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을 위한 화해 방안이 '박정희 찬양?'
지난 3월 12일 제주에서 '화해와 상생을 위한 제주 4·3 도민 대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제주 4·3희생자 추념일이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았으니, 토론회가 열릴 수 있지만, 이번 토론회는 시작부터 신기했습니다.
보통 토론회는 제주 시민단체나 유족회가 주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새누리당 제주도당이 주최했기 때문입니다. 과거 새누리당이 공식적으로 토론회나 행사를 주관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기에 더욱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새누리당 제주도당이 주최하고, 4.3유족회와 경우회 도지부가 공동주관하여 진짜 제대로 된 토론회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4.3유족회와 경우회는 각자의 입장이 다른 단체이다. 4.3유족회는 민간인 희생자들이고, 경우회는 4.3사건당시 토벌에 앞장섰거나 무장대에 희생된 경찰들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는 이 두 단체가 서로 입장이 달라 매번 다른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 국민대통합 기획단장, 제주 4·3 토론회에서 박비어천가를 부르다'
새누리당 제주도당이 주최한 '화해와 상생을 위한 제주 4·3 도민 대토론회'는 유족과 시민 등 500여 명이 참석하는 등 시작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첫 번째 주제 발표자로 나선 최홍재 대통령직속국민대통합위원회 기획단장의 '지금은 국민대통합시대'라는 발표에 황당하기만 했습니다.
▲ 최홍재 단장이 제주 4·3 토론회에 대통합 사례로 발표한 자료 ⓒ제주의 소리
최홍재 국민대통합 기획단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은 국민대통합 주요 사례'라고 하면서, 대통합 사례로 '잘 살아보자'와 '새마을운동'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최 단장은 “어두운 면도 있었지만 6.25전쟁으로 빈곤에 허덕이던 196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해외로 나가 ‘우리나라에 고속도로를 뚫겠다’며 돈을 빌려왔다” 1면서 박정희라는 인물을 찬양하는 식으로 발언을 이어나갔습니다.
참석자들이 제주 4·3 도민 대토론회에 갑자기 새마을운동 이야기가 나오자 어리둥절했지만, 최 단장은 "새마을 운동 당시에는 전국민이 다같이 잘 살기 위해 하나 됐다"는 말도 언급했습니다.
최홍재 국민대통합 기획단장의 발표가 황당했는지 토론회 사회자였던 유철인 제주대 교수조차 "오늘 발표내용은 마치 정부 정책 홍보물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 언급되지 않아 아쉬웠다. 자리에 함께 했다면 묻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최 단장이 주제 발표 이후 토론회는 참석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최홍재 국민통합 기획단장은 뉴라이트 계열 시대정신 편집위원과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거쳐,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은평갑 국회의원 후보로 나왔었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국민소통비서관실 선임 행정관으로 근무하다 국민대통합위원회 기획단장에 임명됐다.
'국민대통합, 과연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국민대통합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습니다. 인수위가 '특별위원회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설치했고, 지난 2013년 5월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이 대통령령으로 제정됐습니다.
▲ 국민대통합위원회에 게재된 위촉위원과 정부위원, 정부위원은 모든 장관들이 망라되어 있다. ⓒ국민대통합위원회 홈페이지
현재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은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입니다. 위원회에는 위촉위원이라는 시민단체 위원과 정부위원이 있습니다.
위촉위원은 각계 인사이기 때문에 그만두고라도, 정부위원은 그냥 박근혜 정부 장관들을 모두 나열해놓고 있습니다.
과연 장관들은 자신들이 국민대통합위원회 정부위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대통합을 외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오히려 갈등이 더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또한 갈등을 조정하겠다는 갈등관리위원회는 축소되고만 있습니다. 2
국민대통합위원회는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강정 해군기지'나 '밀양송전탑', '쌍용차 사태' 등은 쳐다도 보지 않고, 그저 용산 화상 경마장 시위 현장에 나가 마사회 입장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기도 했습니다. 3
국민과의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이런 위원회가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오히려 갈등을 더 유발하는 대통령'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대통합을 위한 갈등 조정 능력을 키우는 일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정부는 갈등을 더 유발하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주도민들이 제주 4·3을 말하면서 꼭 요구하는 일이 박근혜 대통령의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 참석입니다. 대통령이 자신이 제정한 국가 추념일에 참석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오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오는 일이 무슨 대단한 희망사항이라고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지난 수십년 간 정부로부터 외면받았던 제주도민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제주 4·3 희생자추념일에 공식적으로 참석한다는 자체가 자신들의 고통과 갈등을 해결해주겠다는 강한 의지로 보고 있습니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를 방문해 사건 발생 55년 만에 처음으로 국가 차원의 잘못을 공식 사과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과거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억울한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은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분들의 충정을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역사의 진실을 밝혀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진정한 화해를 이룩하자는 뜻”이라고 밝혔습니다.
화해와 상생을 말하면서 제주 4·3이 아닌 박정희와 새마을운동 찬양을 외치는 박근혜 정부의 모습으로는 절대 진정한 화해와 상생, 국민대통합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제주 4·3이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제주도는 이번 제주 4·3희생자 추념일에 박근혜 대통령이 오느냐 마느냐를 놓고 말들이 많습니다. 지금 제주도민에게 필요한 것은 '박정희와 새마을운동 찬양'이 아닌, 박근혜 대통령의 제주 4·3희생자 추념일 참석입니다.
간단한 일조차 하지 못하면서 국민대통합을 외치며 세금을 소모하는 모습을 보면, 도대체 누가 갈등을 만들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