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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관광주간' 신설 '단기방학' 졸속행정의 끝판왕


박근혜 대통령은 1월 3일 오전 청와대에서 제2차 관광진흥확대회의를 주재했습니다. 이날 회의에는 문화체육관광부를 포함한 13개 부처 장·차관및 청장 등이 참석하여 관광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잇달아 발표했습니다.

이날 관광정책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정책은 '관광주간' 신설입니다. '관광주간'은 5월, 9월 초·중·고교의 방학을 유도,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가고, 이런 여행을 통해 내수 시장 활성화와 고용 인력 증가, 경제 부흥을 노린다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참 괜찮은 아이디어 정책 같지만, 이런 정책은 정말 보여주기식 행정의 극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어떤 점이 문제인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단기방학 신설해 줄어드는 수업일수 어떻게 하나'

문화체육관광부는 관광주간을 5월 1일부터 11일까지, 9월 25일부터 10월 5일까지 정하고, 총 22일간의 관광주간에 초·중·고교의 단기 방학을 유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이런 정책은 가장 중요한 교육 행정에 대한 실태 조사와 대책 없이 내놓은 무책임한 정책입니다. 제일 큰 문제는 바로 수업일수입니다.


어제 겨울방학을 마치고 개학식을 한 큰 아이는 아침 8시 30분에 등교해 방과후 수업까지 마치고 오후 3시 30분에 귀가했습니다. 아빠가 학교 다닐 때 개학식은 그저 1,2교시하고 마치던 것과 다르게 정규 수업을 한 것입니다.

개학식, 방학식에도 정규 수업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5일제 수업 전면 시행으로 수업일수가 190일로 줄면서(이전 205일), 그래도 모자란 수업일수를 마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도 수업일수 때문에 주당 수업시간이 늘어난 상황인데, 22일간의 단기 방학으로 수업일수가 줄어들면 초·중·고교생들은 주당 수업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0교시 수업 학교 현황과 고등학교의 편법 수업 시간 늘리기. 출처:SBS,오마이뉴스,


단기 방학을 현재 학교장 재량수업일수(20일)로 돌린다고 해도 교육과정에 제시된 총 수업시간 수 이상을 이수하기 위해서는 수업시간이 필연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수업일수가 적고 많음도 문제이지만, 수업일수를 채우기 위한 편법 수업시간 조정은 아이들의 수업 여건을 힘들게 합니다.
 
장기적인 계획인 필요한 교육 정책상 수업일수는 철저한 조사와 준비 등을 통해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는 교육부와는 아무런 협의조차 하지 않고 청와대에 보고했습니다. 


단순히 관광주간을 만들기 위한 '단기방학'은 교육정책은 나 몰라라 하고 만든 졸속 행정의 표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방학하면 과연 누가 아이들을 돌볼 것인가?' 

어제 아이들의 개학과 동시에 만세를 부른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맞습니다. 부모입니다. 겨울 방학 동안 학원을 보내지 않는 우리 집은 방학기간 내내 전쟁이었습니다.


온종일 집에서 컴퓨터에 앉아 자료를 찾고 밤에 글을 써야 하는 아이엠피터는 낮잠을 조금이라도 자야 합니다. 그러나 방학 내내 아이들 때문에 낮잠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종일 아이들이 어지르는 방을 청소하고 치우느라 고생하고, 밤에는 자지 않으려는 아이들과 매번 싸움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전업 블로거라 집에서 근무하는 아이엠피터는 그나마 낫습니다. 농사를 짓거나 직장에 다니는 부모들은 방학 때만 되면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 힘듭니다. (물론 학교 돌봄 교실도 있지만, 등하교시키는 것도 부담이 큽니다.)

▲서울 어학원의 여름방학 특강 전단지. 출처:인터넷


도시에서는 방학이라고 아이들이 놀지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학원에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방학기간 학원들은 특강을 하고, 부모는 자기 아이들이 학업에 뒤처지지 않도록 학원을 무조건 보냅니다.

단기방학을 하면 이런 현상을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업일수가 부족해 진도가 빨라지고, 이것을 따라가기 위해 아이들은 학원에 가야 하는 일이 반복될 것입니다.

결국, 방학이 늘어난다고 오로지 관광만 다닌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이를 키워보지 못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생각에 불과합니다.

'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일반 국민들'

문화체육관광부가 신설하겠다는 관광주간이 나오게 된 배경은 해외 여행에 국민이 많이 가기 때문에 국내 관광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의도에서 시작됐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내 관광이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으로 시간 부족과 비용부족으로 나타났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관광주간과 단기방학을 시행하고, 근로자 휴가지원제도를 통해 휴가비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밝힌 관광주간 도입 관련 내용. 출처: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


국내 관광을 시간이 없어서 못 간다고 응답한 사람들 대부분은 휴가를 제대로 쓰기 어려운 보통 국민입니다. 대기업과 공무원이야 자기 휴가를 갈 수 있는 시스템이지만, 중소기업에 다니거나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사람은 휴가 한 번 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아이들이 방학한다고 부모가 다니는 중소기업 회사에서 휴가를 내줄리는 거의 없습니다. 특히 주5일 근무제 도입으로 연차조차 쓰기 어려운 한국 직장 조직의 분위기를 공무원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체휴일제 하나 가지고도 난리가 나는 재계에서 국내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쉬라고 한다고 순순히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져 경제가 위기에 처한다고 국민을 상대로 협박할 수도 있습니다.


어찌해서 회사에서 휴가를 줬다고 칩시다. 휴가비용을 정부 10만 원+회사 10만 원을 지원하겠다고 하는데, 과연 어느 정도의 회사들이 지원할 수 있으며, 그 비용이 적당한지도 의문입니다.

여름휴가(3박 4일 기준) 평균 비용이 48만 원이라고 합니다. 관광주간에 숙박비 할인 등의 혜택을 받아도 최소 25만 원 이상은 소요됩니다.

또 이런 비용을 지원한다고 해도 국내 관광만 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시간과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 굳이 몇십만 원 비용을 아끼려고 국내 관광을 가기보다는 오히려 비수기 때인 5월 9월에 해외여행을 갈 확률이 높습니다.


아이엠피터 가족은 제주에 살면서도 잘 놀러 가지 않습니다. 테마 공원 하나 가고 밥 한 끼 먹으면 돈 10만 원이 훌쩍 넘기 때문입니다.

돈 안들이고 아이들과 놀기 위해서 겨울이면 동네에서 눈썰매 타고, 여름이면 물 받아 놓고 물놀이하고, 그마저 힘들면 아이들하고 TV로 유료 영화나 봅니다.

아이엠피터 가족은 관광주간이 신설되고 단기방학을 해도 국내 관광 산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아이들과의 방학 전쟁 상처만이 남을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청와대가 마련한 관광 정책이 얼마나 허술한지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가끔 정부를 보면 육아를 책으로만 배운 사람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겨운 방학이 끝나고 한숨 돌린 부모에게 날벼락 같은 소리를 해대는 정부를 보니, 딱 일주일이라도 진짜 아이를 키워보라고 하고 싶습니다.