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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정원과 CIA, 그들만의 '비밀기록물'



미국의 CIA와 한국의 국가정보원은 하는 일이 비슷한 국가의 정보기관입니다. 이들은 명칭 그대로 정보를 수집, 분석하여 정부 여러 부처에 보고하는 임무가 기본임무입니다. 정보를 수집하는 공작 업무를 위해 정보기관은 블랙요원이나 정보원을 활용하기도 하고, 비밀스러운 임무를 수행하기도 합니다.

원래 정보수집이 목적인 정보기관이 정보만 수집, 분석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실제로 국가 정보기관이 여러 사건에 개입한 정황은 많습니다. 미국 CIA는 국내 정치와 사건에 관여하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그들도 미국 국내 사건에 손을 댔었고,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는 더 말할 나위 없이 대한민국 정치를 좌지우지했었습니다.

미국 CIA와 한국 국가정보원은 임무와 성격이 거의 같지만, 전혀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관여한 임무에 대한 기록물을 국가기록물로 이전, 보관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국가기록원, 국정원 기록물 단 한 건도 없어'

현재 대한민국 국가기록원은 국정원으로부터 단 한 건의 기록물도 이관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7월 4일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국정원은 비공개 기록물은 물론이고, 국정원 생산 기록물 목록까지 모두 국가기록원이 아닌 국정원이 자체 보관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의 기록물 자체 보관은 명확히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행위입니다.


대한민국의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대한민국 정부 기관이 생산한 문서 중 영구대상 기록물은 모두 국가기록원에 보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국가기록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생산기관에서 9년 동안 보관하고 그 후에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일반문서와 다르게 비공개 기록물은 보호기간 만료 때까지 생산기관이 자체 비공개 보관하다가 또는 30년이 경과하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합니다.

국정원처럼 비밀문서를 많이 다루는 곳에서는 최장 50년까지 연장이 가능한데, 아마 국가기록물로 이관되는 문서 중에서 최장 생산기관 보관 규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비밀문서라고 해도 50년이 지나면 국가기록원에 이전되어야 하는데, 대한민국 국정원은 이와 같은 법률을 위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정보원에 나온 국정원 역사. 출처:국정원 홈페이지


국정원의 역사는 1961년 5.16군사쿠데타 이후 6월 10일 설립된 '중앙정보부'가 공식적인 시작입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부터 1963년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지정되기까지의 기간에 생산된 중앙정보부의 비밀문서들은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됐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정부 문서를 보관하는 국가기록원에 국정원 관련 문서가 없다는 사실은, 국정원이라는 국가기관이 명백히 대한민국 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CIA 비밀문서를 감독하는 미국 국립문서기록청'

한국의 국정원이 자신들의 문서를 국가기록원에 넘기지 않는 것과 대조적으로 미국 CIA는 철저히 국립문서기록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NARA)에 모든 문서를 이관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미국 CIA는 생산한 문서와 기록물 등을 보관 연한에 따라 자체 보관한 후 국립문서기록청으로 이관합니다. 그중에 비밀문서는 최대 50년까지 보관이 가능하지만, 그 이후에는 국립문서기록청으로 이관해야 합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청 (NARA)은 한국 국가기록원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CIA가 기록물을 함부로 보관하지 않도록 기록관리 실태를 조사할 수 있으며, 이관된 CIA 비밀문서도 국립문서기록청 산하 비밀해제센터(NDC)에서 공개 여부를 검토하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시스템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NARA 산하의 정보보안감독국(ISOO)이 국가안보를 위해 꼭 필요한 정보는 공개를 최소화하면서, 비밀문서의 지정이 과도한 문서를 공개하도록 감독한다는 점입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청의 철저하고 실리적인 감독과 운영 탓에 미국 CIA비밀문서가 종종 해제되어 공개되는 때도 있습니다. 그중에 대한민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문서가 바로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미국 CIA 문서입니다. 

미국은 5.18민주화운동이 벌어지던 시기, 미국무부와 주한미대사관,국방부,CIA는  몇 분마다 전문을 주고받을 정도로 광주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CIA가 생산한 비밀문서는 해제됐고, 대한민국은 이런 비밀문서가 공개되어 당시의 진실을 철저히 규명할 수 있게 됐었습니다.

▲미국국립문서기록청이 보관하고 있는 OSS 관련 문서. 출처:NARA


정보기관의 문서 관리가 얼마나 역사에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습니다. 미국 CIA의 전신은 전략사무국 OSS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정보를 담당했던 OSS는 대한민국 역사를 조명하는 기록물을 남겼는데, 그것은 바로 OSS가 한국인을 훈련해 조선 본토에 침투시키려는 계획서입니다.


[시사] - 광복군OSS특수부대의 국내진공 침투작전은 성공했을까?

미국 국립문서기록청이 공개한 OSS 관련 문서 목록 5,6번을 보면 'OSS 미션, 한국, 훈련'이라는 항목이 나옵니다. 이 문서를 통해 우리는 미국이 조선 본토 침투작전을 위해 한국인을 훈련시켰다는 역사적인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국가안보에 필요한 정보는 최소한으로 공개하되, 정보기관의 문서를 어떻게 관리, 감독하느냐에 따라 기록이 남겨지고, 역사의 진실을 나중에라도 알 수있습니다.  

' 국정원, 그들만의 불법을 이제는 막아야 한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이번에 진실을 파헤치고, 그들의 불법을 처벌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역사는 퇴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정치 역사에서 정보기관은 정권 창출에 깊숙이 관여했고, 여기에는 언제나 불법과 폭력의 범죄가 동반됐었습니다.


박정희와 군사쿠데타를 모의하던 김종필은 쿠데타 이후의 집권을 위해 정보기관의 설립을 강조했고, 5.16군사쿠데타 이후 곧바로 중앙정보부를 창설합니다.

중앙정보부를 창설한 김종필이 가장 먼저 손댔던 일이 군사쿠데타 이후 민정 이양으로 가는 데 필요한 정치자금을 확보하는 일이었습니다. 중정은 1백억환의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농협이 보관하던 한국전력 주식 12만8천주를 외상으로 사들이고, 주가조작을 통해 2만환짜리 주식을 6만환에 팔았습니다. 

중정이 증권브로커와 짜고 벌인 주가조작을 통해 남긴 차익은 고스란히 박정희 쿠데타 정권의 정치자금으로 사용됐습니다.

당시의 중정문서는 고스란히 국정원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50년 넘었는데도 왜 당시의 기록물을 국정원은 국가기록원에 넘기지 않을까요? 국정원이 벌인 파렴치한 정치 공작이 만천하에 드러날 수 있으며, 당시 박정희 정권이 얼마나 부도덕한 정권임을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통해 대학가의 시국선언이 발생하자, 국정원이 대학을 관리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것은 유신체제에서 중정이 벌였던 학원사찰의 불법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단독,한겨레] 국정원, ‘시국선언’ 대학까지 사찰

단순히 용공조작을 통해 정치인을 불법 연행,감금,고문했던 일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억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루어졌던 학원사찰에 중정이 개입했던 증거들을 보면서, 2013년 국정원이 왜 개혁되고, 불법적인 일을 심판해야 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 미연방법원은 정부관료를 향한 명예훼손에 대해 “이런 소송이 허락된다면, 향후 정부관료를 향한 비판들이 - 설사 그것이 정당한 비판일지라도 - 공포와 두려움의 장막에 갇혀 얼어붙게 되고, 이는 곧 [정당한 비판 이전에] 자기검열로 이어질 것이다” 라고 판결한 바 있다.


예전에 '블랙요원'(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신분을 숨기고 정보를 수집하는 국정원요원)을 취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많은 얘기를 들었지만, 정보는 얻지 못하고 그저 힘들었던 삶의 얘기만 듣고 왔습니다. 그에게 물었던 말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험한 일을 목숨을 걸고 왜 했느냐'였습니다. 그 요원은 '가슴 속의 애국심'때문이라고 답했었습니다.

진정한 애국심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가슴 속에 살아 움직입니다. 국정원의 명예 운운하며, 고소,고발을 자행하는 지금의 국정원을 보면 그들이 무슨 정보요원이냐는 한숨만 나옵니다. (국정원은 불법 정치 공작을 폭로한 진선미 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했으며, 앞으로 그와 관련한 글을 올린 블로거와 게시자들 또한 고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영화 속 스파이들은 고문을 당해도 정보를 불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나라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국정원은 고문은커녕 알아서 자신들의 비밀기록을 술술 공개합니다. 하지만 정작 대한민국 법에 따라 국가기록원에 넘겨야 할 비밀문서들은 절대 넘기지 않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요한복음 8장 31절~36절)


미국 CIA의 국훈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성경 속 구절을 인용한 문구입니다. 어쩌면 아이엠피터도 국정원에 고발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참다운 진리를 찾으려는 마음만 있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진리를 찾다가 몸이 피곤한 삶이 
거짓을 진실로 믿고 사는 일상보다
하나뿐인 인생의 자유를 누리며 사는 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