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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키우러 제주 왔다가 '공동육아'로 바뀐 사연


제주에 온 지 5년이 되어 갑니다. 제주에 처음 올 때에는 정치블로거로의 삶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왔습니다. 전업블로거로 살면서도 두 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에 '육아'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나마 제주라는 천혜의 자연이 있기에 아이들의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는 작은 희망은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육아'가 자연 속에서만 이루어지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 마을과 떨어져 살다 보니 아이들의 발달에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바로 집으로 오니 사회성이 부족해졌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이 간혹 놀러 오지만, 그걸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던 시기에 마을 안쪽에 세운 학교살리기 공동주택에 입주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의 생활에는 놀라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 친구, 이모들과 함께하는 등교길' 

학교와 불과 100여미터 떨어진 마을 안쪽 공동주택에 입주하니, 가장 먼저 온가족의 등굣길이 편해졌습니다.


글을 쓰며 발행하는 일을 해야 하는 바쁜 아침 시간이지만,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기 위해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약 10킬로 정도 떨어진 학교까지는 차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로 아이들이 등하교하다 보니, 친구들과 함께 놀지도 못하고 그냥 집에 와야만 했습니다.

공동주택에 입주하고는 아이들의 등하교가 너무 편해졌습니다. 우선 차를 운전해서 아이를 데려다 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큰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알아서 등하교하기 때문입니다.

정신없이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하교에 맞춰서 또 학교까지 데리러 가다 보니 오후 시간에는 어디를 가지 못했던 생활도 바뀌었습니다.


유치원생은 부모와 귀가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공동주택에 사는 엄마 중 한 사람이 자기 아이를 데리러 가면 공동주택 내 유치원생 아이들을 몽땅 데리고 옵니다.

엄마들은 '네이버 밴드'라는 모바일 메신저를 사용하는데, 누가 유치원생을 데리고 오면 ' 5세 아이들 데리고 왔어요'라고 올립니다. 그러면 엄마들은 각자 알아서 자신들의 볼일을 보기도 하고, 아이들은 그냥 친구들하고 놀다가 집으로 오기도 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엄마,아빠가 있는 집에서는 아이들의 등하교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의 일을 볼 수 있어서 너무 편하고 안심이 되기도 합니다.

예전 서울 직장 생활할 때는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매번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멀게만 느껴지고 있습니다.


'밥 먹으러 와라! 해야 집에 오는 아이들'

30~40대 부모들은 어릴 적 친구들과 놀다가 엄마의 '밥 먹으러 이제 집에 와라'하는 소리에 집에 오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요새는 학원을 가야 하니 이런 풍경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동네는 오히려 이런 생활이 일상화됐습니다.


가장 먼저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가방만 집에 던져 놓고 (가끔은 가방도 들고) 공동주택 마당과 농로[각주:1]에서 놉니다. 어릴 적 엄마,아빠들이 하는 놀이보다는 자전거, 퀵보드.인라인을 타고 놀지만, 그래도 놀이에 빠져 집에 들어 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나 날씨가 추우면 모든 아이들은 이 집, 저 집을 몰려다니며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밥을 먹는 시간에도 오지 않으면, 엄마들은 옛날처럼 '밥 먹으러 와라'고 큰소리치지 않습니다. 그냥 메신저로 '우리 아이 어디 있나요? 밥 먹으러 오라고 해주세요' 라고 합니다.

메시지를 하나 올리면 엄마들은 자기 아이들도 보내달라고 하고, 아이들이 노는 집의 엄마는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기도 합니다. 옛날과는 다르지만, 저녁 먹으러 오라는 엄마의 모습은 똑같아졌습니다.

' 함께 놀고 공부하는 공동육아'

요새 공동육아를 꿈꾸며 모여 사는 부모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공동주택에 사는 우리 아이들은 그냥 자연스럽게 '공동육아'가 됐습니다.


유치원생들은 형과 언니들이 놀아주지 않았던 장난감 놀이를 함께 하기도 합니다.[각주:2] 특히 에스더는 언니들이 생기자 인형과 소꼽놀이에 관심있어 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놀 때는 매번 스마트폰만 하던 아이들도 이제는 밖에서 노는 시간이 많아졌고, 번갈아 가면서 하기에 스마트폰 사용시간이 현저히 적어졌습니다.


이렇게 매번 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모여 숙제를 하기도 합니다. 엄마들은 아이들의 부족한 영어나 수학을 나누어서 무료로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과외 아닌 과외이지만 아이들은 지겨워하지 않고, 오히려 친구들과 공부하니 더 재밌어합니다.

물론 엄마들이 주는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등의 간식에 현혹되어 그것을 먹으러 공부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쨋든 돈 주고 학원 보낼 때는 가기 싫던 아이들도 이제는 스스로 공부하려는 모습이 조금씩 엿보이기도 합니다.


공동주택에 사는 아이들은 밥을 먹을 때도 함께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밥투정하거나 밥을 먹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혼자서 밥을 먹을 때는 밥 한 그릇 겨우 먹던 아이들이 서로 밥을 더 달라고 난리이고, 엄마들이 많다 보니 간식의 종류도 다양하게 먹기도 합니다.

혼자서 노는 놀이보다 함께 자전거를 타고 어디까지 가느냐 시합을 하기도 하고, 함께 모여 줄넘기와 술래잡기도 하고 놉니다.

학교 왕따와 학교 폭력 때문에 사회성 발달이 육아의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지만, 공동주택에서는 그냥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사회성이 길러지고 있습니다.

' 힘들지만, 함께 가면 희망이 보인다'

제주에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와서 공동주택 생활을 하다 보니 아이들이 더 신나게 뛰어놀고 잘 먹으니 부모들은 참 좋습니다. 그러나 이 안에서도 분명 문제는 있습니다.


도시에서 살다가 귀촌을 하면 마을 고유의 문화 내지는 풍습과 융화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농사짓는 마을 사람들과 IT나 다른 직장에서 일하는 공동주택 젊은 부부들과는 생각과 가치관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차이가 하루아침에 좁혀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공동주택 사람들은 마을 행사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조금씩 마을 사람들의 문화와 생각을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뿐만 아니라 공동 주택 내부에서도 공동의 생각과 의견을 따르지 않고 튀는 행동 등으로 불편함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낯선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 서로 양보하고, 비슷한 생활 습관을 이해한다면 낯선 제주 생활이 오히려 즐거워지기도 합니다.  


사회에서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누군가의 힘과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고, 누군가의 손을 잡아야만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나눔이라는 것이 꼭 커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엠피터는 늘 깨닫고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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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엠피터처럼 경제적 이익을 꾀하지 않고 오로지 글만 쓰는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도 많은 분들이 나눔을 통해 아이엠피터의 짐을 거들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월 초, 한 달 동안 아이엠피터가 어떻게 살았는지 구독하시는 분들께 알리는 글을 쓰다 보면[각주:3] '작은 정성들이 모여서 아이엠피터의 삶을 이렇게 붙잡아 주는구나'라며 매번 큰 감동을 받습니다.  

한 가족이 제주에서 정착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서로서로 힘을 보태고 나눈다면 조금은 어려운 길을 든든하게 갈 수 있는 희망이 자꾸 보이게 됩니다.


매일 둘이서만 놀고먹던 요셉이와 에스더는 공동주택으로 이사 와서는 또래 아이들은 물론이고 형,언니,동생들과 함께 놀고 같이 먹고 모여서 공부를 합니다.

이제 아이들은 넘어져도 잘 울지 않습니다. 옆에 있던 형이나 언니들이 손을 잡고 '괜찮아, 다시 같이 놀자'라고 해주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집을 옮겼을 뿐이지만, 아이들은 혼자가 아닌 함께 커 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1. 밭 사이에 난 길 [본문으로]
  2. 이상하게 요셉이는 자기 동생하고는 놀지 않아도 옆집 남자 아이하고는 잘 놀아준다. [본문으로]
  3. 아이엠피터가 매월 초에 올리는 글은 후원자 명단 공개와 함께 한 달동안 어떻게 제주에서 살았는지 근황을 알려주는 글이기도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