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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3년 7개월 만에 벗겨진 '노무현의 누명'과 진범들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을 했던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가 대법원에서 징역 8월로 확정됐습니다. 이로써 길고 길었던 '노무현 차명계좌' 발언은 진실이 아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2010년 3월 서울경찰청 기동부대 지휘요원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뭐 때문에 사망했습니까? 뭐 때문에 뛰어내렸습니까? 뛰어버린 바로 전날 계좌가 발견됐지 않습니까, 차명계좌가? 10만 원짜리 수표가 타인으로,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표돼, 발견이 됐는데, 그거 가지고 아무리 변명해도 변명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거 때문에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겁니다."

이후 그의 발언은 여론의 중심에 있었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차명계좌 때문'이라는 주장은 당시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 사이에서 진실인양 포장, 왜곡됐습니다.

' 3년 7개월이나 걸려서 벗겨진 노무현 대통령의 누명'

조현오라는 인물이 발언했던 내용은 이미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진실이 아니라는 증거가 여러 차례 나왔습니다. 그가 제대로 근거를 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조현오는 경찰청장 인사청문회 당시 '서울경찰청장이 인터넷,주간지 내용을 갖고 발언했겠느냐, 경찰 정보나 첩보가 근거냐'는 물음에도 답변을 계속 회피해왔습니다.


조현오의 '노무현 차명계좌' 발언이 세상에 알려지고, 노무현재단과 유족 측은 그를 '사자명예훼손'으로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시간을 계속 끌기만 했습니다.
 
검찰은 노무현재단이 '주임검사 직무유기' 고발이 있자, 겨우 조현오에 대한 서면 조사를 했습니다. 1심 재판부가 조현오에 대한 판결을 내리기까지 2년 6개월이 소요됐고, 대법원 판결까지는 무려 3년 7개월이나 걸렸습니다.

1심 재판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조현오는 '징역보다 제 명예를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면서, 선고 8일 만에 보석 허가를 받고 풀려났습니다. 

법정구속 8일 만에 풀려났던 조현오에 비해, 죽어서도 억울한 누명을 썼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는 3년 7개월 만에야 풀린 셈입니다. 

'  조현오 차명계좌설을 뒷받침했던 인물들'

노무현 대통령이 숨겨졌던 거액의 비자금 차명계좌가 발견돼, 자살했다는 조현오의 발언은 정치적으로 많은 파문을 몰고 왔습니다.

특히 당시 한나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앞두고 나온 그를 뒷받침하는 발언을 통해 조현오의 주장이 진실인양 만들었습니다.


한나라당은 조현오 전 청장이 차명계좌 의혹과 관련하여 검찰에 출두하자 '모든 의혹을 남김없이 밝히라'고 촉구했습니다. 단순히 이런 발언만 했으면 괜찮았지만 '조 전 청장이 경찰 총수로 있을 때 수사권 문제를 둘러싸고 검찰과 경찰이 충돌한 적이 있다, 검찰은 조 전 청장을 조사하면서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다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말은 검찰이 조현오가 유죄라고 한다면 이것은 제대로 된 수사가 아닌 조현오에 대한 검찰의 감정의 앙금 때문이라고 미리 선을 긋는 지능적인 수법이었습니다.

홍준표는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차명계좌 있다는 자신이 있으니까 조현오 경찰청장을 임명한 게 아니겠느냐, 특검 통해 차명계좌가 나오면 노무현 신화 실체 드러난다>면서 차명계좌설을 뒷받침하기도 했습니다.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은 조현오의 주장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조현오 전 총장 처벌이 쉽지 않을 것이다>는 발언을 통해 마치 조현오가 진짜로 차명계좌를 알고 있다는 식으로 그를 옹호하기도 했습니다.


한나라당의 이런 발언은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는 이들의 마음을 짓밟았으며, 자칭 보수들의 노무현 공격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자칭 보수 단체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비자금 때문이라는 주장을 연일 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의 유가족은 물론이고 측근까지 수사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조현오의 발언은 보수 세력이 주장하는 '노무현의 죽음은 더러운 죽음이다'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고, 그렇게 노무현 대통령은 '불의하고 추악한 대통령'으로 둔갑됐습니다.

' 조중동과 언론, 노무현을 부관참시하다.'

노무현 대통령만큼 언론의 뭇매를 맞은 대통령도 드뭅니다. 그가 무엇을 하든지 조중동과 보수 언론들은 막무가내로 그를 공격하는 기사와 사설을 연일 쏟아냈습니다.


조중동은 노무현 대통령을 죽이기 위해 그의 발언을 앞 뒤를 잘라 '악마의 편집'을 했으며, 언제나 이런 기사는 1면을 장식했습니다.

조선일보는 AP통신의 기사를 인용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수개월간에 걸친 비판'을 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AP 통신의 원문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악의적인 비판'을 받았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살아생전에도 그를 공격했던 조중동은 조현오의 발언이 있자, 또다시 그를 부관참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어느 은행, 누구 명의인지 다 까겠다>는 제목을 통해 진짜로 은행에 비자금이 있는 것처럼 보도했습니다. 중앙일보는 <사과했지만, 부인은 안 했다>를 통해 조현오의 주장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식으로 사람들에게 세뇌를 시키기도 했습니다.

비단 조중동과 같은 지면 언론뿐만 아니라 방송 3사와 YTN, 종편들도 똑같이 '노무현 부관참시'에 적극적으로 동참했습니다.


YTN은 <노무현 차명계좌 20억 발견>이라는 자막을 통해 진짜 노무현 대통령의 차명계좌가 존재했고, 여기에 거액의 비자금이 있다는 식으로 뉴스를 내보냈습니다.

채널A도 <비서 계좌서 의문의 수표>라는 자막을 내보내면서, 권양숙 여사가 아직도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고 오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방송3사의 뉴스는 조현오의 발언이 명예훼손이냐를 떠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죽음이 비자금과 관련이 있느냐는 확대 해석에 더 초점을 둔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쏟아졌던 의혹이 마치 숨겨진 진실인양 왜곡되게 만들었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풀리지 않는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저희 집 안뜰을 돌려주세요>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저의 집 안뜰을 돌려주세요.

언론에 호소합니다. 저의 집 안뜰을 돌려주세요.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부탁합니다. 그것은 제게 남은 최소한의 인간의 권리입니다.
저의 집은 감옥입니다. 집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습니다.
저의 집에는 아무도 올 수가 없습니다. 카메라와 기자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도, 친척들도, 친구들도 아무도 올 수가 없습니다. 신문에 방송에 대문짝만하게 나올 사진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상한 해설도 함께 붙겠지요.
오래 되었습니다. 이 정도는 감수해야겠지요. 이런 상황을 불평할처지는 아닙니다. 저의 불찰에서 비롯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인간으로서지켜야 할최소한의 사생활은 또한 소중한 것입니다.
창문을 열어 놓을 수 있는 자유, 마당을 걸을 수 있는 자유, 이런 정도의 자유는 누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지금 이만한 자유가 보장이 되지 않습니다.
카메라가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는 집 뒤쪽 화단에 나갔다가 사진에 찍혔습니다. 잠시 나갔다가 찍힌 것입니다.
24시간 들여다보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제는 비가 오는데 아내가 우산을 쓰고 마당에 나갔다고 또 찍혔습니다. 비오는 날도 지키고 있는 모양입니다. 방 안에 있는 모습이 나온 일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커튼을 내려놓고 살고 있습니다.
먼 산을 바라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보고 싶은 사자바위 위에서 카메라가 지키고 있으니 그 산봉우리를 바라볼 수조차없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에게 너무 큰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언론에부탁합니다.

제가 방안에서 비서들과 대화하는 모습, 안 뜰에서나무를 보고 있는 모습, 마당을 서성거리는 모습, 이 모든 것이 다 국민의 알권리에 속하는 것일까요?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간곡히 호소합니다. 저의 안마당을 돌려주세요. 안마당에서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자유, 걸으면서 먼 산이라도 바라볼 수 있는 자유, 최소한의 사생활이라도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2009.04.21)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 때문에 최소한의 인간의 권리조차 누리지 못했습니다. 먼 산조차 바라보지 못하고 커튼을 쳐야 했고, 사랑하는 손녀와 마음 놓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지도 못했습니다.

그가 이런 고통 속에서 죽음을 선택하고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한나라당과 언론은 조현오의 거짓말을 이용하여 그를 또다시 부관참시했고, 그의 억울한 누명이 벗겨지기까지 무려 3년 7개월이 걸렸습니다.

언론과 보수 세력이 노무현이라는 한 인간에게 했던 짓은 악플러보다 더 지능적인 '악의적인 악마의 편집'이었습니다. 조현오는 실형을 선고 받았지만, 아직도 그를 공격했던 언론과 정치인들은 뻔뻔하게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죽게 만들었고, 죽은 뒤에도 그의 명예를 훼손한 진범은 아직도 잡히지 않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