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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야기

귀농인 노무현을 통해 본 귀농과 귀촌


 

매주 귀농과 귀촌 관련 글을 발행합니다. 제가 귀농과 귀촌 관련 자료와 정보를 찾으면서 억대 부자 귀농인을 봤지만, 그래도 귀농 성공의 최고수는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그는 귀농하는 목적부터 농사 방법, 귀농인이 가져야 할 지역사회 봉사에 이르기까지, 귀농하는 사람들이 보고 배우고 멘토로 삼을 많은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전직 대통령 노무현이 아닌 귀농인 노무현 전 대통령을 통해 귀농과 귀촌을 생각해봅니다.

귀농 선택을 봉하로 한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은 은퇴 후에 서울이 아닌 여러 지역을 자신이 살 곳으로 생각하고 물색했습니다. 봉하마을은 처음에는 안중에 없었습니다. 특히 부산이나 경남지역의 은퇴자 마을 여러 곳의 정보도 찾으며 고심을 했다고 알려집니다.

그가 봉하마을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권양숙 여사의 권유라고 합니다. 하지만 봉하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그리 좋은 기억이 있는 장소는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두 번이나 배신을 받았던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다른 전직 대통령과 다르게 지방을 선택한 이유는,그가 주장했던 국가균형발전을 실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귀농과 귀촌을 결심하는 계기가 서울과 대도시에 집중된 삶이 절대로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봉하마을이 고향이지만,변변한 집도 없었던 그의 귀농은 도시의 삶과 화려한 인생보다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사는 삶도 오히려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성공의 표본입니다.

초보귀농인이 가져야 할 자세

귀농인은 많은 정보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예전에 농촌에 살던 사람보다 온라인과 책을 통한 지식 습득이 빠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연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마을에 내려가서 마을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경청했습니다. 보통 대통령들이 사람들 앞에 나서 일장연설을 하는 모습이 기본이지만, 그는 농부들 앞에서만큼은 말을 하기보다는 묵묵히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들었습니다.

전직 대통령이라도 농사를 평생 지어 온 사람의 경험과 기술 앞에서는 초보일 뿐입니다. 아무리 도시에서 잘 나간 사람도 돈을 많이 벌었던 직업을 가졌던 사람도 농사를 지으려면 배우고 들어야 합니다.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었던 전직 대통령도 겸손히 들었던 마음과 자세는 우리 귀농인들이 늘 생각하며 실천해야 할 자세입니다.

친환경 농법과 자연을 살리는 귀농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실시해서 유명해진 농법이 바로 오리농법입니다. 화학 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논에 오리를 풀어서 제초 작업을 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그가 처음 이 오리농법을 하려고 했을 때에 쉽게 했을까요?


처음 노무현 대통령이 오리농법을 추진하자고 했을 때는 김해농업기술센터에서도 황당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조류인플루엔자까지 번져서 모두 만류했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오리가 만약 조류독감에 걸리면 살처분하고 그때에는 우렁이를 넣으면 된다고 강행했습니다.

친환경 농법을 꿈꾸며 귀농을 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화학비료를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친환경 농법은 정말 손이 많이 가고 힘듭니다. 제초제 뿌리면 될 것을 오리 새끼 사다가 키우고 방생하고 신경을 써주는 과정은 일반 농법보다 두 배 세 배 힘이 듭니다.


저희 집 텃밭에 있는 열무입니다. 잎에 구멍이 뚫려 있어 보면서 늘 마음이 아픕니다. 텃밭에 있는 농작물은 모두 저희 식구들이 먹으려고 재배하기 때문에 농약과 화학비료를 절대 사용하지 않습니다. 친환경 비료나 농약은 가격이 무척 비쌉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고민하고 자료를 찾고 있지만, 이 모든 일은 일반 농약을 뿌리며 농사를 지을 때보다 더 신경도 쓰이고 힘듭니다.


친환경 농법은 자기 자신만 잘한다고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많은 논 중에서 중간에 자신의 논만 친환경 농법으로 농약을 안 치면 주위 논에서 몰래 제초제를 뿌리기도 합니다. 이처럼 친환경농법은 주위 사람과의 마찰로 힘이 들기도 하지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노무현 대통령은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2008년 처음 오리농법을 시행할 당시에 2만 5천평에 14명의 작목반원, 그리고 겨우 10%의 참여율을 보였던 친환경 농법이 2009년에는 열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평균 수매가 4만 원이었던 시점에서 봉하오리쌀 브랜드는 6만 5천원을 받아 수확은 10%,가격은 30% 늘어나 실질소득은 50%가 증가했습니다.

올해 봉하마을에  따르면 생태농업,환경농업은 50여 만평으로 규모가 크게 확대되었고,참여 마을도 봉화산,화포천 유역 5개 마을, 180명의 작목반원이 함께 하고 있다고 합니다. 수익과 소득이 늘어나기 때문에 처음에 반대하고 참여를 하지 않았던 사람이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유심히 살펴봐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친환경 농법을 위해서 봉하마을의 습성을 공부하고,습지를 보전하는 방법과 숲 가꾸기 화포천을 살리는 일을 병행했습니다. 지금 누군가는 자연을 파괴하는 모습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친환경농법이 처음에는 어렵고 힘들지만,결국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귀농 생활,이상과 현실의 어려움

귀농은 그리 만만한 생활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상적인 생각과 꿈을 가지고 귀농과 귀촌을 꿈꾸지만 현실은 참으로 많은 노동력과 인내,그리고 참을성을 요구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일하던 영상을 캡쳐한 이미지입니다. 일이 힘들어서 농담조로 일 안하겠다고 했다가 바로 핀잔을 받고 열심히 일하는 그의 모습, 땀을 흘리면서 헉헉거리던 그의 얼굴을 보면서 지금의 제 모습과 비교해봤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보다 훨씬 젊은 저도 조그만 텃밭을 괭이로 작업하는 일을 하면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이 비 오듯 흐릅니다. 아침저녁 물 뿌리기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씨를 뿌려도 자라는 속도나 싹이 오르는 발아율은 형편없습니다.

누군가 그저 사진으로 볼 때에는 별거 아니겠지만, 실제 농사를 지어보면 정말 힘이 듭니다.귀농 생활의 어려움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무리 방충망을 해놓고 모기향에 전자 해충 퇴치기를 설치해도 밤만 되면 해충과 나방,모기,파리가 늘 저희 집 주변을 맴돕니다. 저와 아내는 모기인지 벼룩인지 모를 존재에게 늘 고통을 받습니다.

단적인 모습으로 보여 드린 일입니다. 시골 냄새라고 불리는 소똥 냄새나 시골 특유의 하수구 냄새와 각종 벌레는 도시에서만 살던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소중한 존재가 있습니다.


한 달에도 수십 번씩 자전거를 타고 논을 돌아보고, 소중한 나락을 오리들이 삐댄다고 걱정하는 그의 모습에서 봉하오리쌀이 출하되었던 사실이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농부의 마음이 왜 때 묻지 않고 소중한지 아십니까?
뿌린 만큼 거두고 땀 흘린 대로 자연은 우리에게 돌려주는 진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전직 대통령의 삶으로 해외 특사나 골프장보다, 쌀 한 톨을 수만 번의 노동과 손길을 통해 거두면서, 그가 생각했던 마음은 바로 농부처럼 자연의 순리와 소박한 삶의 행복을 늘 생각했다는 사실입니다.


저희 집 밥상은 늘 초라합니다. 점심은 그저 열무 비빔국수,반찬은 늘 집에서 담근 김치나 겉절이, 밭에서 따온 상추와 된장입니다. 고기반찬도 그 흔한 생선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밥상은 행복합니다. 반찬이 없어서 김치에 고추장과 상추를 넣고 비벼 먹어도, 아이의 웃음과 아내의 미소가 저를 기쁘게 만들어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식사기도까지 합니다.

세상에는 비싸고 화려하고 맛난 음식이 있습니다. 비록 거칠고 소박한 밥상이지만 저는 밖에서 먹는 화려한 음식보다는 행복한 웃음이 넘치는 저희 집 밥상이 좋습니다.

 


정치 블로거로 매일 정치 이야기를 쓰면서 자료를 찾았던 어제보다, 오늘 귀농인 노무현의 자료와 사진,동영상을 보면서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가 보여주었던 모습은 썩어빠지고 돈과 권력에 물든 정치인들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치솟는 분노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5월23일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2주년이 됩니다. 저는 그날을 피해서 전직 대통령 노무현이 아닌 귀농인 노무현을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 있었다면 제가 쓰는 귀농인 인터뷰에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동작 현충원의 참배객이 연간 100만 명인데,봉하마을이 연간 100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이 땅의 대통령 그 누가 이런 추모를 받고 살고 있습니까? 그 누가 시켜서일까요?

귀농인 노무현이 살아 있었다면 더 많은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귀농전도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가 봉하 마을을 변두리 아무것도 없는 농촌을 살렸듯이 재임시절 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리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이 가졌던 정신이 귀농인 노무현에게 끝까지 이어졌던 일화가 있습니다.

오리농법의 창시자였던 후루노 다카오 박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물었습니다.

"철새가 바이러스 매개체면 과거 수천 년 간 조류 독감이 자주 퍼졌을 것이다. 그런 일이 없지 않았는가? 현대에 와서 밀폐한 공장식 축사에서 바이러스가 세대 번식해 조류독감으로 번진다. 지난해 한국에서 오리농사가 모두 중단된 가운데 유독 봉하 마을에서 대통령님이 오리농업을 시작하신 동기가 무엇입니까?"

노 전 대통령은 일, 이초쯤 있다가 짤막하게 대답하였습니다.

"그게 원칙이니까요"


전직 대통령에서 귀농인 노무현으로 이어졌던 자연을 생각하며 모든 지역이 균형 발전되어 농촌과 도시 모두가 잘살 수 있는 "사람사는 세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게 원칙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