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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대통령의 국정원장 독대 보고와 NLL 대화록 공개



대한민국 대통령은 예로부터 정보기관이나 사법기관,경찰총수 등의 권력기관장이나 자신의 측근을 수시로 독대했습니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은밀한 얘기를 나눌 때는 독대가 필수였습니다. 그러다가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 권력기관장의 독대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참여정부 들어서 노무현 대통령은 아예 '대통령 독대 보고'를 금지했습니다. 정보기관,국방,안보,외교는 물론이고 최측근까지의 독대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국정원장,기무사령관,국방장관,경찰총수의 독대는 당연히 없었고, 굉장히 민감한 사안의 정치적인 만남에도 독대는 없었습니다.

사례1
2003년 7월: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안희정
안희정의 불출마를 권유하던 노무현 대통령은 민감한 사안인데도 이호철 민정비서관과 이광재 국정상황실장 배석시킴.

사례2
2005년 4월: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의장
이해찬 총리 교체 문제를 놓고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의 논의가 있던 시기, 정동영 의장은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총리 교체를 건의했다'고 주장, 그러나 이 자리엔 이병완 비서실장이 함께 참석했음.

사례3
2006년 5월: 전 산업자원부 장관 이희범 (당시 무역협회장)
이희범 한국무역협회장 특강에서 "대통령과 독대하기가 힘들어 대통령을 설득하기 어려웠다"고 발언,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독대 보고를 금지한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 독대 보고가 권력의 힘과 부패를 상징했기 때문입니다.

문민정부라 부르던 YS정권 시절, 김영삼은 자신의 아들 김현철과 1주일에 한두 번은 꼭 청와대에서 독대했습니다. 이러다보니, 김현철이 대통령에게 말하는 정보가 국정을 좌지우지했고, 권력의 실세로 비리가 생겼습니다.


참여정부가 끝나자, MB는 원세훈 국정원장은 물론이고, 선거 전에 여당 지도부, 최측근들과 배석자가 없는 독대를 수시로 했습니다. 심지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의 독대도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정치] - MB와 독대했던 원세훈, 대선 개입 허락받았나?
[정치] - 박근혜,이명박 회동 '정권 재창출 위한 밀약?'


' 권력기관 개혁은 말뿐인 선거 공약?'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에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장 독대 문제가 불거지자, 선거 유세 기간에 권력기관을 개혁하겠다는 소신을 누차 강조했으며, 대통령직인수위에서는 국정원장 독대 보고를 받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나왔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였는지 몰라도,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방미 때까지는 남재준 국정원장의 독대 보고를 받지 않았습니다. 국정원장의 독대 보고를 받지 않던 박근혜 대통령이 돌연 5월 중순부터 남재준 국정원장과 독대 보고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민일보 신창호 기자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는 23일 "대통령이 남 원장으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는 걸로 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남재준 국정원장 독대 보고가 이루어진 점을 북한 정보와 남 원장에 대한 신뢰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 북한발 안보 위기
국정원장의 대통령 독대 보고가 북한의 안보 위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오히려 이런 안보 위기라면 국정원장 독대 보고보다 NSC 위기관리센터 (일명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다양한 전문가들과 함께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낫습니다. 원래 진짜 정보는 여러 가지 교차 정보 속에서 그 정보의 진위여부와 신뢰성을 파악하기 더 쉽기 때문입니다.

국정원이 단독으로 북한 미사일이나, 개성공단 사태 등을 예상하지 못했던 점에 비추어, 그들만의 정보를 신뢰하기보다. 다양한 기관의 교차 정보 속에서 북한발 안보 위기 정보를 보고받았던 편이 훨씬 합리적이었을 것입니다.

○ 남재준 국정원장에 대한 신뢰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부터 남재준 국정원장을 신뢰하고 있으며, 남 원장을 '단 한 조각의 사심도 없는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신뢰는 오로지 박근혜 대통령만의 생각입니다.

그렇게 믿었던 윤창중 전 대변인이 지금은 어떠한지 돌이켜본다면, 대통령의 신뢰는 검증과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 옳습니다.

' 국정원 수사와 함께 시작된 국정원장 독대 보고'

박근혜 대통령이 남재준 국정원장을 신뢰하고, 북한발 안보 위기 때문에 국정원장 독대 보고를 했다고 하지만 그 시기가 미묘합니다.

국정원 부정 선거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5월 15일 한겨레가 국정원의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문건'을 보도합니다. 그런데 그 문건 작성자가 현재 청와대 근무자였습니다.


5월 중하순, 민주당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추가 고발하고,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재소환 조사합니다. 전직 국정원장이 조사받는데, 과연 박근혜 대통령은 남재준 국정원장과 만나 국정원 부정 선거 보고를 전혀 받지 않았을까요? 받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어불성설입니다.

국정원 부정 선거에 대한 증거가 계속 밝혀지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전혀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돌연 남재준 국정원장은 NLL 대화록 관련 자료를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열람하도록 지시합니다. 남 원장과 새누리당은 자료 열람이 당연하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새누리당과 국정원은 국정원이 가지고 있던 NLL 대화록이 공공기록물로 2급 비밀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그 기록물은 녹음테이프를 가지고 자신들이 만든 자료이기에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정상회담의 속기사가 작성한 자료도 대통령기록물이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대화의 주체가 누구냐입니다. 정상회담 대화록이 진본이라면 기록물 보관소에 있는 자료나 국정원에 있는 자료나 똑같은 대통령기록물이 되는 것이 맞는 논리입니다.

검찰이 공공기록물로 봤다는 말도 논리에 맞지 않습니다. 검찰은 대통령기록물 열람의 판단을 내리는 기관이 아닙니다. 대통령기록물은 고등법원에서 판단합니다. 검찰이 공공기록물이라고 본 부분도 오히려 단순히 국정원이 스스로 생산한, 즉 원본과 다른 그들만의 생각에 불과하다는 이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24일 오후 국정원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전격 공개했다.


국정원은 24일 오후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전격 공개했습니다. 국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비밀,생산,보관 규정에 따라 2급 비밀인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전문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하여 공개한다'고 밝혔습니다.

국정원은 관련 내용 상당 부분이 언론보도를 통해 이미 공개돼 있어 비밀문서로 지속 유지해야 할 가치가 상실된 것으로 판단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문서 보관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 비밀문서 유출에 대한 보안 무능력은 전혀 논의하지 않은 이런 모습은 국정원이 제대로 된 정보기관이 아님을 스스로 입증한 것입니다.

문재인 의원은 국정원에 있는 정상회담 대화록은 그들의 자료로 자체 생산한 것이 아니며, 당시 회담장에 배석한 비서관이 녹음파일의 녹음 상태가 좋지 않아 국정원에 녹취를 맡기게 됐고, 이 과정에서 국정원은 대화록을 1부 더 만들어 보관하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나는 그 대화록을 대통령기록물이 아닌 것으로 다루는 행위에 대해 반드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며, 나중에 몰랐다는 변명을 하지 못하도록 경고해 둔다"고 말했습니다.

국정원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반드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하며, 그들의 정치 공작으로 얻었던 이득 또한 회수해야 할 사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한중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이 입단속 하는 이유'

10.4 남북정상회담의 내용이 공개되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예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개울이 범람하는 것을 걱정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2년 5월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납니다. 당시 대화록은 물론이고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공식적으로 나온 자료가 없습니다. 당시는 대통령이 아니었으니 공개할 의무가 없다고 한다면, 앞으로는 어떠할까요? 남북정상회담 자체가 열리기도 어렵거니와 알맹이 없는 그저 웃다가 끝나는 남북정상회담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2년 3월 서울핵안보정상회의에서 마이크가 꺼진 줄 모르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에게 "이번이 나의 마직막 선거이다. 선거가 끝나면 나로서는 좀 더 유연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발언했다가 난리가 났었습니다.

한미 정상회담은 의외로 민감한 경제,안보 사안이 많습니다. 과연 그런 대화록을 나중에라도 공개한다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합니다. 이미 외교부는 한중정상회담에서 다룰 '북핵 위기'등을 철저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중국은 시진핑 주석은 물론이고 중국정부 고위 관리에게 입단속과 발언할 내용을 다시 점검하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이유는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파장 때문입니다.

프랑스는 국가 간의 정상회담을 국가안보 분야로 지정해 60년 동안 공개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은 대통령기록물은 12년, 정상회담 기밀대화록은 25년이 지나야 공개합니다. 일본은 한일 국교정상화 외교문서를 30년이 지났는데도 공개하지 않고 거부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왜 갑자기 한중정상회담의 의제보다 입단속과 발언 내용을 점검하고 있는지 감이 오십니까?

'정치적 논쟁만 되풀이되는 NLL 대화록의 실체'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화록이 공개된다고 해도, 정치적인 논쟁만 있을 뿐 실체적인 해결방법은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고 발언을 한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문구와 맥락, 단어를 가지고 서로가 싸울 뿐입니다.

▲남북정상회담 과정을 보좌한 박선원 청와대 통일안보비서관의 비망록 내용, 출처:경향신문


노무현 대통령은 NLL에 대한 중요성과 발언의 여파에 따라 '색깔론' 공격을 얼마나 받을지 사전에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모든 독대보고를 금지하고, 기록물을 꼼꼼하게 남겼던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이 차후에 공개될 것이라는 사실도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인물이 'NLL 포기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정말 정치를 단순하게 보는 시선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해 NLL 지역을 평화협력 지대로 만들자는 발언이 영토와 주권을 포기했다고 우긴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주장했던 'DMZ 평화지대 설치'는 무엇입니까?

과연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의 영토와 주권을 포기했는지, 국정원이 밝힌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각주:1]보면서 각자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결국, NLL 대화록을 공개한다고 해도, 이득을 보는 것은 단순히 '국정원 부정 선거'에 대한 물타기 그 이상도 이하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잃을 것은 너무 많습니다. 서로 말싸움하다가 집에 불을 질러 거리에 나 앉게 하는 우매한 짓을 하고 있습니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이 같은 상황에서 국회 정보위의 열람 요구를 거부할 명분이 약하다"는 국정원 참모들의 건의를 받고 NLL 대화록 자료를 공개하도록 지시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 열람 요구를 그렇게 잘 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국정원이 자료 열람이 주는 파문이 얼마나 큰지 몰랐다면, 그들이 얼마나 무능한지 보여주는 대목이고, 알고 있었다면 청와대의 지시가 아니고서야는 단독으로 그런 일을 벌일 수 없습니다. 

문재인 의원이 NLL 대화록을 대통령기록물 관련 법에 따라 공개하자고 하자, 갑자기 새누리당은 단순히 여야 정치적 쟁점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안보,위기, 영토 포기 주장했던 말과 다르게 꼬리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는 한두 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민족의 운명이나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는 것을 항상 보여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남재준 국정원장이 독대를 통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의 잘못된 판단은 앞으로 외교를 뒤흔드는 일이 될 것이며, 대한민국 외교사의 가장 큰 오점이 될 것입니다.

  1. 언론은 국정원이 공개한 자료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발췌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정원이 공개한 자료를 새누리당이 언론에 다시 공개한 부분도 처벌해야 마땅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