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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공포탄에 의한 쇼크사? 황당한 예비군훈련 사고

 

 

예비군 훈련장에서 사격 훈련을 받던 예비군이 총기를 난사해 3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5월 13일 오전 10시 46분경 서울 서초구 내곡동 송파강동 예비군 훈련장에서 예비군 최모씨가 K2 소총을 난사해 동료 예비군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숨진 최모씨는 사격 훈련을 위해 나눠준 10발 탄창을 소총에 결합한 후 1발을 표적에 쏜 후 곧바로 뒤돌아서 대기 중이던 예비군들에게 총기를 난사했습니다.

 

예비군 훈련 중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지자 언론은 일제히 '관심 사병 출신','게임 중독'이라며 개인의 문제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군당국이 제대로 관리와 통제를 했다면 불행한 사고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과거 예비군 훈련 도중 벌어진 사건 사고를 통해 아직도 바뀌지 않는 예비군 훈련의 문제점을 알아봤습니다.

 

 

'보병 출신 예비군이 포사격이 웬 말? 예고된 재앙'

 

역대 예비군 훈련 중 벌어진 최악의 사고는 '연천 예비군 훈련장 폭발 사건'입니다. 1993년 6월 10일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수도군단 967포병대대에서는 동원예비군의 포사격 훈련이 진행됐습니다.

 

포사격 훈련 도중 포탄이 터져 예비군 16명과 현역 4명 등 20명이 숨지고 5명이 중상을 입는 대형 참사가 벌어졌습니다.[각주:1]

 

사고는 신관 조작과정에서 무리한 취급으로 발생했다는 수사 결과가 났고, 여단장 이하 간부들이 파면, 구속되는 선에서 마무리됐습니다.

 

 

20명이 사망한 이 사건의 문제점은 당시 포사격 훈련을 받던 예비군들의 주특기가 포병이 아닌 보병 병과 출신이었다는 점입니다. 포사격은 쉬운 훈련이 아닙니다. 포병 병과도 아닌 보병 출신의 예비군들에게 포사격 훈련을 시켰다는 자체가 이미 예비군들이 위험 속에서 훈련을 시작한 셈입니다.

 

보통 1개 포반은 8~9명으로 구성됩니다. 당시 예비군들은 1개 포반에 23명이 있었고, 조교로는 현역 1명과 방위병 2명뿐이었습니다. 포병 지식이 없는 방위병 조교가 장약통과 포탄의 안전거리 확보를 알 리가 없었고, 결국 포탄이 터지면서 20여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각주:2]

 

포병 경험이 있는 예비군이 포사격 훈련을 받았거나 경험 많은 조교가 제대로 통제할 수 있었다면 사고를 미리 방지하거나 피해규모가 작았을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각주:3]

 

' 공포탄에 의한 쇼크사, 몸에서 실탄이?'

 

1994년 경기도 미금시 예비군 훈련장에서 세종대생 23살 장덕수씨가 시가지 전투훈련 도중 숨졌습니다. 당시 군당국은 장덕수씨가 30미터 앞에서 동료예비군이 쏜 공포탄을 맞고 쇼크를 일으켜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군당국이 발표한 공포탄에 의한 쇼크사는 시체를 부검하면서 허위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시체를 부검한 결과 장씨의 몸에서 M16실탄 탄두가 발견됐기 때문이었습니다.[각주:4]

 

당시 유가족과 예비군 훈련에 참가했던 대학생들은 M16 소총을 30미터 앞에서 맞을 경우, 총알이 관통되기 때문에 장씨가 인근 사격장에서 날아온 유탄에 맞아 숨졌을 가능성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인근 부대 사격장에서는 사격훈련이 없었습니다.

 

M16실탄과 공포탄은 군대에서 사격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구별할 수 있습니다. 숨진 장씨의 몸에서 탄두가 박힐 정도의 상처가 발견됐음에도 군당국은 공포탄을 맞고 쇼크사로 사망했다는 황당한 사인을 발표했습니다. [각주:5]  제대로 수사를 하지도 않고 사건을 무마하고 조기에 덮어두려는 태도였습니다.

 

약실에 끼어 있던 실탄 탄두가 공포탄에 의해 발사돼 장씨가 사망했다면, 사격 전 약실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각주:6] 훈련을 시작한 조교 내지는 간부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끊이지 않는 사고, 예비군이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

 

예비군 훈련 도중 발생하는 사고는 항상 끊이지 않고 벌어졌습니다. 그중에서는 예비군의 문제가 아닌 관리 감독의 소홀함이 불러일으킨 사건도 많습니다.

 

 

2001년 인천에서 수류탄 투척훈련을 받던 예비군이 수류탄이 터져 상처를 입었습니다. 예비군이 안전핀을 제대로 잡지 않은 문제도 있었지만, 연습용 수류탄에 규정과 달리 철제 외피가 없었습니다.

 

2004년 경기도 양주시 신병교육대 각개전투 훈련장에서 예비군 정모씨가 훈련용 크레모아를 주워 건전지에 연결했습니다. 정모씨가 연결한 크레모아 뇌관이 터졌고, 주위에 있던 예비군 4명이 파편에 맞았습니다. 당시 조교나 간부가 사전에 이런 행위를 발견했다면 사고를 예방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비군이 사격 훈련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살 사건도 있었습니다.

 

▲ 1994년 대학생이 예비군 훈련도중 자살한 사건, 일부 언론에서는 예비군 훈련 총기 사건 일지에서 대구라고 표기하지만, 당시 신문들은 대전이라고 보도했다. ⓒ동아일보

 

1994년 7월 7일 배재대 재학 중이던 이모씨는 예비군 훈련 도중 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쏴 자살했습니다. 1999년 광주 예비군 훈련 중 20대 남성이 자신을 향해 총을 발사해 중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죽음을 택한 예비군의 자살 시도까지 어떻게 막느냐는 주장도 있습니다. 물론 백 퍼센트 막지는 못하겠지만, 제대로 안전 규정만 지켰다면 더 큰 사고를 사전에 방지할 수는 있었습니다.

 

 

사격장에는 사격 훈련 도중 자살이나 총기 난사를 막기 위해 안전고리가 설치돼있습니다. 총을 쇠사슬 등에 연결해 총기를 전방 이외의 방향으로 돌리지 못하게 막는 장치입니다. 내곡동 사격장에도 안전고리가 있었지만,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총기가 난사되는 동안 조교와 통제관은 최모씨를 막지 못했고 도망치기 바빴습니다.[각주:7] 만약 최모씨가 동료 예비군에게 총구를 돌리는 순간 조교가 가까이 있었고, 막았다면 어땠을까요?[각주:8]

 

총기 사고의 대부분은 관리 소홀과 안전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관심사병 출신이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간부들의 안일한 통제와 소홀함, 시스템의 부재 때문에 벌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건만 나면 개인의 문제로 떠넘기는 안일한 방법으로는 앞으로도 끔찍한 사고를 막지 못할 것입니다.

 

  1. 한겨레 1993년 6월 11일. [본문으로]
  2. 예비군은 개긴다, 고로 존재한다. 오마이뉴스 2002년 9월 26일.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88989 [본문으로]
  3. 일부에서는 1950~1972년 사이미국에서 들여온 포탄의 문제점을 제기했지만, 주한미군은 신관 자체 결함의 폭발 사고는 1/10000 정도의 경우뿐이라고 밝혔습니다. 연천 포사격장 참사원인 신관 결함 추정 MBC 1993년 6월 1일.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3/1756333_13445.html [본문으로]
  4. 예비군훈련 도중 장덕수씨 실탄맞고 사망.MBC뉴스 1994년 5월 5일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4/1928047_13446.html [본문으로]
  5. 일부에서는 실탄 탄두가 총기의 약실에 끼어 있었고, 공포탄을 장전해 쏠 경우 강력한 위력을 지닐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한겨레 1994년 5월 7일 [본문으로]
  6. 사격 훈련 전에는 총기에 탄두나 불발탄 등이 있는 경우를 대비해 허공에 대고 총기 점검을 꼭 한다. [본문으로]
  7. 예비군 ‘총기 난사’ 때 사격통제관·조교 황급히 도망갔다 한겨레 2015년 5월 14일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691266.html [본문으로]
  8. 군당국은 조교들이 최모씨로부터 6~7미터 떨어져 있었다고 발표했다. 조교가 일부러 자신을 희생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바로 곁에 있을 경우 총구를 곧바로 돌릴 수 있었다는 의미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