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최 판사를 공격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고, 한 명의 판사가 이와 비슷한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 '튀는 판사' 이정렬의 이유 있는 고집스러움
“대한민국과 우리 후손의 미래를 위해 한-미 에프티에이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신 구국의 결단. 그런 결단을 내리신 국회의원님들과 한-미 안보의 공고화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대통령님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것도 정치편향적인 글입니다”
정치 편향적인 글을 올렸는데 어쩔거냐고 묻는 글을 과감하게 올린 사람은 현재 창원지법 부장 판사로 근무하는 이정렬 판사입니다.
이정렬 판사는 그동안 톡톡 튀는(?) 그리고 아무도 상상 못할 판결을 내렸던 인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특정 종파에 속하는 사람이 종교상의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사안에서 무죄 선고.
▷예배방해혐의로 약식기소된 목사에게, 신앙생활에 정진하기보다 세속적인 이익만 추구했으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전혀 반성하지 않고 특히 교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하는 목사가 오히려 범행을 주도했고, 교회소유의 부동산을 임의로 매각하는 등 교회재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으며 교단심판위원회에서 면직처분까지 받았음을 이유로, 검사의 약식기소에도 불구하고 실형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
▷네차례나 예비군훈련에 불참하여 벌금형을 선고받았음에도 또 다시 늦잠자다가 훈련에 참가하지 않은 사안에서, 양심의 자유를 지키겠다는 사람들도 1년6월씩 징역형을 선고받는데, 단순히 늦잠을 자느라 모든 국민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국민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이유로 4개월의 실형 선고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급식비 수천만원을 가로챈 어린이집원장에게, 피고인의 어린이집은 구에서 위탁받아 저소득층어린이를 위하여 운영되는 지극히 공적인 목적이 있는데도 어린이들의 먹거리 구입비용에 사용해야 할 돈을 횡령한 것은 죄질이 무겁다는 이유에서 실형을 선고
▷억대의 내기골프를 하다가 도박죄로 구속기소된 사람들에게, 내기골프는 우연성이 아닌 기량에 따라 승패가 갈리므로 도박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죄 선고.
그의 판결을 놓고 그를 진보 판사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은데, 제가 보기에는 어떤 이념적인 사람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내기 골프 무죄 판결도 있지만, 예비군 훈련 불참 실형 선고와 어린이집 급식비 횡령 사건을 봐도 어떤 상식의 기준을 높이 적용한 점이 있을 뿐 굳이 진보와 보수 편향이라는 말을 적용하기는 곤란합니다.
이정렬 판사가 단순하게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일을 벌이고 판결을 내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길더라도 아래에 이정렬 판사가 올린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그가 무조건 튀는 행동으로 살았던 법조인은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정렬 판사가 올린 글
1. 글을 시작하면서
저는 1969년에 태어났습니다.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1994년에 사법연수원을 23기로 수료하고, 3년간 법무관으로 군 복무를 마친 다음, 1997년에 지금의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판사로 첫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2년간 근무하고, 지금의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2년을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전주지방법원에서 3년간 근무하였고, 다시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1년여를 근무한 후, 2005년 7월에 장기해외연수 중인 처를 따라 휴직하여 지금 미국에 있습니다. 휴직 기간이 올해 5월 19일까지니까 이제 제 일을 다시 시작하기까지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제 이력을 적은 것은 제가 23살이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28살이라는 아주 어린 나이에 판사가 된 후 1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많은 혜택과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았음을 말씀드리고자 함입니다.
2. 판사가 되기 전과 판사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사법연수원에 있던 시절, 미국에서 이른바 로드니킹 사건이 생겼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미국에서의 흑백간 인종 갈등에서 비롯된 일인데 엉뚱하게도 미국에 있는 우리 교포에게 불똥이 튀어 버린 사건입니다. 그 사건이 일단락된 후 연수원 교수님들과 이야기하던 도중에 어느 교수님 한 분께서 말씀하시기를 미국에서 흑백갈등이 심각한 사회 문제라고 이야기되어지고 있지만 우리 법원에서 판사와 일반직 사이의 갈등은 미국의 흑백갈등보다 더 심각하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때만 해도 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고 있던 저로서는 그 말씀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생기지도 않았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의미가 있는 듯한 말씀으로 들렸고 그 말씀의 의미를 이제야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 판사가 된 후 저는 제가 아주 훌륭하고 잘난 사람인 것으로 알았습니다. 특히 저보다 연배가 높으신 계장님, 주임님들께서 저와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실 정도로 어려워하시는 것을 보고 어린 나이에 출세했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3년간의 법무관 생활을 마치고 판사가 된 덕택에 고작 1년 동안의 배석 판사 생활만을 하고 판사가 된지 겨우 1년만에 단독 판사로서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액재판부였습니다. 재판 날마다 같이 일하는 계장님, 주임님, 법정 경위님과 함께 식사를 할 때면, 그 분들은 저를 상석에 앉도록 하셨고 저 또한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식사를 하든, 술을 마시든 항상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제 쪽이었고, 다른 분들께서는 항상 제 말에 맞장구를 쳐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분들께서도 하시고 싶은 말씀이 많으셨을텐데... 일을 하면서 때로는 즐겁기도 하고, 때로는 마찰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 마찰이란 것들도 대체로 일하면서 호흡이 맞지 않아 생긴 일들이었습니다. 그 때마다 계장님들, 주임님들을 심하게 질책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분들은 제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죄송하다는 말씀만을 하실 뿐이었습니다. 한번은 일요일 날 당직 업무를 마치고 돌아가던 중 민사과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안을 들여다보니 우리 재판부 주임님께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 옆에는 잘 모르는 여자 분 한 분도 같이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누구시냐고 여쭈었더니 그 주임님의 사모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일이 많길래 그것도 일요일 날, 사모님까지 나오셔서 일을 하시나 싶었습니다. 게다가 그 사모님은 전업 주부라고 하셨는데도 그 주임님의 일을 하시고 계셨습니다. 사실 주임님의 일이라는 것이 봉투 뜯고, 붙이고, 송곳질하고, 철끈으로 묶고 하는 일이 대부분이라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안쓰럽기는 했지만 제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저는 그냥 제 갈 길을 그대로 가 버렸습니다. 또 재판부를 옮길 때나 중앙법원으로 전근을 가게 되었을 때 주임님들께서 제 이삿짐 싸는 것을 도와 주셨습니다. 말이 도와주신 것이지 거의 도맡아 하시다시피 하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저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저는 아마도 한 나라의 왕보다도 더한 대접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대접과 제 지위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해 보지 않았는데도 그 어린 나이에 저는 왕으로서 군림했었고, 또 그것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3. 바뀌어 가는 생각 1999년에 지금의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옮겨서 1년간 배석판사로서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다시 단독 판사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중액 재판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일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주임님을 만나야 할 일이 생겼는데 연락이 되지 않아 민사단독 1과에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주임님께서는 무슨 급한 일이 있었는지 자리를 비운 상태였는데, 계장님께서는 송곳을 들고 기록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주임님 하실 일을 왜 계장님이 하시느냐고 핀잔 섞인 말씀을 드렸더니, 우리 재판부 일인데 아무나 하면 어떠냐는 대답을 하셨습니다.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판사의 일, 계장님의 일, 주임님의 일이 나누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따지고 보니 어느 누가 해도 관계없는 일이라는 그 말씀이 정말 맞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후로 과에 가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제가 봐야 할 기록이 있으면 기록을 가지러 갔었고, 다 본 기록이 있으면 과에 기록을 나르기도 했습니다. 기록 운반하는 일이 꼭 주임님의 일은 아닌 것이고, 제가 하든 누가 하든 어느 누가 해도 관계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저와 같이 일하는 계장님, 주임님께서는 항상 미안해 하셨고, 과에 계신 다른 계장님들과 주임님들께서는 저를 신기하게 쳐다보셨습니다. 그러면서 훌륭한 판사라는 칭찬을 하셨습니다.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과에 가는 일이 참 즐거웠습니다. 기록 조제도 해 보았습니다.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 스스로 짜 놓은 기록인데도 기록을 읽다보니 다른 사건의 문건이 끼워져 있어 다시 기록을 풀고 묶는 일이 꽤 있었습니다. 2001년에 전주지방법원으로 근무 장소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영장전담과 경매 업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주지방법원에는 경매계가 7계까지 있었는데 그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모두 제 도장을 필요로 하다 보니, 일을 하면서 저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된 분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분들께서 이제는 저를 왕으로 대접해 주시는 것도 모자라 황제처럼 대우해 주셨습니다. 심지어는, 도착해서 얼마 되지 않아 어느 계장님 한 분께서 하얀 목장갑을 끼고 오셔서는 이삿짐 푸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의는 감사하나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고 바쁘실텐데 하시던 일 계속 하시라고 좋게 말씀드릴 수도 있었지만, 법원 계장님까지 되시면서 이런 잡일을 하시려고 그러시냐고 상처를 드리고야 말았습니다. 서울에서 그랬던 것처럼 전주에서도 다 본 기록을 민사신청과로 옮겼고, 볼 기록이 없으면 민사신청과에 가서 봐야 할 기록이 없는지 찾아다녔습니다. 역시나 계장님들 주임님들께서는 고마워하시면서 미안해 하셨습니다. 차츰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제가 기록을 나르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뿐더러 오히려 당연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4. 생활하면서 귀에 거슬렸던 말들과 법원 가족이라는 말
전주지방법원에서 근무하던 때였습니다. 기록을 들고 다니는 제 모습을 보신 신청과장님께서 “이런 것은 직원들 시키지 왜 손수 하시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의 뜻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제 대답은 “저도 전주 법원에 근무하는 직원입니다”였습니다. 과장님께서는 크게 웃으셨고, 저도 제 사무실로 돌아 와서 썩 괜찮은 답을 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직원’이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치 판사는 직원이 아닌가 하는 반발감이 생깁니다. 그런데 워낙 평범하게 사용되는 말이다 보니 제 입에서도 가끔 직원이라는 말이 나올 때도 있는데, 딱히 적당한 용어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또한 ‘일반직’이라는 말도 별로 듣기 좋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판사는 무슨 특별하고 특수한 직책인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국가공무원법에 따르는 용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다지 좋은 어감을 가진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재’라는 말도 싫어합니다. 많은 주임님들께서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오셔서는 결재받으러 왔다고 말씀하셨었습니다. 그런데, 결재라는 말은 상급자로서 하급자가 기안한 문서를 확인하고 그것이 효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저와 같이 근무했던 계장님들이나 주임님들께서 기안한 문서를 제게 주신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다만, 판사인 제가 직접 작성하여야 할 제 명의의 문서를 저와 같이 근무하는 주임님께서 대신 작성해 주셨고, 제가 한 일은 제 이름 옆에 제 도장을 찍는 일이었을 뿐입니다. 그 문서를 작성하시면서 그 주임님들은 어떠한 창의력도 발휘하신 바 없으실 뿐만 아니라 그 문서 어디에도 그 주임님의 성함이 표시되지 않으니까, 제가 그 문서에 도장을 찍는다 하여도 그것을 결재라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제가 계장님들이나 주임님들의 상급자가 아니기 때문에 저는 결재자가 될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법원가족이라는 말을 보게 되었습니다. 얼핏 생각해 보니 괜찮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랑과 정으로 뭉친, 직장이면서도 가정과 같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말... 언제나 다른 분들로부터 떠받들어지고 있던 저로서는 가족이라는 말에 정감이 갔습니다.
5. 함정
이제 요즈음 우리 직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께서 이번 일이 발생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 생각하고 계시고, 또한 그 해결책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많은 고민들 속에 저 또한 한 마디를 보태는 것이 약간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일반직’이라는 용어를 싫다고 말씀드렸지만 달리 지칭할 용어를 찾을 수 없어 싫어하면서도 그 말을 쓰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말씀을 드리기 어렵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그 용어를 쓰려고 합니다. 널리 양해를 바랍니다. 판사와 일반직은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요? 자신할 수는 없지만, 민사소송법이나 형사소송법에는 판사와 일반직 사이의 관계를 규정한 부분이 없는 것으로 기억됩니다. 저는 판사와 일반직은 법률상 각자의 업무가 분담되어 있고, 그 관계는 협조 또는 협력 관계라고 알고 있습니다. 판사와 일반직의 업무가 서로 직접적인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관한 법률 규정은 법원사무관 등이 작성한 변론조서나 공판조서에 재판장이 인증을 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 아닌가 싶습니다. 그 외에는 분쟁의 해결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 일을 해 나가는 관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건의 핵심에 계신 판사님이 쓰신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저는 그 판사님을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합니다. 더군다나 그 판사님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그 판사님의 글 중에서 제 눈길을 끄는 몇 단어가 있었습니다. 지시, 지휘 감독, 지도라는 말... 그 판사님께서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들을 쓰셨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런 말씀들을 자주 사용하시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 판사님에게 있어 일반직은 지시, 지휘 감독 또는 지도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지시, 지휘 감독, 지도의 대상이라는 것은 결국 부하직원이라는 뜻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판사가 일반직에게 지시를 하고, 일반직 공무원을 지도하거나 지휘 감독할 수 있는 법률상 근거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관련법 규정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확신하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판사에게는 지휘, 감독의 대상이 되는 부하직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판사에게 그러한 부하직원이 있다면 판사는 직장 상사로서 부하직원을 평가할 수 있는 권한, 예컨대 기관장에게 포상을 상신하거나 높은, 때로는 낮은 점수를 줄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판사에게 그런 권한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들어 본 바도 없고, 그런 권한을 행사해 본 바도 없습니다. 일반직을 부하직원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판사가 왕처럼 떠받들어진데서 비롯되었다고 보면 틀린 생각일까요? 판사와 일반직의 관계가 법률이 정하고 있는 바대로 서로 협력하고 돕는 관계로 인식되어지고 또 그런 업무 수행 방식이 정착되어 있었다면 정말로 판사가 일반직을 지휘, 감독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 판사님께서 쓰신 글을 읽으면서 이번 사건의 원인은 그 판사님 개인이 가지고 계신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판사와 일반직의 관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우리의 관행에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법원 가족이라는 말은 참으로 적절한 말입니다. 판사와 일반직은 서로 상명하복의 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말이 아니면 도저히 그 관계를 설명해 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랑과 정으로 맺어지지 않고는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관계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가족이란 항렬 우선, 연장자 우선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판사가 일반직보다 높은 항렬에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국가공무원법이 정하고 있는 직급 또는 직위라는 개념을 가족에 있어서의 항렬과 비슷하게 취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항렬이 높다는 것은 존경받을 수 있고 존중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될 수는 있어도, 항렬이 낮은 사람을 지휘, 감독하거나 그 사람에게 지시할 수 있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권한 부여에 관한 근거 없이 직위나 직급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지휘, 감독하거나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볼 정도로 우리 법원이 그렇게 비합리적인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연장자 우선의 원칙은 법원 가족을 설명할 수 있는 적당한 말이 아닐 듯싶습니다. 적어도 저와 함께 근무했던 계장님들은 모두 저보다 연배가 높으신 분들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저에게 아무 것도 지시하신 바 없었고, 저를 지휘하거나 감독하려 하신 바 없습니다. 6. 깔끔하지 못한 마무리 제가 다니고 있는 직장은 다른 사람들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을 주된 업무로 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직장은 그 안에서 생긴 분쟁조차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져 보면, 우리는 우리 안의 다툼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를 가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툼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는커녕 우리 직장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조차도 제도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 일의 원인이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지 못한 우리 직장의 뼈대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시스템상의 문제, 구조적인 문제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흑백갈등보다 더 심하다는 판사와 일반직 사이의 갈등이 표출된 이번 일은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앞으로도 또 생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재임용도 한 번 받지 않은 성숙되지 못한 판사이고, 나이 마흔도 되지 않은 어린 사람이지만, 감히 판사님들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일반직을 보는 눈과 인식을 좀 바꿉시다. 일반직은 판사의 부하직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판사의 권한을 일반직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권한을 얼마나 나누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마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계장님들은 받아쓰기 하는 사람, 주임님은 송곳질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져서는 판사님들이 일반직을 존중하거나 존경하는 마음이 쉽게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끄러운 말씀이나, 전주지방법원에 근무하던 시절 주사보 승진 시험을 앞둔 주임님들을 상대로 민사법 강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서기보 공채 시험, 주사보·사무관 승진 시험에 나왔던 기출문제들과 많이들 보신다는 문제집의 문제들을 함께 풀어보면서 매우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록 제가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고는 하나, 과연 제가 공채 시험이나 승진 시험을 보게 된다면 통과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분들은 저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계셨고, 제가 과연 그 강의를 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판사님들이 다른 판사님들을 보면서 다들 실력 있고 뛰어난 분들이라고 생각하듯이 우리 직장에 근무하고 있는 모든 분들이 대단한 인재들입니다. 그런 인재들로 하여금 받아쓰기와 송곳질과 같은 기계적인 일만을 하게 한다는 것은 엄청난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일반직은 지금 당장 판사의 업무를 한다 하여도 큰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그분들도 당연히 존경받고 존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사건을 빨리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제 능력 밖인 것 같습니다.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지 못 해 죄송합니다. 오직 이번 일이 올바른 방향으로, 하지만 원만하게 잘 해결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돌아가서 일을 시작해야 할 날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전까지는, 아니 당장 내일이라도 이번 일이 꼭 해결되었으면 합니다. 속상한 마음에 밤잠 이루지 못하는 날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부푼 가슴으로 다시 출근해서 일을 하게 되는 행복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돌이켜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행동과 말을 많이 했습니다. 마음 깊이 반성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높이 받들어 주셨는데도 저로부터 상처만을 받으셨던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서 깊이 사죄드립니다. 특히나 가장 많은 상처를 드렸던 분께서 어디에 근무하시는지 휴직 전에 코트넷을 통해 검색을 시도해 봤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혹시 저 때문에 그만 두신 것은 아닌지 착잡합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이정렬 판사는 '진보편향적인 사람은 판사를 하면 안된다는 말이겠지,그럼 보수 편향적인 판사들 모두 사퇴해라, 나두 깨끗하게 물러나 주겠다.'라며 자신을 진보 편향적인 사람으로 부르지만, 사실 그는 어쩌면 저런 잣대조차 왜 나누어야 하는지 답답했을 사람입니다.
<우리법연구회> 회원이라는 사실만으로 자꾸 진보라 부르는 모습을 저는 싫어합니다. 제가 왜 진보와 보수를 나는 것을 우려하느냐면,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순간.이정렬 판사는 빨갱이로 둔갑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튀는 판결을 해도 그는 진보정치에 투표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법과 상식의 잣대로 판결했지만,대한민국 대통령과 사법부는 그에게 닥치고 명령복종을 원했는지 모르겠습니다.
■ 사법부의 개혁을 원했지만, 일개 판사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고작.
대한민국 검찰을 비롯한 사법부의 문제점은 정치권력의 노예라는 점을 떠나, 기득권 세력들이 포진해서 권력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썩어가고 있어도, 수십 년 동안 정화가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번 한미FTA 비준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소견을 밝혔던 판사 중에는 변민선 서울북부지법 판사도 있었습니다.
“법관 개인이 사적으로 얘기한 것을 공론의 장으로 끌고 와 그 글과 소속된 단체만을 근거로 최 부장판사의 재판에 대한 공정성을 단죄하고 법관 개인의 의사표현을 위축하려는 시도가 잘못된 게 아니냐,법관 개인의 사생활과 표현의 자유는 보호받아 마땅한데 최 부장판사의 개인적 글을 모두 검열하고 신상을 조사하고 사상검열까지 해 외부에 공개하는 것, 이것이 잘못된 게 아니냐”
변민선 판사는 법관 개인에게 사상검열까지 요구하는 이 시대의 사법부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사실 변민선 판사는 신영철 대법관이 촛불집회 재판 개입에 대해서 '신 대법관의 행위는 판사들에 대한 명백한 재판권 침해행위이고 판사 스스로 헌법적 가치를 훼손한 행위'라고 비판했던 판사였습니다.
그는 '각급 법원의 평판사회의, 법관회의 나아가 전국 평판사회의, 전국 법관회의 개최를 요청한다"며 "신 대법관의 사퇴 문제를 넘어서 사법부 독립을 지키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면서 '침묵하던 판사'에서 사법부의 개혁을 요구하는 판사로 바뀐 진정한 사법부를 생각하는 법조인이었습니다.
'사법부를 보호할 든든한 방패로 믿어왔던 대법원장의 신뢰에 큰 금이 오기 시작했다'라는 변민선 판사의 지속적인 사법부 개혁 요구는 누가 참으로 법을 판결하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법관으로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 '아현동 마님' 실제 주인공 백혜련 검사가 뿔났다.
예전에 '아현동 마님'이라는 MBC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여자 검사로 검찰에서 일하는 모습을 잔잔하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그린 드라마로 주인공 여성의 차분함과 일에 대한 열정이 엿보였던 드라마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아현동 마님'의 실제 주인공이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대구지검 형사3부 백혜련 수석검사입니다. 백혜련 검사는 2006년 인간극장에서 'TV판 공공의 적2'에 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 검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8부의 검사들' 편에서도 나왔던 인물입니다.
백혜련 검사는 '검찰이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라며 검찰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난 후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이제 떠나렵니다.
막상 사직할 생각을 하고보니 좀 더 열심히 일할 것을 그랬다는 후회와 반성, 그리고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 했던 많은 이들의 얼굴이 밀려듭니다. 제가 검사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소명이라 생각하고 떠나기 전 감히 몇 마디 하고자 합니다.
검사는 긍지와 자부심을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검사가 되고 싶어 검찰을 지망했고 그간 검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기가 너무도 어렵습니다. 아니 오히려 저희 검찰이, 검사라는 사실이 부끄러운 적도 많았습니다. 연일 쏟아지는 검찰에 대한 언론들의 비판, 정치권의 조롱, 법원의 무죄판결, 국민들의 차가운 눈초리 등등 아무도 편들어주지 않는 검찰의 모습을 보며 검사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저희 검찰이 이렇게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항상 언론의 비판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하여 여러 윗분들로부터 질문을 받았지만 당시 사실 '조직에 누가 될까봐', 더 솔직하게는 '용기가 부족하여' 솔직한 답변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역사적 연원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현재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비판의 대상이 되는 가장 큰 원인은 국민적 관심사가 집중되는 큰 사건,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이 고도로 요구되는 사건들의 처리에 있어 저희 검찰이 엄정하게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키며 제대로 된 사건처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
정의란 정의로울 뿐만 아니라 정의롭게 보여져야 한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검찰의 모습은 국민들이 볼 때 결코 정의롭게 보여지지도,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지키고 있다고 보여지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저희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신망을 받지 못하고 질타를 받는 가장 큰 요인인 것입니다. 아무리 형사부에서 수만 건의 고소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해도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단 하나의 사건을 공정하게 제대로 처리를 하지 못하면 검찰이 쌓아올린 신뢰는 바로 무너져 내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검사의 대화 당시 '검사스럽다'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키며 지키려 했던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이었는데 지금 검찰의 모습은 안타깝기만 합니다. 어찌하다 저희 검찰이 여당 국회의원에게조차 '정치를 모르는 정치검찰'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 검찰이 현 상황을 타개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하여, 우리 검찰의 모습에 대하여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희 검찰의 진정성을 몰라주는 국민과 언론만을 탓하기 보다는, 너무 엄격한 증명으로 무죄를 써댄다고 법원을 비판하기 보다는 정말 저희 검찰이 그동안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점은 없었는지, 저희 검찰의 기준과 상황판단이 시대흐름에 너무 뒤쳐져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 점은 없었는지, 실체적 진실은 별론으로 하고 사건을 처리하는 절차상 공정성의 문제는 없었는지 한번 되돌아보아야 할 시점입니다.
물론 저와 의견이 다른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 검찰내에도 이런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런 목소리도 자연스럽게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주는 것이 저희 조직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추가로 한 마디 더 말씀드린다면 요즘처럼 대검과 일선 사이의 간극이 이렇게 넓게 느껴진 적이 없었습니다. 대검과 일선의 현실 인식의 차이, 소통의 부재가 너무 크게 느껴집니다.
검찰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인 구성원들간의 일체감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검사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점차 잃어가며 일선 검사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상실감, 업무에 대한 낮은 행복지수를 위에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최근 대검의 '검사 직접수사 지침' 처리과정은 지침의 당부를 넘어 이러한 간극과 함께 일선과 대검의 '소통의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고 생각합니다.
일선의 심각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대검에서는 그 흔한 토론회 한 번 개최하지 아니하고 일방적으로 지침을 통보하였습니다. 아무리 올바른 제도나 지침이라 하더라도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고 구성원들과의 교감이 없는 제도는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그 뿌리를 내리기 어려운 법입니다. 요즘 정치권에서조차 '소통'이 화두입니다. 소통하지 못하는 조직은 구성원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없고 결국 시대흐름을 읽지 못한 채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돌아올 사개특위의 높은 파도 앞에서 검찰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이제라도 반성할 점은 반성하며, 검찰 구성원 및 국민들의 목소리에 열린 마음으로 귀기울이고, 미래를 위해 버려야 할 것은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만이 검찰이라는 큰 배가 좌초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저희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염원하는 전국 검사들의 뜻을 모아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 전달하고자 합니다. 먼저, 그동안 검찰이 일부 정치적 사건을 투명하고 엄정하게 처리하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책임이 저희에게 있다는 국민의 질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 중략 … 저희들은 앞으로 정치적 사건을 포함한 모든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어떠한 압력도 거부하고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할 것이며 수사과정에서 국민의 인권보장을 더욱 철저히 할 것을 국민들에게 약속드립니다.』
이 글은 2003. 3. 9.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 당시 전국 평검사회의 대표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던 선언문입니다. 그때의 들끓던 평검사들의 열정이 그립고, 그때의 반성과 다짐이 가슴에 사무쳐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검찰에 있는 동안 좁은 소견으로 마음을 아프게 하였던 분들은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시고 무엇보다도 제가 사직함으로써 업무가 가중 될 저희 청 검사님들의 용서를 바랍니다. 그럼 검찰의 모든 구성원 여러분 행복하십시오,
저는 다른 곳에서 당당한 법조인으로 바로 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두 안녕히 계십시오.
백 검사는 "최근 몇 년간 검찰의 모습은 국민들이 볼 때 결코 정의롭게 보여지지도,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지키고 있다고 보여지지도 않았다" 면서 지금 대한민국 검찰이 얼마나 정의와는 먼 집단이면서 법을 수행하는 기관인지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녀는 '정말 검찰이 그동안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점은 없었는지, 저희 검찰의 기준과 상황 판단이 시대흐름에 너무 뒤쳐져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 점은 없었는지, 실체적 진실은 별론으로 하고 사건을 처리하는 절차상 공정성의 문제는 없었는지 한번 되돌아보아야 할 시점'이라며 검찰 내부의 반성과 개혁을 요구했습니다.
백혜련 검사는 재직 당시 '삼성물산 재개발비리','국세청 비리' 등 치밀하면서 끈질기게 수사해야만 해결할 수 있었던 사건을 수사했던 유능한 검사였습니다.
검찰을 너무나 사랑했고, 드라마의 롤모델과 다큐멘터리에 나올만한 열정과 자질을 가진 여 검사가 결국 사표를 던진 사실은, 지금 대한민국 사법부가 말기암 환자처럼 시한부 인생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보입니다.
■ 진정한 국민을 위한 법의 수호자들은 사법부를 떠나고...
저는 어제부터 최은배 판사,이정렬 판사,변민선 판사,백혜련 검사들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들의 가치관과 행동 모두를 동조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 이런 사람들이 사법부에 있어야 한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 대부분은 법복을 벗어야 하고, 백혜련 검사는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진정한 사법부의 개혁을 외치거나 부조리에 항거했던 판검사들은 사법부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대한민국 사법부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자, 아직도 검사와 판사들에게 악몽과 같은 치욕으로 남아 있는 '인혁당' 사건에서 양심에 충실했던 이용훈 검사는 사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김주열의 시신이 공산당의 사주가 아닌 용공조작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한 명의 검사가 해낸 일입니다. 이처럼 한 명의 검사는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좋은 방향이나 나쁜방향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목에는 백혜련 검사만을 거론했지만, 지금도 숨어 있고 우리가 모르는 양심 있는 검사와 판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판검사들이 지금 사법부를 떠나고 있고,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서글픕니다.
이정렬 판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옳은 일은 반대 있어도 해야죠'를 거론하며, 진짜 살아있는 사법부의 잘못을 비판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강용석 의원은 백혜련 검사의 사표가 총선 출마를 위한 꼼수라고 폄하했습니다. 저는 그녀가 총선에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강용석이 있는 마포구에 나와서 진정으로 대한민국을 위하는 사람이 정치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켜주지 못해 너무 미안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이정렬 판사,최은배 판사,변민선 판사,백혜련 검사
그들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습니다. 사법부는 여러분을 버려도, 대한민국 국민은 당신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