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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MB님,제가 교련도 받고 특공대 다녀와서 아는데요



이명박 대통령님,
국무회의에서 이번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 관련 발언을 하셨는데,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통령께서 “체벌 자체보다도, 자유롭게 자란 아이들이 군에 들어가 바뀐 환경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더 큰 원인이 있는 것 같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볼 때에는 생각 자체가 군대를 다녀오지 않으셔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대변인이 친절하게 부연 설명으로 “이 대통령 발언은 1970년대 식의 병영문화가 2010년대에도 똑같이 유지돼선 안 된다는 취지이지, 젊은이들이 적응 못 해서 문제라는 뜻이 아니다.” 라고 했지만, 생각이 그러신 분이 이런식으로 말씀하시면, 듣는 국민은 난감하기 짝이 없습니다.

대통령께서 일부러 아이들이 문제라고 했다고는 믿고 싶지 않지만, 혹시나 군대 문화를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제가 오늘은 특별히 제 인생을 까발리면서까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잘 기억하셔서 항공점퍼 입고 벙커 간다고 예비역에게 비난받지 마시고, 희안한 군대면제자라는 티 내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께서는 <교련> 이라는 과목을 아십니까? 아마 들어는 봤어도 직접 체험하지 못해 잘 모르실 것 같습니다. 1968년 1.21 사태가 일어나자 박정희 대통령이 괜히 고등학생까지 군인으로 만들겠다고 <교련> 이라는 과목을 만들어서 정규 수업으로 편성했습니다.

제가 군대 다녀와서 아는데, 교련 시간에 배우는 내용과 실습은 거의 군대 교범하고 동일합니다. 훈련소 3주차까지라고 볼까요? 아마 화생방, 수류탄 투척, 실탄 사격 (일부는 군대 입소해서 받았습니다.)만 하지 않았지, 제식훈련과 총검술,각개전투는 똑같았습니다.

특히, M16 모형 총뿐만 아니라 총과 동일한 크기의 M1 소총 모형까지 들고 훈련하는 모습은 북한은 물론이고, 테러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중동지역에서 테러리스트 전사 훈련할 때 보던 기초 과정과 비슷했었습니다.

제가 교련 받아봐서 아는데, 교련 실습시간은 신병훈련소와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신병 훈련을 두 번 받은 셈입니다. 

고등학교 교련 선생은 대위였는데, 늘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 유사시, 전쟁이 일어나면 너희는 전투해야 한다. 그러니 군인이라고 생각하고 훈련에 임하길 바란다."

전쟁이 났다면, 저는 군인이었을까요? 아님 학도병이었을까요?


혹시,사열이나 분열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교련복을 전교생이 다 입고 모형 총을 들고 교장과 내외귀빈 앞에서 행진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저희 학교는 보통 가을 운동회쯤에 했던 기억이 나는데,이거 준비하려고 점심 간에도, 정규수업 마치고도 연병장 (이때는 개념이 운동장이 아니랍니다)에서 선착순도 하면서 빡세게 굴렀습니다.

사열하면 우리의 영원한 지도자이신 교장 선생과 이사장이 사열대에 떡하니 서 있었습니다.그때 교장은 오성장군처럼 군인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서 있는 고등학생에게 충성의 맹세를 받았습니다.

교련이 지독한 군사문화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 바로 사열대 입니다.사열대가 무엇입니까? 사열을 받기 위해 만든 단상입니다. 군인에게 직속상관과 사단장이 있었다면, 교련복을 입은 저희에게는 교련선생과 교장선생이 있었습니다.

직속상관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저는 이미 고등학교때 터득했는가 봅니다.


교련을 받지 않으셔서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때 합법적으로 때리고 맞고, 흙바닥에 구르는 시간이 바로 교련 시간이었습니다. 수업 시간에도 맞는 것은 다반사였지만, 교련 시간은 체벌이 아닌 엄연한
훈련의 연장이기 때문에, 지나가는 교장선생도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확실히 하라고 발로 지그시 밟고 가셨던 기억이 납니다.

'삼청교육대' 아시죠? 전두환 대통령이 만든 그 이상한 교육대가 아무리 심했어도, 고등학생 우리에게는 교련 시간에 맞고 운동장(이라고 썼지만 연병장으로 읽으세요) 을 기어 다닐 때는 마치 학교가 아니라 '삼청교육대'가 바로 여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련 선생에게 다반사로 맞는 장면이나 군대에서 고참에게 맞는모습과 별 차이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고등학교 교련 선생은 과연 선생일까? 아니면 삼청교육대 조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열심히 했었습니다.

지금 글을 쓰면서 기억을 되새겨봐도 교련이나 군대 훈련이나 그다지 차이가 없었고, 시간만 짧았을 뿐이지, 제가 군 훈련을 받은 것과 대동소이했습니다. 오죽하면 병역법에도 교련과목을 이수했다면 복무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고 했겠습니까?

『병역법 제57조 1항, 동 시행령 제116조에는 입대 전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교련과목을 이수한 경우 현역병(전환복무 포함)과 공익근무요원(행정관서요원)의 복무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명시함.』

그런데 왜 저는 복무기간이 단축되지 않았을까요? 사람이 법을 알아야 사는데 제가 그때로 돌아가면 아마 국방부에 군생활 짧게 해달라고 탄원서를 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영창???)

교련이 어떤 것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으시죠. 이렇게 열심히 군인처럼 훈련했던 저도 군대에 갔더니 고등학교 때 받은 훈련 도시락의 힘이 빠졌는지, 탈영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제 군대이야기도 한번 들어보시죠.


제 블로그에 군사관련 글을 몇 편 썼더니 제가 군대를 갔다 왔는지 확인하려고 '아이엠피터 병역'이라는 검색어가 종종 뜨더군요. 제가 나름 군대를 다녀왔습니다. 명칭은 거창한 '701특공연대'입니다. 특공대라고 멋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한마디로 짝퉁 특전사입니다. 특전사 교범대로 비슷하게 훈련은 받지만, 월급은 일반 현역병 급여에 달랑 생명수당 1만 원 더 주는 것으로 끝나는 부대였습니다.

시설도 좋고, 밥도 잘 나오고 훈련도 열심히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부대는 아주 훌륭했습니다. 지금도 자부심도 있고요.그런데 문제는 그늄의 내무반 생활이었습니다. 모르시니 제가 1992년 부임했을 때부터 받았던 단편적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 안경 쓰고 밥 먹으러 갔다고 맞아 죽을 뻔했던 사연
- 자대 배치받고 대기하는 동안 식기 옆구리에 차고 안경 착용하고 식당 앞에 서 있었는데

"저런 시키는 짬통에 얼굴을 처박아야 안경 안 쓰고도 사격할 수 있지."
"눈깔의 먹물을 쪽 빨아 먹어야 안경 벗을 거지?."
" 저 시키 잘 때, 눈에다 안티푸라민 확 부어버려라,아예 눈깔이 멀어야 울 부대 오지 않지".

저는 그날, 안경 쓰는 일이 세상에서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일인 줄 깨달았습니다. (상병 지나서부터 안경은 썼으니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 보일러실/정비고 집합
- 제가 수송병과 (야수교도 안 갔는데 그냥 군면허증 주더군요.)로 있으면서 대대파견이 제일 그립고 좋았던 이유가 바로 집합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습니다. 식사때마다 막사 뒤편에 식기를 나누어주면서, 아침은 밥에 코골면서 잤다고 보일러실 끌려가 맞고, 점심은 오전에 고참에게 똑바로 인사 하지 않았다고  맞고, 저녁은 오후 훈련때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맞고, 아무튼 밥 먹는 시간이 제일 싫었습니다.

저희 부대에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가, 운행 중에 군용차랑 후미등이 깨졌다고 부대 입구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은 선임병이 있다는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 시절 사고가 나서 제 돈으로 물어주고 부대에 쉬쉬했다가 발각돼서 정비고에 들어가서 커다란 쇠파이프 크기의 너트 조이개로 무지 맞았습니다.

아마 제가 평생 맞을 것은 군대에서 다 맞았는가 봅니다.

3. 각 잡고 웃음 참기
- 혹시 '코미디프로 보고 절대로 웃지 않기'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사람 미칩니다. 이병 때까지 아무것도 안 시키고 침상에 각 잡고 앉아서 절대로 미동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TV만 쳐다보면서 웃지 않으려면, 속으로 '부처님, 하나님, 성모마리아님'을 한 수억 번 찾아야 합니다.

왜 안 웃느냐고요? 신병이 이빨 보이면 몰래 누군가 찾아와 보일러실로 끌고 갑니다. 그리고 맞죠


3. 공포의 보름달빵 먹기
- 군대에는 간식이라고 빵과 우유가 나옵니다. 그런데 군인을 위한 간식이 군인을 위한 고문도구였습니다. 보통 고참이 되면 우유만 낼름 먹고, 빵은 관물대에 처넣습니다. 맛이 없거든요. 하지만 군대에서 음식 남았다고 멀쩡한 빵을 버리면 맞습니다. 그래서 빵을 신병에게 주면서 " 더 먹고 열심히 군생활해라" 라는 말을 합니다.

저희 부대는 소대가 원래 12명 편제인데, 저희는 수송부라 40명 정도 입니다. 여기서 빵을 먹지 않을 군번이 대략 10명 정도이고, 휴가자와 대대 파견자를 포함하고, 여분의 빵을 받아 오니, 대략 하루에 20개 정도의 빵이 남습니다.

20개의 빵이 신병이자 막내에게 모두 전달이 됩니다. 저와 동기 두명이 한 달 내내 서울우유 200ml 하나(가장 작은 사이즈) 가지고 하루에 20개씩 보름달을 먹었습니다. 어떻게 먹느냐고요? 보름달빵을 손으로 꽉꽉 눌러 최대한 부피를 줄이고 빵 5개에 우유 한 모금씩 먹었습니다. 물은 절대로 못 마십니다. 신병은 원칙적으로 침상에서 일어날 수가 없고, 내무반에서 물도 마시지 못합니다.

대통령께서는 빵 먹으면서 오바이트 나올 뻔했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저는 매일 그랬습니다.

아무리 단련해도 군대는 고통스러우며 힘들고 어렵습니다.

구구절절 고생한 군대 이야기,여자들이 들으면 짜증 내는 군대 이야기,제가 잘나서 이야기했을까요?
아닙니다. 군대풍습,병영문화,구타,갈굼 등 이런 일을 교련으로 단련했던 저도 힘들고 죽을 것 같았고, 탈영하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밤에 누워서 내일 맞을게 두려워 총으로 다 쏴죽이고 싶었지만,탄약이 없어서 못 했습니다.

그런데 체벌이 문제가 아니라 군에 들어가 바뀐 환경 때문이라니요?

군기가 센 부대일수록 구타와 폭력, 고통스러운 내무생활이 없어지기 어렵습니다. 속칭 이런 말 때문입니다.

" 네가 편하려면, 밑에 애들 갈구어라."
" 말 안 들으면 집합시켜 패버려."
" 다음 주에 훈련 있으니 미리 애들 조져라."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도 이런 맥락이었을 것입니다. 선임병들이 변태들이라서 후임병을 괴롭히고 갈구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군기가 빡 센 군대, 잘 돌아가는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이번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가 군대의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자유방만한 생활을 하다가 군대와서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군대에 있으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군대입니다.

제가 1992년 군번인데 지금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해병대 가혹행위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이것이 군대도 안 갔다 오신 대통령의 책임은 아닙니다. 군대도 안 갔는데 어떻게 이런 군대 사정을 알겠습니까?

하지만 군대도 안 갔다 오셔서 모르신다면 가만히 있으셔야지, 왜 쓸데없는 말을 하십니까? 비록 병영문화를 바꾸려는 생각이 있었다고 하시면, 이렇게 말씀하셨어야죠.

“자유롭게 자란 아이들을 20년 전과 똑같은 악습의 병영문화로 길들이려는 작금의 군대는 무조건 개혁을 해야 합니다. 저는 제 임기 중에 단호하게 바꾸겠습니다.대통령으로 제가 한 말은 책임지겠습니다."

평창올림픽 유지를 위해 IOC 위원들에게 했던 식으로 하셨어야 했습니다. 대통령의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어쩌면 제가 오해할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군대는 아주 중요한 의미입니다. 지금 수십만 현역군인도 있고, 입대할 장병과 군대에 보낼 부모님도 있으며, 예비역이 대다수 국민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께서 '내가 해봐서 아는데' 시리즈를 이번에 하지 않은 모습은 잘한 일입니다. 행여나
" 내가 병영 입소 체험을 해봐서 아는데."
" 내가 해병대 캠프를 다녀와서 아는데."
이랬으면 지금보다 더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 피 같은 시간을 재벌 아들이 아니라서, 국회의원 아들이 아니라서, 장관과 공무원 아들이 아니라서 군대에 간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에게 상처주시면 안 됩니다. 대통령께서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해 목이 쉴 정도로 뛰어 다니신만큼 이번에도 한번 뛰어주세요. 평창올림픽보다 군대는 매번 " 단호하게 북한 침략을 사전에 막아 내겠다."라고 하신 말을 지켜주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께서 이렇게 말을 꼭 해주세요.

" 제가 군대에 안 가서 아는데, 군대가 힘들 이유가 없습니다. 군대가 힘들고 구타와 잘못된 병영문화가 만연한 이유는 바로 지휘관 때문입니다. 만약 제 임기중에 구타 사고나 유사한 사건이 있으면 지휘관은 무조건 전역시켜버리고, 아니 아예 소대장,중대장,대대장,연대장,사단장,군단장, 모두 구속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제 말은 책임지겠습니다.만약 안되면 저도 옷 벗겠습니다"

가뜩이나 국민이 싫어하는 대통령이시지만, 이런 말 날려주시고 확실하게 책임져주시면, 아마 지지율은 조금 올라갈 듯 싶습니다. 꼭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