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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박근혜식 '대독 정치'와 '4S' 우민화 정책


정홍원 국무총리가 10월 28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에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처음 열린 총리의 대국민담화문 발표였지만, 정홍원 총리는 A4용지 4장을 그냥 읽고 기자 질문도 받지 않은 채 9분 만에 퇴장했습니다.

정홍원 총리는 덴마크와 핀란드를 순방하고 온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이것은 이날 정 총리의 담화문이 청와대의 지시와 명령, 문건 작성으로 열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책임총리제를 운운했던 박근혜 정부는 말뿐이었고, 국정원 사건 등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단순히 모면하기 위해 '바지 총리'를 내세워 '대독 정치'를 했습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벌이는 '침묵'과 '회피'의 정치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대선 부정 시비를 막기 위해 '뻥'치는 국무총리' 

정홍원 국무총리 담화문의 대부분은 '경제'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습니다. 물론 중간에 국정원 사건과 관련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께서는 처음부터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고, 검찰수사와 함께 국정조사를 통해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서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는 기존의 대통령 주장을 앵무새처럼 낭독했을 뿐입니다.


정홍원 총리는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우리 기업을 돕기 위해 직접 세일즈 외교로 세계를 누비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정 총리는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는 후속 조치, 즉 여야와 노동계 등 사회 전반에서 대통령을 괴롭히지 말고, 세일즈 외교의 성과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홍원 총리의 대국민담화문 요지는 지금 '경제'가 중요하니 국정원 사건보다 '경제'에 집중해야 민생이 안정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정홍원 총리가 여야가 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외국인투자촉진법'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 총리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2조 3천억 원 규모의 공장착공으로 총 1만 4천 명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자산 22조 원 GS칼텍스의 고용 인원은 총 3,383명이고, 자산 5조 원의 SK종합화학 고용 인원은 총1,184명입니다. 자산 27조원 짜리 회사 두 개가 2조 3천억짜리 일본계 기업과 합작 추진을 해도 전체 고용인원 4,522명을 넘을 수는 없습니다. 

결국, 정홍원 총리의 발언은 국정원 사건을 덮기 위해 '경제와 민생'을 강조하기 위한 과대포장, 즉 '뻥'에 불과합니다.  

' 광주학살을 덮기 위한 전두환의 3S 정책'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총에 맞아 죽자,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킵니다. 1980년 광주에서는 전두환의 집권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 시민들이 일어섭니다. 그 후 광주 시민들은 공수부대원들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 폭행, 연행됩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1년 후인 1981년 5월,  전국에서는 광주 시민을 추모하고, 광주학살에 대한 전두환 퇴진 요구시위가 일어날 조짐이 보였습니다.


1981년 5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는 야간통행 금지도 해제된 '국풍 81'이라는 행사가 열립니다. 행사에 동원된 인원만 16만 명인 이 행사는 5일간 밤낮없이 진행됐었습니다.

1980년 광주의 아픔을 말하려고 하는 자들은 연행,구속하고, 일반 시민들에게는 볼거리, 먹거리, 야간통행 금지의 일탈을 허용한 '국풍 81'은 전두환이 벌인 광주학살을 숨기기 위한 통치 방법의 하나였습니다.

전두환은 정치의 3S( 스포츠.섹스.스크린)를 활용해 대한민국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했던 인물입니다.


1981년 전두환은 '88올림픽'과 '86아시안게임'을 유치합니다. 이것은 박정희의 정치적 멘토였던 일본인 '세시마 류조'의 조언에 따른 것입니다. 세시마 류조는 국민의 눈을 '올림픽'으로 돌리면 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전두환에게 조언했습니다.

그 후 전두환은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씨름', '농구대잔치' 등의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장려했습니다. 여기에 1980년 12월 1일 컬러텔리비전을 보급한 컬러 방송을 시행합니다. 전두환이 1982년 야간 통행금지를 37년 만에 해제한 덕분에 거리는 불야성을 이루었고, 술집과 성매매업소가 급증했습니다.


1980년대 대한민국 영화 관객 수 10위 내 영화는 '깊고 푸른밤', '어우동', '매춘', '애마부인', '자유부인', '무릎과 무릎 사이' 등의 에로 영화였습니다. 달동네 서민들의 삶을 미화시킨 드라마 '달동네'와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는 시청자를 사로잡았습니다.

전두환이 벌인 3S 통치 전략 때문에 국민은 그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국민을 살해한 범죄자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그를 스포츠와 문화를 부흥시킨 지도자로 추앙했었습니다.

' 3S가 아닌 4S로 정권을 잡은 박근혜'

이제 세상은 3S (스포츠,섹스,스크린)의 시대가 아닙니다. SNS로 불리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추가된 4S의 시대가 됐습니다. 

박근혜는 지난 대선에서 철저하게 4S를 활용해 정권을 잡은 새로운 기법의 통치 방법을 대한민국 사회에 보여준 인물입니다.


트위터,블로그,유튜브,온라인 게시판 등에서 국가 정보기관이었던 국가정보원,사이버사령부가 활약했습니다. 국가보훈처,행정안전부는 박정희를 찬양하고, 자칭 보수를 응집하는 '종북','좌익'론을 펼쳤습니다.

새누리당과 연계된 십알단과 국정원,사이버사령부는 철저하게 협업체제로 SNS를 장악하며, 박근혜의 대선을 도왔으며, 이는 4S 시대에 걸맞은 범죄 수단이 됐습니다.

신성해야 할 스포츠와 문화가 통치 수단으로 전락했듯이, 시민들의 자유로운 소통이 조직적으로 정치에 이용된 것입니다.



박근혜는 전두환이 했던 통치방법을 그대로 따라, 대통령의 임무 중의 하나인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는 한 달째 열지 않고 문화,스포츠 행사에만 참석하고 있습니다.

[정치] - 구중궁궐 청와대 '여왕과 환관내시'

지금 외신조차 대한민국의 정치는 국정원 사건으로 마비됐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독 한국 언론은 대통령의 패션 외교와 야구장 시구, 가수와 함께 노래 부르는 장면만 헤드라인 뉴스로 장식하고 있습니다.

언론통제와 함께 이루어지는 3S 정책의 기본 형태가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사는 '자칭 보수'들은 국정원 사건을 단순히 야당의 '대선 불복'이라고 강조하며, '경제'가 우선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 혼자만 잘살면 이 세상은 좋은 세상일까요?
돈만 있으면 무조건 행복할까요?
'경제'만 잘 되면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까?
북한과 전쟁만 하면 무조건 이기고, 우리는 전쟁의 피해를 겪지 않으리라 생각합니까?
미국,일본이 평생 한국을 지켜줄 것이라는 역사의 왜곡을 그대로 배우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눈과 귀를 정치가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는 통치자들의 수법은 결국 여러분의 인생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짓밟는 '우민화 정책'입니다. 그것을 왜 똑똑한 여러분이 그대로 당하고 살고 있습니까?

아돌프 히틀러는 "국민을 다스리는 데에는 빵과 서커스만 있으면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빵과 서커스'만 있으면 권력자가 무엇을 하든 다 용서할 수 있습니까?

아이엠피터는 그저 주인이 주는 짬밥에 살만 찌는 돼지보다는 하루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인간의 삶을 지키며 살았던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