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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미디어

'심야식당'처럼 뉴스에는 없는 '슬로우 뉴스'

 

 

SNS와 온라인에서 자주 공유되는 뉴스 중의 하나가 '슬로우뉴스'입니다. 슬로우뉴스는 지난 2012년 3월, 마약처럼 빠른 속도로 나오는 뉴스 세계에서 '슬로우'라는 새로운 속도를 제안하며 탄생한 매체입니다.

 

'슬로우뉴스'는 기자, 학자, 개발자, 회사원, 변호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창간발기인이 모여 만든 '인터넷신문'입니다. 이들의 공동점은 블로거였다는 점이죠. 요새 말하는 '대안언론'의 하나로 볼 수도 있습니다. 대안언론으로 분류되지만, 슬로우뉴스는 '언론'이 보여주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걸음걸이로 걷습니다. 앞서 말한 '슬로우'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올라오는 언론의 속보 경쟁을 '슬로우뉴스'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속보경쟁의 폐해를 비판합니다. 뉴스지만, 포털에서 소비되는 과장된 속보와 특종을 '지양'하고, 큰 이슈인지 작은 이슈인지 상관없이 그저 생각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올립니다.

 

슬로우뉴스 편집위원이기도 한 강정수 박사는 슬로우뉴스를 "틈새시장 중 틈새시장"이라고 합니다.[각주:1] 대안언론으로 불리지만, 기존의 대안처럼 정치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널리즘의 문제와 사람들이 놓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창간 3주년을 맞은 '슬로우뉴스'를 통해 '뉴미디어','대안언론'의 방향을 고민해봤습니다.

 

'사람들은 왜 슬로우뉴스의 콘텐츠를 소비하는가?'

 

슬로우뉴스에서는 자극적인 폭로형 기사를 거의 볼 수 없습니다. 물론 '대선 팩트체크''종북 셀프 테스트','아이폰 5 A/S'처럼 큰 이슈가 된 기사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미 논란이 된 사회 현안에 대한 심층 해설/분석 기사나 기성 언론에서 잘 다루지 않는 다양한 생활 속 이야기, 기성언론에 대한 메타적 비평, 전문가가 자신의 전문성에 바탕해 전하는 이야기들입니다.

 

범위를 학교에 한정해도 슬로우뉴스는 교사와 시강강사, 학생을 취재원으로 짧게 활용해 '코멘트'를 받는 기성언론의 기사형 컨텐츠를 제작하기보다는 직접 그들의 기고를 유도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현장의 주인공이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는 방식을 취합니다.[각주:2]

 

▲ 슬로우뉴스의 4일간 기사 목록 ⓒ슬로유뉴스 캡처

 

지난 며칠 간의 슬로유뉴스 중에서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기사는 '예술가를 격려하는 데는 어떤 비용도 들지 않는다'는 호주 카툰 작가의 작품입니다.

 

사드 문제로 시끄러운 요즘, 사드 얘기를 더 좋아할 것 같지만, 사드 관련 기사는 보통 수준에서 약간 더 관심이 많았을 뿐이었습니다.

 

터미널 롯데리아, 동네 맥도날드, 강남 버거킹'이라는 '버거지수'라는 햄버거 매장 관련, 전혀 생뚱맞은 얘기가 오히려 사드보다 좋아요를 많이 받았습니다.

 

슬로우뉴스에서 인기가 있는 콘텐츠를 보면 그다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얘기들을 사람들은 더 주목했습니다. 한 마디로 과장되고 화려한 소재보다 전문가의 실험(버거지수), 레진코믹스 '검열' 논란을 우회적으로 빗댓 호주 카툰 작가의 만화 작품처럼 기성언론이 시도하지 않는 다양한 전문가의 목소리와 형식 실험에 끌렸다는 이야기입니다.

 

▲ 슬로우뉴스가 한겨레가 보도한 기사를 반박하는 글 ⓒ슬로유뉴스 캡처

 

슬로우뉴스 콘텐츠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언론이 보도는 했지만,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얘기들을 끄집어내는 힘에 있습니다.

 

우리는 언론이 보도하는 기사가 모두 진실이었다고 믿는 시대에서 언론의 오류와 그들의 병폐를 알고 있는 시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언론 기사를 읽지만, 석연찮은 생각을 합니다.

 

슬로우뉴스는 그런 독자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던집니다. 정치적 반박이 없어도, 사람들은 전문가의 솔직한 이야기, 일상에서 자신의 고민을 전하는 '이웃의 목소리', 그리고 기성언론이 미처 말해주지 않는 이슈의 입체성과 핵심을 꿰뚫어 보여주는 슬로우뉴스의 매력에 빠져, 글을 읽고 공유합니다.

 

사람들이 슬로우뉴스의 기사를 소비하고 유통하는 가장 큰 이유는 '누군가 만든 얘기가 아닌 나의 얘기' 더 공감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슬로우뉴스는 대안언론이 아니다.'

 

아이엠피터는 슬로우뉴스를 대안언론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슬로우뉴스는 기존의 정치적 당파성이 강한 대안언론이라기보다는 지금 이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얘기를 직접 그들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매체입니다.

 

거창한 저널리즘보다는 사람들의 욕구 속에서 나올 때가 됐으니 나왔을 뿐입니다.

 

▲ 일본드라마 '심야식당'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만 영업하며, 메뉴 외에도 먹고 싶은게 있으면 재료가 있는 한 만들어준다. ⓒ http://www.meshiya.tv/

 

슬로우뉴스가 만드는 콘텐츠는 많은 사람들을 자극하는 글은 아닙니다. 그러나 꼭 읽고 싶은 글들이 있습니다. 마치 일본의 심야식당에서 메뉴판에 없는 음식을 주문하는 일 같습니다.

 

고급 레스토랑이나 유명한 맛집처럼 화려함은 없습니다. 오히려 딱딱한 데이터가 글 안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호객행위도 없습니다. 그런데 먹으면 먹을수록 자꾸 생각납니다.

 

슬로우뉴스가 창간 3년을 맞으면서 콘텐츠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왔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도 궁금해집니다.

 

슬로우뉴스 편집장 민노씨는 '우리 시대의 뮤즈: 슬로우뉴스 3년 '에서 '당신의 슬픔, 그 슬픔에서 싹 트는 우리의 소망이 우리 자신에게, 서로에게, 우린 무슨 멋지고 섹시한 예술가는 아니지만, 아니겠지만, 뮤즈가 될 수 있다면, 참 좋겠어.'라고 밝혔습니다.[각주:3]

 

▲ 슬로우뉴스 'Fast is good, slow is better' (빠른 것은 좋다. 느린 것은 더 좋다' ⓒ슬로우뉴스

 

슬로우뉴스가 시대의 흐름에서 성장하고 있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생존을 추구하는 기성 언론과는 달라야 하겠지만, 좋은 콘텐츠를 확산시킬 수 있도록 자신들의 몸을 튼튼하게 만들 필요는 있습니다.

 

지금 계획하고 있는 CMS 후원을 더 전면에 내세워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계간지 형태로 만들어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천천히 읽을 수 있는 채널을 만들면 어떨까 싶습니다.[각주:4]

 

편집인들의 역량이 높으니 '글쓴이 OOO, 편집 OOO'과 같은 형태로 기존 콘텐츠를 새롭게 구성하는모습도 괜찮다고 봅니다.[각주:5] 특히 1인 미디어들이나 블로거들에게는 없는 데스킹 역할도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각주:6]

 

전문경영인을 통한 다각적인 생존과 슬로우뉴스가 내세우는 '빠른 것은 좋다. 느린 것은 더 좋다'라는 모토를 함께 충족시킬 방안도 필요합니다.

 

앞으로도 슬로우뉴스가 뉴스에 지친 사람들에게 진짜 읽고 싶은 뉴스를 더 내놓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슬로우뉴스 사람들'

 

슬로우뉴스를 통해 대안언론의 미래를 생각해보고자 슬로우뉴스 '써머즈'(발행인 겸 편집위원)와 '뗏목지기'(편집위원) 두 분을 만났습니다. 편집장인 민노씨는 시간 관계상 만나지 못했지만, 다음 날 만나 몇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랫 글은 슬로우뉴스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 인터뷰 내용을 가공해 작성한 글입니다.

민노씨가 궁금한 분들은: 슬로우뉴스호 선장 민노씨 (다이버시티)

 

▲ 인터뷰 도중 각자의 얘기를 말하는 슬로우뉴스의 뗏목지기(좌측)써머즈(우측) ⓒ아이엠피터

  

슬로우뉴스 발행인과 편집위원이지만, 직장 생활과 프리랜서 일을 병행하는 '뗏목지기','써머즈'를 만났다. 개발자답게 써머즈는 인터뷰 내내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화면에는 슬로우뉴스 관련 데이터가 보였다.

 

두 사람 모두 슬로우뉴스의 힘을 편집장 민노씨라 말했다. 민노씨가 전권을 행사하느냐 묻자, 민노씨가 주장하는 '수평적 민주주의'를 꺼냈다. 슬로우뉴스의 의사결정에서 민노씨는 그저 한 사람에 불과했다. 주요 안건은 편집팀 회의에서 중론으로 결정된다.한 사람의 결정이 아니었다.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실무진의 자율성을 늘리고 있단다.

 

슬로우뉴스 역대 편집팀 회의에서 가장 많이 킬(거부)당한 글을 쓴 이는 누굴까? 놀랍게도 편집장 민노씨의 글이다. 편집장의 글도 킬하는 슬로우뉴스 편집팀. 슬로우뉴스는 도대체 어떤 글을 원할까? 슬로우뉴스는 도대체 무슨 글을 원할까? 

 

슬로우뉴스가 원하는 글은 시간이 지나도 읽을 수 있는 글이란다. 시간과 완벽한 글은 무슨 상관일까? 창간 초기 A부터 Z까지 쓸 수 있는 필진을 요구했다. 지금은 부족해도 토론이 일어나는 글이 좋단다. 반박하는 글을 기다리지만, 자주 없어 아쉽다는 슬로우뉴스다.

 

필진이 많다. 노하우가 뭘까? 인맥과 전문가 섭외였다. 요샌 올라온 기사를 읽은 경험자들이 글을 보내온단다.[각주:7]

 

필진이 보내온 글의 편집이 두렵다는 써머즈, 과감한 편집을 추구하는 민노씨. 누구 방식이 옳을까? 아이엠피터는 후자가 좋았다.

 

▲ 슬로우뉴스 편집장 민노씨 http://diversity.co.kr/7368/ ⓒ다이버시티

 

IT회사 복도에서 만날 수 있는 써머즈와 뗏목지기. 그저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이다. 한 시간 남짓 말을 듣다 얼굴을 보니,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언론사와 출판사 등록까지 마친 슬로우뉴스. 어떻게 먹고 사느냐고 물었다. 처음보다 낫단다. 뗏목지기는 실무 편집위원, 써머즈는 발행인, 민노씨는 편집장으로 버티고 있단다. 예전보다 독자도 크게 늘었고, 후원자도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2015년을 더 기대하는 사람들.

 

'돈을 벌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쓸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수단이 옳으냐는 우리가 항상 고민해봐야 한다.'뗏목지기.

 

'슬로우 뉴스가 아무리 해도 포르노를 이길 수는 없다. 다들 돈을 벌기 위해 미디어를 운영하니,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 슬로우뉴스를 만들었다' 써머즈

 

월급을 모아 세계여행을 가겠다는 40대 아저씨가 생각났다. 그들이 어디로 여행 갈지는 모른다. 생존보다는 유유자적 풍광을 즐기리라.

 

  1. <뉴미디어 인터뷰>②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강정수 박사. 연합뉴스 2013년 6월 4일. http://www.yonhapnews.co.kr/culture/2013/06/04/0908000000AKR20130604167200039.HTML [본문으로]
  2. 사례: 학교 이야기, 나는 시간강사다, 최근 중앙대 이슈에 관한 중앙대 독립저널의 기고 등 [본문으로]
  3. 우리 시대의 뮤즈: 슬로우뉴스 3년. 슬로우뉴스 2015년 3월 17일. http://slownews.kr/39106 [본문으로]
  4. 슬로우뉴스는 출판사 등록까지 했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부분에 전문가도 필요하다고 한다. [본문으로]
  5. 해외에서는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편집자 내지는 고참 기자가 기사로 작성하는 형태도 있다. [본문으로]
  6. 보통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글이 잘려나가는 모습을 싫어하지만, 아이엠피터는 이런 작업을 통해 단점이 보완된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7. 슬로유뉴스는 2015년 봄 중앙대 얘기를 썼다. 기사를 본 중앙대 독립언론 필자가 슬로우뉴스에 글을 보내왔다. '중앙대 구조조정 잔혹사'.http://slownews.kr/38870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