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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제주도 4.3 사건 위령제가 무서워 가지 못하는 대통령



내일이면 63주년 제주 4.3 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열립니다.많은 사람들이 제주 4.3사건에 대해
글을 쓰겠지만,남들이 알 이야기를 쓰는 것은 의미가 없기에 오늘 포스팅을 올립니다.저는 오늘
제주 4.3 사건이 우리 현대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사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지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 제주도 4.3 사건 위령제에 한 번도 참석을 하지 않았습니다.국가
행사나 지역주민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대규모 행사에 대통령이 취임 이후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도대체 이명박 대통령이 제주도 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주도 4.3 사건의 핵심 인물로 이승만을 저는 꼽습니다.그것은 제주 4.3 사건이 그당시,한국의
불안한 정치 현실과,좌우익의 대립,그리고 정권을 지키기 위한 한 남자의 야심에서 비롯한 사건이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특히,이승만은 친일파를 대거 등용하여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고,지켜냈습니다.
친일파와 이승만의 모습은 아래 포스팅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韓國/정치] - 제주4·3사건 학살 이승만 기념관?노무현의 사과를 기억해라.

제주도 4.3 사건의 본질에서 우리는 한 명의 남자를 통해 한국의 보수 세력의 우스꽝스러움을 제대로
엿볼 수 있습니다.그 남자는 바로 유재흥입니다.


이승만 정권 시절 잘 나가는 사람은 친일파가 대부분이었기에,유재흥도 일본 육사출신입니다.
제주도 4.3사건이 터지고 1949년 3월2일 제주도지구 전투 사령부 지휘관으로 대령 유재흥이
내려옵니다.유재흥 대령은 제주도에 내려오자 3월 25일 기한의 사면계획을 발표하는 선무공작을
실시합니다.3월12일부터 4월12일까지 유재흥은 엄청난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과장되었다는 미군비밀문서에도 무장유격대가 250명인데 유재흥은 전과로 무장 유격대 2,435명을
살해하였고,동조자는 무려 3.600명을 생포했다고 했습니다.이것이 바로 부임한 이후 한 달동안 올린
전과(?)라는 사실은 그가 무고한 양민을 학살했다는 증거입니다.


제주도민을 학살하는데 탁월한 전과를 올렸던 유재흥은 대한민국 군인이라면 정말 부끄러워야 할
업적을 올립니다.바로 1개 사단 해체,2개 군단 해체를 하게 만들고,미군이 전시작전통제권을 갖고
갈 수밖에 없도록 했기 때문입니다.전작권을 미군이 가지고 갔던 이유가 바로 유재흥 때문이란
사실은 군인들이 치를 떨 만큼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6.25전쟁 당시 의정부를 뚫림으로 북한군의 서울입성이 단 사흘만에 가능케 하였고,중공군이 오는데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군기 빠진 후퇴를 벌여 1.4 후퇴를 하게 만든 장본인이 유재흥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그는 3군단장 시절에 대한민국 군인이라면 누구나 숨기고 싶은 현리전투에서
사단장 통솔과 부대지휘를 하지도 않고 정찰기를 타고 후방으로 도망쳐 버렸습니다.

패전을 거듭하고,부대 해체를 하게 만든 지휘관이었지만 저토록 승승장구했던 그가 바로 대한민국
보수 세력의 역사입니다.이런 그가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을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면
대한민국의 진정한 보수와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대한민국의 역사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주도는 같은 날에 제사를 지내는 집들이 많습니다.그것은 바로 제주 4.3사건 당시에 한번에 학살된
집들이 많기 때문입니다.특히 한 동네가 몽땅 한날한시에 끌려가서 죽었던 일은 제주에서는 너무도
흔한 사건이라,제사를 한꺼번에 마을 전체가 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주에는 유명한 관광지가 많습니다.그런데 이런 관광지마다 제주도민들에게는 너무나 아픈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정방폭포,다랑쉬오름만해도 그 안에 유골과 시체가 겹겹이 쌓였던 곳입니다.

문제는 제주도민들은 이런 아픔의 역사를 그동안 소리 내지도 못했었습니다.제주에서 축제를 하며
즐겁게 웃다가,죽은 사람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통곡을 하자,경찰이 출동했던 과거의 역사는
제주도민이 얼마나 한과 설움을 가슴에 담고 말도 못했는지를 알려줍니다.

제주도 4.3사건 희생자는 빨갱이였기에 누가 왜 죽었는지를 자손들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그러나
그들은 빨갱이도 아니고,지식층도 아닌 그저 평범하게 살았던 양민이고,순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주인들에게 제주 4.3사건은 단순한 역사가 아니라,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형제가 왜 죽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빨갱이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피맺힌 절규입니다.



제주도 4.3사건은 제주도민에게 반세기 동안 숨겨야 했고,고통당했기에 제주도민 대부분은 정치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를 기대했었습니다.그런 염원이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시작
노무현 대통령 당시 제주도민들에 대한 사과로 어느 정도 풀렸습니다.

그러나 아직 남아 있는 제주 4.3사건의 억울함이 바로 제주 4.3사건이 아직도 대한민국 모두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고,당시 제주도민을 학살했던 가해자 보수 세력들의 제주 4.3사건 흔들기입니다.

제주 4.3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이명박 대통령은 한 번도 제주 4.3사건 위령제를 가지 않았고
내일도 가지 않을 예정입니다.
제주도에 이명박 대통령이 오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에 제주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대구보다 훨씬 인기가
높았습니다.그 이유는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제주 4.3사건의 사과를 더 이어나가
달라고 제주도민의 열망이었습니다.

그런데,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국방부는 제주도 4.3사건은 대규모 좌익반란이라고
규정하고 교과서의 수정을 요구했습니다.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국방부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4.3 사건에 대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잇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제주 4.3사건 관련 예산은 계속 줄어들고,제주 4.3사건 추념일 지정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그리고 대통령은 한 번도 오지 않고....


제주 사람들은 제주 4.3사건에 대해 흉하다고 이야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그것은 그들에게 제주
4.3사건은 숨겨야만 했던 과거이고,숨길 수밖에 없는 아픔이었기 때문입니다.

제주는 타지역에 비해 마을 사람들이 함께 살고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던 순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주 4.3사건 당시에 서로를 죽여야 하고,마을 사람끼리 고발을 해야 살아남았습니다.
아픈 역사는 아직도 제주에 남아있습니다.그런데 오히려 외지에서 들어온 가해자들은 제주 4.3사건이
빨갱이들이 벌인 일이라고 법원에 계속 제소를 하고 패소를 했습니다.

제주 사람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 아버지,내 엄마가 왜 억울하게 죽창에 찔려서 폭포 밑으로 내동댕이쳐지고,왜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지 물으면 안 되었는지 알고 싶었고,그 일에 대해서 진실과 사과를 받고 싶었을 뿐입니다.

제주도민들은 제주 4.3사건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원하지 않고,보상금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사는 나라의 대통령이 따뜻하게 위로를 해주고,손을 잡아주길 바랄 뿐입니다.

국민에게 사과하는 대통령과 국민의 아픔 앞에서 웃었던 대통령
누가 국민을 사랑했던 사람인지,우리는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오지 않는 대통령을 통해
너무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