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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우리는 월드컵을 원하지 않는다' 왜?



6월 18일 오전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팀이 러시아와 경기를 합니다. 브라질 월드컵 경기 응원을 위해 서울 시내 곳곳에서는 6월 17일 저녁부터 교통 통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실종자가 아직도 12명이나 남아 있는 상황에서 월드컵 거리 응원을 하는 모습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도 축구 응원은 다르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 옳고 그르다는 얘기는 함부로 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각자의 가치관과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어제저녁부터 거리 응원을 위해 도로를 통제하는 한국과 다르게 브라질에서는 '우리는 월드컵을 원하지 않는다' (Não Queremos a Copa)라는 시위대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벌어지고 있습니다.

브라질 월드컵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브라질 국민이 월드컵을 원하지 않는 이유'

브라질 국민이 월드컵의 브라질 개최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재 브라질의 경제 상황이 너무 안 좋기 때문입니다. 브라질 경기가 어느 정도로 안 좋은지 보여주는 대목이 바로 '토마토' 가격입니다.

▲ 브라질 여성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가 토마토를 짓밟는 모습을 묘사한 브라질 언론사


브라질의 토마토 가격은 몇 년 사이 무려 150%가 올랐습니다. 한국의 주식인 쌀이나 김치처럼 브라질에서 토마토는 없어서는 안 되는 음식 재료입니다.

브라질 음식에 많이 사용되는 토마토 가격이 엄청나게 오르니, 토마토를 아르헨티나,파라과이 등에서 밀수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정도입니다.

토마토뿐만 아니라 각종 물가가 높아지니 브라질 국민들의 생활고는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2013년 6월초 브라질 상파울로 주는 버스요금을 3헤알에서 3.2헤알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한국 돈 100원에 불과한 돈이 인상됐다고 시위까지 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브라질 서민에게는 굉장한 부담되는 액수입니다.


대중교통 요금 인상이 불거지자 브라질 국민들은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브라질이 과연 월드컵을 개최하는데 돈을 써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한 반문이 나왔습니다.


브라질 정부는 이번 월드컵 개최를 위해 경기장 건설 등에 100억달러 (한국돈 10조 2,400억원) 이상의 비용을 지출하고 있습니다. 국민은 지금 당장 토마토가 비싸 먹지 못하고, 타고 다닐 버스요금이 올라 걸어 다니는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브라질 국민은 지금 브라질에 필요한 것은 월드컵이 아니라 높아가는 물가와 복지 등 '생존'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월드컵을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 룰라가 시작한 월드컵, 왜 끝이 이상해지고 있는가?'

브라질 월드컵을 개최한 사람은 지지율 89%에 빛나는 '룰라' 대통령입니다. 좌파 대통령으로 브라질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룰라는 브라질이 월드컵을 개최할 수 있도록 하고 퇴임했습니다.


룰라 대통령은 한국 언론에서도 가장 많이 주목을 받았던 외국 대통령 중의 한 명입니다. 그를 조명하고 그의 업적을 찬양하는 언론과 방송은 수도 없었습니다. 


룰라 대통령이 최저임금을 인상하여 빈민층을 구제하고 합리적으로 진보와,보수를 사로잡은 리더십도 있었지만, 그의 성공 뒤에는 그 무엇보다 '경제'가 있었습니다.

사실 룰라 대통령을 가리켜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만큼 그의 재임 시절 2009년을 제외하고는 세게 경제가 좋았고, 브라질의 수출도 2배 이상 증가했었습니다.


룰라 대통령 재임시절 물가는 낮아지고. 계속 성장하던 브라질 경제는 그의 퇴임이후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2월 브라질 식품,음료 부문 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9.9%까지 올라갔고, 2012년 경제성장률은 2009년 이후 최저인 0.90%에 불과했습니다.

룰라 대통령의 뒤를 이은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생필품에 붙는 9.25%의 연방세를 없애면서 감세 정책을 펼쳤지만, 망가지는 경제를 회복하기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룰라 대통령의 재임 시절, 브라질은 많은 성장과 발전을 했지만, 실제로 브라질의 가장 큰 문제인 빈부격차와 교육, 복지, 노동 등의 문제점을 완전히 바꾸지 못했고, 이것이 지금 나타나고 있습니다.

' 월드컵은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정치는 가능하다'

브라질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빈민가의 마약 갱스터와 치안 문제,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무차별적인 살상과 개선되지 않는 근본 원인입니다.


브라질에서 하루 평균 총기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이 평균 108명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총기 사고 대부분이 경찰과 범죄조직 간의 총격전으로 사망합니다.


브라질은 군경 소속의 특공대를 빈민가에 투입하여 범죄조직을 소탕하려고 하지만 실제 이 과정에서 죽는 사람은 빈민가 시민들입니다.

브라질 특공대와 범죄조직간의 총격전은 단순히 권총 등의 총기가 아니라, 자동기관총, RPG, 수류탄 등 거의 시가전을 방불케 합니다.

엄청난 화기와 인력을 투입하면서 왜 브라질은 빈민가의 범죄조직을 소탕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브라질 사회에 뿌리 박힌 부패 때문입니다. 빈민가 사람들은 뇌물 받는 경찰이나 범죄조직이나 별 차이가 없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브라질 국민은 어떤 나라보다 축구를 좋아하고 월드컵을 즐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월드컵은 경제 성장을 갖다 주는 마술쇼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괴물로 변해버렸습니다.


월드컵을 전후로 많은 시위대가 월드컵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다행히 월드컵 기간 동안 시위가 이전보다는 줄어들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나고 더 망가질 브라질 경제를 생각하면 시위는 훨씬 더 거세질 수도 있습니다.


브라질은 10월에 정,부통령과 함께 전국 27개 주의 주지사, 연방 상원,하원 의원 등을 선출하는 선거를 합니다. 현 브라질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정치적 후견자로 있는 룰라 전 대통령은 벌써 선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좌파 대통령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았지만, 다시 불어닥친 브라질의 위기 속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룰라 전 대통령과 호세프 대통령이 선거에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월드컵이 주는 만족과 기쁨, 희열은 우리에게 감동까지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감동과 희열 속에만 무조건 빠져 있기보다는 월드컵 경기를 통해 정치가 어떻게 변화되고 어떤 의미를 주는지도 우리가 함께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월드컵은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정치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