련과 여자 조달하는 일을 청와대에서 한다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는 날이면 큰 낭패라는 생각에서 그 일을 비밀 공작수행기관인 중정으로 떠넘긴 것이다.

청와대는 출입기자들이 있는데다 공식적인 방문객도 많아 비밀스러운 일이 노출될 위험이 컸다. 어느 모로 보나 그 일을 맡기엔 중정이 안성맞춤이었다. 국가기밀이라는 허울좋은 베일 뒤에서 각하의 술과 여자가 난무하게 된 것이다.

박종규가 1974년 8·15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일어난 육영수여사 피격사건으로 물러난 것은 묘한 아이러니였다. 육여사는 그렇게 싫어했던 경호실장을 생전에 밀어내지 못하고 죽어서야 뜻을 이룬 셈이다.
<신동아 1998년 11월>


박선호의 채홍사 역할을 조사했던 변호사와 이 과정을 취재했던 신동아 송문홍 기자의 <비화, 10.26사건이후 19년만의 최초 전면공개, 채홍사 박선호 군법회의 증언 녹취록>이라는 기사와 <박정희의 유산:김재홍저, 도서풀판 푸른숲>과 <운명의 술 시바스>등에는 박정희의 여성 편력에 대해 조금 더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변호사는 박선호보다 앞서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으로 채홍사역을 했던 윤모, 이모, 김모 씨(육사 15기,예비역 대령)와 만나 이 증언들을 검증했다. 누구나 한번 듣기만 하면 입을 딱 벌릴 만한 TV 드라마와 은막의 스타들인 C, C1, C2, L, L1, W 양 등이 궁정동 안가의 밤 연회에 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각하의 술자리 여인을 동원하는 데는 엄격한 규칙이 있었다. 첫째 단독후보는 안되며 반드시 복수로 부르는 것이고, 둘째로 결코 동일인을 두 번 이상 들이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복수후보로 하는 것은 그의 선택 폭을 보장하기 위함이었고, 한 여인을 두 번 이상 부르지 않는 것은 각하의 이상한 인연이 깊어져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각하의 양 옆에 앉히는 두 여인 중 대부분의 경우 한 사람은 이름이 널리 알려진 스타였고, 다른 하나는 연예계 지망 신출내기로 선택됐다. 각하는 술이 취하면 으레 둘 중 마음에 드는 쪽으로 몸이 기울었다. 그리고 그 다음 일은 경호실장과 이 관립 비밀요정의 담당자만 아는 비화속에 묻혔다.

한번 「인연」을 맺은 뒤 퍼스트 레이디 후임을 노리는 야심파도 나타나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한번 술자리에 참석한 뒤 각하의 후처가 되겠다고 나선 출세지향파는 유명한 은막의 스타 C양이었다. 이 바람에 박선호와 궁정동 안가 요원은 여배우의 「후처소동」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궁정동 행사에 참석했다가 각하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게 된 그 여배우는 행사에 연속출연을 요구해왔다. 중정측은 물론 같은 여자를 두 번 이상 불러들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워 이를 잘랐다. 그러자 어느날 그녀의 어머니가 박선호 의전과장을 찾아왔다.

『각하께서 우리 아이를 좋아하는데 당신들이 중간에서 차단해도 되는 거요?』 대통령의 연심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한 스타의 어머니는 중앙정보부 간부에게 큰 소리를 칠 만큼 위세가 대단했다.

그 밖에도 박대통령 술자리에 왔다 간 연예계 지망생의 부모가 사후에 그 사실을 알고 항의해와 돈 주고 달랜 일 등이 옛 궁궐 속의 비밀처럼 묻혀 있었다.

<신동아 1998년 11월>

단순하게 기사와 책 등 언론의 취재뿐만 아니라 당시 궁정동 안가에서 근무했던 중정 요원요원 등의 증언에도 박정희가 얼마나 궁정동 안가에서 여성들과 함께 연회를 즐겼는지 나와 있습니다.


궁정동 안가에는 박정희, 비서실장,중정부장,경호실장이 모이는 '대행사'와 박정희 혼자 오는 '소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1년에 대행사는 3~3번에 불과하고 소행사가 거의 빈번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박정희가 혼자 궁정동 안가에 오면 경호실장은 밖에 있고, 대통령만 시중드는 아가씨와 함께 술을 마시고 행사를 치렀다는 증언은 조서와 진술에서도 나와 있습니다.


박정희를 미화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의 죽음은 한 마디로 '주색잡기'하다가 부하에게 사살당한 것입니다. 좋게 얘기해서 '주색잡기'였고, 실제 현행법으로 말한다면 돈을 주고 '성매매'를 하다 성매매 현장에서 사망한 사례입니다.

박정희 성상납이 명예훼손이야 아니냐를 놓고 법정 공방을 벌였지만, 실제 의전과장 박선호가 돈을 줬기 때문에 성상납이 아니라 '박정희의 성매매'로 봐야 합니다.

' 박근혜의 사라진 7시간'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4월 16일에 사라졌던 7시간에 대한 공방이 뜨겁습니다. 일본 산케이 신문은 는 박근혜 대통령이 사라진 7시간 동안 정윤회를 만났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일본 산케이신문을 번역한 뉴스프로에 따르면 산케이신문은 국내에 떠도는 소식을 취재한 결과 박근혜 대통령과 실명이 거론된 정윤회가 만났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도했습니다.

「大統領をめぐるウワサは少し前、証券街の情報誌やタブロイド版の週刊誌に登場した」
“대통령을 둘러싼 소문은 최근까지, 증권가 정보지와 타블로이드(tabloid)판의 주간지에 등장하였다”
 そのウワサは「良識のある人」は、「口に出すことすら自らの品格を下げることになってしまうと考える」というほど低俗なものだったという。ウワサとはなにか。
그 소문은 “교양있는 사람”은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품격이 깎여져 내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할 정도로 저속한 것이라고 한다. 무슨 소문일까.
証券街の関係筋によれば、それは朴大統領と男性の関係に関するものだ。相手は、大統領の母体、セヌリ党の元側近で当時は妻帯者だったという。だが、この証券筋は、それ以上具体的なことになると口が重くなる。さらに「ウワサはすでに韓国のインターネットなどからは消え、読むことができない」ともいう。一種の都市伝説化しているのだ。
 증권가의 관계자에 의하면, 그것은 박 대통령과 남성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상대는, 대통령의 모체(母体), 새누리당의 측근으로 당시는 유부남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증권가는 그 이상 구체적으로 파고들면 신중해진다. 또한 “소문은 이미 한국의 인터넷 등에서는 사라지고 읽을 수 없다”라고 한다. 일종의 도시 전설화되고만 것이다.
コラムでも、ウワサが朴大統領をめぐる男女関係に関することだと、はっきりと書かれてはいない。コラムの記者はただ、「そんな感じで(低俗なものとして)扱われてきたウワサが、私的な席でも単なる雑談ではない“ニュース格”で扱われているのである」と明かしている。おそらく、“大統領とオトコ”の話は、韓国社会のすみの方で、あちらこちらで持ちきりとなっていただろう。
칼럼에서도, 소문은 박 대통령을 둘러싼 남녀 관계에 관한 일이라고 분명히 적혀 있지 않다. 칼럼 기자는 다만 “그런 느낌으로 (저속한 것으로) 간주되어온 소문이, 사석에서도 단순한 잡담이 아닌 ‘뉴스 격’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고 밝히고 있다. 아마도 ‘대통령과 남자’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 구석 구석 여기 저기에서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このコラム、ウワサがなんであるかに言及しないまま終わるのかと思わせたが途中で突然、具体的な氏名を出した“実名報道”に切り替わった。
이 칼럼은, 소문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언급하지 않은 채 그냥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구체적으로 성명을 내며 “실명 보도(実名報道)”로 바꾸었다.
「ちょうどよく、ウワサの人物であるチョン・ユンフェ氏の離婚の事実までが確認され、ウワサはさらにドラマティックになった」
“때마침, 소문의 당사자인 정윤회씨의 이혼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소문은 더욱 드라마틱하게 됐다”
チョン氏が離婚することになった女性は、チェ・テミンという牧師の娘だ。チョン氏自身は、大統領になる前の朴槿恵氏に7年間、秘書室長として使えた人物である。
정씨와 이혼한 여성은 최태민이라는 목사의 딸이다. 정씨는 대통령이 되기 전 7년간 박근혜씨의, 비서실장으로 일했던 인물이다
コラムによると、チョン氏は離婚にあたり妻に対して自ら、財産分割及び慰謝料を請求しない条件を提示したうえで、結婚している間に見聞きしたことに関しての「秘密保持」を求めたという。
칼럼에 따르면, 정씨는 이혼할 당시 아내에게 모든 재산 분할 및 위자료를 청구하지 않는 조건과 함께, 결혼생활 동안 보고 들은 것에 대한 ‘비밀 유지’를 요구했다고 한다.
証券筋が言うところでは、朴大統領の“秘線”はチョン氏を念頭に置いたものとみられている。だが、「朴氏との緊密な関係がウワサになったのは、チョン氏ではなく、その岳父のチェ牧師の方だ」と明かす政界筋もいて、話は単純ではない。
증권가에서는, 박 대통령의 “비밀 접촉(秘線)”은 정씨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하지만 ‘박 씨와의 긴밀한 관계로 소문난 것은, 정씨가 아니라 그의 장인 최 목사다’고 밝힌 정계 관계자의 믿을만한 소식통이 있어,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다.
<출처:뉴스프로>



청와대는 산케이 신문의 보도에 대해 '입에 담기 부끄러운 거짓말'이며 청와대 홍보수석은 '민형사 책임 대충 끝내지 않을 것'이라며 산케이 신문에 대한 고소를 진행 중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산케이신문은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그들이 취재한 내용을 보면 증권가 소식과 국회 발언 내용, 그리고 조선일보라는 언론의 기사를 인용해서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7월 18일 조선일보에는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이라는 제목의 최보식 선임기자의 칼럼이 실렸습니다. 여기에 나온 정윤회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풍문을 산케이신문은 그대로 인용했는데, 자신들만 고소당하니 억울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라진 7시간에 대해 보안이나 안보사안이라고 주장하는 청와대의 해명은 그리 신뢰성이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에 해외파병 부대를 방문하는 등의 행사라면 당연히 몇 시간 동안 언론에 그 행적이 밝혀지지 않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복귀 후 그 사실은 정식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벌써 몇 달이 지난 후에 당시 행적이 밝혀져도 큰일이 벌어질 사안은 방한 중인 밀사를 만나는 일 이외는 별로 없습니다. [각주:2]

박정희가 성매매를 했다는 발언이 명예훼손이라는 고소에 대해 재판부는 자료가 있기에 검토할 사안이지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 행적에 대해서도 당시 기록을 놓고 공방을 벌이면 금방 밝혀질 일입니다.


박정희가 사망한 10.26 다음 날인 10월 27일 모든 신문들은 박정희가 궁정동 소재 중앙정보부 식당에서 만찬 도중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궁정동 안가에서 성매매를 위해 여성 2명을 불러서 술을 마시다가 사망했다는 얘기는 없었습니다.

역사의 진실은 아무리 숨겨도 언젠가는 밝혀질 것입니다. 그 시간의 차이를 거슬리는 순간 정치 공작이 되고,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의 죽음을 통해 아무리 진실을 숨겨도 국민들이 결국 알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 주진우씨가 200만원 배상 판결을 받은 이유는 박정희가 독일에 갔지만 서독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는 발언에 대한 착오를 인정했고 이 부분에 대한 위자료 부분이다. [본문으로]
  2. 진짜 국가안보나 외교 등의 문제로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