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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야기

'천상의 여름휴가?' 제주인의 여름나기

제주 중문해수욕장에 몰려든 피서객


여름휴가의 계절이 돌아왔다.올해도 대부분 사람이 7월 말부터 8월 첫째 주에 여름휴가를 떠날 것으로 전해지면서, 동해안 바다가 여름휴가지 1위로 손꼽히고 있다. 예전에 강원도 동해로 바캉스를 즐겁게 떠났다가 고속도로에서만 8시간을 갇혀 있던 기억이 있는 나에게는, 올여름도 휴가를 길에서 보낼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생각에 고소하기도 하면서 안타깝기도 한다.

나에게 '여름휴가를 어디로 갈 것인가?.' 물어보는 사람은 이제는 없다. 그 이유는 작년에 제주로 귀촌했기 때문이다. 작년 겨울은 눈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내 예상을 무참히 깨고, 지독히도 눈이 내려 고생했지만, 이번 여름은 하루하루를 천상의 낙원에서 사는 기분으로 산다.

제주도 농가주택:나무와 숲이 울창한 천연의 자연정원

 
열대야는커녕 선풍기도 없는 우리 집.

여름철 열대야가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를 보면, 아내와 나는 서로 마주 보고 웃는다. 제주에서도 중산간 지방에 사는 우리 집은 한낮에는 잠깐 덥지만, 오히려 저녁은 서늘하면서 새벽에는 전기장판을 켜야 잠을 잘 정도로 시원하다 못해 춥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집은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없다.

우리 집은 집 앞 도로에도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사방팔방 모두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그래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나무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허름한 농가주택 거실까지 세차게 들어온다. 집은 낡았어도 가끔 낮에 거실에 누워 푸른 하늘을 보면서 낮잠을 즐기기에는 그만이다.
 

김녕해수욕장:바다 근처 주택은 경치는 좋아도 사람이 살기에는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다.


휴가 때 바다 간다고? 설마 8시간 동안 운전해서?

아무리 중산간지방이고 시원한 집이라도 낮에는 덥다. 그러면 입고 있는 옷 그대로 차에 탄다.그리고 딱 10분 운전해서 바닷가에 간다. 1박2일에 나왔던 김녕해수욕장은 10분이고, 우도 가는 배를 타는 성산항이나 성산일출봉도 20여 분이면 쉽게 갈 수 있다.

그래서, 여름휴가 때 바다 한번 보려고 8시간 운전하고 가는 사람이 측은하게 느껴진다. 그냥 10분 운전해서 바다에 가서 물에 발도 담그고, 아이와 수영을 빙자한 물장난도 치다가 배고프면 잽싸게 집에 와서 아내가 비벼주는 비빔국수를 먹는다. 
 

집에서 먹는 음식이 최고!


삼겹살은 숯불에 구워야 제맛.

흔히 여름휴가를 떠나서 야외에서 고기 구워먹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솔직히 가스 불에 프라이팬으로 구운 고기와 숯불로 구워 먹는 고기 맛은 차원이 다를 정도로 맛의 차이가 있다. 어쩌면 불에 굽는 요령보다도 꽉 막힌 식당에서 뿌연 연기를 맡으며 먹는 고기보다 탁 트인 자연 속에서 고기를 먹는 그 자체에서 맛있다는 생각이 온몸을 감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 집에는 거금 5만 원을 투자해서 만든 고기 굽는 드럼통이 있다.가끔 아내와 둘이서 삼겹살이 땡기면 동네 정육점에서 만 원어치 삼겹살을 사다가 속성으로 숯을 피워놓고 먹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캠핑은 꿈이지만,제주에 사는 나에게 하루하루가 캠핑이 될 수 있다. 
 

불란지 펜션:'인생은 아름다워' 촬영지



이렇게 천상의 휴가를 즐기는 나에게 고통이 있는데,그것은 바로 육지에서 내려오는 지인들의 여름휴가 요청이다. 아는 사람이 가이드는 물론이고,숙소를 알려달라고 전화, 메일, 페이스북, 트위터로 난리를 치는데 나에게는 참으로 곤욕스럽다.

우선 숙소만 따져봐도 가족도 아닌 사람을 허름한 우리 집에서 재워줄 수도 없고, 아는 펜션이나 민박도 여름 성수기에는 한철 장사라고 비싼 요금으로 임대하는데 나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어 저렴하게 원하는 날짜에 예약해줄 수 있다고 그리 성화를 부리는지...

전국이 어디나 똑같겠지만, 특히 제주도는 성수기에 돈을 벌지 않으면 1년 대부분이 비수기인 펜션들이 많다. 그래서 여름 휴가철에는 게스트 하우스는 물론이고, 민박, 모텔까지 예약이 꽉 차있다. 그래서 마음 한편으로는 안타깝지만,휴가를 떠날 사람은 미리미리 예약하는 것이 휴가지에서 바가지를 안 쓰는 지름길인데, 왜 미련하게 사는지 답답하다고 속으로 흉을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갈치국,고기국수,옥돔물회,고등어구이


이렇게 어찌어찌해서 육지에서 지인들이 오면 밥이라도 대접하려고 제 딴에는 제주 토속음식을 사주면,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다. 갈치국은 비리다고 난리고, 고기국수는 느끼하다고 먹다가 남기고, 제주 사는 나도 먹기 힘든 옥돔물회는 된장으로 양념했다고 입맛에 맞지 않는 표정을 짓기 일쑤이다.

솔직히 제주에 살면서 맛집 찾아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신제주나 시가지에 사는 사람은 종종 회사 동료와 같이 가겠지만, 제주에서도 산골짜기에 사는 내가 시간 내서 맛집을 찾아다닐 이유도 없고, 맛집이라고 맛도 없는데 굳이 비싼 돈을 주면서 갈 필요가 없다.

제주에 사는 사람치고 육지에서 오는 사람들 때문에 곤란한 일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다. 진짜 친한 친구나 가족은 오히려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오지 못하고,여유가 되는 사람은 해줘도 맘에 안 드는 표정 짓는 모습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벌써 비행기와 펜션이 모두 매진된 제주도



귀찮을 정도로 안면 있다고 마구 제주에 와서 연락하는 사람도 있지만, 진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오히려 민폐 끼친다고 아예 우리 집이 아닌 펜션이나 호텔에서 자는 경우도 많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사람들이 제주에 오면 이구동성으로 자기도 나처럼 제주에서 살고 싶다고 하기도 한다. 오랜 시간을 제주에서 살지는 않았지만, 본가 식구들이나 처가에서 올라오라고 해도 내 마음은 전혀 육지로 다시 나갈 생각은 전혀 없다.

제주 귀농이나 귀촌을 꿈꾸며 사는 사람의 50% 이상은 제주도로 여행하러 왔다가 그냥 자리를 잡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놀러 왔다가 눌러앉은 이유가 있는 만큼, 제주는 여름 휴가지로 최상의 조건과 천혜의 자연이 숨 쉬고 사는 곳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고 사람들이 나처럼 제주에 살기 원해도, 제주도에도 나름 안 좋은 문제도 있다.

 

습기,벌레는 농가주택에 사는 사람에게는 숙명?

  

벌레와의 전쟁, 습기를 막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제주에 살면서 특히 우리 집처럼 숲에 둘러싸인 집은 여름이면 매일 밤마다 벌레와의 전쟁이다. 담배크기만 한 나방은 아주 애교스럽고, 작은 벼룩이나 개미, 이름도 알 수 없는 나방이나 벌레들의 습격은 모기약,모기향, 전자 모기 퇴치기, 바퀴벌레약 등 철저한 대비를 해도 언제나 물리기 일쑤이다.

제주도가 원래 바람도 많은 지역인데다 우리 집은 습기가 많기로 유명한 동네라서 제습기를 온종일 틀어놓고 습기를 제거해도 대책이 없을 정도로 고생을 한다. 곰팡이가 벽지에 끼는 것은 다반사이고, 옷이고 가방, 심지어는 아기 유모차에도 자고 일어나면 생긴다.

아름답고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닌 제주도


제주에 살면서 느낀 점은 이 세상에 천상의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들인 초호화 여행도, 결국 집에 도착하면 '아이고, 집이 제일 편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기 때문이다.

올여름,최고의 휴가를 어떤 곳으로 갈 것인가 결정하기보다는 어떤 여행이 내 몸과 마음,그리고 영혼까지 쉬게 해줄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그것이 힘들다면 아이들과 방 안에서 텐트를 치고 함께 웃고 즐기는 모습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악의 여름휴가는 무엇을 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이고, 천상의 여름 휴가는 바로 내가 어디에 있던지 '이곳이 낙원이다'라는 생각으로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